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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꿈꾸는 생물학도 안경민씨 나의 손은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
(주)코어메드의 이미숙 대표와 그의 딸 안경민 씨가 한 통의 애잔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경민 씨는 ‘선천적 단지증’이라는 손가락 기형 을 갖고 태어났다. 딸이 의사를 꿈꾸는 어엿한 대학생이 될 때까지, 두 모녀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할 수는 없었으리라. 지면을 빌려, 애잔한 심상을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To.엄마
경민이에요. 새삼 편지를 쓰려니 어색한데, 그래도 엄마는 한국에, 저는 미국에 떨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펜을 잡는 구실을 만들어주네요. 사실 편지를 쓰는 것보다 더 새삼스러운 것은 지난날을 회상하는 일이겠죠. 불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온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과거였으니까요. 제가 태어나던 때 엄마가 겪었을 충격을 생각할 때면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스산해지곤 해요. 모두들 ‘예쁜 공주님’이라고만 알려줄 뿐 “건강한가요?”라는 엄마의 질문에는 슬쩍 대답을 피했다죠? 작은 손을 보고 놀란 아빠는 어떻게 엄마에게 알려줘야 할 것인지 고민하며 오랜 시간 밖을 배회하셨다니 그 갑갑한 심정이 어땠을지…. 손가락 전문 정형외과 의사인 아빠,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왔던 엄마. 이렇듯 어떤 방식으로든 장애와 관계를 맺고 계시던 두 분 사이에서 왼손의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이 모두 한 마디 길이도 되지 않는 손가락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아이러니였겠죠.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하느님이 ‘소명’을 다하라는 뜻으로 저를 주셨다고 믿으셨다죠? 항상 저에게도 “너의 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장애에 짜증나거나 화가 난 적이 거의 없었어요. 내겐 소중하고 귀한 선물인데 친구들이 ‘손 귀신’이라며 놀려대서 속이 상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요. 그때마다 저는 제가 놀림을 당하는 것보다, 제가 장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놀림감이 되어 부모님이 가슴 아파한다는 사실에 더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놀림을 당해도 웬만하면 혼자 속으로 삭이곤 했어요. 혼자 울고 견디고 힘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어도 엄마 아빠 앞에서 장애 문제로 눈물을 보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저, 장하죠?

엄마, 아직도 기억해요. 아빠와 함께 길을 걸을 때, 아빠는 습관적으로 제 왼손을 만지작거리셨는데 그때마다 제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흘렀어요. 저는 아빠의 그런 행동이 왠지 좋더라고요. 또 아빠는 종종 저를 수술실로 불러 수지절단 수술 장면을 보여주셨잖아요. 좀 징그럽긴 했지만, 그 장면을 보며 저는 ‘나처럼 선천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후천적으로 손가락 장애가 생길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덕분에 장애를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었죠. 그리고 엄마가 제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섯 손가락밖에 없는 다섯 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려는 곳이 없어 저를 데리고 사방을 헤매셨던 엄마. 피아노를 치게 하여 저의 신체적 약점을 강점으로 바꿈으로써 오히려 자신감과 자긍심을 제게 심어주셨지요. 엄마 아빠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일을 하게 하셨잖아요. 하지만 제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보다 더 심하게 혼내셨다는 걸 알아요. 무조건적인 도움보다 항상 자립할 것을 강조하며 혼낼 때는 혼내시고 격려할 때는 확실히 믿고 격려해주신 부모님이 제 마음을 매우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시련과 방황을 수없이 했었지만 이제는 장애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득이라는 성숙한 생각도 가끔 해요. 제가 그런 경험을 안 했더라면 아마 일에 대한 비전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없는 자만한 사람이 되었을지 몰라요. 엄마, 하영이는 잘 있나요? 저의 장애가 신의 선물이었다면 하영이는 부모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에요. 엄마, 저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만 이미 살아온 짧은 인생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있어요. 그 감사의 대상 중 우리 가족은 언제나 0순위라는 것, 아시죠? 언제나 그 고마운 마음 품고 앞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자랑스러운 큰딸이 될게요. 엄마, 아빠 그리고 하영아,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To.경민아
몇 년 전 엄마는 네가 쓴 시 한 편에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었어. 친한 언니를 따라 한 번 접어본 종이학. 너의 짧은 손으로 만들어진 종이학은 꾸깃꾸깃한 종이일 뿐이었다지만 언니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접고 또 접었던 종이학. 고고하게 날개를 펴는 학 한 마리가 탄생했을 때 그것을 ‘마술’이라 말하며 너의 인생을 마술에 비교했던 글.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봤을 때 구겨진 종이 같아도 괜찮아. 어차피 마술을 하는 중이니까’라고 말하는 너의 의연함에 엄마가 가졌던 너에 대한 걱정이 봄날 눈 녹듯 사라짐을 느꼈단다. 아버지는 아직도 네가 접은 종이학을 모아두고 있어. 그 마음 알지?

