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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뀌어왔다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이 말하는 희망의 이유
지금 절망적인가? 그 절망은 어떻게 해서 나타난 것일까? 침팬지 연구가이자 동물애호가,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문득 나타난 것이 아니다. ‘당신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결정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원하는 대로, 열정을 쏟는 대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지구의 건강이 많이 아픈 상태라면 그것 또한 마찬가지다. 보호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쓰고 파괴하는 데 열중해서 그렇다. 그러나 지구는 절망하지 않는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변화되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절망을 만들어왔다면 앞으로는 희망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지구 어머니의 여동생, 제인 구달
침팬지 연구를 통해 인간과 동물 사이에 밀접한 상관성이 있음을 알게 해준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Jane Goodal 박사가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지난 11월 5일 한국을 찾았다. 자신이 만들었으나 관여하지 않는 자발적인 생태운동 단체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 활동을 시작한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생태학회,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재학생들, 화계사 승려와 신도, 풀무원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강행군을 펼친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일흔셋. 그러나 은백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초로의 할머니는 나이를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그저 순수하고 단순한, 열정적인 한 여인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사석에서 말할 때의 목소리가 강단 위에서의 목소리 크기와 다르지 않았고, 어느 자리에서나 도드라지는 법이 없었다. 그를 지켜본 것은 몇 차례뿐이지만 언제나 평화롭고 조용하게 머물 뿐이었는데도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빛이 났다. 앉아 있을 뿐인데도, 좌중은 맑고 평온한 미소에 매료되었다. 가보지는 못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간 3백 회 이상 전 세계를 다니며 곳곳에 좋은 말씀과 기운을 내려놓고 이동하는 생활을 20여 년간 지속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제인 구달에게 그의 인디언 친구는 ‘지구 어머니의 여동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니까 지구를 우리의 어머니로 여긴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모나 이모할머니쯤 되는 분이라는 얘긴가 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행동학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생명과학과)는 제인 구달 박사와 절친한 친구 사이. 1996년 과학 잡지의 의뢰로 처음 내한한 제인 구달 박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였다. 제인 구달 박사는 매해 끝 무렵이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손수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는데 최재천 교수는 그의 전화를 받는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인 구달 박사의 내한 소식을 듣고 최재천 교수에게 대담을 요청했다. 같은 길을 걷는 학자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으로, 서로 깊이 이해하고 교분을 쌓아온 사이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대담자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서다. 11월 7일 오후 1시15분, 오랫동안 그의 여정에 동행해온 침팬지 인형 ‘미스터 H’를 안은 제인 구달 박사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통섭원으로 들어왔다.

제인 구달 박사와 최재천 교수의 대담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통섭원에서 진행되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자신이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활기 있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채식과 소식 덕분이라고 한다.

최재천 교수 한국에는 이번 방문이 세 번째지요? 서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인 구달 박사 그렇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일부만을 보았지요. 서울도 이제는 큰 도시로, 전 세계 대도시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나 할리스 같은 다국적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늘고 있어요. 슬픈 일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이 굉장히 인상적인 곳이라는 겁니다. 저는 특히 한국 사람들을 아주 좋아해요.


최재천
요즘에도 매년 3백여 개국을 다니십니까?
제인 구달 그렇습니다. 외국에서 강연하느라 돌아다니는 날짜가 작년보다 더 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비행기를 한 번 탈 때마다 생기는 오염을 정화하기 위해선 매년 98.5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대요. 그래서 저도 한 번에 두세 군데 장소를 이어 다닙니다만, (그 나무들을) 방문하는 나라마다 하나씩 분담해 심어준다면 충분하겠지요. 베이징 한 그루, 서울 한 그루 심는 식으로요.

최재천
1960년 침팬지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숲 생활을 시작하셨으니, 올해로 46년입니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제인 구달 첫째는 침팬지가 생물학적으로나 행동적으로나 인간과 아주 닮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참 슬프게도 침팬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것은 제가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는 이유이지요. 왜 사람들은 침팬지가 사는 숲을 보전하려는 기금을 모으지 않을까요? 우리 생태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에요. 사실, 침팬지를 살리기 위한 기금이 모이지 않는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 목숨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겠지요.

