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젠토의 헤라 신전. 헤라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의 아내다. 그러니 도시 초입에, 신전에서도 제일 먼저 서 있는 모양이지. 여신은 간 지 오래고 신전은 이제 기둥 몇 개만 남았도 다. 그나마도 이건 많이 남은 편. 이런 황토색 돌기둥은 별로 쓸데가 없었기에 그냥 놔뒀을 거야.
동쪽 끝은 이탈리아 본토와 닿을락 말락 하고(3.3km)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와 지척(144km)인 시칠리아.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던 곳. 그런 시칠리아 땅을 디디면서부터 그래픽 디자이너의 직업 의식을 발동시키는 게 있네. 대각선으로 반은 빨갛고 반은 노란 시칠리아 주기州旗 속의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심벌이 말이지. 그 중앙에 웬 여자 얼굴이 들어 있고, 그 얼굴을 중심으로 마치 프로펠러같이 여자의 넓적다리 세 개가 돌아가고 있지. 내가 사는 캐나다에는 이탤리언이 많이 살고 있기에 이 심벌을 채집해뒀는데, 이제 본토에 와서 오리지널을 보는 거다. ‘여자의 넓적다리가 세 개라?’ 벌써 뭔가 좀 징그럽고 음란한 느낌을 주지 않나 말이야.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며 내숭떨던 전통 유럽 사회, 여성의 다리는 성적性的 암시를 준다 하여 땅에 끌리는 긴 치마로 가리고 대중 앞에선 노출을 절대 금기했지. 심지어 연주회장에서는 피아노 다리도 ‘다리’라 하여 천으로 가리기도 했다던데, 시칠리 아는 종아리도 아니고 넓적다리씩이나? 그것도 셋씩이나?
시칠리아의 심벌. (왼쪽부터) 주기州旗, 주 엠블럼, 타일. 타일에서는 머리칼에 녹색 뱀이 보인다. 그런데 발의 회전 방향이 제각각이다. 먼저 주기와 주 엠블럼도 서로 다른걸?
시칠리아 지도와 필자의 여행 코스.
시칠리아 심벌이 요상하다! 시칠리아 심벌 얘기는 시칠리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먼저 그 심벌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라. 여자 머리 둘레에 녹색으로 꼬불꼬불한 것까지 보셨는지? 뭐지? 뱀이다. 징그럽지. 이쯤 되면 벌써 시칠리아 심벌은 어떤 신화와 연결됐을 거란 감이 온다. 여기가 어디인가? 고대 그리스, 이집트 신화 속 신들의 운동장, 지중해가 아닌가? 그럼 심벌 속의 ‘얼굴녀女’는 누굴까? 바로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메두사다. 근데 왜 하필이면 그녀의 얼굴이 시칠리아 심벌일까?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있는 시칠리아는 두 대륙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니 아프리카 남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수밖에. 원래 메두사는 지금의 튀니지, 리비아 지역의 아름다운 처녀 수호신이다. 올림포스 산의 신들 쪽에서 보면 우습게 아는 변방 하급 신이지. 메두사가 올림포스 산 주신의 딸,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신전에 예배하러 갔는데···. 평소 메두사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수말로 둔갑해 대기하고 있다가 그냥 덮쳐버렸네. 그런 일을 그리스 신화에서는 항상 어떤 신에게 사랑받았다고 묘사하지. ‘아니, 감히 내 신전에서 이런 짓을?’ 한 성깔 하는 처녀 신아테나, 눈에 시퍼런 불이 났지. 삼촌에다 강력한 포세이돈에게는 감히 어쩔 수가 없으니 만만한 게 메두사다. ‘네 이년!’ 표독스러운 아테나, 메두사의 그 아름답던 머리칼을 뱀으로 변하게 하고 앞으로 그녀 앞에 어떤 놈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돌로 변하게 하는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 나중에는 킬러 페르세우스를 고용해 목을 잘라오게 했다. 메두사, 정말 억울하지. 겁탈당해 처녀 자격 잃었지, 괴물 신세로 떨어졌지, 목까지 달아났지. 그러나 그녀의 슬픔이 유럽인에게는 기찬 액막이 부적이 됐다. 그녀의 얼굴을 조각해 대문에 붙이면 어떤 잡귀가 감히 얼씬거리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시칠리아의 경우 메두사를 로마식 이름인 트리나크리아로 개명해 자기네 수호신으로 영입했고, 그 이름이 고대 로마 시대에는 시칠리아의 이름이 됐다. 건너편 카르타고 놈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건 그렇다 치고 그 트리나크리아가 발은 또 왜 세 개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내가 그린 시칠리아 지도를 좀 보시라. 전체적으로 삼각형이지? 더 정확히 말하면 역삼각형. 그 삼각형의 ‘3’을 의미해서 발을 세 개로 했다는 것. 그래서 이름도 라틴어로 ‘3’을 의미하는 tri-를 넣어 트리나크리아 Trinacria로 한 거고. 절대로 나누어지지 않는 수 ‘3’은 특히 고대 시대에서 신비하게 여긴 숫자.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딱 한 가지 예만 들자면 고조선의 태양 심벌에 세 발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가 있지 않나?
