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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상설 무대 여행에서 만난 흥겨운 공연
예로부터 국보급 소리꾼과 다채로운 공연 문화로 유명한 전라북도에는 지금도 곳곳에서 흥겨운 공연판이 벌어진다. 전통의 가치를 놓치지 않되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신선한 기획으로 재탄생한 전북의 다양한 공연을 소개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리울 스토리의 무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체코의 프라하, 이탈리아의 베로나. 이곳의 공통점은 세계적 공연 예술의 도시라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 오페라, 연극 등 1년 내내 크고 작은 공연이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고, 축제가 열리는 몇 주 동안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야외 공연장이 되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객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의 공연 레퍼토리, 때로는 심지어 무대까지도 옛것을 그대로 따르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와 실험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공연 예술 하면 빠지지 않는 지역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판소리와 명창의 본고장 전라북도다. 판소리는 음악, 연극, 춤이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종합 공연 예술의 결정판이다. 조선시대 최초의 소리꾼으로 알려진 명창 권삼득 선생의 고향이 전라북도 완주이고,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이던 대사습놀이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 역시 전라북도 전주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전라북도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판소리의 발상지다. 또한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춘향가의 무대가 된 남원에서는 193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단옷날 무렵에 ‘남원춘향제’를 열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매해 가을 성대하게 개최하는 ‘전주세계 소리축제’에서는 우리나라의 소리 예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발판이자 20 여 개국의 전통 민속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비단 축제 기간뿐 아니라 전라북도 곳곳에서 열리는 전통 예술 공연을 만나는 것은 연중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는 사람만 즐긴다는 알짜배기 공연이 즐비하다.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구성진 우리 가락은 전라북도 여행의 백미가 될 것이다.

1 새만금 지역의 여행 정보와 <아리울 스토리> 공연 정보를 상세히 소개한 여행 안내서. 
4 <아리울 스토리>를 공연하는 바다 위의 빨간 예술창고는 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 방조제의정중앙에 위치해 양쪽에서 오는 여행자를 공평한 거리로 맞이한다.

새만금에 울려 퍼지는 아리울 스토리 군산
앞바다를 가로막은 새만금 방조제를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풍경에 문득 물 위를 달리는 듯한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땅도 아닌 그렇다고 바다도 아닌 새만금 방조제 한가운데 위치한 상설 공연장 ‘아리울 예술창고’. 이 특별한 공간에 어울리는 순수 창작 공연 <아리울 스토리>가 지난 5월 24일 막을 올렸다. 물의 순우리말인 ‘아리’와 터전의 순우리말인 ‘울’이 합쳐진 아리울은 ‘물의 도시’, 곧 새만금을 의미한다. 지난해 공연한 새만금 요리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극 <아리울 쿡>을 서해의 수호신 개양할미 등 지역 신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아리울 스토리>. 이상적 세상을 꿈꾸는 땅의 부족 ‘호족’과 평화를 숭상하는 바다의 부족 ‘용족’이 극의 주축으로 각 가문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반목하다가 화합해 새로운 희망의 땅, 아리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대사 없이 리듬, 비트, 스텝만으로 구성한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점이 공연의 역동성을 더한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은 더욱 절절하게 표현되고 무대를 수놓은 다채로운 영상과 레이저가 눈길을 확 잡아당긴다. 화려한 군무, 비보잉과 상모 돌리기, 모둠북 등 과거와 현재의 공연 예술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뤄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정동극장에서 공연한 <미소〉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충한 안무가가 연출과 안무를 맡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공연을 선보인다. 또 넌버벌 공연에서 연출만큼 중요한 음악에는 우리나라 광고 음악계를 주름잡은 스타 작곡가 김태근이 참여해 퓨전 국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2, 3 <아리울 스토리>는 전국의 무용가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했으며, 한국 전통 무용부터 비보잉과 댄스 스포츠까지 다양한 장르의 무용을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으로 호평받고 있다.

전주 마당 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

고즈넉한 한옥 마당에서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진다. ‘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3년째 마련하는 마당 창극이 지난 6월 7일 전주소리문화관 야외 마당에서 막을 올렸다. 전주만큼 마당 창극이 잘 어울리는 도시도 없지만, 또한 그러기에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첫해 춘향가를 재구성한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가 예상치 못한 관객 몰이를 하더니, 둘째 해 심청가를 각색한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19회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은 마당 창극이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골동품이 아니라 대중적 전통 공연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세 번째 마당으로 병든 용왕을 위해 토끼 간을 구하려는 자라의 고군분투기를 다룬 판소리 수궁가를 준비한 전주문화재단은 대중에게 한 걸음 더 성큼 다가갔다.

