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소렌토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작은 도시 포시타노. 지금은 호텔이 75곳이나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몰려들어 그 무리 중에 필자도 끼었지 뭔가?
뭐, 통계 같은 걸 들먹이지 않아도 안다. 선진국일수록 신호등이 많고 후진국은 그 반대라는 거. 후진국이라도 고물차일지언정 도심은 차들로 바글 바글하지. 이집트 카이로에서 경험한 일. 거기도 차는 많은데 대로를 몇 킬로미터 달리도록 도무지 차가 멈추는 일이 없는 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가만히 내다보니 ‘···!’. 길에 신호등이 없네! 그런데도 그저 적당히, 정말 ‘적適·당當’히 운전을 하니 오히려 신호등 때문에 차가 설 일이 없다. 내가 사는 캐나다 토론토, 여긴 100m도 멀다 하고 신호등이 있지. 어떤 곳은 50m가 될까 말까 한데도 그저 신호등이다. 그러니 그것 땜에 괜히 서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잦다. 정말 왕짜증 나지. 엊그제 우리 집 앞길에서 공사를 벌이기에 뭘 하나 했더니 또 신호등을 세우고 있데?
1 “빠꾸, 빠꾸!” 좁은 오르막 커브 길에서 차를 뒤로 빼주기. 오르막 커브 길에서 반대 차선의 대형 버스를 위해 ‘빠꾸’해주는 운전사 루이지 씨의 노련한 폼을 보시라구. 여유 그 자체지.
2 밤새 남쪽 시칠리아부터 항해해 새벽에 입항하면서 본 아름다운 나폴리.
3 정말 아이디어 아닌가? 로터리를 끼고 돎으로써 멈춤 없이 예각 우회전을 한다.
도심에서도 신호등 보기가 어렵다니?
오늘 도마에 올려놓는 이탈리아 말이지. 이탈리아라면 아득한(!) 1976년에 벌써 G7 멤버가 된 세계 주요 경제국 아닌가? 요즘 경제가 어쩌니 하지만 역사가 1세기가 넘는 피아트 자동차에, 세계인의 드림카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생산하는 나라요, 관광객이 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기라도 한다면 기를 쓰고 월담해서라도 몰려들 진짜 관광 대국이요, 구찌에 페라가모, 프라다, 펜디, 돌체앤가바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의 본산 아닌가? 바로 그런 나라 도시에서 신호등을 보기가 어렵다는 거다. “위의 이집트는 후진국이어서 그렇다 치고 이탈리아가 그렇다구?” “그렇다니까.”
신호등이 없다??? 그럼 교통질서가 개판이겠네? 길이 막혀 지옥이겠고···. 그런데 아니거든? 오히려 교통 흐름이 멈추지 않고 아주 물 흐르듯 잘만 흘러가데? 왜? 어떻게?
이탈리아 가곡으로 귀에 익은 그 유명한 관광도시 나폴리. 순식간에 폼페이를 화산재로 매몰시킨 베수비오 산자락에, 앞으로는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 항구도시. 정말 아름답지. 그러니 그런 노래도 나온 거다. 여북하면 유럽에는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는 말이 다 있겠나? 그걸 이탈리아 말로는 “베디 나폴리 에 포이 무오리Vedi Napoli e poi muori”라고 한다네. 그런 도시니 관광으로 이 나폴리에 갔다 온 한국인 또한 하나 둘인가. 그런 나폴리에 아직 안 가보셨거든 잘됐다, 가게 되거든 관심 갖고 보시라구. 시내에 신호등이 몇 개나 있나? 흔히들 이탈리아인은 한국인같이 다혈질이라 성질이 급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터에 신호등이라고 하는 강제된 질서마저 없으니 운전수끼리 빵빵! 거리거나 차창을 내리고 소리 지르고, 인상 쓰고, 손가락 사인 랭귀지로 막 욕하고 그러겠네? (사인 랭귀지로 욕할 때 북미식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는 건 다들 안다. 그럼 이탈리아식은? 턱을 약간 들고 상대를 향해 다섯 손가락을 모아 턱을 긁듯이 밖으로 튕긴다.) 아, 그런데 천만의 말씀. 실망스럽게도(?) 그들은 정반대다. 오히려 그들은 ‘양보’라는 말도 필요 없이 그냥 슬슬, 적당히, 당연한 듯 기다려주고 비켜주며 잘도 운전하며 산다. 가령 좁은 길, 그것도 커브 길에다 비탈길(죄다 산이거든) 저쪽에서 길이가 길어 회전 반경이 넓은 차가 온다 싶으면 이쪽 차가 알아서 미리, 멀찍이 서서 기다려준다. 그리고 그 덩치 큰 차가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때로는 지나가기 편하게 ‘빠꾸’도 해준다. 그것도 좁은 길, 커브 길, 비탈길에서 말이지. 그러고 나면 저쪽 차가 덮치듯 ‘불쑥’ 다가와 닿을락 말락 하게 스쳐간다. ‘빠꾸’까지 해주고 서서 기다려준 쪽에서 보면 뻔뻔해 보일 만도 한데, 서로 손 한 번 흔들면 끝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은 그렇다.
