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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영화 <조난자들> 연출한 영화감독 노영석


주인공 상진이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학수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절을 베풀면서 의뭉스럽게 다가오는 학수가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것 같다.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강원도 펜션으로 가던 길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다음 시외버스를 이용해 들어가야 했는데, 버스 기사가 행선지를 잘 모른다는 거다. 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날 힐끔거리며 지켜보던 한 사내가 내게 말을 건넨 건 그때였다. 옆 좌석에 앉아 길을 안내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는데, 영화처럼 전과가 있는 남자였다. 그런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다.

영화의 첫 장면과 거의 동일하다. 극중 학수처럼 위협적인 분위기였는가?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상진’처럼 그 상황에서 계속 벗어나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영화와 똑같이 택시까지 잡아줬는데, 과도 한 친절이 만드는 불편함과 지역의 낯선 공기가 영화적 상상으로 이어졌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 작가 상진과 의심스러운 학수 그리고 우연 하게 산장에 머무는 청년들과 사냥꾼 등 다양한 인물 이 등장한다. 캐릭터가 만드는 긴장감이 큰데,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상진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상진을 연기한 전석호 씨에게 ‘가장 보통의 사람’을 주문했다. 학수 역할을 맡은 오태경 씨는 진짜 의심을 받도록 연기해야 하는지,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오 히려 내게 묻더라. 나는 관객이 알아서 의심할 것이니, 그저 친절하게 연기하라고 했다. 친절한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낮술>과 <조난자들> 모두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생에 스토리가 많은 것이 좋다. 어 린 시절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을 즐겼다. 일부러 공사 현장에서 노동일을 하기도 하는 등 몸을 사용하는 일을 찾아서 했다. 지하철에 승객이 없으면 짐칸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군 복무 시절에는 발가벗고 눈밭을 뒹굴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고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경험이 내 모든 영화의 소스가 된다.

2009년에 개봉한 첫 작품 <낮술>은1천만 원가량의 제작비로 만든 저예산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CJ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개발실에서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진행했다. 어떤 차이가 있었나?
버터플라이 프로젝트의 두 번째 지원작이었다. <낮술>은 연출부터 조명・음악・미술・촬영까지 도맡아 했는데, <조난자들>은 분명한 역할을 하는 전문 스태프가 꾸려졌고, 그만큼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반면 많은 스태프를 통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재미는 살짝 덜했다. 상업 영화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는 한 달 남짓 펜션에서 전체 인원이 함께 머물렀다. 추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밤새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눈이 전혀 녹지 않는 거다. 촬영 현장에 있던 차량이 모두 이륜구동으로 거의 고립되다시피 했다. 먹 을 것도 부족했으니까….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먹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을 마치고 나니 고기도 꽁꽁 얼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혼자 남았을 때 고기를 녹여 먹었는데 나름 맛있더라. 후후.

극 초반에 거미를 밟아 죽이거나,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거미줄이 보이는 상징 코드가 등장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상진은 너구리를 발견하고 자신이 마치 윤리적인 동물 애호가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온 거미를 보자 귀찮은 듯 쉽게 밟아 죽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의 눈에 보이는 건 거미줄이다. 자신이 거미줄에 매달린 먹잇감 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순간만큼은 하찮은 거미라도 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도가 있었다.

사건의 근원이 밝혀지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짐작하는 결말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범인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극장을 나오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스릴러 영화 조난자들
 
노영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지난해 하와이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강원도의 펜션에 머물게 된 시나리오 작가 상진이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하면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 상영 시간 내내 긴장감과 반전 코드 그리고 노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3월 개봉. 




#노영석 #감독 #영화 #조난자들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정호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