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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림의 쫄깃한 여행 예술 유전자는 타고났지, 보고 사는 삶이 다 예술이지
길 위의 조각, 광장의 분수, 건물에 새긴 오래된 기호, 건축물을 장식한 문양 등 이탈리아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넘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작가 한호림 씨가 지난달 라이프스타일 편에 이어 남부 이탈리아를 구석구석 걸으며 발견한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그냥 바라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이탈리아 문화 유적의 속살!


성 요한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아말피의 성당, 웅장하고 디자인이 멋진데, 흑백 문양은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의 얼룩말 무늬에서 따온 것. 이런 디자인은 서양 문명 전반에 깔려 있다.

저 친구는 어디 여행에서 이런 걸 건졌노라고 사진을 주르르 보여주는데 ‘거기 갔으면서도 난 고걸 놓쳤단 말인가!’ 할 때는 마음에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일 수 있다는 거 나도 안다. 그래도 내가 낚았어야 했는데···. 대신 내가 건져온 걸 저 친구는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알지도 못하고 그냥 왔을 땐 애써 뭘 놓쳤는지를 가르쳐주는 거다. 그땐 속으론 즐겁거든. 그런 나는 로마 같은 보물 창고에 가면 보물찾기에 마음이 조급해져 편하질 못해. “열려라, 참깨!” 하고 보물 동굴에 몰래 들어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욕심쟁이 형이 ‘저걸, 어떻게 몽땅 가져갈까?’ 하고 고민(?)한 그런 게염 때문이다. 그래, 이번엔 지난번에도 놓친 미켈란젤로의 걸작, 모세상만은 기필코 건져오겠다며 아주 작정하고 갔것다.

‘모세’를 건지다 기회란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 나라도 더 월척을 건지려고 마음은 조급해지지. 지도를 보자. 콜로세움에서 북쪽으로 난 길(비아 안니발리Via Annibali)로 350m쯤 가면 경사진 길이 나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100m쯤 간다고 했것다. 이쯤 되니 이제 모세 건지기(마침 ‘모세’란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는 시간 문제라는 감이 왔다. 그런데도 그 모세상이 있다는 빈콜리 성당이 가까워질수록 되레 마음은 더 조급해져 사뭇 종종걸음을 치게 되데. 게다가 막판엔 언덕배기(에스퀴리노 언덕)도 있어 허위허위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게 만드네. 오, 저 건물? 저기에 ‘그놈’의 모세가 있단 말이지. 근데 성당처럼 안 생겼잖아? 드디어 아치로 된 입구를 들어섰는데! 어라? 열주列柱 로비에 관광객이 와글와글. 이런! 낮잠(시에스타siesta) 시간인지 본당 문이 닫혀 있다네. 오후 3시에 연다나? 끝까지 애태우게 만드는구먼. 먼저 대기하고 있는 관광객 사이에 끼어 있자니 가슴이 다 볼볼 떨린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아직 아냐. 말이 그렇지 또 언제 로마에 와볼까.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은데. 뭐라도 둘러보느라고 한눈파는 사이에 3시가 됐나 보데. 풀려난 경주마들처럼 관광객이 와르르 몰려 들어가는 거라.

에구, 나도 얼른 그 무리에 꼈지! 가슴은 두근두근. “오, 저기!” 과연 오랜 세월 보고 싶어 한 ‘분노한 모세’가 큰 눈망울에 우람한 체격,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다음, 1등 모세만 보면 되나? 2등 협시挾侍 조각들도 봐야지. 전부터 사진으로 익히 본것이지만 괜한 시비 좀 걸어보자. 미켈란젤로면 다야? 당시 모세 나이가 81세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몸짱’일 수가 있느냐 말이야. 저 팔뚝의 알통 좀 봐.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렇게 조각했다는데 내가 어쩔 건가? 그건 내가 꼬리 내리기로 하고. 분노한 모세라구? 모세가 뿔났다구? 왜? 모세가 뿔났다! 못돼먹은 이스라엘 민족들,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중인데도, 사사건건 불평이고 트집이었다. 게다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가 있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짓은 뭐냐? 즈네들을 인도한 여호와 유일신이 제일 질색하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고 춤을 추며 놀자판을 벌인 거다. 이 망측한 꼴을 보고 불같이 분노한 모세가 제 성질에 못 이겨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집어 던지려고 몸을 ‘움찔’ 일으키려는 순간을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조각으로 포착, 영원히 정지시켜놓은 거다. 자, 나무를 봤으니 이번엔 가지를 보자. 그 모세의 이마를 잘 보셨지? 거기 아주 귀엽게(?) 생긴 뿔이 두 개나 있지? 웬 뿔? 분노한 모세라더니 정말 뿔났나?

