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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어른, 진짜 행복하세요?
방송인, 교수, 약사, CEO까지, 바쁘고 스트레스 많이 받기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부정하고 푸념하는 대신, ‘바빠도 행복하다’라고 긍정적으로 사는 이들의 공통점은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치밀히 짜인 일상 속 틈에서도 꿈을 키워내는,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여덟 명의 해피 피플을 만나보았습니다.


판소리 명창의 문하생 된 호텔 CEO 이상준 씨
판소리로 에너지를 충전해요

어깨가 들썩여지는 흥겨운 대목과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대목이 어우러지는 판소리,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 5개월간 명창 배일동 선생에게 창을 배운 그는 그 이후 누구보다 열렬한 국악 애호가이자 후원자가 됐다. 바로 호텔프리마 이상준 대표 이야기다.

“2010년 일본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땡큐, 마스터 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거기서 지리산에 오두막을 짓고 하루 16시간씩 소리를 수행하는 배일동 명창을 알게 됐죠. 영혼을 울리는 절절한 소리가 제 심장을 뛰게 만들더군요.” 호텔의 CEO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있던 그는 그길로 배 명창을 수소문해 선생님으로 모셨다. 그러곤 아무리 바빠도 열 일 제치고 판소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마음 맞는 이들과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 스트레스가 싹 사라졌어요. 복식호흡 덕에 목소리도 탁 트이고, 매사 활력이 넘치는 긍정적 사람이 됐죠. 오랜 기간 고서화와 도자기 등 우리 미술품을 수집하며 싹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 또한 판소리 덕분에 넓고 깊어졌고요.” 그의 이 같은 변화는 국악에 대한 오롯한 애정과 소명 의식으로 이어졌다. 나라도 이 아름다운 소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챙겨서, 후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이후 그는 자신의 호텔에 가야금과 해금 연주자 그리고 소리꾼 등을 불러 모아 판소리 한마당, 국악 연주회등을 열기 시작했다. 매년 열리는 신록음악회는 물론, 호텔 고객을 위한 음악회나 동호회 모임에도 수시로 국악무대를 마련했을 정도다. 한마디로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이 도자기로, 판소리로, 우리 문화 전반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처럼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호텔 구석구석을 그림과 도자기로 가득 채우며, 호텔프리마를 업계 수위를 달리는 일명 ‘미술관 호텔’ 자리에 올려놓은 이상준 대표. 그에게 판소리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변화시킨 고마운 존재다. “사실 명창에게 배웠다고는 해도 일주일에 두 번씩 5개월 배운 게 전부라 판소리 실력은 그저 그래요.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소리에 대한 기분 좋은 끌림과 설렘도 맛보고, ‘소중한 우리 것을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하는 데 앞장서자’는 새로운 인생 목표도 설계하게 됐어요. 게다가 삶의 활기와 에너지까지 얻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없죠.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이상준 씨의 행복 사다리
7.5점                                         
7.5점                                         
8점                                             
진정한 행복은 너무 모자라도 안 되고, 너무 넘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 열심히 사는 게 최고라는 점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자신의 행복지수가 7.5점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5년 후엔 8점쯤? 그의 생각엔 이 0.5점이 참 묘한 점수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행복을 채워주니까



s스마트폰으로 그림 그리는 대학교수 김홍규 씨
언제든 마음 가는 대로 그려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김홍규 교수에겐 ‘화가’라는 또 다른 타이틀이 존재한다. 1975년 연세대 그림 동아리 ‘화우회’에 가입해 시작한 그림 경력이 벌써 40여 년 째고, 2004년 뉴욕 첼시 아고라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막연히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잘되진 않았어요. 군 제대 후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는 각오로 화실을 찾았죠. 처음 4개월은 선 긋기만 시켜서 이게 뭔가 싶었지만 금세 수없이 많은 선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7년간의 미국 유학 시절 내내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마찬가지. “그림은 본래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건데, 본업이 아니다 보니 화구 앞에 앉을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연구 논문을 쓸 때 기록하는 ‘연구의 제한점’처럼 그리기에도 제한된 조건을 두었죠. ‘하나, 플러스펜으로만 그리겠다. 둘, 업무 수첩에 그리겠다. 셋, 10×10cm 사이즈로 작게 그리겠다’, 이렇게요.” 그림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은 이 같은 창의적 사고를 가능케 했고,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그의 그림 인생에 더해주었다.

