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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허민자 예술과 대화가 있는 집
지난해 제주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고 제주시 아라동의 생활인으로 돌아온 허민자 작가. ‘서울 출생 제주인’의 집엔 지루할 틈 없는 즐거운 일상이 있다.

1988년 당시 숲 속에 지은 자택 뒷마당에서. 하귤 나무가 자라는 마당에는 작은 연못을 따라 그의 조각 작품을 놓았고 집을 지키는 강아지와 물고기가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갤러리 손님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차를 대접하는 카페.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꽃 같은 연애를 하던 시절, 제주도립병원의 치과 과장으로 일했던 남자 친구가 들려준 “꽃길과 바다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제 주의 생활 이야기는 서울 아가씨에게 꿈만 같았다. 그래서 신혼 초에 아이들 학교 보낼 때 까지만 살자며 소풍 떠나오듯 제주도에 내려온 허민자 작가의 가족은 벌써 40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때마침 제주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신설돼 그에게 강의 제의가 들어왔고 남편도 병원을 개원해 생활에 변화를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따금 서울에 갈 때면 아파트가 들어찬 도시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제주에서의 삶이 좋았다.
“서울에서 갓 내려왔을 때는 서울에 갈 때마다 쇼핑을 한 보따리씩 해서 가지고 왔어요. 처음에는 제주시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1988년에 당시 숲이던 이곳 아라동에 집을 지어 이사 와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에 장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만 물건을 사도 부족함 없이 삶이 여유로웠어요. ‘그전에는 우리가 뭘 그렇게 사면서 살았을까?’라고 말하며 남편과 둘이 웃었지요.”
아름다운 숲과 바다가 있는 섬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내 집’이다.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주변이 온통 숲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 허민자 작가의 집만 도시 속 정원처럼 남았다. 제주도 전체가 최근 들어 부쩍 많은 변화를 겪는 데 반해, 그의 집은 오랫동안 서서히 변화를 주었다.

강의를 하면서도 도자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본채 옆에 가마를 묻고 개인 작업실을 만들어 제주의 흙과 뭍의 흙을 두루 넘나들며 제주, 돌 그리고 신의 사랑, 평화와 화해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일대기를 완성했다. 정년퇴직을 한 작년 겨울에는 작업실 옆에 2층 규모의 갤러리를 열고 1층 한쪽에는 손님을 맞는 작은 카페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40년을 살았지만 누구도 저를 제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주도라는 섬의 문화는 참 특이해서 열 사람이 모이면 그 안에 다 친척이 있는데, 저는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제자들에게도 사랑을 참 많이 받았지요. 갤러리에서는 제 개인전도 열지만 제주의 작가들, 예를 들면 지난 3월 우리 갤러리의 초대전을 계기로 창립한 제주 가톨릭미술가협회 작가들이나 젊은 작가들, 특히 제주대학교 미술대학의 제자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씩 기획전을 개최하려고 해요. 카페는 저와 갤러리를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쉼터지요.”

제주의 집은 지루하지 않다. 정년퇴직을 하고 많은 시간을 집에 있어도 제주의 집은 매일매일 즐겁다 . 오히려 뭍에 오래 나가 있다 돌아오면 생활이 흐트러지는 듯 피로하다. 아침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운동하고 나무와 꽃을 가꾸고, 채소를 심고 거둬서 먹고, 개밥을 주고 붕어 밥도 주고 마당의 하귤을 따 카페에서 낼 차를 담그는 일상. 작업실에서는 제주의 붉은 흙을 만지고, 손님이 찾아오면 갤러리와 카페에서 차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 집 옆에 갤러리와 카페를 짓기 전에는 나이 들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 되묻기도 했지만, 지금은 용기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 여행 온 사람들, 지척의 제주대학병원에 볼일 보러 온 사람들, 그와 의견을 나누러 오는 예술가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제자들까지. 누구나 마음 편히 다녀갈 수 있는 이 소통의 공간 덕분에 그의 바람대로 아라동 집의 조용한 삶 가 운데 매일 또 다른 너른 세상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나무를 두른 카페 앞 덱에는 종교적 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매달 기획전이 열리는 갤러리 내부. 
허민자 작가에게 묻다_제주살이를 잘 하려면?
제주에는 토박이만의 문화가 있다
태생이 뭍인 사람이 제주 사람의 생활에 녹아들기란 녹록지 않다. 평소엔 큰 문제가 없지만 어떤 일이 생겨 사람들이 뭉칠 때 내가 제주 사람이 아님을 절감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섬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면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조용한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편안함을 선물하는 곳이다.

원하는 곳에 살아라
최근에 영국에서 공부한 친구 딸이 제주도로 이사왔다. 그처럼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확고한 마음으로 오는 사람은 나름 만족하며 사는 것 같다. 차를 타면 제주도 어느 곳이든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제주 사람은 그렇게 먼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지만 평소 이동 시간이 긴 도시에 산 사람은 비교적 외딴 곳에 집을 지어도 잘 사는 것 같다.

심헌 갤러리와 카페
제주시 아라동 인다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2층 벽돌집이 보인다. 전시장이면서 카페이자 제주 문화인의 사랑방이기도 한 ‘심헌心軒 갤러리’다. 심헌은 ‘마음이 가득한 집’이라는 뜻으로, 주인인 도예가 허민자 작가의 호이다. 2층에 꾸민 40여 평의 갤러리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도예 작가들의 기획전을 선보이고, 1층에는 20여 평의 갤러리 카페를 만들었다. 팽나무와 제주 돌담, 소나무와 하귤나무가 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하귤차를 비롯한 토속 차와 커피, 다과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도 구입할 수 있다.

주소 제주시 아란14길 3 문의 064-702-2651

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