1 시라쿠사 대성당 천장화, 항구 가까이 있는 대성당. 그 돔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 이 정도다. 필자의 해석인데, 왼쪽에 선지자 엘리야가 기진맥진해 광야에 쓰러져 있는 데 천사가 와서 음식을 주는 장면을 그려놨군.
2 이탈리아 개들은 상팔자, 이런 괜찮은 레스토랑 입구에 개가 퍼질러 누워 있어도 그만. 필자가 30분 후에 다시 지나가면서 보자니 여전히 저러고 있었다. 이런 개격犬格 존중(?) 사상은 그리스, 터키는 더하지.
3 벽 장식에서 보는 시칠리아의 심벌. 철문에 레몬 등 여러 가지 시칠리아와 관련한 그림을 그려놨다. 심벌 아래는 그림으로 장식한 쓰레기통 커버로, 그 위에 그린 그림이 재미있다. 쓰레기통이니까 고양이가 쥐를 쓸어내고 그 아래는 쥐들의 행복한 스위트 홈을 그렸다.
4 시칠리아 레스토랑의 실물 메뉴. 지중해에서 갓 잡아온 생선들. 골라잡기만 하시라. 그걸로 요리를 해준다.
5 아그리젠토의 헤라 신전, 헤라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의 아내. 그러니 도시 초입에, 신전에서도 제일 먼저 서 있는 모양이다.
6 타오르미나 원형극장, 1955년에 복원 공사를 했다. 나무로 객석을 보강한 것은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하기 때문. 저 멀리 에트나 화산이 연기를 뿜는 풍경이 보인다.
7 에트나 화산 분화구. 신기하게도 바람이 화산 연기와 안개, 구름을 몰아내줘 이렇게 분화구를 볼 수 있었다니까.
보물을 보고 싶었다 이탈리아 본토 끝(빌라 산 조반니Villa San Giovanni)에서 페리로 25분, 시칠리아 땅을 디디면 거기가 현도縣都 메시나Messina란 곳이다. 거기서부터 해안을 따라 남서쪽으로 52km 내려가면 타오르미나Taormina란 도시를 만나지. 거기에 참 대단한 그리스 유적들이 있다. 난 바로 그걸 보고 싶어 한 것. 먼저 그리스 원형극장이 있는데···. 지름이 120m, 고대 시칠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이란다. 고대 그리스인이 이렇게 머나먼 식민지 섬에 이런 규모의 극장을 지어놓고 연극까지 즐겨가며 살았다니 기가 막히지 않나? (지금도 거기서 오페라나 연극, 콘서트를 연다) 타오르미나에서 남쪽으로 155km 떨어진 시라쿠사 Siracusa란 항구는 또 어떻고? 잡신들이라 세월 속에 죽어 증발해버리니까 그 신전에서 비싼 석주들을 다 빼어다가 딴 데 썼기에 지금은 주초柱礎만 남았다. 왕년엔 기둥 48개에 가로가 22m 세로가 52m나 되는, 웅장했을 태양신 아폴로 신전 터며 역시 지금도 공연장으로 쓰는 고대 시칠리아에서 제일 큰 원형극장 그리고 원형경기장에, 극장 뒤로는 지금도 천연수가 콸콸 나오는 수도에, 석굴 무덤까지 즐비한 게 모두 그리스-로마 문화 유적이다. 얼마나 근사한 도시였으면 미국 동부 뉴욕 주와 서부 유타 주의 시러큐스Syracuse라고 하는 도시 이름도 여기서 따다 붙였을까 말이야.