“요즘은 매일 갤럭시 노트로 작품을 그려 블로그(blog.naver.com/hkim56)에 올려요. 일종의 디지털 미술관인 셈이죠. 하루의 단상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이를 많은 사람과 공유한다는 게 행복해요. 내년쯤엔 이 작품들을 모아 스마트폰을 활용한 전시도 열고 싶어요.” “삶이란 숙제를 푸는 것과 같아서 풀어놓은 숙제의 희열보다 품으며 고뇌했던 순간들이 애잔하게 남아 있다”라는 그의 글처럼 삶의 깨달음과 서정적 그림이 있는 사이버 보물 창고에서 그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마법의 캔버스’ 위에.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김홍규 씨의 행복 사다리
6점                             
9점                                        
9.3점                                       
15~20년 전만 해도 그의 행복 지수는 6점도 과분했다. 아버지가 유신 체제를 반대하다가 연세대 교수직에서 물러나 경제적 곤란을 겪었기 때문. 그 시절 그림마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테다. 하지만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에는 하고 싶었던 도시 설계와 그림 작업을 맘껏 하니 행복 지수가 9점이다. 5년 후엔 이보다 좀 나아져 9.3점 정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목수가 되고픈 개그우먼 김숙 씨
가구가 아니라 성취감을 만들어요

대학에 입학해서 6개월 만에 개그맨이 된 김숙 씨는 무명 시절에도, 인기가 만발한 시절에도, 요즘 같은 안정기에도 변함없는 행복을 느낀다. 방송인이라는 특이한 직업 때문에 스무 살 꽃 청춘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떠날 때 그는 개그 공연 무대에서 밤낮을 보냈고, 출연작이 많다가도 갑자기 쉴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존재하는 삶을 살았다. 이 불규칙함 속에서 지속적인 행복이 과연 가능할까? 예스! “18년째 심심한 적이 없어요. 그동안 틈나면 여행을 다녔지요. 가구 만들기와 홈패션이 너무 재미있을 때는 방송 녹화 중에도 차에서 대기실에서 잠 안 자고 만들어요.” 가구 만들기는 영등포의 한 문화센터에서 DIY 코스에 등록하며 시작했다. 사람들이 유명 개그맨을 흘끔흘끔 쳐다보는데도 씩씩하게! 그리하여 목수 생활이 벌써 10년째. 현관의 신발장, 거실의 와인 셀러, 주방의 도마와 소품들, 수건과 벨트 정리 상자까지, 그의 집을 멋지게 꾸며주는 소품의 태반이 ‘김 목수’의 작품이다. 김 목수는 직접 천을 구입해 만든 예쁜 수건, 멋스러운 도마 등을 종종 친언니와 이영자, 송은이, 권진영 씨 등 사랑하는 자매들에게 선물한다. 그들은 이 선물을 잘 간직해 두었다가 새집으로 이사한 날, 손님 초대한 날 모든 사람의 행복 지수를 급상승시키는 멀티비타민으로 활용한다.

“만들고 나면 성취감이 대단해요. ‘다음엔 뭘 만들지, 누구에게 줄까?’ 하는 상상이 꼬리를 물고요. 이걸 하기 위해 건강을 더 챙기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을 정말 알차게 보냅니다. ‘이번 주는 <무한걸스>와 <고향을 부탁해> 녹화로 바쁘니까 토요일 오전에 공방에 가서 오일 작업만 하고 잽싸게 돌아와야겠다’ 이런 식으로 취미 생활에 맞춰서 일과를 계획하죠.” 그의 꿈은 혼자 집을 짓는 것. 서울에서 닦은 목공 실력으로 제주 성읍에 사놓은 집을 고치고 꾸미는 상상으로 그의 행복은 그야말로 마를 틈이 없다. 뚝딱뚝딱 매일 그가 만드는 건 나무 가구가 아니라, 10점 만점의 10점짜리 행복이니까.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김숙 씨의 행복 사다리
10점                                              
10점                                              
10점                                              
무명 시절 원룸에 살았을 때도 행복 지수는 10점, 지금도 10점, 5년 후에도 물론 10점. 늘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는 성격이다. 현재보다 좋은 삶을 모르니까. 그 삶을 안 살아봤으니까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에 굴곡이 없다. 늘 한결같이 즐겁다.