기원전 1440년경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두 장을 양팔에 끼고 40일 만에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 얼굴이 “눈부시게 빛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 ‘하느님의 빛’이라는 말이 고대 히브리어로 ‘카란qaran(광채)’이라는데 한편 ‘뿔’이란 뜻의 ‘케렌qaran’과 발음이 유사하다. 즉 이 두 단어는 어원이 서로 동일하거나 비슷하다. 고대 시절 뿔은 권위와 힘을 상징했다. 그래서 고대 중동의 왕들은 뿔이 달린 왕관을 쓰기도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뿔은 하느님이 특정인에게 주는 권 세를 의미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빛, 권위의 뿔’이라는 단어 ‘qaran’을 당시 교부敎父들과 미켈란젤로는 ‘뿔’로 해석해 모세에게 뿔을 단 모양이다. 그래서 다른 모세의 어떤 조각을 보면 그 조각가가 성경의 ‘qaran’을 빛으로 해석해 뿔 대신 빛살 무늬로 묘사한 빛이 달려 있다. 참, 나는 돌아다니다 보니 뿔난 모세를 딴 데서 또 발견했다는 거. 어디서?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대성당) 남쪽 벽에서. 거기 가시게 되거든 잊지말고 만나보시길!

1 모세와 협시 군상. 대개 모세만 클로즈업해 그것만 주시하지. 전체 구성을 보자.
2 몸짱 모세의 이마엔 위엄의 뿔, 저 노인네의 강철 같은 팔뚝 좀 보시라구. 미켈란젤로 스타일이야.
3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요, 요염한 포즈 좀 보시라구. 남편이 있음에도 추남에 불구자에 직업이 지저분한 대장장이 신이라고 자기 침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고는 잘생긴 신들과 인간 미소년들과 온갖 불륜을 밥 먹듯 저질렀다. 

1 나폴리 국립박물관. 지금 보수 중이지만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 겉으로 봐서는 이곳이 그런 절세의 보물들로 차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하지. 
2 파르네제의 황소.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대리석 조각. 어떻게 이런 석조가 가능했을까? 
3 가니메데와 독수리. 거인족과 스타워즈를 벌여 우주를 통일하고 나니 뭐, 할 일이 있나? 그래서 제우스는 여신, 인간 여성, 여색, 남색을 가리지 않고 성을 즐기고 씨를 뿌렸다. 이 조각 작품은 트로이 왕자요 미소년인 가니메데를 납치해온 장면이다. 그럼 이 작품 속에 제우스는 어디 있나? 소년 옆의 독수리가 바로 제우스가 둔갑한 것. 독수리는 제우스의 심벌이기도 하고.
4 헤라클레스. 대단히 인간적인 면을 보인다. 술 마시면 필름이 자주 끊겼고 그러면 성질 내고 싸움질하고 살인하고 아내도 죽이고, 그리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자기가 때려잡은 사자의 대가리가 달린 망토를 쓰고 주변을 겁주기 좋아하던 반신반인半神半人.
5 나폴리 국립박물관, 에로틱 폼페이실의 그림.
6 겉으로 봐선 성당 같지 않은 로마 빈콜리 성당. 이 안에 그 유명한 ‘분노한 모세’가 있다니….

나폴리에서 또 게염을 부렸도다 ‘나폴리라네~’라는 이탈리아 노래가 아주 환상적으로 떠오르는 도시 나폴리. 하지만 거기라고 인생이 노래 가사처럼 환상일까? 남의 떡이 커 보여서 그렇지 결국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거기에 진짜 환상이 있었다. 괜히 내가 무슨 박물관이나 돌아다니는 척하는, 고상한 체하는 것같이 보일까 봐 그렇긴한데... 아냐, 한국인 관광객들이 나폴리까지 와서 이 환상이 실상으로 있는 곳을 놓치고들 가데.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다. 뭔데? 시내 중앙에 있는 국립고고학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 익히 들어왔지, 이 박물관의 명성을. 그러니 들어서고 있으면서도 가슴은 마냥 궁궁궁. 내가 나를 알지. 이 점 나는 평생 어른이 못 되는 피터팬이긴 해. 아니나 달라, 들어서자마자 그리스·로마 조각들의 도열이시다. 먼저 투구를 쓰고 수십 마리 징글맞은 뱀으로 엮은 목걸이를 걸고 방패와 창을 든 미모가 빼어난 여신상과 눈을 맞췄다. 저 여자라면 내가 좀 알거든. 그리스의 전쟁신 아테나 여신! 그녀가 든 저 방패는 아버지 제우스가 준, 이지스 Aegis라고 하는 무적 방패다. 그래서 무적 방어 시스템을 갖춘 군함을 이지스 함艦이라고 하지. 여신치고 ‘얼짱’ 아닌 여신 없지만 그녀는 미인 대회에서 아프로디테(로마식 이름으로 베누스Venus)와 겨룰 만큼 콧대 높은 미모를 지닌 지혜와 공예의 신에다, 국가 차원에서 절대 중요했 기에 처녀지만 출산과 다산의 여신이라는 보직도 갖고 있다. 그녀가 고대 로마신화로 들어와서 바뀐 이름은 미네르바. 유럽의 신데렐라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콩쥐가 됐듯이.