이탈리아인이 성질 급하게 운전할 거라는 선입견은 요렇게 ‘완존히’ 빗나 간다. 양보란 말도 필요 없이 애초부터 그 환경 그 조건에 그냥 순응하고 그냥 그렇게들 사는 거다. 이런 게 이탤리언 운전 스타일이구나. 누구나 상대에게 착하게 해주고 또 누구나 상대에게 착하게 받고···. 그러니 요즘 많이 쓰는 말로 진짜 윈윈win-win이야.
1 앙증맞은 빨간 소형차는 이 탈리아제 피아트 500L. 유럽 도로에 정말 딱이지. 귀여울 정도야.
2 뛰어오르는 모습으로 연출한 생선 매대. 그 아래 생선은 V자로 배치하는 등 전체적으로 생선이 돋보이게 구성을 한 점이 눈에 보인다. 타고난 디자이너다.
3 소렌토의 절벽 아래로 난 길. 그래도 이 길은 양반이다. 한쪽에 주차한 차량이 없으니.
4 아마도 소금을 찍어 먹자는 게 아니라 샐러드 등 다른 식재료로 사용하기 좋게 파는 건가 보다. 좁은 아파트 안에서 감자를 삶아야 하는 수고도 덜어주고 에너지도 절약되니.
5 타바스코 소스 대신 갖다준 빨간 고추 세 개. 하도 코믹한 기분이 들어 사진을 다 찍어뒀지 뭔가.
6 빨간 고추를 소재로 한 레스토랑 아이캐처. 빨간 고추, 꼭지의 진한 녹색이 보색으로 대비되어 강렬하면서도 아름답다. 고추를 머리에 이고, 흰 바탕에 고추 무늬의 긴 치마를 입은 인형, ‘하나 갖고 싶네’.
정말 사람 사는 데 같은 시장들
남부 시칠리아의 주도州都 팔레르모. 옥상에 말 네 필이 끄는 전차를 타고 올리브 가지를 쳐든 남녀 동상이 있는 우아한 오페라하우스가 자리한 중심가에서 옆길로 들어섰더니 시장이네. 물론 이탈리아에 그깟 슈퍼가 없겠나? 있지. 그러나 이탤리언의 살림은 어딜 가도 그냥 우리로 치면 재래시장에서 이루어진다. 대량 공급, 빠른 유통만이 목표인 북미의 슈퍼에서는 파프리카 한 개, 오이 한개도 과過포장해 파는데 이탈리아 동네 시장에는 그런 게 없다. 죄다 생것이지.
생선도 그 자리에서 묵직한 칼로 ‘척척’ 토막 내서 싸주데. 그런 생선 좌판 벌이는 걸 유심히 봤지. 생선을 늘어놓을 판자를 물로 빡빡 닦고 그 위에 꽤 정성 들여 얼음을 평평하게 깔고 얼음 위에 각종 생선을 진열하는데··· 그것도 설치 미술이랄까? 구성을 하는 거다. 요렇게도 놓고 조렇게도 놓고. 생선 장수도 이 정도니 이런 토양에서 이탈리아 명품도 나오는거 아냐? 그 설치 미술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게 있었다. 좌판의 잘 보이는 위쪽에는 으레 생선 몇 마리를 꼬부려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는 낚싯줄로 꽁지와 머리를 매어놓은 거. 즉 물에서 ‘탁!’ 뛰어오르는 장면을 연출한 거다. 그만큼 싱싱하다는 소리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아이캐처지. 그런 시장에 들어서면 희한한 것투성이. 큰 통에 감자를 삶아서 물에 둥둥 띄워놓고 팔지를 않나, 양파와 빨간 파프리카를 구워서 팔지를 않나. 모로코,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에 가보면 손바닥같이 넓적한 선인장에 달걀만 하고 발그레한 혹(?)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아, 바로 그걸 따다 팔고 있네.
