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까닭일까, 요즘 트렌디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고급 레스토랑 중에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상당수이고 동네 중국집만큼이나 우후죽순 늘어가는 음식점 또한 파스타 전문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집 피자 맛은 어떻고 저 집 파스타 맛은 어떤지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음식 맛 품평회가 이어진다. 한데 아쉬운 건 최근 어느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가봐도 맛이며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좀 더 섬세하고, 좀 더 매력적인 이탤리언 요리를 맛볼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알게 된 레스토랑 ‘오브’는 그런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단비 같은 곳. 겉에서 보면 평화로운 정원이 딸린 예쁜 이층집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플로리스트인 김해영 씨가 주인인 이 레스토랑이 ‘눈에 띈’ 첫 번째 이유는 독특한 메뉴 때문. 최근 외국의 ‘가정식’이 한창 트렌드인데, ‘오브’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가정식이 메인 콘셉트이다. 이곳 김대진 주방장은 이탈리아에 살면서 현지에서도 가정식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았다. 그 동안 온몸으로 익힌 음식 노하우를 ‘오브’에 풀어놓았으니 메뉴가 색다를 수밖에. 실제 이탈리아 가정에서 먹는 것처럼 투박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지중해식 이탤리언 수프’에는 보리와 콩 같은 곡류가 들어 있어 느낌이 새롭다. 여럿이 먹을 때는 큰 그릇에 담아 각자 국자로 덜어 먹을 수 있게 실제 이탤리언 가정식으로 내놓는다. 고추 마늘 소스로 맛을 낸 파스타 ‘뽀뽈로popolo’나 우족과 도가니를 삶아 토마토와 각종 향신료를 넣고 푹 고아낸 ‘나티보natibo’ 등은 국내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신기한’ 음식이다. 이렇듯 낯선 음식들인데도 입에 착착 달라붙기 때문에 이탤리언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을 모시고 가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 그밖에도 홍합탕 ?이탤리언 우족 스튜 등 전채요리, 아홉 가지 샐러드, 다양한 파스타와 리소토, 피자, 안심 스테이크 오리구이 등의 주요리를 50여 종의 와인과 함께 맛볼 수 있다.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그날그날 물 좋은 재료를 이용해 셰프가 제안하는 ‘투데이 스페셜’을 선택할 것.
나뭇잎 사이로 계절이 다녀가는 흔적이 역력한 야외 정원에서는 차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던 한 손님이 “어머나, 이 나무 아래에서 식사하면 좋겠다”라며 웃는다. 아담한 실내 공간은 김해영 씨의 안목과 감각으로 소박하고 편안하게 꾸몄다. 너무 고급스러워서 부담스럽기보다는 가정집처럼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갖가지 외국 식재료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오픈 키친 또한 조리 과정이 훤히 들여다보여 내집 음식처럼 믿음이 간다. 정원 아름답고 음식 맛좋은 이곳을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알게 된 게 아쉽다. 낙엽 지기 전에 ‘저 나무 아래’로 파스타 먹으러 와야겠다. ‘이탤리언 스파게티’ 맛보러 이탈리아 여행 가자는 아홉 살 딸아이와 함께.
위치 성수대교 남단 폭스바겐 매장 골목으로 들어가서 첫 번째 왼쪽 골목으로 좌회전. 일식 레스토랑 ‘ 퓨 어 ’ 주차장 맞은편에 와인색 간판으로 ‘ 오 브 ’ 가 보인다.
문의 02-518-5167
1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플로리스트인 김해영 사장. 야외 정원은 ‘ 오 브 ’ 에서 가장 분위기 좋은 공간이라 손님들 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2 입구 왼편의 아기자기한 꽃집에서는 플라 워& 가드닝 클래스가 열린다.
3 아담한 내부는 부담스러운 장식 없이 편안한 분위기로 꾸몄는데, 벽지를 이용해 포인트만 살짝 주었다.
4 깔끔하게 정리된 오픈 키친. 주방 스태프들이 만든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가정식 요리는 우리 입맛에 썩 잘 맞는다.
5 단호박수프, 데리야키소스로 맛을 낸 치킨 샐러드, 매콤한 칠리소스의 왕게살 파스타. 왕게살 파스타에는 탱탱한 게살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6 나비를 심볼로 한 와인빛 ‘ 오 브 ’ 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