한 성격 하는 신화 속 신들 몇 가지만 알아도 아는 척 (!)할 수가 있다. 우람한 근육질에 몽둥이를 들고 사자 대가리가 달린 망토를 걸쳤으면 무조건 헤라클레스고, 리라를 들고 있는 데다 월계수관을 쓰고 면도까지 말끔하게 한 저건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다. 참, 그 아폴론(로마신화의 아폴로)은 신궁이라 큰 활을 들고 있기도 하지. 뱀 두 마리가 엉킨 홀笏(셉터scepter 혹은 카두케우스caduceus)을 들었으며, 모자와 발에 조그만 날개가 달려 있으면 그건 전령신 헤르메스(로마신화의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저건 화관에 부케를 들고 있으니 꽃의 여신 플로라고. 플라워flower라는 단어도, 미국의 주 플로리다란 이름도 저 여신에게서 왔지. ‘요건 정형적인 요염한 포즈로 봐서 아프로디테(비너스)겠군.’ 명패를 확인하니 맞지! 이럴 때 남몰래 법열 같은 것에 오싹해지지(유치한 법열도 있다). 뱀이 감긴 굵은 지팡이를 든 사나이, 저거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고. 저렇게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곡식 자루 같은 걸 들고 있는 중늙은이들은 하신河神이야. 대개 한 쌍으로 있지. 신이라고 하지만 하급 신. ‘와~’ 저 남녀 네명이 둘러싸고 난리인 황소 조각! 규모가 엄청난 대리석 조각이다. 초면인데? ‘파르네제의 황소’로 세계에서 제일 큰 석조란다. 정말 굉장하군, 굉장해! 미대 가느라고, 또 미대 가서도 데생 시간에 석고상으로 하도 많은 시간을 들여 눈싸움을 했기에 그냥 절로 아는 카라칼라 오리지널 조각도 거기서 만났다. ‘카라칼라~’ 하면 대중목욕탕의 원조지. 3세기 초 로마 황제로 암살당했다네. 하긴 당시 권력 싸움에 로마 황제들 중 제 명에 죽은 자가 몇이나 됐나? 오! 거기서 살인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맞붙는 모자이크 전쟁도도 만났네. 쌍방의 창검이 번쩍 이는 전쟁도. 나는 단기單騎에 무기라야 카메라 두 ‘자루’가 전부인데 이렇게 위엄에 찬 그리스·로마의 조각 작품들이 인해전술로 나오니 그저 가슴만 궁궁궁. ‘결국 오늘도 항복이야···.’

진짜 알짜배기 폼페이 벽화를 보셨는지? 나폴리 만灣 건너편 소렌토에서 관광 상품으로 ‘에로틱 폼페이’라고 하는 포르노 수준의 달력을 팔았다. ‘저 망측한 걸 어떻게 벽에 걸고 보누?’ 그건 그렇고, 나폴리 동쪽 근교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졸지에 화산재에 묻혀버린 그 폼페이 유적을 돌아본 한국 관광객이 좀 많은가. 거기 가면 으레 가이드가 프레스코로 그린 창녀의 방 벽화를 가리킨다. 근데 그게··· 기왕 보는 마당에 희미해 좀 안타깝지(?) 않던가? 그런데 위에 이야기한 그 달력에 실린 벽화는 아주 선명할뿐더러 다양하고 요상한 포즈들을 보여주데. 그래서 ‘왜 폼페이 유적에선 이런 걸 볼 수 없었을까? 나는 놓쳤더라도 이런 걸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했다. 아, 알았어. 그게 이렇게 된 거더군. 바로 그 달력에 실려 있는 알 짜배기 춘화들은 폼페이 유적엔 없고 몽땅 이 박물관의 몇칸 ‘에로틱 폼페이실’로 옮겨져 집결해 있는 거였다. 요걸 오늘 알았다. 세상에! 이런 포르노 벽화들이 있다니. 나는 봤으니 하는 말인데, 최소한 내 나이 이하는(?) 관람을 제한해야 하겠던데? ‘넘 노골적이야···.’ 당시 폼페이는 무역으로 주머니가 두둑한 국제 뱃놈들로 우글거렸다. 오랜 항해로 금욕에 짓눌려 눈이 뒤집힌 그 뱃놈들에게 화급한(!) 게 뭐였겠나? 말하면 잔소리. 그런 무진장한 수 요에 맞추어 폼페이에는 다양한 인종,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색깔의 창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단다. 아, 근데 문제는 말이 통해야지 말이. 야, 이거, 더 묘사하다간 이 <행복이가득한집> 잡지 품위에 문제가 생기겠기에 여기서 스톱해야겠도다. 아무튼 말이 안 통하면 원하는 스타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만 하라고 온갖 포즈의 벽화를 정말 생생하게 그려 놓은 것. 그뿐이랴? 그 옆 전시실에는 사실적 조각도 모아놨다. 수간獸姦의 심벌인 목양牧羊의 신, 판Pan이 염소를 겁탈하는 생생한 대리석 조각이며···. 많기도 하다. 아이구, 여기서 진짜 스톱이다!

