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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인생의 여름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하여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엄마들은 “너희들, 이제 학원 안 가도 된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한다지요? 아이들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제도 속에서 엄마들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어떤 세상에서 어떤 어른으로 키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하자센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창의적 실험을 지속하며 참된 어른으로 키워온 조한혜정 교수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년,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은퇴했지만 여전히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살리면서 삶을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귀밑털 가닥이 거울 속 내게 있다고 어른이 된 건 아니겠지요. ‘좀 더 높이’ ‘좀 더 많이’ ‘좀 더 일찍’ 올림픽 구호처럼 쉼 없이 기록을 깨쳐야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겠지요. 양승준 시인은 “넥타이로 나를 묶는 것처럼 결국 내가 나를 묶는 모순을 배우면서부터 나는 어른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참말이면 더디더디 어른이 될 걸 그랬나봅니다. 고슴도치 끌어안고 부지하는 듯한 나날이 어른의 나날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디더디 갈 걸 그랬습니다.

2014년 5월 19일, 하자센터에선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스물두 명의 성년식을 치렀습니다. 2006년부터 해마다 치르는 성년식이지요. 20대의 관문에 들어서는 주인공과 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온 부모•친지•교사•멘토가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주고받고 가무를 즐기는 축제입니다. 동서남 방향에 선 어른들에게 절하고, 북쪽의 주례에게 예를 갖춰 인사드리면 주례가 성년 의례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묻습니다.

성년자들이 화답하면 주례가 성년 선서를 낭독하고, 부모와 교사 등 각자의 멘토가 꽃 관을 씌워주는 화관례, 인생의 첫 술을 마시는 초례가 이어지고요. 그다음 마을 어른들의 덕담, 성년자들이 준비한 생각과 다짐, 소리꾼의 장단이 펼쳐집니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지요.

“20년 동안 몸과 마음이 잘 자라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축하하는 날이지요. 봄을 살아내고 드디어 여름을 맞이하는 이를 위해 가을을 사는 부모와 조부모대의 어른이 모인 자리, 앞으로 어른으로 존중하고 활약을 기대하겠다는 약속의 자리,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내라는 격려의 자리, 부모와 친지와 이웃이 평생 그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줄 것을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조한혜정 교수가 연필로 꾹꾹 눌러쓰듯 짚어준 성년식의 의미입니다.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도 캥거루족으로, 파라사이트 싱글(기생하는 독신 자녀)로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이런 성년식이 면구스럽지 않을 스무 살 청년이 몇이나 될까요?

1 올해 하자센터 성년식의 주례는 연세대를 정년 퇴임한 후 에티오피아에 가서 2년간 지식 나눔 봉사를 하고 돌아온 물리학자 박홍이 교수가 맡았다.
2 화관을 쓰고 생의 선배가 따라주는 인생의 첫 술을 마시는 초례를 마친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쓴 성년의 다짐을 낭독한다. 

“언젠가부터 대학생들이 매우 온순해졌어요. 사춘기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잠시 거쳤다’고 하고요. 그 전 서태지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엿 먹어라 하며 끌리는 대로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외환 위기의 불안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전이된 세대 같아요. ‘생존’과 ‘안전’에 대한 강박이 몸에 배어 있어요. 누군가의 표적이 될까 봐 늘 조신하고, 적의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언제나 유순한 표정을 짓죠. 어른이 되어 고생하느니 ‘부모의 자아 실현을 도우며 조용히 살겠다’며 그저 엄마랑 잘 지내자는 공생의 비법을 너무나 일찍 터득한 아이들이에요. 삶의 목표는 그저 돈 좀 벌고, 제때 결혼해 탈 없이 평범하게 사는 거고요.

몸은 다 컸어도 스스로 삶을 감당해낼 결심을 하기 힘든 이런 시대일수록 이들을 위한 격려와 축복의 자리, 정성스러운 의례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해요. 점점 외톨이 사회가 되다 보니 성인이 됨을 축하해줄 친지나 이웃이 없다고요? 학교나 학원, 교회나 절에서 친구나 가족,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성년의 날 잔치를 조촐하게나마 시작하면 좋겠어요.”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키우는 아이 엄마로서 이 이야기는 참 쓸쓸하게 들립니다. 그 끝에 한 줌 볕이 살짝 비쳐 그나마 다행이고요.

