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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왕은철 교수 슬픔의 질서를 만드는 애도 일기
UCLA 심리학과 매튜 리버먼 교수는 “감정을 말로 바꾸면 운전할 때 노란불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슬픔을 글로 바꿔 일기를 쓰면 격한 감정에 평온과 질서가 생기는 것도 이런 원리다.


아끼는 사람에게 죽음이 예고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고 그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정겨운 관계가 사라지고 그 아픔이 얼마나 오래갈지. 남겨질 사람의 마음이 광야를 걷는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디가 끝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허망한 광야. 어두운 광야에 홀로 남겨진 새끼 양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영혼으로 조문객에게는 의연한 목례를 건네야 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 금방 잊힐 거야”라는 반복되는 위로에 단 하나의 세포도 반응하지 않는 채로.

“올 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도 오랫동안 편찮으셔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 아버지와의 예상되는 이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할지 몰랐죠. 그간 문학 작품을 많이 번역했기에, 죽음에 관한 작품을 다시 읽고 일기처럼 에세이를 썼습니다. 죽음을 다룬 문학 작품을 분석한 에세이로 부모와의 이별을 대면한 내 두려움을 써야 했습니다.”

2012년 <애도 예찬 :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이란 에세이집으로 ‘전숙희 문학상’을 수상한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왕은철 교수에게는 사실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작품을 읽고 일기 쓰듯 에세이를 써 한 달에 한번씩 2년 동안 17회 <현대문학>에 기고한 글의 모음이지만, 사실은 이별을 준비하고 그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한 사적 글쓰기이자 아버지를 잃은 후 예상보다 몇 곱절 거대하게 다가온 슬픔과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한 그만의 애도 일기였다.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애도’가 떠난 사람에 대한 감정적 애착을 끝내고 새롭게 사랑할 사람을 찾는 작업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글을 쓰는 문학가에게 애도는 전혀 다른 의미다.

“자크 데리다나 롤랑 바르트 같은 문학가들은 애도에는 끝이 없다고 말해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윤리적’으로 보는 거죠. 애도에는 ‘언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언어가 없으면 인간에게 관계가 없고, 관계의 단절, 즉 죽음과 이별이라는 카오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언어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가 가진 어휘 내에서 슬픔을 언어로 바꿔줘야 합니다. 거기에 해결점이 있는 거죠.”

충격이나 슬픔이 너무 큰데 “괜찮아, 그만 생각하자, 이내 잊힐 거야”라고 되뇌면 그 슬픔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도록 방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왕은철 교수는 애도 작품 읽기와 쓰기를 통해 알았다. 무의식으로 들어 가버리면 내 머리와 마음 어디에 치명적 슬픔이 웅크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애도를 우리 눈에 보이는 범위로 끄집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준비한 도구가 ‘언어’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왕은철 교수가 <애도 예찬>을 집필한 후 한국에 출간되어 <애도 예찬>에는 소개하지 못했다.

“슬픔은 말로 해야 하고 글로 써야 해요. 말은 질서죠. 말을 하면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힘든 감정이 말이나 문자라는 상징으로 바뀌면서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죠. 그러니 일기 쓰기는 슬픔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가져오는 작업입니다. 슬픔이 어느 날 느닷없이 튀어나오거나, 마음 귀퉁이에서 썩어 병이 되지 않게 마음의 무질서를 질 서로 옮겨주는 것, 그래서 애도 일기가 필요하지요.”

말하고 대화하며 슬픔을 언어로 정리하려면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 사람이 늘 남과 함께할 수 없으니, 결국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는 ‘나 자신’뿐. 그래서 글이 필요하고, 남에게 보일 일도 없고 형식도 한계도 구애받지 않는 ‘일기 쓰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애도 일기는 얼마 동안 어떻게 써야 할까? 1977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별한 다음 날부터 애도 일기를 쓴 프랑스의 대문호 롤랑 바르트의 책 <애도 일기>를 보자. “올해 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읽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새롭게 다가왔어요. 바르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해 매일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쓴 일기를 그의 사후에 사람들이 엮은 책인 만큼 그 감정이 더 절절합니다.”

“1978년 6월 12일 - 격렬한 슬픔의 습격, 울다.” “1977년 10월 29일,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
롤랑 바르트는 어떤 날은 한 줄의 메모로, 어떤 날은 백과사전에서 본 냉정한 설명글로, 어떤 날은 토해내듯 휘갈긴 장문으로 일기를 썼다.

“롤랑 바르트는 <라루스 백과사전>(프랑스에서 제작한, 세계 3대 백과 사전)을 인용해 ‘부모를 위한 애도 기간이 18개월이다’라고 일기에 썼죠. 서양 정신분석학자들이 애도를 일정 기간의 작업으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부모가 타계하면 3년은 곡을 해야 효자라고 했지요. 하지만 문학가들은 애도는 언제까지든 해야 하는 감정의 흘려보내기라고 말합니다.”

“1977년 12월 8일 - 애도 :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언어와 문자는 슬픔에 잠긴 사람을 치유하는 약이고, 혼자 조용히 쓰는 일기는 그 약을 먹기 위한 한 잔의 물이다. 자기 파괴적인 길로 가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 애도라는 약으로, 일기라는 물로 슬픔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의미’가 나에게 도착할 그 순간까지 애도하기. 그것이 가장 ‘질서 있게 슬퍼하는 방식’이라는 지혜를 자신도 애도의 한가운데 있는 왕은철 교수가 전언한다.

“애도의 슬픔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 (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바꾸고 변형시킬 것, 즉 그것들을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해서 옮겨갈 것.”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1978년 6월 13일 중에서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김재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