이 짧은 말이 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제인 구달 박사의 사상과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대지와 숲에서 나오는 자원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이 자신의 터전을 훼손시키고도 그 위험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숲을 보존하려는 사람보다 훼손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이에 대한 경각심이 없기 때문에 기금을 모으는 움직임이 일지 않고 있다는 것. 자연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침팬지가 살 수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그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쉼 없이 그토록 이야기하는 것이다. 살아 있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명을 존중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단순히 침팬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팬지가 사는 ‘숲’을 살리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닌다는 말씀을 들으니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단식 농성을 했던 지율스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그때 우리는 도롱뇽과 천성산의 생태와 미래보다는 지율스님의 저항방식과 건강에 관심이 더 많았다.

최재천 시간은 어떻게 활용하십니까?
제인 구달 요즘에는 침팬지를 위한 기금 조성을 위해 1년에 두 번 정도 일하고 주로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세상은 험난하고 문제가 많으며 또 아이들을 돌봐야 하거든요. 침팬지의 눈을 볼 때도 그랬지만 아프리카 난민가아이들이나 빈민가 아이들의 눈을 보면, 그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재천 그런 이유로 침팬지를 돌보는 활동을 계속하는 것인가요?
제인 구달 예. 저는 침팬지뿐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뿌리와 새싹’은 이런 다양한 이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뿌리와 새싹’ 활동에 무척 열성적입니다.

‘뿌리와 새싹’은 1991년 탄자니아의 젊은이 열여섯 명이 시작한 소박한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모임이 9천여 곳에 달한다. ‘뿌리’는 생명이 자라는 기반을 만들고, ‘새싹’은 연약하지만 물질을 뚫고 올라와 이파리를 만들어낸다. 오래된 건물의 지붕이나 벽, 돌에서 싹이 자라는 것은 생명의 의지 때문이다. 제인 구달 박사는 새싹을 어린이와 청소년에 견준다. 연세대 강연에서 그는 강조했다. “단 하루라도, 여러분의 결정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매일의 작은 실천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가까운 타이완만 해도 4백80개의 모임이 결성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활동은 아직 미미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생들의 동아리 ‘뿌리와 새싹’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정도다.

화계사에서 스님과 신도 5백여 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강연을 마친 뒤 발우공양에 참가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제인 구달 박사. 오른쪽은 식사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화계사 주지 수경스님.

최재천
방한한 다음 날 민족사관고등학교 ‘뿌리와 새싹’ 학생들이 구달 박사님을 방문했지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요?
제인 구달 학생들이 열성적이었고,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대단히 높았습니다. 특히 이재원이라는 여학생이 기억에 남아요. 아주 진취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뿌리와 새싹’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도 참 훌륭합니다. 학생들은 제게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들려주었고, 저는 학생들에게 전 세계 ‘뿌리와 새싹’의 활약상과 근황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저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최재천 재원이는 정말 훌륭한 학생입니다. 사실 요즘 한국 학생들은 의사, 판사, CEO가 되기 위해 특정 교과목만 집중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재원이는 일찌감치 진로를 환경학자나 환경생태학자로 정했는데, 이런 학생은 제가 만난 학생 중에서는 처음입니다. 무언가 해낼 것입니다.
제인 구달 옳습니다. (학생들에게 들으니) 부모님이 바라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꽤 많더군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의대, 법대, 경영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저는 (무슨 선택을 하든) 모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 처하든 일단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요. 그렇게 하면 어느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고, 그때 하고자 하는 일에 매진하면 되니까요.

최재천 그렇지요.(웃음) 그런 학생들 덕분에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겠지요. 참, 북한에서도 ‘뿌리와 새싹’이 결성되었나요?
제인 구달 발족을 원하는 ‘뿌리와 새싹’이 두 곳 있었습니다. 한 곳은 어느 중학교의 여자 교장선생님이 주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어느 퇴직한 교사가 주도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학교에서 딱따구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뿌리와 새싹’ 활동을 실천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한 번 더 방문했을 때에는 모임이 해산되고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숨을 쉬며) 안타깝게도 핵폭탄 실험이 벌어지고 말았지요. 그저 (개방되기를) 기다릴 뿐이에요.