하자센터의 성년식에서 한 친구가 이런 말로 시작을 열었답니다. “내게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더 이상 하잘것없는 존재가 아님을 아는 것.” 우린 내 아이가, 옆집 아이가 하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도록 키우고 있나요? 아니,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하잘것없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말하게 하는 이 사회는 무엇인가요? 여기에 하나의 화두를 보탭니다. 하자센터의 성년 선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성년을 맞이하여 모시는 마음과 환대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여기서부터 조한혜정 교수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조한 교수와 함께! 하자! 마을에서!
우선 조한혜정 교수를 위키피디아식으로 설명해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일한 사람, 최루탄 가득한 1980년대 캠퍼스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운동도 너희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며 곧 만개할 개인과 일상의 민주화를 예고한 사람, 1983년 여성주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여성운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한 사람, 1999년 서울 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인 ‘하자센터’를 만들어 청소년의 사회적 기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람, 도시형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교장으로 산 사람,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해 조혜정에서 조한혜정으로 개명한 사람, 학생들에게 ‘교수님’ 대신 ‘조한’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소박하지만 지인들의 마음과 정성을 모아 꾸민 성년식은 작은 축제의 장이다.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는 물론 하자센터의 이웃이 모두 모여 덕담을 나누고 노래와 연주로 축가를 들려주는 사이 성년을 맞이한 사람도, 오래 전 성년이 된 사람도 다 같이 잔잔히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4 성년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머리 위에 생화를 엮어 만든 화관을 씌워주는 멘토는 주인공을 꼭 안아주며 그 앞에 펼쳐질 멋진 인생을 축복한다. 

또 늘 기존 질서에 ‘왜’라는 질문을 품는 존재로 살라는 가르침을 어머니에게 받은 사람, ‘할 일이 있다고 결혼을 거절하자 할 일을 하도록 해주겠다고 설득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사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기술을 개발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교수가 남편인 사람,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환경학자가 되기를 결심하고는 “어떻게 이런 환경의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 아들을 둔 사람, 느리게 사는 삶을 위해 요가 선생이 된 딸을 둔 사람, 한 5년 후면 미국의 이타카 에코 빌리지처럼 품앗이와 단골 개념이 살아 있는 동네에서 살며 아이들에게 돈이 전부가 아닌 삶을 가르치리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제 생각엔 조한혜정이라는 사람은 사실 이 모든 설명이 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하자’로 통하는 사람 같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그 답을 ‘함께’ ‘하자’에서 찾아온 사람 같습니다. 그걸 자신의 전공이자 장기인 ‘세상 읽기’에서 시작한 문화인류학자. 앞에서 이야기한 ‘하잘것없는 존재’와 ‘모시는 마음과 환대하는 마음’에 대한 그의 풀이를 들어보면 금세 이해가 될 겁니다.

“좀 딱딱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어렵지 않은 이야기예요. 근대 이전에는 가족 집단주의, 마을 집단주의 아래에서 부모 눈치 보고 친족 눈치 보며 살던 사람이 근대 사회가 되면서 제 직업도, 배우자도 직접 선택하는 생산적인 개인이 됩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스스로 정보를 찾고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이죠. 이게 가장 이상적인 건데, 점점 돈 중심의 자본주의 세상으로 흐르면서 돈을 번 사람과 국가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점점 타산적이 되고 손해를 안 보려 하고, 파이를 만들어서 나눠야 한다는 생각 대신 그저 만들어놓은 파이의 조각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죠. 그다음 단계로 가면 투자 사회, 돈이 돈을 낳는 사회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굉장히 사악한 세상이죠. 2008년 월가에서 출현한 금융 위기가 그 예입니다.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의 주식을 산 사람이 돈을 버는, 이상한 투기 상품의 시대, 모든 사안을 비용으로만 따지고 ‘돈 없으면 죽는다’란 주술이 떠도는 시대,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이야기처럼 ‘내 은행 잔고만 제대로 확보되면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죠.

이렇게 되면 돈이 없는 이는 가치도 없는 이로보며,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손해 끼치는 사람으로 보고, 자기와 생각이 비슷하지 않으면 후진 사람이라 여기는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사람 관계가 되어버리죠.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을 보고 ‘너는 하잘것없는 존재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쯤에서 한번 돌이켜보자고요. 어른이 된 후 금 긋지 않고 산 날이 얼마나 되던가요. 입으로, 손으로, 눈으로, 발로 그리고 마음으로 매일 몇 줄씩 새로운 금을 그어놓고 그게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잖아요, 우리.

