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정이 많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문제는 오직 가정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사회가 함께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중 중요한 사안이 일자리 창출입니다.” 박 이사장은 첫마디부터 강한 소명 의식을 드러냈다. 2년 동안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꾸준히 추진해온 사업의 뚜렷한 성과를 근거로 확신에 찬 발언을 하는 것이다.
“작년 6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선도하는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장애인고용증진 협약을 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파급효과가 요즘 들어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어요. 지금까지 1백31개 대기업이 이 협약을 체결했고 총 1천8명이 취업했습니다. 한 기업은 일정기간 맞춤 훈련을 실시하여 전국 사업장별로 대규모 인원을 채용하기도 했지요. 장애인을 위한 IT정보화교육원을 연 기업도 있습니다. 대기업이 이렇게 앞장서 실천하면 다른 많은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겠지요.”
그는 직원 중 2%를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하는 의무고용제도에 대해 부담금으로 대신하는 기업들이 있는 데 대해 아쉬워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한 번 장애인 채용을 했던 기업 중 약 80%가 고용한 장애인의 업무 태도와 결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가 비장애인(‘일반인’ 혹은 ‘정상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고용주도 상당수라고.
이렇듯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기업을 설득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대한 역할을 하는 그도 장애를 가졌다. 생후 10개월 만에 찾아온 열병을 감기로 오인, 본의 아니게 방치했다가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얻게 되었다. 다리의 운동 신경을 지배하는 뇌세포가 손상되어 평생을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그가 파고든 것은 책 읽는 즐거움이었고 한때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기도 했다. 서울대 법학과와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법관 임용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박 이사장. 운명을 탓하기에 그의 혈기는 왕성했고 이것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명감도 발동했다. 사회의 편견에 대항하려는 결심을 굳히고 행동에 나서던 중 그가 들은 한 법원 고위층의 말은 기가 막히기만 했다. “사과가 여러 개 있을 때 썩은 사과를 먹겠소, 싱싱한 사과를 먹겠소?” 장애인을 ‘썩은 사과’에 비유할 만큼 그 시대 인권 의식은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언론에 노출했고 많은 사회 인사들과 언론이 힘을 모아 도움을 주어 결국 법관복을 입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워 시작한 투쟁에서 세상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잘못된 인권 의식을 가진 사람보다는 정의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으니까요.”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성장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여긴다. 그럼에도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아 그의 마음은 하루하루 바쁘기만 하다.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기본이지요. 30대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2004년 0.97%에서 2005년 1.14%로 오르는 등 의무고용제 시행 이래 처음으로 1%를 초과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란 없지요. 계속 성장시켜야 하니까요. 더불어 단순 노무에서 사무직이나 전문직 등 다양한 방면으로 취업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장애인들의 적성과 능력은 매우 다양하니까요.”
이러한 제도와 장치를 통해 교육과 취업의 두 가지 새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이지만 그의 능력이 한계점에 다다를 때면 사회가 함께 도와주었으면 할 때도 많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점. 박 이사장은 이를 위해 언론의 역할을 꼽는다. “많은 언론에 노출되는 장애인은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모습이 장애에 대해 ‘비극’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정작 장애를 불편해하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이 아닐까요?” 또한 고용이 경증 장애인에게 치우쳐 있고 남성에 비해 여성 장애인의 취업률이 현저히 낮은 것도 박 이사장의 고민이다. “여성 장애인 문제를 생각하면 참 머리가 아프죠. 결혼과 육아, 성폭력이나 추행 문제 등도 포함되고요. 저 한 사람의 힘으로, 혹은 장애인 문제 담당자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모든 정부 부서들이 협력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토론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장애인 고용문제 이외에도 장애인 복지에 대한 무궁무진한 ‘장애’가 쌓여 있는 데 대해 답답한 표정이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 험한 세상에서 받는 심리적인 상처는 그 회복이 어렵다.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가 거론된 다음에야 박 이사장은 결국 주제를 ‘가정’으로 돌린다. “그래요. 가정이 중요해요. 가정교육도 물론이거니와 진정한 자립이랄 수 있는 장애인 결혼이야말로 장려하고 격려해야죠. 사랑과 결혼은 한 인간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거든요. 저도 천사 같은 아내를 만나 아이들을 갖고 가정을 꾸민 것을 제 인생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니까요.” 선진적인 정책과 사회적 인식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그도 결국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배려와 관심임을, 자신이 사랑을 받는다는 자신감임을 인정한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구인구직자를 ‘알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전문적인 장애인 능력 교육과 채용촉진을 위한 캠페인과 정책 추진을 해나간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온라인 구인구직 시스템 워크 투게더(www. worktogether.or.kr)의 운영, 직업능력 평가, 보조공학기기 지원, 직업능력 개발훈련, 사업체 직원연수, 창업자금 및 자동차 구입 자금지원 등이 있으며 계속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중이다. “가끔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방법을 두고 멀리서 헤매죠. 장애인 채용을 원하거나 보조공학기기 등을 지원하고 싶은 분들은 바로 공단에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선진국의 복지정책만큼은 아니어도 이제 우리나라도 뜻이 있다면 그것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길은 만들어놓은 상태니까요.” 장애인도구성원임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 극복을 위한 사회적 해결책의 우선이라며 박 이사장은 말을 맺는다. 부드러움 속에서도 강한 소신을 잃지 않는 그의 추진력 덕분에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아주 부드러운 미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희망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