최재천 박사님께서는 북한에 세 차례(1996년, 2004년, 2005년) 다녀오셨고, 책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도 북한에서 번역되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제게도 한 권 보내주셔서 읽었는데 언어는 낯설었지만 번역은 꽤 잘되어 있었습니다.
제인 구달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번역된 영어 책이 모두 세 권인데, 그 중 두 권이 제 책입니다. 첫 번째 책이 <희망의 이유>이고,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이 두 번째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연설할 때도 검열받지 않은 첫 외국인이었어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가 집단 거주하는 탄자니아의 국립공원 곰비에 거주하며 본격적으로 침팬지의 생활을 관찰한 것은 스물여섯 살 때.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며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데 이어 엄마 침팬지의 애틋한 사랑, 수컷들의 세력 다툼 등 침팬지 세계가 인간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그는 여전히 침팬지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침팬지의 행동을 볼 때면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최재천 지금까지 성취한 것들 가운데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요?
제인 구달 침팬지의 성격과 마음, 감정 등에서 배운 정보를 사회학에 확대, 적용하는 학문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감정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게 된 것도 정말 뿌듯합니다.

최재천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달 박사님이 없었으면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웃음) 박사님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비서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침팬지 연구가, 동물애호가, 환경운동가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오시는 동안 무수한 변화와 도전의 시기들을 맞이하셨을 텐데, 두렵지 않으셨는지요?
제인 구달 돌아보니, 1986년 처음 (세계 여러 나라로) 길을 떠날 때 두려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랐으니까요. 제가 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끝내 엉엉 울고 말았어요. 또 한 번은 9 ?11 테러가 일어났을 때예요. 당시 8일 동안 뉴욕에 갇혀 있어야 했고, 몇 군데에서는 강연도 취소했습니다. 마침내 다섯 시간의 출국 소속을 마친 뒤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비행기 타는 게 참 두려웠어요. 공포에 가까웠지요. 당연히 비행기는 안전한 것인데도…. 그래서 스스로 찾은 해결책이 고등학교 학생들과 희망의 이유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세상은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과연 떨면서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을 다스리니 평정을 되찾게 되더군요.

최재천 1986년에는 무엇을 가장 염려하셨나요? 일상적인 삶이 바뀌는 것이었나요, 아니면 학계의 지원을 잃는 것이었나요?
제인 구달 학계의 시선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침팬지와 함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숲에 머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만을 걱정했습니다. 물론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최재천 저도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달 박사님의 불안함과 같은 비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처음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지요. 구달 박사님께서도 남자들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동물행동학 분야를 연구하며 여성학자로서 애로사항을 많이 겪으셨겠지요?
제인 구달 물론입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여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심지어 지금도 그런 말을 듣지요. 제가 아프리카 우림에 가서 침팬지들과 살면서 책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비웃었지요. 그런데 어머니만은 저의 지원군이 되어주셨어요. 저는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모로부터 ‘계집아이여서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그가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외할머님 댁에서 살았고 그 집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랬기에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여자라서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지요. ‘저런 말은 진실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을 믿었습니다.

최재천 여자 대학생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대생들은 교수나 주위 학생들에게 ‘넌 여자니까’라는 식으로 세뇌를 받고 또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제인 구달 그런 면에서 여학생만으로 이루어진 학교는 다르지요? 저도 여학교 출신인데, 참 자유롭고 진취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오늘 아침, 이화여대 부설 유치원에서 만난 어머니들에게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제 유년 시절의 성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셨는지, 얼마나 격려해주고 지원해주었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는 것도요. 그리고 제가 지금도 지침으로 삼고 있는 어머니의 가르침인 ‘네가 진실로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기회를 붙잡아라. 그러면 네게 길이 있을 거야’라는 말씀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도 말해주었습니다.

최재천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꾸준히 늘고 있고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들은 일 때문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며 아이들에게 미안해합니다. 구달 박사님도 일하는 엄마였으니, 동병상련의 마음일 듯합니다.
제인 구달 그것은 저도 늘 고심하던 사안이지요. 알다시피,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성인의 행동 양상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낮 시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의 불충분함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는 엄마 자신의 일을 해야지요. 제가 침팬지와 살며 배운 점이나 제 유년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아이가 두세 명의 어른과 가깝고 진실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안정적인 조건이 확보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최재천 아버지들도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인 구달 물론 아버지들도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훌륭한 아빠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컷 침팬지의 경우 꼭 친아버지가 아니어도 좋은 아빠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 교수님도 좋은 아빠 아닌가요?
최재천 글쎄요. 저도 우리 사회에서는 헌신적인 아빠로 비쳐지는데, 다소 부풀려진 면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한 5년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아내가 자식에 대해 품는 생각들은 제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전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면서 모성의 위대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이번에 7~8회의 공개 강연회를 가졌다. 주제는 매번 달랐지만 이야기는 먹을거리로 귀결되었다. 먹는 것 하나 선택하는 것으로도 자신의 삶과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실천해야 한다”며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렇다면 제인 구달 박사가 시작한 첫 실천은 무엇일까? ‘채식’이라고 한다. 한때 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그는 비식육 동물들이 강제 사육당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을 읽은 뒤 고기를 끊었다. 뷔페식 식당에서 음식을 덜어온 그의 접시를 보니, 떡 몇 개와 채소 몇 가지가 전부였다. 다 합해도 어른 주먹 크기도 안 될 것 같다. 채식과 소식, 여기에 그의 건강 비결이 담겨 있다고 한다.

