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 생후 9일 때 심한 황달로 입원했는데 며칠 후 황달기는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나의 뇌는 상처를 입었다. 두 살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의사의 권유로 가족들은 나를 재활 병원에 입원시켰고 그날 저녁, 아빠는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씀하시며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고 한다. “우리 유선이 지금 당장 집으로 데리고 옵시다….”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나는 주중에는 재활원에서, 주말에는 집에서 지내기를 2년 동안 지속했다. 아버지는 사업에 매우 바쁘셨지만 주말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나를 데리러 오셨다. 엄마는 1960~70년대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던 가수 ‘이시스터즈’의 멤버였다. 그러나 내가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직후 모든 활동을 접고 나에게 매달리셨다. 많은 부모들이 장애 자식을 숨기곤 한다. 그건 우리 부모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든 나를 데려가셨고 항상 나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오빠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등하교를 같이 해주었다. 어느 날 내가 동생에게 “누나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니?”라고 물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 똑같은데?….”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며 학사과정을 밟던 내 앞에 눈이 번쩍 뜨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룸메이트의 사촌 오빠였다. 우리는 첫눈에 반했고 지속적으로 만났으며 결국 함께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단어는 내게 수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나의 부모님도, 그의 부모님도 결혼에 망설임이 많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결혼에 100% 확신을 가지던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그뿐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믿는다고 말한 그 사람. 그가 열심히 설득한 끝에 가족들은 결혼을 인정했다. 그의 믿음이 없었다면 현재 나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결혼 후에도 두려움이 여전했던 나에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벌써 여덟 살과 네 살이다. 어느 날, 내가 지난 학기의 학생들이 제출한 수업 평가서를 보고 있는데 아들이 다가왔다. 아들에게 엄마의 수업에 대해서 학생들이 ‘체계적이고 명확한 수업진행’이라고 평가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니 아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말할 때 불안정한데? 그게 어떻게 명확해?” 순간, 내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불안정한데?” 아들이 입을 한쪽으로 돌리며 대답한다. “이렇~~게.” 조금 당황했지만 이렇게나마 나의 장애에 대해 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온 것에 감사했다.
나는 아들에게 엄마는 장애가 있고 뇌성마비라고 말해주었다. 순간 아들의 눈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엄마 많이 아파? 수술로 고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내 장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몇 분 동안 놀람과 걱정이 교차하는 얼굴을 하던 아들이 다시 물었다. “엄마, 조지 메이슨대학의 선생님 중에 장애가 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엄마가 처음이야?” 언젠가 나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흘린 말을 기억해냈나 보다. “아마도 언어장애인 중에는 처음이지 않을까?”라고 말하니 순간 아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후 아들의 한마디. “Mom, I’m impressed(엄마, 나 감동 받았어).” 아들과 나 사이에 있던 하나의 벽은 이렇게 없어졌다. 아들의 성장은 나에게도 진한 감동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가?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나는 훌륭한 엄마가 되기 위해, 더 용감해지고, 더 강해질 것이다. 물론 이런 용기와 강대함은 가족의 큰 사랑과 격려에서 나오는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정유선 박사가 직접 쓴 ‘ 가족의 사랑 속에 우뚝 선 나 ’라는 에세이의 일부 내용과 정유선 박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정유선 박사는 2004년 조지 메이슨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정현화 씨(동성종합건설 회장)는 서울뇌성마비복지회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어머니 김희선 씨는 색동어머니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치매노인들을 위해 동화구연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