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허욱 씨가 말하는 ‘장애와 예술’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은 많다. 이는 장애가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집착과 집념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고뇌와 아픔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이 깊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음을 증명한다. 스물여섯 살 때 귓병을 앓아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자신의 장애를 다른 음악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참한 심경을 <비창 주명곡>을 통해 표현했다. 또한 지난봄 내한했던 영국의 미술가 앨리슨 래퍼는 어느 날 “당신이 아름다운 사람들만 그리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직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오?”라는 누군가의 말에 자극받아 두 팔이 없는 자신의 몸을 석고로 떠서 밀로의 비너스와 같은 작품을 내놓은 결과 대학에서 수석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력장애 예술가인 허욱 씨의 경우는 어떨까?
선천적 장애인가요? 아니요. 생후 1년이 안 되어 맞은 뇌막염 주사의 부작용으로 청신경이 녹아 청력을 잃었어요.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잘 알아듣는데 어떤 훈련과정이 있었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말하기 연습을 반복해서 시켰지요. 말할 때마다 생기는 목젖의 울림을 손으로 만져보며 느끼고 또 말할 때의 입 모양을 보고 외우는 스파르타식 훈련이었는데, 점차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더군요.
예술가로 활동하게 된 것이 청각장애와 관련이 있을까요? 미술을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지기를 좋아하고 또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죠.
장애가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요? 들리지 않으니 시각이 더 발달해 뛰어난 안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작품에 대해 사색할 여건도 많이 조성되었죠.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일상생활이 아닌 예술 활동에 있어서는 적어도 장애가 많은 도움이 된 듯합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어느 여성 장애인의 친구가 말하는 후천성 여성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여성 장애인인 제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스무 살이 넘어 어느 날 심하게 넘어져 척수를 다치게 되었지요. 하반신이 마비되고 양팔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지만 후천적인 장애인데다 성격도 외향적이니 장애를 가지게 된 자신의 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여성성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종종 말했죠. 어느 날, 그 친구가 생리를 하자 그를 돌봐주던 엄마가 “너 불편한데 생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여성 장애인의 보호자 중에는 생리를 안 하게 하려고 의사에게 부탁해서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이들도 있대요. 그 친구는 자신도 여자인데, 여자 대우를 해주지 않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서운했대요. “나도 결혼하고 싶은데…. 나도 아이 낳고 싶은데…”라며 서러워하더군요. 그 친구는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어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장애인의 성性’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을 때 기꺼이 모델이 되어 누드 포스터를 찍기도 했고요. 그러던 친구가 얼마 전 세상을 등졌습니다. 마당에서 휠체어를 탄 채 숨져 있었다더군요. 하고 싶은 일에 비해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현실이 속에서 병이 되었는지, 갑자기 떠난 친구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장애인이기보다 진정한 여성이었던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장애인 문화단체 ‘문화지대, 장애인에 나설 때’의 박지주 대표가 최근 별세한 한 여성 장애인에 대해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 편의 영화로 살펴보는 정신장애에 대한 진실과 오해 영화 속 정신 장애인들은 매우 특별한 행동을 보인다. 정신장애는 워낙 다양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는 전문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나 몇몇 영화들은 정신장애 증상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잘 나가던 극작가 벤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지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정사를 나눈 뒤 다음날 아침 편안히 잠들 듯이 죽는다. 하지만 실제 알코올 중독자들은 그렇게 평온하게 죽음을 맞지는 않는다. 대부분 치사량의 술을 마셔 깊이 잠든 채로 호흡정지가 되어 죽거나 아니면 갑자기 술을 중단한 뒤 2~3일이 지나면서 몸이 떨리고 환상을 보며, 호흡이 불규칙해면서 흥분하게 되는 금단 섬망 상태에서 사망한다. 영화에서 벤은 마지막 밤 과량의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금단 섬망 증상도 보이지 않은 채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다.
<카드로 만든 집>에 나오는 여섯 살짜리 주인공 샐리는 아버지가 죽은 뒤 자폐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자폐증은 어떤 정신적 충격으로 생겨나는 병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의 소인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며 대부분 2세 이전에 자폐증으로 진단된다. 또한 샐리는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천재적인 상상에 빠져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자폐증 아동들은 대부분 정신지체로 진단될 정도로 지능이 낮다.