시라쿠사에서 남서쪽 내륙으로 조금(25km) 들어와 만나는 노토Noto는 또 어떻고? 노토로 들어서는 동쪽 입구에 개선문같이 생긴 높다란 아치가 벌써 ‘뭔가’를 말해준다. 유럽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 일인데, 도시 이쪽에서 저쪽까지 일직선으로 난 도로 양쪽에 건물들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한마디로 바둑판 모양 배치다. ‘그것참 웬일?’ 했더니 1693년 지진으로 고대 그리스 스타일의 도시가 폐허가 되자, 아예 도시 계획을 격자 방식으로 해서 그렇단다. 길 양편으로 이어지는 서른 군데도 넘는 교회당, 수도원, 중앙에 자리 잡은 웅장한 대성당, 교회당 개조한 작은 박물관을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어느 타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 등재됐다고 해서 뭐 내놓고 자랑할 일이겠는가마는 그런 것도 지정되어 있더군. 그런 건축물들이 도열한 도시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 “유서 깊은 건축물이 없는 도시는 서재 없는 저택과 같다.”
시칠리아에 그리스 유적이 왜 많을까? 기원전 1000년 당시의 그리스. 땅은 척박하지(그건, 정말 그렇더군. 가보시라고. 죄다 돌밭이지), 그러니 먹고살긴 어렵지.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서 먹고살았단다. 올리브도 단지에 담가다 팔고 말이지. 그러기엔 지리적 조건이 좋았다. 그리스 쪽 지중해 일대에는 평균 80km 정도마다 아무 방향으로 가도 섬들이 있어 그걸 징검다리 삼아 항해하기가 수월한 것. 그러다 보니 좀 멀긴 하지만 눈여겨봐둔 큰 섬 시칠리아가 있어. 체질적으로 거친 놈들, 싸움들 잘하겠다, ‘우리, 고단하게 무역하러 다닐 거 없이 그 땅을 먹어치우고 거기 정착하세’ 하고 몰려들가서 시칠리아를 자기네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것. 그런 연유로 앞에서 보았듯이 시칠리아에는 기원전 8세기에 세운 신전, 원형극장 등 널린 것이 그리스 문화 유적들이다. 그런 시칠리아를 아프리카 북쪽에 있던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쳐 1백 년간 치른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접수(?)했다. 그런 로마인들이지만 그저 그리스 문화라면 껌벅 죽었기에 시칠리아는 그리스 문화 일색이 됐다.