아말피의 성 요한이 주보 성인인 성당 내부.

1 아말피 성당 앞 광장의 성 요한 조상造像이 있는 분수(부분). 성 요한은 X자형 십자가를 지고 있고 그 발아래에는 케루빔(아기 천사), 하신河神, 인어 등의 협시 조상들이 둘러싸고 있다. 맨 앞에 있는 것이 인어상. 
2 말을 탄 인어. 원래 해성海性인 말을 타기 좋게 쌍꼬리로 된 인어상. 캐나다 토론토 한 아파트 앞의 분수 조각이다.

시골 마을 성당들? 미켈란젤로 수준! 이탈리아 남단에서 카페리로 25분, 빤히 보이는 시칠리아로 건너가 입구 메시나 Messina에 내렸을 때 거기서 본 분수부터 그게 아니었다. 가운데에는 로마의 바다의 신 넵투누스Neptunus(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가 그의 캐릭터인 삼지창을 들고 서 있고, 그 밑에는 스타벅스 커피의 상징이기도 한 쌍꼬리 인어와 사방에 해마海馬들이 둘러싼 군群 조각 구성이다. 아니, 쌍꼬리 인어라니? 잠깐! 말은 육상동물이지만 신화에서는 바닷과科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걸 잘 보시라구. 천군만마가 몰려오는 것 같지 않던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말타기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래서 인어들도 말을 타는데 쌍꼬리라야 말을 타기가 좋지 않겠느냐구. 꼬리가 하나면 어떻게 말을 타?

해마(히퍼캠퍼스hippocampus)는 진짜 말과 닮았으나 말발굽이 지느러미 비슷하고, 궁둥이 부분은 바다 괴물의 꼬리 모양이다. 그리고 분수 모서리마다 이런 해물군海物群 조각 구성에 감초인 돌고래들로 조각되어 있데. 앞이마가 유난히 툭 불거져 나오게 정형한 돌고래는 포세이돈의 전령이다. 핵 항공모함이 한 번 뜨면 이지스 구축함 등 각종 함정이 호위하고 뜨는 격으로 모두 포세이돈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거다. 이 메시나에 사는 사람들로서야 태어나면서부터 보아온 것이니까 그저 있는가 보다 하겠지만 이 분수가 16세기 때의 것이란다.

분수 얘기라면 하나만 더 하자. 소렌토가 있는 반도의 남쪽 해안, 세계적 절경 해안에 들어가는 아말피Amalfi. 거기 광장 중앙의 분수 얘기다. 그 앞의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한 잔 시키고 올리브를 씹으면서 분수를 바라봤다. 그 앞의 성당이 성 요한을 주보 성인으로 모신 성당이다. 그래서 분수의 중앙에 서 있는 이가 성 요한인데 그의 십자가는 X자 꼴이라 커다란 X자 꼴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 발아래에는 협시挾侍와 구성상 감초격인 케루빔cherubim(살이 토실토실 찐 어린 천사) 조각들이 귀여운데 어라? 이 친구들 보게! 소녀 이미지로 조각된 인어 젖꼭지에서 물이 나오게 해놨네? 유럽의 분수들에서 나오는 물은 그냥 마셔도 되는 거 아시지? ‘참, 사람들하곤···. 요즘 그런 걸 만들면 여성 단체에서 그냥 둬?’

