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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예인들
‘예향의 고장’ 전라북도의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고 생각한 선조의 지혜와 예술이 지금 이곳에서 생동하고 있다. 옛것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 전라북도 예인에게서 진정한 전통의 의미를 배운다.

사기장 이은규

전북 부안의 유천 도요지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상감청자의 본산지다. 이곳에서 43년 경력의 무형문화재 이은규 사기장은 매일 흙을 빚고 불을 지피며 상감청자의 맥을 잇고 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상감을 새기는 일. 학, 모란, 구름 등의 문양을 도자기에 하나하나 새기는 데만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이렇게 조각한 문양에 흰색을 내는 백토나 검은색을 내는 자토를 채운 후, 겉면에 유약을 발라 초벌로 굽고 다시 재벌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상감청자가 완성된다. 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탄 잿물, 즉 유약은 청자의 은은한 비취색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비로운 옥빛을 발하는 것도 유약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엔 값비싸다는 이유로 식물성 유약 대신 광물성 유약을 쓰는 이가 많다. 이은규 사기장은 시장의 논리대로만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산장 윤규상

불과 1940~1950년대만 해도 종이 우산, 즉 지우산을 대중적으로 사용했다. 당시 전국 유일의 지우산 공방이 자리한 곳이 전주다. 윤규상 우산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우산을 만들어오고 있다. 6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손가락 마디마디 단단히 박인 굳은살처럼 인이 박인 일은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복병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지우산을 만드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다 보니 우산 꼭지를 만드는 곳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그리하여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최적의 우산 꼭지를 개발해냈다. 여기에 더해 우산살이 마흔여덟 개인 고급 맞춤 우산을 발전시켜 예순 개, 더 나아가 일흔두 개의 대형 지우산까지 선보였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일흔두 개의 대나무 살을 펴면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면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유일의 우산장이다. 만약 소질이 더 있어 우산에 멋들어진 그림이나 글씨로 장식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하는 장인. 여전히 더 좋은 지우산이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은 그가 왜 유일무이한 우산장이 되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목침장 김종연

지리산이라는 풍족한 산림자원을 보유한 전북은 예로부터 목공예가 발달했고 수준 높은 장인들이 각축전을 벌인 곳이다. 전북 전주가 고향으로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다르던 김종연 장인은 자연스럽게 목공예가의 길로 접어들었고, 각종 공예 대전에서 수상하며 비교적 빨리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전주 한옥마을의 제1호 공방이 그의 작업실 겸 전시장인 목우헌이다. 나무 문패, 조형 작품, 불상 등 폭넓은 작품 활동을 벌이던 그에게 40대의 최연소 대한민국 기능명승장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것은 목침이었다. 목침은 낮잠을 즐기거나 잠시 누울 때 베개 대신 사용하는 나무 목 받침을 뜻한다. 좌우 대칭의 전통적인 호랑이 목침을 재현한 김종연 장인의 목침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나 단지 겉모양만 그럴듯한 것이 아니다. 문헌에 기초한 고증을 바탕으로 각종 한약재나 허브, 라벤더 등 체질과 효능에 따라 넣을 수 있는 서랍을 목침에 도입해 머리 베는 쪽에 구멍을 뚫어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전통 목침은 34년 공예 인생의 큰 보람이자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한 보물이다.

탱화장 도원 스님(유삼영)

김제의 드넓은 평야를 지나 야트막한 산에 숨은 듯 자리한 작은 절 청운사. 한여름의 연꽃 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무형문화재 탱화장 도원 스님을 만날 수 있다. 유삼영이란 속세의 이름 대신 도원 스님으로 불린 후부터 탱화를 배우고 그린 세월이 어느덧 45년이다. 도원 스님에게 탱화는 불교 수행의 연장이다. 참선이 정적인 수행이라면, 손을 놀려 화폭을 채우는 일은 동적인 수행이다. 부처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서른두 가지 특징과 이를 더 세분화한 여든 가지 몸짓, 즉 32상相 80종호種好를 그리는 동안 부처의 참모습을 깨달아간다. 김제의 탱화는 색채가 부드럽고 가칠을 하지 않아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법과 함께 도원 스님은 전통 안료와 아교를 고집한다. 재료에서 전통을 따르지 않으면 기법 또한 전통이라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도원 스님에게서 새삼 전통의 무게를 깨친다.

정읍농악 전수자 유지화

정읍농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유지화 상쇠. 단지 여성 상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지화 상쇠는 한국전쟁 이후 맥이 끊긴 정읍농악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수히 많은 제자를 키워낸 주인공이다. 올해 전주대사습놀이 농악 부문에서 정읍농악이 10여 년 만에 장원을 차지한 배경에는 유지화 상쇠의 열정적 가르침이 있었다. 호남우도농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정읍농악은 예술적 수준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가락의 개수가 다양하고 신명 나게 놀다가도 순간에 늘어지는 등 완급의 조절이 변화무쌍하다. 이 까다로운 교향곡의 지휘자가 바로 상쇠다. 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개인의 기량도 출중해야 한다.

유지화 상쇠는 최고의 부포놀음 명인이다. 부포는 상쇠가 머리에 쓰는 전립에 새의 깃털로 꽃처럼 만들어 매단 것을 말한다. 고갯짓과 꽹과리 장단에 맞춰 새하얀 부포는 오므라졌다가 화들짝 피어나고, 유지화 상쇠는 노련하게 박자를 가지고 놀며 춤사위를 탄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부포놀음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는 유지화 상쇠에게서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꽃을 본다.

한지 공예가 김혜미자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를 재배해온 전주는 대표적 한지 고장이다. 질 좋은 우리 한지는 한지 공예를 위한 최상의 재료이기도 하다. 전주와 완주를 오가며 활동하는 한지 공예가 김혜미자 장인은 25년째 한지 공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한지 공예의 여러 기법 중에서도 전지 공예가 김혜미자 장인의 주특기. 얇은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다양한 색지를 오려 붙이는 전지 공예는 가장 화려하면서도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방법이다. 전지 공예품으로는 아낙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색실 상자나 색실첩이 있다. 김혜미자 장인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 수장고에 있는 1백여 년 전 색실 상자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황토, 감, 포도, 시금치로 염색한 한지를 특별 제작해 옛 느낌을 살리고 한지 수백 장을 바르고 두드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전히 한지로만 색실 상자를 완성해냈다. 자연을 닮은 알록달록 고운 색과 부드러운 감촉의 한지 공예품은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명품으로 손색없다.

글 이정선 | 담당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