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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 그리는 비손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니까요
돌이켜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앉아 손으로 무언가를 꿰고 그리고 두들기며 시간을 보내곤 했죠.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이내 마음에 꽃들이 살뜰하게 피어납니다. 요즘 이곳이 그래요. 혼자 놀아서 좋고, 함께 어울려서 더 좋은 우리 동네 숨은 공방들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은 말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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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손의 열혈 수강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길명희 대표, 양정윤, 안혜숙, 임지선, 김소연, 도혜정, 앙투아네트, 이성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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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통창은 비손의 또 다른 매력이다.
3 완성보다 과정을 중요시하기에 그림 그리는 시간은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4, 6 비손에서 만난 세밀화 작품들.
5 세밀화처럼 보이지만 꽃과 잎을 압축해 말린 압화. 비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벚꽃잎 흩날리는 봄의 끝자락 남산 아래 작은 골목길에 푸른 차양이 인상적인 작은 공간, 정갈하게 걸려 있는 꽃 그림 너머로 야무진 플루트 소리의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종이 위 흐벅지게 피어난 꽃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아,참 예쁘다! <행복>의 오랜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 조현주 전 편집주간의 소개로 만난 세밀화 공방 ‘비손’이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길명희 대표가 15년간 운영하던 갤러리를 그만두고 세밀화 공방을 시작, 3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회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10대의 어린 친구부터 손녀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70대 할머니까지 비손을 찾는 연령층도 참 다양해요.”
경기도 덕정에서 왔다는 이성애 씨,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왔다는 양정윤 씨, 남산을 산책하다가 호기심에 배우게 됐다는 김소연 씨 등 회원들은 각기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거나 동네 이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호주에서 온 앙투아네트 씨도 있다. “ING 한국 지사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어요. 산책할 때마다 여긴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하며 늘 궁금했는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라니 매우 기뻤어요. 비손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정말 마법같이 빨리 지나간답니다.” 외국 대사관저가 밀집된 동네이기에 외국인의 문의도 잦다. 세밀화라고 하면 정교한 손재주가 기본 아닐까?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길명희 대표는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과 꾸준하게 수강할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못 그리면 좀 어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원하는가예요. 특히 40~50대 여성이 배우기 참 좋아요. 자녀가 성장하면 개인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가족에 대한 집착을 그림으로 바꾸면 일상이 한층 충만해져요.” 세밀화를 그리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눈이 생기는 것. 타인을 위한 삶에서 오로지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이 순간은 나이와 비례해 찬찬히 쌓이는 지혜이기도 하다.
가정과 나라는 존재가 숙주처럼 맞물린 일상에서 시간을 뚝 잘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쩌면 고상한 호사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몇 시간의 이동 시간을 감수하고 찾아와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그림을 그리고, 돌아갈 때 얼굴에 드리운 그 말간 행복. 그런 얼굴을 마주하니 이런저런 핑계로 자위하며 ‘내 행복’을 내려놓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세밀화 그리기로 무료하던 삶에 활력을 찾으면 가족의 식탁도 달라진다. 마음이 충만하고 말도 고와지며 작은 것에 더욱 애틋해진다. 비손에서는 매년 겨울 크리스마스 전에 전시와 함께 와인 파티를 연다. 그림을 그리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금세 다정한 친구가 된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가 있으면 작은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비손은 세밀화 공방이지만,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모인 작은 공동체다. 길명희 대표는 비손이 세밀화 그림을 통해 각자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나도 세밀화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해본다. 꽃을 그리며 꽃답게 살고 싶다고…. 어느새 가슴에 바람이 나붓나붓 분다.

주 2회 수업으로 수강료는 한 달에 20만(초급)~30만(중급) 원이다.
수강 기간 내에서 본인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자유롭게 배울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34-4 문의 02-797-7903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