도자기 빚는 로펌 이사 이숙자 씨
도요에서 고향 집 같은 평온함을 느껴요

대부분의 ‘일하는’ 여자들처럼 그는 40대 초반까지 일과 육아에 ‘매몰’되어 살았다. “10년 전 우연히 도예가 지숙경 씨의 도요인 ‘지요’에 가봤어요. 사무실에서 쫓기듯 일하다가 전원에서 흙을 만지니 말 그대로 ‘힐링’이더군요. 그래서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MBA까지 마치는 등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 의미가 없진 않지만, 노년이 되어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여태 머리를 채우는 지식 공부를 했다면, 마흔부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7~8년 전부터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그렸고, 지금은 유화와 기타를 배워요.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가족과 함께 지요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만나죠. 지요에 다녀오면 2~3주는 행복한 기분이 유지됩니다. 도자기 만드는 데 빠져 2~3시간을 보내면서 저도 모르게 몰입이라는 명상 효과를 경험하나 봐요.”

국내 최대 법률 회사 김앤장의 이사라는 직무와 풍성한 행복감이 어떻게 공존할까. “예전에는 엄마, 아내, 회사원으로 나를 희생했죠. 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면서 내가 나를 챙기고 행복하게 살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족한 실력으로 빚은 도자기를 지요의 자연 가마에 넣는다. 송진 가루가 내려앉고 불길이 쓰다듬어 작품이 되어 나오면 자신이 행운아라는 희열까지 느낀다. 이런 삶을 위해서는 ‘취미 생활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 “바빠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취미 생활을 위한 시간을 미리 떼두는 겁니다. 그러면 나머지 시간에 더 집중해 일하게 돼요. 특히, 일하는 여성에게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이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이숙자 씨의 행복 사다리
4점                   
8점                                          
9점                                              
취미 생활을 시작할 즈음엔 육아와 회사 생활로 지쳤을 때라 행복 지수는 4점. 바쁜 일상은 변함없지만 짬짬이 유화 그리기와 기타 연주, 도예가 더해지니 요즘 행복 지수는 8점이다. 5년 후 행복 지수를 10점이 아닌 9점을 고른 건, 늘 행복하기를 기대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철인 삼종 경기로 희망을 찾은 약사 이성분 씨
살기 위해 시작했고, 꿈꾸니 행복합니다

철인 삼종 경기에 도전하기 전 이성분 씨의 화두는 오로지 ‘달리기’였다. “마흔에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정신적 세계관이 무너지던 시기였습니다. 퇴근하면 동네 주변을 계속 달렸어요. 토닥토닥하고 뛰는 소리가 마음을 치유하는 만트라처럼 느껴졌지요.” 치유의 만트라로 시작한 달리기는 어느 시기에 이르자 풍류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풀코스 (42.195km) 도전에 성공했지만 기록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목표를 이룬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칭찬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 것, 바로 ‘희망’이죠.”

그 이후 마흔세 살에 수영을 정식으로 배웠고,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바퀴 없는 연습용 자전거를 이용해 중심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철인 삼종 경기는 올림픽 코스만 해도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해야 하는 막강한 경기. “우선 일정 기간의 연습이 필요해요. 저도 1년 이상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운동에 몰입하는 이유가 뭘까? “바다에서 수영해본 적이 있나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경이로운 자유,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 속에서 즐거운 에너지가 분출해요.”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힘을 얻은 그는 운동할 때 가장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이성분 씨의 행복 사다리
0점
5점                              
7점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한 때는 정신적으로 행복 지수가 0의 상태였다. 운동이 계기가 되어 그 난관을 극복한 지금은 5 이상 정도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5년 후에는 순간순간 10점을 느끼겠지만 7점 정도라도 만족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패키지로 오니까.