에트나 활화산 등정 성공? 유치한 수준이지만, 근사한 모험(?)을 했다. 타오르미나에서 시라쿠사 가는 길에서 내륙으로 약간 들어가면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활화산으로 높이가 무려 3345m나 되는 에트나 Etna 활화산이 있다. 바로 이 산을 등정(!)한 것. 그러나 이쯤에서··· 이 에트나 화산에 올라보신 분들은 벌써 웃고 계실걸? ‘에이 여보슈, 다 알아, 다 안다구.’ 그래, 그러니 아예 미리 실토한다. 우리 부부가 3345m짜리 활화산에 오른 건 사실이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 높이다. 그런데 말이지, 이거 먼저 해변 도로에서 시작해 1900m까지는 자동차로 지그재그로 올라간 거다. 거기서 다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2500m까지 올라갔네. 케이블카에서 내린 다음 거기서 또 우람하게 생긴 바퀴가 달린 특수 버스로 갈아타고 2900m까지 올라갔고, 거기서부터 그저 그곳의 화산 전문 가이드를 따라 몇 걸음 걸어 올라간 게 다다. 그러니 양심이 있지, 이걸 가지고 어떻게 ‘에트나 화산을 등정했노라’고 할 수가 있겠나 말이지.그런데 우린 지독한 악천후에 올라갔다는 것.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할 건더기도 생겼지 뭔가? 그 에트나 산정에도 날씨 좋은 날은 얼마든지 있단다. 그런데 작년 10월 중순, 우리가 올라간 그날은 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조금 올라가기 시작하자마자, 즉 고도가 차츰 높아질수록 이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케이블카를 감싸버리네. 사방은 완전 회색 세계, 난방 시설이 있을 리 없는 케이블카 안은 냉기가 돌고, 문틈으로 ‘휭휭’ 소리까지 내며 들어오는 찬 바람을 보니 밖은 강풍도 불고 있는 모양이다.
에트나 활화산의 민낯을 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정말이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케이블카를 내려 이번엔 바퀴 큰 버스로 옮겨 탔다. 정말이지 시계視界가 제로나 마찬가지인데, 운전사는 도로에 드문드문 박아놓은 희미하게 보이는 기둥들로 감을 잡으며 산길을 슬슬 잘도 올라간다. 바퀴 큰 버스가 멎은 곳은 거의 에트나 화산 정상. 문이 열리자마자 “흐아악~!” 저 아래 열대 식물로 아름답고 어제 수영까지 즐긴 지중해변이 천국이라면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는 짙은 안개에 거센 강풍, 날아오는 날카로운 화산재로 뒤범벅이 된 이곳은 지옥이겠다. 게다가 추위는 또 어떻고. 이렇게까지 강풍에 추울 줄은 미처 몰랐기에 우린 얇은 파카 하나만 덧입고 있었지 뭔가. 그저 서로 꽉 붙잡고 덜덜 떨며 희미한 가이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그러니 우리보다 더 대비 없이 그냥 올라온 미국인, 호주인, 영국인, 캐나다인 등 열 명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지. 정말 지독하데! 활화산이라고 해서 시뻘건 불이 확확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고 2002년에 폭발한 이후 점차 식어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정도라는데, 이 날씨로는 그런 분화구 촬영은 애초부터 언감생심.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건질 수 있는 한 사진을 찍으며 전리품으로 화산석도 줍고 그렇게 한 30분을 정상에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저길 보란다. 어! 저편 산봉우리부터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뭣인가에 쫓겨가면서 큰 구멍이 뻥 뚫어지듯 맨땅이 쏴아~ 드러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점점 다가와 우리가 서 있는 분화구 일대가 몽땅 환하게 드러났다. 정말이지 도깨 비에게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아이구우, 하느님, 캄사합니다요!’ 그 틈을 놓칠쏘냐? 군데군데 흰 연기를 뿜고 있는 에트나 정상을 마구 찍어댔다.
‘그래, 악천후 만난 것도 좋았어. 그러기에 이런 글을 쓸 거리도 생기지 않았나 말이야.’
헤라클레스 신전. 헤라 여신이 그렇게 죽이려고 한 헤라클레스, 가장 인간적으로 실수도 많이 한 반신반인. 그러나 그는 멀리 보고 스스로 고난을 선택했기에 나중에 신격으로 격상되었지. 그래서 우리에게 교훈도 주지. “Hercules’ choice(헤라클레스의 선택, 안일을 버리고 고난을 택함)”란 격언 말이야.
시칠리아 섬의 주도 팔레르모에 있는 오페라하우스.
셀리눈테 신전 A를 돌아보고 내려온 필자의 동선動線.
