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단독 콘서트 ‘엘 푸에제 콩그루El fueye kongru’를 마쳤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밀롱가(탱고를 추는 클럽)에서 주기적으로 연주하고, 공연으로는 5월 17일에 열리는 재즈페스티벌 2013을 준비하고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보통 연주 연습을 하는 편인데, 밤에는 컴퓨터로 편곡 작업에 몰두한다. 아, 혹시 견자단을 아는가? 시간이 나면 홍콩 배우 견자단의 작품을 본다. 그의 열혈 팬이다.
취향이 분명한 것 같다. 공연 제목인 ‘엘 푸에제 콩그루’도 일본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발췌한 문구다. 반도네온 별명이 푸에제다. ‘오~ 엘 푸에제~’ 하면 ‘오~ 반도네온~’이라는 의미도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라서 중의적인 공연 제목을 선택했다. 개인적 취향을 살짝 드러냈다고나 할까? 마니아 문화가 그 분야를 근본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화를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제목에 담긴 의도를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고상지 씨에게는 늘 ‘카이스트를 그만두고 반도네온을 선택한 연주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카이스트를 그만둔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 때문에 내린 결정은 아니다. 아마 음악이 아니어도 학업을 중단했을 것이다. 그보다 ‘국내 유일의 반도네온 연주가’라는 수식어는 정말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에 “국내 유일의 반도네온 연주가가 아니니까 그만 좀 써라” 라고 항변한 것인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매체가 많다. 국내에 반도네온 연주가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유일한 연주가는 아니다.
그만큼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반도네온을 만나게 되었나? 고등학교 때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듣고 음반 숍에서 탱고 음반을 구했다. 그때 접한 것이 아르헨티나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의 음악이었다. 처음 들었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늘 틀어놓은 음 악이었다. 어느 순간 탱고 음악에 빠지니 헤어나오질 못하겠더라. 마침 엄마가 아르헨티나에 사는 이모 댁을 방문한다기에 반도네온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행운이었다.
운명적인 스승, 일본의 유명 반도네온 연주가 고마쓰 료타에게 사사를 받았다. 3개월마다 2~3주씩 도쿄에 머물면서 그에게 반도네온 연주를 배웠다. 일본은 아르헨티나 탱고가 전성기일 때 함께 탱고가 발달한 나라다. 그만큼 탱고 음악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발전했다. 고마쓰 료타는 어머니가 탱고 피아니스트, 아버지가 탱고 기타리스트로 태생적인 탱고 음악가다. 10대 때부터 공연을 했는데, 어릴 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잘했다. 지금도 키가 160cm 남짓인데, 작은 체구로 어떻게 그런 강렬한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제 같은 반도네온 연주가로 한 무대에 설 수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는 거장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초보 연주자일 뿐이다. “연주할 때 옷을 좀 화려하게 입으렴” “그 신발은 정말 아니야!” “내가 너라면 그렇게 연주하진 않았을 거야” 하고 내 공연 동영상을 모니터링하며 따뜻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마치 딸에게 말하는 것처럼.
일본에 이어 2009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에밀리오 발카르세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에서 2년간 반도네온을 공부했다. 학교생활은 어땠나? 탱고의 거장들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수업이야 훌륭했지만, 학교생활은 곤혹 그 자체였다. 남미 사람들의 성향이 무척 여유롭지 않나. 12시에 공연하기로 약속하면 어김없이 2시에 모였다. 정전이 2~3일씩 지속되기도 했다. 언어를 익힐 시간이 없어서 소통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서울과 도쿄가 그리워서 악몽을 꾸고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으니까. 그때만큼 한국 음악을 많이 들은 적도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왜 탱고 음악에 매료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거장이라면 한 문장으로 압축해 표현하겠지만, 획일화된 언어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탱고 음악의 거장인 카를로스 가르시아의 말을 빌리면, “만약 당신이 훌륭한 탱고 음악을 듣고도 감동하지 못한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낫다.”
탱고도 가끔 추나? 춤은 못 춘다.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는가? 실력 좋은 DJ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잘 아는 음악 분야가 아니라서 그냥 생각만 하고 있지만, 디지털 음악과 탱고 음악이 만나면 대중적이면서도 무척 흥미로운 음악이 나올 것 같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13 재즈 피아니스트 램지 루이스의 일렉트릭 밴드를 비롯해 미카, 막시밀리언 해커, 데이미언 라이스, 최백호와 박주원 씨, 고상지와 최고은 씨의 협업 공연 등이 펼쳐질 예정. 얼리 버드 티켓이 20분 만에 매진됐다고 하니 예매를 서두르자. 5월 17일부터 18일까지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과 체조경기장 등에서 열린다. 문의 02-563-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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