<장화, 홍련>은 수연(임수정)과 수미(문근영)를 둘러싼 집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그리다가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 그중 하나가 수미는 이미 죽고 없으며 수연이 본 것은 환상이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아버지가 수연에게 “수미는 죽었잖아”라고 말하면서 밝혀지며 이로 인해 수연의 망상과 환각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실제 환각과 망상은 뇌신경세포 기능의 이상이 원인이 되므로 주변의 설득으로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치료약에 의해서만 조절이 가능하며, 종종 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곤 한다.
조정 우대 정책 아래 활발한 사회 활동 펼친 조선시대 장애인 조선시대에는 ‘장애인’ 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장애인은 ‘병자’와 다 를 바가 없었고 기록상으로는 ‘폐질자’ ‘간질자’ 등으로 불렀다.‘간질’을 앓는 사람이 많아 이들이 정신장애인에 속했고 질병에 따른 나병, 두창, 중풍 등도 장애인으로 구분되었다. 몸이 불편하여 자립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나라에서 구휼해주는 것이 원칙이라는 내용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정도가 아니었고 많은 장애인들이 스스로 생계 대책을 마련하고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장애인(소경)은 다수가 점복가(주술가)로 활동하여 심지어 왕실의 대소사에서도 맹인 점복가의 말을 신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그리 심하지 않고 한쪽 눈을 실명한 이들 중에는 과거를 봐서 벼슬길에 나선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체 장애인들은 다양한 일에 종사했다. 조선 후기, 두 다리가 없는 이가 안경을 갈아주기도 했고 세종대왕 시대에는 곱사등이로 불리던 등이 굽었던 문경공 허조라는 사람이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고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우대 정책을 펼쳤기에 오늘날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정작 장애인이 ‘무능’ ‘무가치’의 존재로 전락한 것은 근대에 들어 사회가 경제력과 효율성만 따지게 된 이후라고 .
숫자로 보는 우리나라의 장애 현황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장애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장애인 수는 2백14만9천 명이다. 2000년도에 비해 69만9천2백 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인구는 1백28만6천 명 증가했으니, 총인구 증가 수치의 50%에 육박하는 수치다.
1, 2, 3 화가 허욱 씨와 그의 작품 '환경도시공간 프로젝트구상―모 형', '이루기―이루어지 기'.
4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한 장애인이 생전에 찍었던 누드 사진.
5 질병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나 나중에는 한쪽 다리를 잃은 조선시대의 정승 윤지완의 글씨.
6 맹인 등의 처우 개선에 힘썼던 박연 부부의 초상화.
7 김준수의 풍속도 '소경이 문수를 외치는 모양' . 문수問數는 '점보는 것'을 말한다.
선천적 장애인가요? 아니요. 생후 1년이 안 되어 맞은 뇌막염 주사의 부작용으로 청신경이 녹아 청력을 잃었어요.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잘 알아듣는데 어떤 훈련과정이 있었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말하기 연습을 반복해서 시켰지요. 말할 때마다 생기는 목젖의 울림을 손으로 만져보며 느끼고 또 말할 때의 입 모양을 보고 외우는 스파르타식 훈련이었는데, 점차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더군요.
예술가로 활동하게 된 것이 청각장애와 관련이 있을까요? 미술을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지기를 좋아하고 또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죠.