삶은 디자인! 하자센터의 이웃은 나무 부스의 글귀처럼 자신과 이웃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사는 건 생명이 제대로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구나, 라는 자각이 우리 내부에서 일기 시작했어요. 고생스럽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보람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서 살다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죽는 삶. 이게 진짜 삶이라는걸 깨닫기 시작한 거죠. 그러기 위해선 자공공(자조, 공조, 공존 ; 스스로 돕고 더불어 도우면 새로운 공공 영역을 만들 수 있다)의 원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건 국가가 해줄 수 없는 것이니 아래로부터 우리가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을이 필요하다, 우정과 환대의 마을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한 겁니다. 옛날의 우리 이웃들처럼 문 열어놓고 살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입니다. 하자센터에서도 초기엔 ‘너의 언어를 가진 문화 작업자가 돼라’가 키워드였다면, 2000년 이후엔 ‘혼자 하는게 아니라 함께 하자’ ‘우정과 환대, 공생, 자공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 ‘우리’ 아이를 함께 돌보며
돌이켜 보면 옛날에 세상의 모든 엄마는 내가 이 아이의 생명의 출처이니, 이 선물을 고이 받아 잘 기르는 것이 내 일이라며 믿고 살았습니다. 아이가 울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젖을 꺼내 물리고, 아이가 아프면 제 새끼 고뿔 하나, 뾰루지 하나 대신 앓아주지 못하는 무력함을 한탄했습니다. 그렇게 모성이 전재산인 엄마로 살았지요.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내 삶이 어디로 가버린 건 아닌가 쓸쓸해 합니다. 승승장구하는 워킹맘이나 싱글 여성에게 밀려나는 ‘경력 단절녀’가 된 건 아닌가 조바심칩니다.

“오랜 기다림의 임신, 출산의 고통과 환희, 아기와의 비언어적 소통, 지속적 관찰 학습 등을 통해 엄마는 지혜롭고 자상한 어른이 되어가는 거예요. 사실은 누군가를 키우는 사람이 어른이죠. 옛날에 우리는 엄마가 하는 걸 보고 배우면서 동생을 키웠고, 또 자기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됐어요. 요즘엔 홀로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문제지요. 옛날엔 조부모든 친척이든 이웃이든 돈이 매개되지 않은 호혜互惠의 관계망 안에서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았죠.

지금은 혼자 아이를 키우며 젖 먹이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선생들에게나 자문을 구하니 엄마도, 아이도 행복할 수 없는 조건이죠. 게다가 절반이 넘는 엄마가 일터에 몸을 맡긴 채 아이를 시장에 ‘외주’ 주어 키우고 있어요. 전업주부도 아이의 명문대 입학이라는 목적을 두고 있고요. 가정이 남편의 투자와 아내의 정보력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가 된 거죠.


정말로 육아가 즐거운 경험이 되는 일이 불가능할까요? 이 역시도 옛날처럼 문 열어놓고 살던 시대로 돌아가면 됩니다. 바로 품앗이 육아지요. 은평구의 생태 육아 공동체 ‘숲동이 놀이터’ 엄마들이 그걸 잘하던데, 숲유치원 아이들이 귀가하면 당번을 정해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논답니다. 응접실을 열어놓고 ‘우리 아이들을 키운다’라는 생각을 할 때 우리 아이도, 남의 아이도, 사회도 잘 크는 겁니다. 바로 마을 단위의 작은 공동체를 되살리면 해결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왜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3년 또는 5년을 경력 단절이라고 얘기하죠? 그건 돈벌이 경력의 단절일 뿐이에요. 아이를 잘 키운 엄마는 그다음에 더 많은 일을 잘할 수 있어요. 그 경험이 사회에 나가서도 엄청난 부지런함과 지혜로 작용할 거예요. 내게 두 살짜리 손자가 있는데 우리 딸이 그 아이를 키우면서 크게 성장하는 걸 봐요. 딸애는 노력해서 자연 분만하고 두 살 넘어서까지 모유수유를 했어요. 어떤 땐 하루 종일 애하고만 있는 게 힘드니까 밤새 초를 만드는 걸로 풀기도 해요.

하지만 그 온전한 엄마로서 역할을 선택한 걸 자랑스러워해요. 우리 손자가 가정 보육 시설엘 다니는데, 거기는 애를 잘 키운 엄마가 자기 집이 아파트 1층이니 보육 시설을 차렸고, 그곳에 아이를 맡긴 엄마들 중 괜찮은 부모들에게 자격증을 따게 해 선생님으로 모셨어요. 그 선생님들이 아주 훌륭해요. ‘얘가 늦어도 두 살 반 정도 되면 대소변을 가릴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아이를 키우며 경험한 생생한 지혜를 전수해주죠. 내가 한 중요한 경험이 경력이 되는 것, 모성적 돌봄의 능력이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 앞가림하는 아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아이로 자랄 겁니다.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거죠.”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강물처럼 흐르던 그의 이야기를 곱 씹으며 생각합니다. 마을 골목이든, 아파트 놀이터든 저녁이 되면 오히려 부산해지는 그곳으로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 줄넘기를 합니다. 구멍가게 단골 아저씨 두 분이 가게 앞 평상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자 삽시간에 마을 극장이 되고, 동네 아낙들이 함께 동네 텃밭을 가꿉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 만들고 어른이 되고 그렇게 늙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마을의 바람을 맞아 빨갛게 상기된 초등학교 2학년짜리 얼굴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모여 있는 마을의 불빛은 얼마나 뭉클할지요.

글 최혜경 | 사진 박우진 | 기획 김민정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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