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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의 공간] 경남 양산시 고덕우도자기 “투박해서 편안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행복>의 오랜 독자라면 그의 그릇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고덕우 작가와 <행복>의 인연은 꽤 각별하다. 그가 만든 그릇만 보아도 “아, 고덕우 작가”를 외칠 만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견고히 지켜나가는 도예가 고덕우 씨. 도예가는 그릇으로 이야기할 뿐이라지만, 이젠 그를 좀 더 깊이 알 때가 되었다.


가마에서 그릇을 꺼내는 순간이면 여전히 설렌다는 고덕우 작가. 한나절 꼬박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나면, 밤새 식혀 열기를 빼야 하니 가마에 넣고 나면 하루를 기다려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양산의 작업실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도예가 고덕우 씨. 독자선물과 스토리샵, 행복 나눔 바자회 등을 이유로 한 달이 멀다 하고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을 만큼 그와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지만 아직 얼굴 한번 마주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수화기 너머 “지금 막 가마에 불을 지폈다”는 그의 말에 가마에서 갓 구워낸 그릇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졌다. 조르고 또 졸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양산으로 떠났다.“어제 구운 그릇을 꺼낼 때가 됐는데, 왜 안 오시나 했습니다.” 손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며 작업실에서 걸어 나오는 그의 첫인상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여느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소탈한 마을 이장님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정말로 동네 이장님이란다.

작업만으로도 바쁜 그가 마을 일까지 보고 있으니 동네 밖으로 나갈 겨를이 없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지금의 동네에 들어와 정착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7년째. 그를 따라 집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천연 재료로 그릇을 만드는 그가 왜 경남 양산 백록리의 이 마을에 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덕우도자기’ 그릇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인 황토가 집 뒷산에 오르니 한가득이며, 집 건너편 농경지는 마사토 지대로 수분 함량이 낮은 특성을 지닌 이 흙 역시 그릇의 재료가 된다. 흙에 대한 그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지역 외에도 주변 지인들에게 좋은 흙을 찾았다는 제보를 받으면 그길로 달려가 흙을 확인하고 덤프 트럭째 담아 오기도 한다. “같은 성질의 흙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특성이 조금씩 달라 작업을 하면 발색에서 미묘한 차이가 납니다. 어떤 빛깔이 나올지 궁금해 가마에 넣고는 수시로 들여다봅니다. 매번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는 셈이지요.”


고덕우 작가의 그릇 갤러리 겸 응접실 한쪽에 놓아둔 화분. 판매용으로 쓸 수 없는 그릇을 골라내어 화분으로 변신시켰다.


고등학교에서 요업을 전공하며 도예의 길로 들어선 그는 졸업 후 여러 도예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백자부터 분청까지 저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른 도예가들로부터 흙과 유약의 특성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었고, 결국 그만의 작업 세계를 정립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대학 시절 도예가 아닌 조소를 전공했다. ‘고덕우도자기’ 그릇에서 나타나는 입체적 형태와 그가 전시에서 도자를 활용한 조각 작품(2012년 9월 <행복>25주년 기념호를 위해서도 조각 작품 ‘만다라’를 선보였다)작업을 함께 하는 것도 그 영향이다. 도예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고덕우 작가는 ‘누가 봐도 내가 만든 그릇인지 알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매끈하고 고운 그릇보다는 투박한 것이 편안하며, 그래서 더 아름답다는 그의 말대로 ‘고덕우도자기’는 다듬지 않고 자유분방한 형태와 색감이 돋보인다.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을 표현할 재료는 가까운 자연에서 얻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유약 역시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의도하는 색을 내기 위해 장석유나 진사유도 사용하지만, 그의 작품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참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와 1년간 간수를 뺀 소금이다. 흙도 직접 채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유약도 직접 만들어 쓴다.

작업실 한쪽 속이 깊은 드럼통에는 누런 색을 띠는 정체 모를 물이 가득하다. “참나무재 유약을 만들기 위한 밑준비입니다. 참나무재는 양잿물 성분이 있어 그걸 없애야 해요. 독성이 강해 생활 식기로 좋지 않을뿐더러 그릇에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일주일 정도 물에 담가두고 수시로 물을 갈아줘야 합니다. 누렇고 미끌미끌하게 떠오르는 양잿물이 없어지면 그때 유약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1 작업실 뒷산에 오르니 그가 파놓은 구덩이 속에 불그스름한 황토가 한가득이다.
2 황토를 물에 곱게 개어 초벌한 그릇 표면에 바른다.
3 그릇의 굽을 만드는 성형과정.
4 재유를 가볍게 바르면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질감을 낸다.
5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서 부순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약이 바로 재유라니, 도예가에게는 재유가 밥과 반찬같은 사이다. 고덕우 작가가 재유 중에서도 특히 참나무재유를 고집하는 이유는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질감 때문이다. 반면 소금은 철도 부식시킬 만큼 성질이 강한데, 황토를 바른 그릇에 소금물을 발라 구우면 최고 온도가 1320℃에 달하는 맹렬한 불 속에서 황토의 철 성분이 녹아 그릇에 용암이 흐른 듯한 흔적과 오톨도톨한 소금 알갱이를 남긴다. “어떤 날은 종일 물레 작업을 하고, 또 어떤 날은 황토만 바르거나 유약 작업만 하기도 합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가마에 불을 올리니 부지런히 작업하는 편이죠.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커피 한잔 마시고는 작업실로 들어가요. 그러면 아무리 내 손으로 빚고 유약을 발라도 가마에서 그릇을 꺼낼 때마다 생각지도 않은 작품을 만나게 되니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깨닫거든요. 방심하고 자만할 틈 없이 부지런히 작업에 매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흙이자 불입니다.”


6 그의 그릇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응접실 겸 미니 갤러리.
7 흙과 소금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의 그릇은 자연 소재와 잘 어우러진다.
8 갤러리로 사용하기 위해 고덕우 작가가 새로 마련한 공간. 아직은 비어 있지만, 곧 그의 그릇으로 가득 채울 예정이다.


현재 그의 그릇은 현대백화점 본점과 무역센터점, 목동점에서 만나볼 수있다. 아직 서울에만 매장이 있는 탓에 그의 그릇을 보기 위해 무작정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작업실 2층을 작은 갤러리로 꾸미고 차 한잔 대접해 보낸다. 한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살림집이기도 하다 보니 다른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 집에서 5분 거리에 작은 집을 한 채 지었다. 그릇과 그의 조각 작품을 차차 옮겨 고덕우도자기를 만날 수 있는 작은 갤러리 겸 일반인에게 도예를 알리는 문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이름을 내건 그릇이니만큼 시작할 때의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고덕우 작가는 아직도 남의 손이나 기계 공정 없이 홀로 작업실을 지킨다. 기성품이 아닌 ‘실용성을 갖춘 세간이자 작품’을 만드는 그의 그릇에는 투박하고 소탈한 멋이 있고, 느림의 미학이 있으며, 그의 가장 좋은 스승인 자연의 오묘한 신비가 담겨 있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