최재천 최근에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인 구달 제가 강조했던 것들과 같은 이유로 중요합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먹을거리가 오염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 곡물을 더 재배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는 일, 물 부족 현상 등등이 그것입니다. 끔찍한 화학 약품이 흙에 뿌려지고 있고, 그 흙에서 자란 식물을 저희와 동물들이 먹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동물들의 생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 항생 약품을 주입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의 폐해가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그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최재천 그렇습니다. 먹을거리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먹을거리를 유기농으로 바꿀 수 있지요. 한국의 어머니들은 분명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인 구달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요. 오늘 아침에 만난 어머니들도 말했어요. “예스!”라고요.
최재천 저도 제 책에 이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내게 벌레 먹은 먹을거리를 달라’고요. 예전에는 눈으로 보기에 좋은 먹을거리에 아주 유해한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보기에 너무 예쁜 식품은 사실 정말 위험하지요.
제인 구달 동물들에게 평범한 식품과 유기농 식품 중에서 선택하게 하면, 항상 유기농 식품을 선택해요. 동물들도 아는 것이지요.
최재천 한 개인으로 보자면, 이혼했을 때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제인 구달 글쎄요. 극복해야만 했으니까요. (웃음) 저보다는 제 아들이 힘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혼이란 어떤 측면에서는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좋지 않은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제 아들은 긴장감을 아주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네게 살아갈 날이 있다면 살아갈 힘도 있다’는 구절을 마음속에 새기곤 했습니다.

최재천 구달 박사님은 자신의 성공 비결이 무엇 때문이라고 여기시나요?
제인 구달 글쎄요, 그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런 결과가 벌어진 것이지요.

최재천 성공에 대해 전혀 계획하지 않으셨나요?
제인 구달 예. 저희 가족에게는 대체로 남다른 유머 감각이 있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데요. 아마 그것이 비결이 아닐까요? 그들은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가차없이 표현했죠. (웃음) 음 걖?. 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부지런히 매진하다 보니 성공이 따라온 것뿐입니다. 결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최재천 소설 쓰신다던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제인 구달 쓰고 있습니다만 그에 앞서 또 동물의 멸종에 관한 책부터 발간할 계획이라 그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설처럼 사적인 작업은 제가 여행할 수 없게 될 때 매진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잠자리에 누워 등장인물에 대해 구상하기도 하지만 아직 저는 너무 건강하답니다.

최재천 지금도 꿈을 갖고 계신지요?
제인 구달 그럼요, 있지요. ‘뿌리와 새싹’이 점점 잘 자라나기를 희망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도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가을 들판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려 사위가 투명하게 빛나는 거대한 겨울 산처럼 평온하다. 자연스럽다.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무수한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한 대지이자 거친 파도도 평화롭게 잠재우는 넉넉한 바다와 같다. 그러나 좁히고 좁히면 그도 자신 안에서 새로운 물을 날마다 길어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인내하는 샘물 같은 인간. 우리에게 이 지혜롭고 자상한 ‘지구별의 이모님’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 강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뿌리와 새싹’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으리라 예상됩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 분들은 이화여대 통섭원으로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문의 02-3277-4512

최재천 교수가 추천하는 제인 구달의 책 세 권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박사의 자서전과 같은 책으로 박사가 늘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모두 들어 있다. 어느 연령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궁리 펴냄. <희망의 밥상> 구달 박사가 상당히 절박한 심정으로 쓴 책으로, 그가 전하는 가장 최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희망의 밥상>을 읽고 모두들 자신의 삶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도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사이언스 북스 펴냄. <인간의 그늘에서>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 침팬지 연구에 관한 책도 읽어야 구달 박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구달 박사를 이해하고 싶고, 삶을 따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중요한 책이다. 내가 번역해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웃음) 지금 우리가 주변에서 할 수 일들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서다. 사이언스 북스 펴냄.

김선래·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