신화의 땅 아그리젠토 먼저 유적지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신전이 헤라 신전.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 감시하느라고 스트레스 엄청 받은 여신 신전이다. 거길 지나 계곡 위로 쭉 뻗은 길 중간에서 만난 또 다른 신전은 콘코르디아Concordia 신전. concord는 ‘조화, 일치’, 그러니까 아그리젠토 사람들의 ‘화합의 신전’이렷다. 전면이 도리아식 주두柱頭(capital)로 된 기둥 여섯 개가 비교적 손상이 덜 된 박공 (pediment)을 떠받치고 있다. 그걸 지나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또 신전이 있어. 거기엔 제우스가 인간 여자인 테베의 왕비를 덮쳐 낳은 자식이라 그렇게도 정처正妻 헤라가 죽이려고 한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네. 같은 계곡 위 일직선상에 1.2km 정도 사이를 두고 그런 갈등의 신전들이 공존한다? 그럴 수 있다. 그건 반신반인(demigod)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 신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헤라도 화해의 표시로 자기 딸을 헤라클레스에게 줬으니 장모와 사위 사이가 된 거다. 그러니까 일직선상 길에 동쪽에는 헤라 신전, 서쪽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을 배치하고 그 중간에 콘코르디아(화 합) 신전을 배치한 것이 아닐까?
난 돈키호테 스타일! 웬 섬이 이렇게 큰가 하겠다. 그럴 수밖에. 시칠리아는 지중해에서 제일 큰 섬, 제주도의 열네 배나 되니 안 그렇겠나? 그 아그리젠토에서 다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180km 정도 가면 거의 시칠리아 섬의 남서쪽 끝이 되는데, 거기 그리스 유적 중 백미라는 셀리눈테Selinunte란 곳이 있다. 여기서 이 돈키호테가 이런 희극을 벌였도다. 들어보시라. 먼저 그 유적지에 들어서서 그곳의 언덕 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돌아봤지. 그리고 하나라도 더 다른 것을 발견하러 아내와 잰걸음으로 그 일대를 샅샅이 돌다가 서편 언덕 끝까지 가서 바라보니 어? 저기 멀리, 남서쪽 저편 바닷가 언덕 위에 또 다른 아크로폴리스(언덕 위의 도시)가 있고 거기 폐허가 된 신전 하나가 실루엣으로 가물가물 보이는 게 아닌가? ‘저건 또 어떤 신전일까?’ 견물생심!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아, 저걸 으쩌지···?’ 본능적으로 얼른 시계를 봤다. 딱 10시 59분! 11시로 치고··· 여기서 5분 거리에 있는 차는 30분 후인 11시 반에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쩌지? ‘어쩌긴, 죽어도 Go지.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여기 올 날이 있단 말인가···.’
돈키호테는 결정도 빠르지. “여보, 먼저 주차장에 가서 기다려요.” (나는 여행 중 종종 이런 식으로 아내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고는 긴 망원렌즈가 달린 무거운 카메라만 목에 걸고 정말 죽어라고 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지중해의 땡볕, 얼마나 뜨거웠는데, 얼마나 땀을 흘리고 목이 탔는데, 길도 없는 울퉁불퉁한 들판을 얼마나 죽어라고 달렸는데. 들판이니까 맘대로 최단 거리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지? 천 만의 말씀! 그런 들판도 가까이 가보면 그게 다 울퉁불퉁 돌밭이고 검불이고 까칠한 가시로 무장한 잡목이 덮여 있다네. ‘이런 웬수···.’ 헤치고 갈 수도 없고 뛰어넘지도 못하겠고, 마음은 조급하고. 벌써 가시에 긁혀서 종아리에선 피도 난다. 그래도 달리고 달려 숨이 턱에 찬 채로 그 가물거리던 신전이 바라보이는 언덕까지 왔는데 어라, 아주 높고 긴 성벽이 가로막고 있네. ‘이런!’ 저 고개를 돌아가야 제대로 된 길이 나오고 거기서 빙 돌아 입구로 들어가야 하네. 할 수 있나. 뛰면서 급한 대로 표지판을 보니(사진으로 찍어버리고) 기원전 7세기의 신전 A란다. 그나저나 벌써 돌아갈 시간조차 모자라니 어찌할꼬? 그래도 이미 일이 이렇게 된 거, 나중에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신전을 뛰어다니며 관찰하고 사진 찍고 전리품으로 고대 그리스의 벽돌 파편까지 주워서 챙겼다. 