마당 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에는 인터넷 댓글, 아이돌 댄스 등 낯익은 용어와 장면이 등장한다. 풍자와 해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마당 창극이 현대사회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캐스팅은 한층 화려해져 조통달, 안숙선, 김영자, 왕기석 명창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패기 넘치는 젊은 소리꾼들과 한 평생을 판소리와 함께한 노련한 명창들이 절묘한 팀워크를 이뤄 공연 내내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객석과 무대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마당 창극에선 ‘얼쑤’ ‘좋다’는 관객의 추임새가 극에 활력을 더하고, 관객과 배우가 손바닥을 맞잡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전주 마당 창극의 성공은 기획의 승리이기도 하다.

티켓 가격에는 공연뿐 아니라 전주 한옥 마을 곳곳에 자리한 공방에서 전통문화 체험, 저녁 식사값이 포함되어 있다. 솜씨 좋은 전주 어머니들이 정성껏 차린 푸짐한 음식은 잔치판의 흥을 맛깔나게 돋운다. 가을까지 이어지는 공연에는 수궁가 최고의 토끼로 사랑받는 안숙선, 김영자 명창과 함께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한 조희정 명창,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방수미 명창이 나란히 토끼 역에 캐스팅되었다. 4인4색의 공연을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다.

1 공연 전 한옥 마당에서 맛보는 전주 음식. 
2 전주 한옥마을 소리문화관의 마당 창극 공연.
3 <수궁가>는 명창의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보인다. 

세 가지 색, 춘향 공연
‘춘향’은 전북의 킬러 콘텐츠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는 점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테마로 하고, 남원 광한루라는 실제 지명이 등장하는 등 흥행 조건을 두루 갖췄다. 지난 6월 전북 전주와 남원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춘향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남원 광한루원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광한루연가 춘향>은 실제 이야기 속 바로 그 장소라는 점에서 흡입력은 단연 최고다. 무대 연출에서도 오작교와 광한루가 더욱 잘 드러나도록 수중 무대를 특별 제작했고, 조명 역시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치중했다. 가장 큰 볼거리는 나풀거리는 긴 천을 이용한 십장가 대목. 춘향의 아픔을 승화한 춤이 교교한 달빛 아래 극대화된다.

매해 ‘춘향’을 소재로 한 다양한 공연을 기획, 제작해온 남원시립국악단이 그간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또 하나의 춘향 공연인 창극 <靑, 춘향>은 국립민속국악단이 지난겨울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무대로, 지난 6월 12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제 84회 남원춘향제 기간에 단 3일만 공연한 만큼 연출과 무대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악 연주로 손꼽히는 민속국악단 창극단을 비롯해 기악단, 무용단 등 출연진만 1백여 명에 달하는 대작이다. 창극•오페라 연출의 대가 김홍승, 판소리 무형문화재 신영희 명창,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노 김용걸 등이 제작에 참여해 이름값을 제대로 증명 했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풍부한 관현악 음악이 푸릇푸릇한 두 청춘의 아름다운 사랑에 힘을 실어주었다.

4 실제 남원 광한루와 오작교를 배경으로 공연하는 <광한루연가 춘향>의 한 장면. 
5, 6 <뮤지컬 춘향>은 최근 공연장을 리모델링 해 음향과 조명의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진 공연을 선보인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 상설 공연 추진단이 야심 차게 기획한 전북 브랜드 공연 <뮤지컬 춘향>은 이미 지난해 말 여덟 차례의 시연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공연 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한층 완성도 높은 무대가 탄생했다. 특히 상설 공연장인 전북예술회관의 리모델링을 마쳐 음향과 조명에서 더욱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해졌다. 김정수 총감독을 중심으로 조승철 연출과 유장영 음악 감독 등 전북의 내로라하는 공연 예술 기획자가 총집결했다는 점이 기대감을 한층 드높인다. <뮤지컬 춘향>은 연말까지, <광한루연가 춘향>은 가을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전라북도의 상설 공연
전주
한옥마을의 마당 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
일정 6월 7일~10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여름방학 특별 공연 8월 1일, 8일, 15일
장소 전주소리문화관 놀이마당 문의 063-283-0223

전주세계소리축제 상설 공연 <뮤지컬 춘향>
일정 6월 27일~12월 31일 매주 수~토요일 오후 7시 30분,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장소 전라북도 예술회관 공연장 문의 063-282-8398

남원
수중 무대 위 아름다운 야외 공연 <광한루연가 춘향>
일정 5월 17일~10월 11일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특별 공연 8월 1일, 8일
장소 남원 광한루원 수상 무대 문의 063-620-6167

군산
너른 바다 위의 예술 창고 <아리울 스토리>
일정 5월 24일~11월 9일 매주 수~일요일 오후 2시 30분
장소 새만금 상설 공연장 아리울 예술창고 문의 063-282-8398

글 이정선 | 사진 박우진, 이명수, 전주세계소리축제 상설공연추진단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