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철공소 백상웅 철공소 입구 자목련은 과연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망치질 소리가 앞마당에 울려퍼지면요, 목련나무 우듬지에 남은 살얼음에 쨍하고 금이 가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은 강철을 얇게 펴서 봄볕에 달구죠. 한 잎 한 잎, 끝을 얌전하게 오므려 묶어서 한 송이 두 송이, 용접봉 푸른 불꽃으로 가지에 붙여요. 내 친구 스물일곱살의 팔뚝에도 꽃이 벙글거려요. 팔목에 힘을 줄 때마다 자목련꽃이 팽팽하게 열리죠. 자색 화상 위에 푸른 실핏줄이 돋아나요. 그걸 보고 여자들이 봄날처럼 떠나기만 했대요. 용접봉을 손아귀에 쥔 내 친구 스물일곱살. 오늘은 철공소 마당에 철목련을 매달아요. 가지마다 목련꽃이 벌어져서 햇볕을 뿜어대죠. 꽃 핀 철문은 허공에 경첩을 달고 식어가고요, 밤에는 하늘에다 꽃잎을 붙이느라 잠도 못 자요. |
백 시인, 자목련 자줏빛 고운 입술이 화상火傷인 줄 이제 알겠습니다. 개나리 노랗게 질리고, 백목련 희디흰 두 볼에 핏기 없는 까닭 이제 알겠습니다. 봄이 오는 골목 소란스러운 것, 한 잎 한 잎 꽃잎 펴는 망치 소리였군요. 세상 모든 꽃 빛깔이 저마다 화상이었군요.
푸른 잎은 나무의 멍이었군요. 고통과 노동이 꽃의 뒤안이라니, 망치 소리 이제 시끄럽지 않습니다. 스물일곱 살 친구가 봄의 인테리어를 맡았군요. 조물주도 해마다 보수해야 하는 허물어진 계절을 수리하시는군요. 죽은 가지마다 목련을 매다는군요. 강철을 봄볕에 달구네요. 허공에 경첩을 달고, 하늘에 꽃잎을 달다니 공전절후의 신이한 솜씨입니다.
걷어붙인 팔뚝에 자목련을 심었군요. 핏줄마다 수액이 흐릅니다. 여자들이 봄날처럼 떠난다니 안됐지만 안타까워하지 않겠습니다. 천하를 수선하는 대장장이의 짝이라면 천하를 함께 설거지할 여자라야 하지 않을까요? 원효에게처럼 자루 없는 아리따운 도끼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천하의 기둥을 새로 세워야 하지 않겠어요? 스물일곱 살이 빚은 철목련에 꿀벌들 모여듭니다. 날갯짓보다 턱없이 적은 시급時給 탓에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엄두 내지 못하는 비정규직 꿀벌 소리 이명처럼 닝닝거립니다. 강남 꽃도 강북 꽃도 꿀의 함량은 일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픔이 꽃이라니, 아픔을 믿어야겠지요?
꾀병 박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박 시인, 미인도 이렇게 낯선 미인은 처음입니다.
미인이라니, 솔깃했소만 당신이 지은 ‘시의 집’을 엿보니 양귀비도 서시도, 신윤복의 미인도, 클림트의 여인들도 아니었습니다. 조금은 서운도 하였습니다. 글쎄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중에서) 눕거나,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호우주의보’ 중에서)는 미인은 좀 생소했어요.
아니, 생소하지 않았어요. 미안하지만 어느 골목을 나서도 그런 미인은 수두룩할 겁니다. 하나 미인도 이렇게 슬픈 미인은 처음입니다. 그대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니 미인은 아마도 당신의 생계요, 간병인이요, 보약인 게지요. 그대의 시 ‘꾀병’을 보며, 단박에 예사 꾀병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옷보다 못이 많’(‘옷보다 못이 많았다’ 중에서)은 집에서 ‘이삿짐을 나르고, 농을 옮기다 발을 다치고, 저녁에 한 주걱 더 먹은 밥에 가슴이 얹힌’ 당신의 봄밤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미인을 생활전선에 보내고 몸져누운 것이 미안해 ‘진병’도 ‘꾀병’으로 부를 수밖에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니,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니 이토록 아프고 위중한 꾀병은 처음 봅니다. 아플수록 섬세해지는 신경에 포착된 시 속 세계는 아름답고 불안합니다. 목련꽃 피는 계절이 온들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 비치는 봄볕이 얼마나 머물겠습니까?