그러고 났으니 이젠 도저히 시간 안에 돌아갈 수가 없데. 그래?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는 방법! 멀리 빙 돌아서 들어온 성벽을 또 빙 돌아서 나갈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성벽을 타고 넘어 내려오는 방법밖에 없겠데. 만약 그러다 추락이라도 하면? 이 인적 없는 고대 성벽 아래에 자빠져 있으면 누가 어떻게 날 구조하러 올 건가? 그래도 Go야! 2600년 전 고대 그리스인이 쌓아놓은 성벽, 다행히도(?) 드문드문 돌이 빠져나간 데가 있어 그걸 디뎌가며 무사히 성벽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또 죽어라고 달리고 달려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on time(딱 제 시간)’에 주차장까지 돌아왔는데···. 땀에 뭐에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되어 나타난 날 보고 소렌토 출신 현지 가이드가 웬일이냐고 묻는 거다. 그래 체력(내가 어쨌거나 한국 나이로는 금년 68세 아닌가) 자랑도 할 겸 “촬영하러 저어기, 저 신전 A엘 뛰어갔다 왔노라” 했다. 그러면 가이드가 “와! 그 먼 델 뛰어갔다가 오셨다고요?” 하며 과장 섞어 놀라는 체하며 “대~단하십니다!” 하고 추어줄 걸 기대했는데, ‘응?’ 순간 가이드의 표정이 희한해지네? 그러더니 그가 하는 말이 “어, 거긴 지금 갈 건데요?” 하는 게 아닌가? ‘????’ ‘헉!’ 아까 이 유적지에 들어서서 가이드가 설명할 때 그거 다 듣다가는 해 지게 생겼기에 내 맘대로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사진 찍고 하느라고 그만 스케줄 설명을 놓친 거였다. ‘하이고오~’ 이런 멋쩍음과 허탈감이라니. 어쩔 건가? 억지로라도 좋게 생각해야지. 아닌 게 아니라 그 바람에 나는 셀리눈테 신전 A를 두 번이나 가본 사람이 됐지 뭔가. 그 뒤 상당 기간 넓적다리가 뻐근했고!
팔레르모에서도 또··· ? 저녁 8시에 나폴리로 떠나는 페리를 타기까지 시간이 약간 있었다. ‘요 시간에 뭘 보면 수지가 맞을까?’ 시 동쪽의 고고학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이탈리아, 이거 도로 구획 복잡하긴. 그냥 물어물어 가는데, 물어본 행인마다 통하지도 않는 말에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가르쳐주는데 가보면 황당한 거다. ‘분명히 요 근처인데···.’ 그렇게 무려 두 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손해는 아니지. 지난 4월호에 게재한 베란다에 여성 ‘빤쓰’ 널어놓은 사진도 그때 찍었다니까. 결정적으로 맨 나중에 만난 행상하는 젊은이는 길을 가르쳐주고 나더니 양손의 검지를 나란히 붙여 보여준다. 뭔 사인 랭귀지인가 본데 알수가 있나. 말이 통해야지, 말이. 결국은 돌고 돌아 그 고고학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번 ‘헉!’ 아이구, 건물 보수 중이라 개방 안한다네. 내년 4월에나 연다나?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그 행상하는 젊은이가 보여준 사인 랭귀지는 ‘그 박물관은 문을 닫고 있다’는 의미인 거였다. 그러며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페리가 출항할 시간도 다 되어가고. “아스타 라 비스타 시칠리아Hasta la vista Sicilia!”(시칠리아야, 또 보자!)
|
글을 쓴 한호림 씨는 호기심 꽂힌 곳이면 어디든지 다 가야 하는 타고난 문화 여행자. 그의 책상 앞에는 항상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세계는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항상 많다는 그는 1993년 펴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어 책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저서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를 비롯해 <서양 문화인사이트>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등이 있으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