어느 날 너는 이렇게 물었지. “엄마, 내 손이 왜 이렇게 작아요?” 세 살 어린아이가 갑자기 내뱉은 질문에 엄마는 당황했어.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너의 장애에 대해 설명할 말을 생각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야. 엄마는 얼떨결에 “그것은 하느님이 너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란다” 라고 말해버렸지. 즉흥적이었지만 그렇게 대답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어. 이 말은 틀림없었고 너 또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가락 연장 수술의 기회가 왔을 때도 엄마 아빠는 숙고 끝에 너를 수술시키지 않았지. 너에게서 장애를 사라지게 하는 일은 항상 말해왔던 ‘선물’이라는 존재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너 역시 다섯 살 때부터 작은 손으로 쳐왔던 피아노를 새롭게 길어진 손가락으로 다시 연습해야 하는 것이 싫다며 거절했었지. 이미 장애는 너의 일부분임을 깨달은 후 엄마는 너를 더 잘 키울 생각만 하기로 했단다.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게 한 것은 너를 강하게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야. 왼손을 내려찍듯 건반을 쳐야 하는 너의 손. 언제나 “어려운 피아노를 치면 이 세상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엄마는 고통을 참아내는 네가 안쓰럽기만 했어. 너의 반주에 노래를 같이 부르며 우리는 행복해했지만 너의 손에 박인 굳은살을 보면 지금도 엄마의 마음은 아프단다. 그래도 네가 훌륭히 연주하여 음반을 녹음하고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올해의 음악상’을 수상하여 학교 음악의 전당에 너의 이름 ‘Frances KyungMin Ahn’이 새겨졌을 때, 그때 엄마가 느낀 기쁨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단다.

경민아,미국 생활 많이 외롭지? 심리적으로 가장 예민할 시기에 영어도 잘 못하는 너를 홀로 이국땅으로 보낸 엄마를 원망한 적은 없는지…. 네가 자라는 동안 남보다 짧은 손가락이 엄마의 부끄러움이 된 적은 없지만 밖에서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 싫다며 서러운 울음을 우는 너를 보며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단다. 또 가족과 너 자신은 당당한데도, 사회적 편견에 상처받는 모습은 부모로서 바라보기가 매우 힘들었단다. 의사를 꿈꾸는 너에게 사회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은 마음에 머나먼 타국 땅으로 너를 보냈지만, 기숙사 생활에 혼자 적응해야 했던 네가 그 누구보다 꿋꿋한 모습으로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에 엄마는 더 이상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경민아, 엄마 아빠는 배움에는 쓰임이 있음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란다. 그래서 너도 기꺼이 사회를 위해 배움을 쓸 줄 아는 가슴 따뜻한 전문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딸은 꼭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너도 너 스스로를 믿지? 아빠와 하영이도 안부를 전하는구나. 모쪼록 건강 유지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며 생활하길 바란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감사하며 살자, 알았지?

이미숙 사장의 딸 안경민 씨는 미국 브랜다이즈 대학교Brandeise University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현재 석사과정에서 분자세포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경민 씨의 꿈은 의사입니다. 왼쪽 손가락 네 개가 짧은 장애를 딛고 피아노를 연주해서 세상에 쇼팽의 환상 교향곡을 들려주었듯, 그는 의사가 되어 많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연주해줄 것입니다.

조유리(프리랜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