장애가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요? 들리지 않으니 시각이 더 발달해 뛰어난 안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작품에 대해 사색할 여건도 많이 조성되었죠.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일상생활이 아닌 예술 활동에 있어서는 적어도 장애가 많은 도움이 된 듯합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어느 여성 장애인의 친구가 말하는 후천성 여성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여성 장애인인 제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스무 살이 넘어 어느 날 심하게 넘어져 척수를 다치게 되었지요. 하반신이 마비되고 양팔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지만 후천적인 장애인데다 성격도 외향적이니 장애를 가지게 된 자신의 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여성성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종종 말했죠. 어느 날, 그 친구가 생리를 하자 그를 돌봐주던 엄마가 “너 불편한데 생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여성 장애인의 보호자 중에는 생리를 안 하게 하려고 의사에게 부탁해서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이들도 있대요. 그 친구는 자신도 여자인데, 여자 대우를 해주지 않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서운했대요. “나도 결혼하고 싶은데…. 나도 아이 낳고 싶은데…”라며 서러워하더군요. 그 친구는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어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장애인의 성性’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을 때 기꺼이 모델이 되어 누드 포스터를 찍기도 했고요. 그러던 친구가 얼마 전 세상을 등졌습니다. 마당에서 휠체어를 탄 채 숨져 있었다더군요. 하고 싶은 일에 비해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현실이 속에서 병이 되었는지, 갑자기 떠난 친구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장애인이기보다 진정한 여성이었던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장애인 문화단체 ‘문화지대, 장애인에 나설 때’의 박지주 대표가 최근 별세한 한 여성 장애인에 대해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 편의 영화로 살펴보는 정신장애에 대한 진실과 오해 영화 속 정신 장애인들은 매우 특별한 행동을 보인다. 정신장애는 워낙 다양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는 전문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나 몇몇 영화들은 정신장애 증상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잘 나가던 극작가 벤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지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정사를 나눈 뒤 다음날 아침 편안히 잠들 듯이 죽는다. 하지만 실제 알코올 중독자들은 그렇게 평온하게 죽음을 맞지는 않는다. 대부분 치사량의 술을 마셔 깊이 잠든 채로 호흡정지가 되어 죽거나 아니면 갑자기 술을 중단한 뒤 2~3일이 지나면서 몸이 떨리고 환상을 보며, 호흡이 불규칙해면서 흥분하게 되는 금단 섬망 상태에서 사망한다. 영화에서 벤은 마지막 밤 과량의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금단 섬망 증상도 보이지 않은 채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다.
<카드로 만든 집>에 나오는 여섯 살짜리 주인공 샐리는 아버지가 죽은 뒤 자폐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자폐증은 어떤 정신적 충격으로 생겨나는 병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의 소인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며 대부분 2세 이전에 자폐증으로 진단된다. 또한 샐리는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천재적인 상상에 빠져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자폐증 아동들은 대부분 정신지체로 진단될 정도로 지능이 낮다.
<장화, 홍련>은 수연(임수정)과 수미(문근영)를 둘러싼 집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그리다가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 그중 하나가 수미는 이미 죽고 없으며 수연이 본 것은 환상이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아버지가 수연에게 “수미는 죽었잖아”라고 말하면서 밝혀지며 이로 인해 수연의 망상과 환각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실제 환각과 망상은 뇌신경세포 기능의 이상이 원인이 되므로 주변의 설득으로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치료약에 의해서만 조절이 가능하며, 종종 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곤 한다.
조정 우대 정책 아래 활발한 사회 활동 펼친 조선시대 장애인 조선시대에는 ‘장애인’ 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장애인은 ‘병자’와 다 를 바가 없었고 기록상으로는 ‘폐질자’ ‘간질자’ 등으로 불렀다.‘간질’을 앓는 사람이 많아 이들이 정신장애인에 속했고 질병에 따른 나병, 두창, 중풍 등도 장애인으로 구분되었다. 몸이 불편하여 자립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나라에서 구휼해주는 것이 원칙이라는 내용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정도가 아니었고 많은 장애인들이 스스로 생계 대책을 마련하고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장애인(소경)은 다수가 점복가(주술가)로 활동하여 심지어 왕실의 대소사에서도 맹인 점복가의 말을 신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그리 심하지 않고 한쪽 눈을 실명한 이들 중에는 과거를 봐서 벼슬길에 나선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체 장애인들은 다양한 일에 종사했다. 조선 후기, 두 다리가 없는 이가 안경을 갈아주기도 했고 세종대왕 시대에는 곱사등이로 불리던 등이 굽었던 문경공 허조라는 사람이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고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우대 정책을 펼쳤기에 오늘날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정작 장애인이 ‘무능’ ‘무가치’의 존재로 전락한 것은 근대에 들어 사회가 경제력과 효율성만 따지게 된 이후라고 .
숫자로 보는 우리나라의 장애 현황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장애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장애인 수는 2백14만9천 명이다. 2000년도에 비해 69만9천2백 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인구는 1백28만6천 명 증가했으니, 총인구 증가 수치의 50%에 육박하는 수치다.
1, 2, 3 화가 허욱 씨와 그의 작품 '환경도시공간 프로젝트구상―모 형', '이루기―이루어지 기'.
4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한 장애인이 생전에 찍었던 누드 사진.
5 질병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나 나중에는 한쪽 다리를 잃은 조선시대의 정승 윤지완의 글씨.
6 맹인 등의 처우 개선에 힘썼던 박연 부부의 초상화.
7 김준수의 풍속도 '소경이 문수를 외치는 모양' . 문수問數는 '점보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