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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주목받은 한국 전통 공예의 법고창신法古創新
법고창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아 우리 전통 공예품을 전 세계인 앞에 내놓았다. 매의 눈을 지닌 그들의 평가는 어떠했을까?


밀라노 트리엔날레에 마련한 전시 현장. 밀리오레 세르베토 스튜디오에서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현지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궁중채화 장인 황을순 선생.

지난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한국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한 전시가 열렸다.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 기간과 맞물려 시내 전역에서 진행하는 밀라노디자인위크는 전 세계 디자인 트렌드의 각축장이다. 이번 전시는 손혜원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도예, 옻칠, 한지, 한복, 나전, 궁중채화 등 작가 열여섯 명이 참여해 작품 열한 점을 전시했다. 지난 2008년 전주 온, 2009년 통영 12공방이 ㈜디자인하우스 기획으로 밀라노에 첫선을 보인 이래 국가 차원에서 전시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 공간 디자인은 이코 밀리오레와 마라 세르베토가 공동대표인 이탈리아의 건축 스튜디오 밀리오레 세르베토에서 맡았다.

8일 오후 5시, 프레스 행사는 작가들의 작업 과정과 작품을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전시는 듣고 싶은 이야기,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담긴 심오한 전시다. 각각의 작품들은 인간의 손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 과거로부터 왔으며, 함께 미래를 향해 가야 할 이야기이다”라는 자막이 흐른 뒤, 거칠고 투박한 작가의 손이 작품을 어루만지는 장면으로 오버랩되며 감동을 전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저명한 예술 평론가로 손꼽히며 이번 전시의 평론을 맡은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작품을 사진으로 먼저 접했을 때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놀랍다. 옛것이지만 현대 어느 작가의 작업보다도 ‘슈퍼 모던’하다”고 호평했다.

건축가이자 <도무스> 전 편집장인 마리오 벨리니는 “IT나 자동차 등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한국이 엄청난 발전으로 주목받을 때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이 전시에서 해답을 얻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전통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한국인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파워다. 한국의 성공은 테크놀로지의 성공이 아닌, 한국 사람들이 일궈낸 것이다”라며 전시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

트리엔날레 관장 안드레아 칸첼라토는 “손으로 만든 것에 다시 주목하는 요즘, 옛것을 혁신하는 공예 작가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며 일본이나 중국과 차별되는 한국 전통 공예만의 특징은 ‘불완벽한 완벽함의 자랑’이라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트리엔날레 최고 전시라 덧붙이기도 했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열정으로 옛것이지만 이 시대의 언어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공예품들. 김연아의 동계올림픽 프레젠테이션보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문화 뿌리를 세계에 알린 ‘소리 없는 프리젠터’였다.

달항아리, 권대섭
백자, 지름 57cm×높이 62cm

“구울 때마다 새로운 항아리가 나오니 이 작업이 계속 새로울 수밖에요.”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워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유연하고 대담한 곡선으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모란당초문 이층장, 손대현
삼베, 옻칠, 자개, 가로 71cm×세로 38.5cm×높이 114cm

“힘든 세월도 많았지만 이 일은 언제나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나전당초문은 전형적 전통 문양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당초문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현대 미니멀리즘의 비관계적 구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옻칠 콘솔, 장경춘ㆍ김상수
삼베, 옻칠, 사오기나무, 가로 92cm×세로 45cm×높이 55cm

“진실한 마음, 순수한 자세가 작품에 혼을 불어넣습니다. 옛것이지만 새로운 것… 제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오래된 목재가 전통 장의 비례를 만났다. 간결한 선과 거친 목재, 검고 붉은 색상의 대비는 단아하다. 장경춘 작가가 콘솔을 짜고 무형문화재 김상수 작가가 칠을 입혔다.


선+선+선, 서영희
한복, 김인자ㆍ정영자ㆍ조효순 주아사, 항라, 생고사, 은조사, 가로 260cm×세로 210cm

“크고 작고, 짧고 길고, 좁고 넓은 한복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연출했습니다.”
무형문화재전수자 세 분이 깨끼 바느질로 한복을 지었고, 유명 패션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씨가 한복을 일곱 겹 섬세하게 겹쳐 작품으로 승화했다.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이코 밀리오레는 ‘부드럽고, 겹쳐지는, 따뜻한, 은은한’ 코드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며 서영희 씨의 한복 설치 작품을 최고로 꼽았다.


수선화문 나전반

목단문 나전반, 오왕택 느티나무, 옻칠, 자개, 줄음질 기법, 지름 39cm×높이 25cm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작품은 살아서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지요.”
장경춘 작가가 느티나무로 만든 현대적 형태의 소반에 오왕택 작가가 모란문과 수선화문을 나전으로 정교하게 수놓아 눈길을 끈다.


적광율 0834, 정해조

삼베, 옻칠, 협저태 기법, 가로 70cm×세로 70cm×높이 60cm
“옻은 기막힌 비밀의 재료입니다. 마치 하늘이 주신 선물 같아요.”
나무나 금속 등 형태를 이루는 재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삼베만 이용해 천연 옻칠로 만들어낸 장중한 건칠 항아리. 디자인 뮤지엄 디렉터 실바나 안니키리코는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인 동시에 오리지낼리티가 보인다”며 이 작품을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았다.


오각의 변주, 김익영
석기소지, 가로 34.5~50.5cm×세로 45~50cm×높이 43~48cm

“전통은 옛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도자의 옛 정신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도자기로 의자를 만들어 사용해왔는데, 김익영 작가의 도자 의자는 완벽한 조형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형태로 재해석했다.


한지, 김삼식 | 한지등, 김연진
한지, 가로 92cm×세로 60.6cm×높이 34cm
“옛날 그대로 만들었더니 내 종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더군요.”
혼을 다해 만든 김삼식 작가의 한지는 조명등 작가 김연진 씨를 만나 아름다운 빛의 오브제가 되었다. 트리엔날레 안드레아 칸첼라토 관장은 “심플하면서도 효과가 다양하다. 작가의 훌륭한 직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여광, 홍정실
철, 순금, 청금, 은, 옻칠, 입사 기법, 지름 16cm×높이 30.5cm

“조선시대의 조형을 현대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 보유자인 홍정실 작가의 은입사 향로. 간결한 무늬로 표면을 쪼아내고 은선을 상감하는 가장 동양적 세공 작품으로, 모던한 형태와 절제된 선이 특징이다.


한국의 이불, 강금성
이불 명주, 모본단, 캐시미어, 가로 150cm×세로 220cm
베개 명주, 모본단, 면, 메밀, 누에고치, 가로 35cm×세로 7cm×높이 7cm
“그 장인이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것을 만들었을까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이 또 전통이 되지 않을까요?” 깔았을 때는 물론 개켰을 때 더 아름다운 우리 침구. 디자인 평론가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침상을 장식하는 이불들은 색색의 삼각형 조각들이 만화경 속 풍경처럼 다채로운 모티프로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성수聖樹, 황을순
명주, 밀랍, 궁중채화 기법, 너비 약 220cm×높이 180cm
“아름다운 전통은 새로운 창조만이 이어갈 수 있습니다.”
궁중채화는 천연 재료를 사용해 사람이 만드는 꽃과 나비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기능보유자인 황을순 작가는 평생의 노력으로 생화보다 더 아름다운 왕의 꽃을 재현했다.

글 구선숙 편집장 | 사진 박우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