바이크 라이딩 즐기는 공학 박사 김종식 씨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달려요

새처럼 날렵하지만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혼다 골드윙. 존재감 물씬 풍기는 이 붉은색 바이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공학 박사 김종식 교수가 7년간 함께한 길 위의 친구다. “교수가 되기 전 21년간 글로벌 기업의 대표로 치열하게 일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쉰 살이 넘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포기하거나 두 가지 선택뿐이에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었죠.” 도전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륜자동차 면허를 새로 취득해야 했고, 아내는 펄쩍 뛰었으며, 라이딩 중에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완주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활력은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은 지인 부부들과 함께 1년에 세 번 바이크 여행을 떠납니다. 아내를 위해 일부러 뒷좌석이 있는 바이크를 구입했지요.” 그는 50대라는 우물에 빠진 두 다리를 바이크의 두 바퀴를 이용해 가뿐히 잡아 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스피드를 즐길 정도로 베테랑 라이더가 됐다. 김종식 교수가 바이크에 시동을 걸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콘체르토가 흘러나왔다.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하는 것이 좋아 엔진 소리가 큰 바이크는 선호하지 않아요.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바이크를 타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연이라는 열린 무대에서 가장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좋아하는 음악과 바람과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김종식 씨의 행복 사다리
7점                                       
8점                                          
8점                                          
삶의 행복 지수는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항상 7점 이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도전하고 싶었던 바이크 라이딩과 클라리넷 연주를 통해 삶이 8점 정도로 더욱 풍요로워졌다. 미래에도 큰 굴곡 없이 8점이라는 현재의 행복 지수를 그대로 유지하면 좋겠다. 현재에 충실한 삶이 미래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성악에 푹 빠진 큐레이터 박혜원 씨
노래하면서 여유를 찾았어요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고음 부분도 흔들림 없이 매끄러운 발성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불러내는 갤러리 빈트의 박혜원 관장. 본격적으로 성악을 시작한 게 고작 6개월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출중한 실력이다.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지사장으로, 컨설팅 회사 고문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그가 성악에 매료된 건 지난해 말 가족 모임에서 조수미 씨의 ‘너 가거든’을 부른 게 계기가 됐다. “고음은커녕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충격이었죠. 그래서 지난 2월 ‘데뮤즈’라는 음악 동호회에 가입해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매달 한 곡씩 연습해서 음악 감독님께 평가를 받는데, 이때 다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치열하게 연습해요. 저만 해도 매주 한두 번씩 꼬박꼬박 레슨을 받고, 유명 소프라노의 무대를 유튜브에서 다운받아 계속 따라 부르기도 하니까요. 갤러리에서 업무를 볼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수시로 성악곡을 들으며 연습하지요.”

타고난 재능에 끊임없는 연습이 더해지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칭찬을 들을 만큼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얼마 전엔 데뮤즈 주최로 반기에 한 번씩 열리는 음악회 무대에 섰을 정도.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을 느꼈어요. 가사를 음미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느낀 ‘순간의 행복’은 그녀를 더욱 성악에 매진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고심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15년간 모아온 북유럽 빈티지 컬렉션으로 갤러리를 열 때도 행복하긴 했어요. 스트레스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성악은 그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아요. 내친김에 성악뿐 아니라 늘 하고 싶던 브라질 재즈에도 도전할까 봐요.”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박혜원 씨의 행복 사다리
3점                
7점                                     
9점                                              
5년 전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엔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다. 행복 지수 3점도 과분할 정도로. 하지만 갤러리를 운영하고 성악을 시작한 지금은 행복 지수가 7점쯤 될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하다. 앞으론 더 좋아질 테니 5년 후면 9점 정도 되지않을까 생각한다.



매년 오지 여행 떠나는 패션업체 대표 이충희 씨
떠날수록 인생의 참맛을 느껴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에트로’ 를 수입하는 ㈜듀오의 이충희 대표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아내와 함께 오지 여행을 떠난다. ‘문명화가 덜 된 오지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행기나 기차가 4~5시간씩 연착하는 건 예사고, 음식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환경이 열악한 저개발 국가에 가면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죠.” 오지 여행을 시작한 것이 벌써 11년째. 그동안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숱한 나라의 오지를 다녀왔지만, 인도 갠지스 강 여행만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거적으로 대충 시신을 말아 화장터로 향하던 장례 행렬과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열심히 몸을 닦던 순례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욕심이란 다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하고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것 역시 이 같은 깨달음의 산물이다.

‘언젠가는 빈손으로 떠날 텐데 아등바등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자’는 생각을 한 것. 전시 공간이 필요한 신진 작가에게 갤러리를 싼값에 빌려주고,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내어주는 적극적인 ‘나눔’의 실천 또한 오지 여행이 가져다준 값진 선물이다. “여행이란 결국 지식을 얻고, 경험을 얻고, 사람을 얻는 과정이에요. 그런 과정을 통해 사고의 확장, 잊지 못할 추억 같은 부수적인 즐거움도 얻는 것일 테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살면서 남는 건 여행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오지 여행은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아요.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통해 행복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니까요.”

* 각 10점 만점입니다
취미 생활 전 행복 지수
현재 행복 지수
5년 후 행복 지수

이충희 씨의 행복 사다리
9점                                             
9점                                             
9점                                             
그의 이름 ‘충희’의 ‘충’ 자는 ‘가득할 충’ 자다. 사람이 이름대로 산다고, 그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갖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보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기보다 잘하는 걸 칭찬하면서. 수중에 1천억 원이 있다 해도 만족을 모르면 가난하다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행복에 점수를 매길 때 만점은 좀 과한 듯하다. 10점 만점에 9점 정도면 딱 좋을 것 같다.
글 김민정・신진주 기자, 최혜정 | 사진 박우진 디자인 전지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