소렌토의 밤 시장.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지금 경로당으로 쓰고 있는 14세기 건축물의 입구 아치.

소렌토의 경로당. 화려한 천장과 벽, 어디까지가 진짜 기둥이고 아치인지, 어디까지가 눈속임 벽화(트롱프뢰유trompe-l’oeil)인지 헷갈린다. 동네 영감들이 한가하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동네 예술품은 이탈리아인의 일상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 이야기는 소소한 것도 이렇다는 의미로 썼다.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일테면 남부 시골 마을 성당들의 조형 예술은 또 어떤가? 들어가 보면 정말 기죽지. 어느 한구석도 빈자리가 없이 기가 막힌 조각과 그림으로 박아놨다. 저걸 언제 누가 기획하고, 누가 설계하고, 누가 쪼아 만들어 저 자리에 붙였을꼬? 이름 모를 작가들의 것이지만, 그거 사실 수준에서는 미켈란젤로가 따로 없데. 만약 눈길도 안 주던 그 시골 그 성당 그 조각을 뚝 떼어다 미켈란젤로의 것이라고 해보라구. 갑자기 난리가 나지. “역시!” 소리가 진동하지. 이탈리아 사람들, 이런 신토 불이 유전자로 태어나고 이런 예술 속에서 먹고 자고 자라니 그 눈높이가 어디쯤이겠나? 웬만큼 해가지고서야 어디, ‘나도 한번 예술로 먹고살아볼까’ 하는 맘이나 먹겠나 말이야. 이러니 이탈리아 명품 디자인이 나오는 거지.여기서 하나 더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즐비한 동네 예술품들을 문화재라 해 무슨 보호 팻말 붙이고 특별히 보호 시설을 해놓고 그러지도 않는다는 것. 무슨 놈의 산성비가 석회석으로 된 조상造像을 녹이네 어쩌네 하며 유리로 씌워 시민들에게서 격리시키고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 않더란 말이지. 게다가 유럽은 그 못된 풍조, 스프레이 낙서의 지옥이 아니던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내려가는 철도 양편이 단 한 뼘의 빈 곳도 없이 몽땅 스프레이 낙서 아니던가? 그러니 어느 못된 놈이 스프레이 따위로 훼손시킬 수도 있겠고 또 어느 미친놈이 약 먹고 회까닥해 어느 날 분수 조각 작품 같은 것들을 해머로 깨부순다든지 하면 그것참 속수무책일텐데, 글쎄 그냥들 태평하다. 불량한 놈들도 예술은 알아서 그런 건 건드리지 않는 모양이지? 그저 시민들은 그 분수에서 물 마시고 그 분수 주변에 걸터앉아 여유 부리고들 산다.

소렌토의 바닷가 시장을 밤에 돌아다닌 적이 있다. 아치가 있고 내부가 기둥에, 돔같이 둥근 천장으로 된 웬 비범한 건축물이 있어 시선이 ‘딱’ 끌렸다. 호기심이 발동해 무조건 들어가 봤다. ‘와, 이것 보게?’ 성당 스타일의 돔으로 된 타일 천장이며 그 사이사이를 메운 천장화와 벽화들이 환상 아닌가? 마침 안내판이 있기에 읽어보니 무려 6세기에 건축한 것으로 그간 여러 차례 스타일을 바꾸어 보수했다는데, 이 기둥들은 14세기 중세 당시의 것이란다. 뭐 하던 건물인데?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지역인 캄파니아 주의 신분이 귀하신 영주들이 앉던 자리란다. 시장 안에 그런 대단한 역사적 건물이 있는데 문화재라고 못 들어가게 할까? 아니던데. 지금 소렌토 사람들은 그 건축물을 어허? 경로당, 경로당으로 쓰고 있더군. 그 아득한 옛날 영주들이 위엄 부리고 앉았던 그 자리엔 동네 영감들이 둘러앉아 장기를 두고 카드를 돌리며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들 있더란 말이지. 그러니까 문화재라고 해서 뚝 떼어 시민들과 격리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민들과 살이 닿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은 그 안에서 늙고 사라져가게 두는 거다. 난 그런 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설령 문화재가 닳아 없어진다면 그 닳아 없어지는 과정을 함께 살며 보는 거지, 뚝 떼어 격리시켜 모셔만 놓으면 뭘 해?

글을 쓴 한호림 씨는 호기심 꽂힌 곳이면 어디든지 다 가야 하는 타고난 문화 여행자. 그의 책상 앞에는 항상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세계는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항상 많다는 그는 1993년 펴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어 책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저서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를 비롯해 <서양 문화 인사이트>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등이 있으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글과 사진 한호림 | 담당 신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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