박 시인, ‘날지 못하는/ 새는 있어도/ 울지 못하는/ 새는 없다’고 했나요? 천생 시인이구려.
천 년 늙어도 제 곡조 지니고 우는 오동이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이오만, 미인을 위해서 ‘꾀병’도 ‘진병’도 툴툴 털고 일어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봄, 우아한 게임 박연준 봄은 스무 개의 발이 달린 다족류의 몸으로 걸어다닌다 투명하게 찍힌 봄의 발자국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햇빛 아버지는 쓰러지길 기다리는 볼링 핀처럼 봄의 길목에 서 있었다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색색의 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오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빛깔을 향해, 봄은 잔뜩 둥글린 색채를 흩뿌리며 쏟아진다 자신의 몸을 때려눕히리라 예감했는지 아버지는 점점 목이 가늘어졌다 이윽고 봄의 공격이 시작되고 가늘어지는 것들은 어디로 피해야 하나 아버지의 몸 곳곳에 멍이 퍼졌다 무늬를 흉내 내며 살랑거리는 저 어둠, 도망가는 뱀처럼 기다랗게 번지고 커다란 접시 같은 몸이 보랏빛을 떠받들고 있었다 보랏빛은 줄을 서지 않는다 보랏빛은 발걸음이 가볍다 보랏빛은 침착한 표정으로 번진다 웃으면서 보라, 보라, 보랏빛! 종이비행기처럼 납작하게 접힌 아버지 하늘로 날아가신다 |
박 시인, 봄이 유독 무덤 위에서 푸른 까닭을 알겠습니다. 소월이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라 읊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섣부른 이들이 봄을 소생이라 부르지만, 봄의 엉덩이에 얼마나 많은 주검이 눌려 있는지 알겠습니다. 오늘 봄의 두 얼굴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봄은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빛깔을 향해’ 굴러오는군요. 가뿐가뿐하고 나른나른한 줄 알았더니 거대한 볼링공처럼 목이 가늘어진 것들을 때려눕히는군요. 쇠약해진 볼링 핀들 틈에 아버지께서 계시는군요. 곳곳에 멍이 번지네요.
보랏빛은 보랏빛끼리 번지는군요. 봄은 겨울나무의 삭정이와 생가지를 용케 구분합니다. 노인은 어제 걷던 길을 오늘 주저앉는데, 아이들은 어제 넘어지던 길을 오늘 달립니다. 봄은 그러니까 ‘꺼지는 힘’ 빼앗아 ‘솟는 힘’에게 주는군요. 사람들이 봄의 꽃잎을 찬양할 때 당신은 꽃 그늘의 무게를 이야기하는군요. 다족류의 봄이 밟고 있는 보랏빛 멍, 우아의 배면을 들추는군요. 봄은 죽음을 감춘 채 웃는 화려한 생명이군요. 어둠이 빛이고, 슬픔이 기쁨이군요. 그렇다면 슬플 때 슬프고, 기쁠 때 기쁘면 되겠군요.
낮에 밤 걱정 말고, 밤에 낮 걱정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꿈속 아버지가 시인을 처제, 하고 불러도 잠깐 ‘네’ 하고 대답하면 어떨까요?
종이비행기 높이높이 날아갑니다.
젊은 시인 셋과 필담을 나누다
백상웅
스스로 프로필을 소개해주세요. 2006년에 대산대학문학상을, 2008년에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했습니다. 2012년에 대산창작기금을 받았고, 2012년 11월에 첫 시집이 나왔죠.
첫 시집 <거인을 보았다>를 펴낸 소감은요? 첫 시집을 내고 한동안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시집을 받아 들고도 시집에 박힌 제 이름을 어색해하며 책장을 펼쳤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시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기쁨과 쑥스러움과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였습니다. 조금 아쉽고 많이 좋았습니다.
