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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세계로] 동남 아시아 우리가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
칠순을 맞은 부모를 위해 경성원 씨는 고민 끝에 크루즈 여행을 선택했다. 부모와 함께 객실에 머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엄마 아빠 손 잡고 떠난 여행지에서 느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기쁨이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반짝거렸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건 6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과 함께 스웨덴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순을 훨씬 넘긴 부모님의 연세를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딸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아버지 모습에 감정이 요동쳤다. 그게 큰 계기가 됐다. 이제 내가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추억을 만들어드리리라!

무릎이 편한 크루즈 휴양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면서 무릎 고생할 필요 없이 자고 일어나면 다른 나라에 도착하는 크루즈 여행이 칠순을 넘긴 부모님께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 했다. 두 분만 경주 여행을 보내드린 적도 있는데 고급 한옥을 예약했다가 교통이 불편해 3일간 거의 숙소 안에만 머물렀다. 무엇보다 두 분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할 수 있는 여행지를 고르고 싶었다. 결국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를 돌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3일 일정의 짧은 동남아시아 크루즈를 선택했다. 마술 쇼, 퍼포먼스 공연, 타로점, 콘서트, 게임, 크루즈 내 하이킹, 중국 다도 체험 등 크루즈에는 매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정박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배에서 내려 스 노클링과 스킨스쿠버 같은 레저를 즐겼는데, 우리는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을 선택했다. 두 분 모두 해양 스포츠에 관심이 적고, 웬만한 시설을 갖춘 배에서 머무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재에서 조용히 책 읽고, 졸음이 몰려오면 객실에서 잠을 청하고, 야외 수영장에 있는 선베드에 누워 여유를 즐기곤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배에서 내려 1박을 했는데, 아버지가 평소 보고 싶어 한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을 둘러봤다. 원하는 것을 모두 즐길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만끽했을 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 훨씬 알차고 뿌듯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왼쪽) 싱가포르에서 찍은 부녀의 유일한 사진.
(오른쪽) 한가한 오후에는 배 위를 산책하며 바다를 감상했다.

부모님이 매일 들르며 담소를 나누던 크루즈 내 서점.


부모님 말에 귀 기울이기 엄마는 외할머니 장례 치르기 직전까지 친정에 거의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시집살이를 겪으셨고, 오랜 시간 시어머니 병 수발을 하셨지만 속마음을 쉽게 말하지 않는 성향이셨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그것을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했다. 삼시 세 끼니를 꼭 챙겨 드시기 때문에 선호하는 레스토랑을 매일 같은 시간에 예약했고, 관람하고 싶은 박물관의 순위를 정해 놓치지 않으려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심심한 여행이긴 했다. 기대한 것만큼 고급스러운 크루즈도 아니고, 부모님의 생활 리듬이 나와 다르니까. 셋이서 같은 객실을 사용했기에 제발 싸우지 않기만 기도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니 더욱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다. 아침잠이 없는 아버지는 엄마와 나 몰래 새벽에 나가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진짜 다 같이 여행 갈 생각이에요? “아휴, 말도 마요. 나는 우리 아버지 잔소리 때문에 절대 다신 여행 안 가려고요” 하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던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딸이 아닌 일반 여행 가이드와 함께였다면 바라는 것을 100% 이야기하지 못했을 거다. 집에서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지만, 배 위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모님 스스로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린 시절엔 내가 어땠는지,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은지, 당신들이 떠났을 때 내가 어떻게 지내면 좋겠는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고 싶으신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무척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용기를 주고 칭찬하는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것에 위안을 많이 받았다. 연세가 드셔도 부모님은 나의 영원한 히어로니까.

여행 정보
여행 기간
4일(말레이시아・싱가포르 크루즈 2박 3일, 싱가포르 1일)
여행 코스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페낭) - 싱가포르
여행 경비
약 7백만 원(3인, 항공료 포함)
추천 이유 노부모님의 경우 이동 시간이 길수록 여행을 즐기기 어렵다. 다양한 부대시설이 압축되어 있는 크루즈를 하나의 작은 여행지로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편리한 곳은 없을 듯. 별도의 이동 비용을 들이지 않고 2개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대시설 대부분이 숙박 요금에 포함되어 호텔 숙박 비용과 비교하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
딸의 조언
이동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오히려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자. 2천 명의 승선객이 움직이다 보니 체크인 대기 시간만 두 시간 이상 걸렸다. 대기 시간을 미리 숙지하고, 기항지 여행을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크루즈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한국어를 하는 스태프가 있는 크루즈를 선택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헤어 오윤정(2tti) 메이크업 혜영(2tti) 

글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