시집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이 가장 좋아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시를 보여드린 적이 없습니다. 시집으로 아들의 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득한 제 시들을 보여드리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회사 사장님이 읽고는 좋았다며 시집을 사서 직원들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요즘 천착하는 시의 주제, 또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저는 제가 경험하는 일상을 씁니다. 요즘에도 그렇습니다. 제가 보고 제가 듣는 것들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사무실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제가 사는 동네를 소재로 쓰기도 합니다. 주제는 쓰는 시마다 달라지겠지요. 천착하는 게 있다면 시의 완성도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은 써야겠습니다. 제가 눈이 높거든요.
박준
스스로 프로필을 소개해주세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잘 배우면 남에게 그것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2008년 ‘실천 문학’으로 등단해 시집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문을 쓰거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삶을 꾸려갑니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펴낸 소감은 어땠나요? 발간 두 달 만에 3쇄를 찍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내심 기쁘면서도 이렇게 반짝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어요. 첫 시집을 내고 나서는 막막한 감정이 가장 큰데요. 제가 또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지금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좋은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당분간은 좋은 시를 쓰는 일보다 좋은 삶을 살아보려 애를 쓰고 싶습니다.
시집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얼마 전에 작은 접촉 사고가 있었어요. 상대방 운전자가 명함을 주시는데 저는 명함이 없어 시집을 드렸어요. 사고가 처음인 여자분이셨는데 시집을 드리고 나니 당황하고 불안해하던 얼굴이 한 순간 밝아지시더라고요. 사고처리반이 올 때까지 이것저것 시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오더라고요. 도로 한복판에서 만난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요즘 천착하는 시의 주제, 또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제 첫 시집에는 유독 ‘미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요. 첫 시집을 낸 지 얼마 안 된 터라 아직도 저는 미인에 사로잡혀 있어요. 미인이라고 해서 꼭 여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미인이지요. 이렇게 미인에 천착하다 보면 저도 혹시 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박연준
스스로 프로필을 소개해주세요. 1980년 초겨울, 눈 내리는 날 태어났습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7년 1월 첫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을, 2012년 10월에 두 번째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를 펴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를 펴낸 소감은요? 시집을 받아본 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력 생신이기도 했어요. 그동안 골몰하던 화두가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 생신에 맞춰 시집을 받게된 기분이 묘했지요. 시집을 받자마자 방 안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했는데,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아마 시집을 읽으며 인생에서 어느 한 시절이 완전히 끝났음을, 두 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필요도 없음을 확인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엎드려서 엉엉 울었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안도감도 들고, 새로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난 시절은 열애처럼 열렬했고,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으며, 매 순간 살아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살았을 거예요. 후회는 없습니다. 지독하게 사랑한 것 같습니다(이제는 무엇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을 긍정하고 웃게됩니다. 두 번째 시집은 어둡고 철없지만 아름답던 시절의 마침표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그때와 사고 방식, 시 쓰는 방식, 사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 변화가 재미있습니다.
시집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첫 번째 시집에 실린 시들은 내가 생각해도 비명이 과하고, 비관의 리듬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아요. 읽기 힘들어한 사람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이 전력 질주였다면 두 번째 시집은 전력 질주 후, 누워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늘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관찰하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이 시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의 시보다 더 좋아해주는 것도 같고. 사적인 이야기나 속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시가 많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겠습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생각,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자 시작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천착하는 시의 주제, 또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두 번째 시집을 낸 후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고,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해서 시 쓰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보다 시작 속도나 리듬이 더 느려졌고, 마음도 둥글어졌지요. 덜 예민해졌고, 덜 웁니다. 늙어간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 스물다섯에 등단한 내가 서른네 살이 되었으니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라고도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리듬과 감성은 유지한 채 말하는 속도나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해서 시를 쓰려고 해요. 요새는 귀신의 외로움이나 수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는 사람들의 귀함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요절하는 것, 비명횡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귀한 일이 ‘제 수명을 다 살고 늙어 죽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디자인 송현아 기자 캘리그래피 강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