내가 사는 캐나다의 슈퍼에서도 본 것(캑터스 페어cactus pear)이기에 이 탈리아 말로는 뭐라고 하나 했더니 ‘피키fichi’라고 하는군. 이탈리아 시장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그게 뭔 열매인지 어떻게 먹는 지도 우리는 몰랐지. 그냥 과일 깎듯 과도로 껍질을 벗기고 먹더군···. 꾸질한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이 서서 그걸 먹고 있기에 사진을 찍었더니 퉁퉁한 주인이 과즙에 줄줄 젖은 손가락으로 불쑥 하나를 내민다. “에구!” 사양했지. 그랬더니 남편과 함께 서 있는 여성이 자기 손으로 그걸 받아서 또 내게 내민다. 외국 손님아, 맛보시라 이거지. “아이고오, 그라치에grazie, 소리sorry!” 감사에, 미안에, 사양에 사양을 하고 미안해서 인사까지 하고 자리를 떴다. 여행에서 젤 무서운 게 뭐야? 배탈! 난 이탤리언 스타일은 못 되나 봐. 지금도 그 착한 이탤리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타바스코 소스를 달랬더니만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경험한 즐거운 촌극. 악사가 연주를 하고···. 이탈리아 요리의 고유한 맛도 즐기지만, 그래도 여행 중엔 가끔 매운맛으로 입맛을 돋우기도 해야지. 가까이 온 웨이터하고 눈을 맞춘 다음 그가 영어 못하는 걸 아니까 “타바~스코!” 하고 말했겠다. ‘좀 갖다줘요’ 이 소리지. 제깍 알아들은 그 웨이터, 주방으로 가데. 근데 영 갖다주질 않는 거라. ‘허, 이 친구, 까먹었나···?’ 보채는 느낌을 주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식사를 계속하는데··· 응? 그 웨이터가 오네. 그러더니 스쳐가듯이 아무 말도 없이 슬며시 뭘 놓고 가버린다. ‘???’ 그가 놓고 간 걸 내려다보고 아내와 나는 정말이지 속으로 배꼽을 잡았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있나? 그 레스토랑에 타바스코가 없는 모양. 그러니까 웨이터는 영어로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타바스코 대신 자기네 빨간 고추 세 개를 주고 간 것. 이탈리아 빨간 고추, 우리 것하고 달리 새끼손가락보다도 작고 가는 게 가게에서 엮어서 파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웨이터의 성의를 봐서 타바스코 대신 음식과 함께 빨간 고추를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우리나라 속담,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해. 제법 맵더군.
1 “이 피키 맛 좀 보슈.”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그라치에(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먹었어야 했는데 배탈이 무서워서 그만….
2 시장에서 파는 선인장 열매 피키. 이렇게 모아놓으니까 다양한 색상에 집단의 미도 얹혀 더 예뻐 보이네. 맛은? 거기 가시거든 시식해보시라.
3‘알바? 설마하니….’ 여명黎明 빌라라… 레몬 소재로 간판을 했군. 이 빌라에 대해선 유튜브 채널에 카프리 빌라 알바Capri Villa Alba만 치고 들어가 보심 알 수 있지.
4 처마에 매달아 놓은 레몬들은 크고 우툴두툴한 것이 ‘레몬lemon(못생긴)’같이도 생겼다. 근데 맛은 그게 아니라 이거지.
그저 레몬, 레몬, 레몬!
영어에서는 ‘레몬lemon’이라고 하면 우툴두툴 못생긴 걸로 여겨 “This car is a real lemon” 하면 결함이 많아 속 썩이는 차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탤리언에게는 못생기기는커녕 예쁜(!) 레몬으로 여간 귀염받는 것이 아니다.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은 자연 해양국이라 특히 레몬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항해 시대의 가장 골치는 장기 항해에서 비타민 C 부족으로 선원들이 이가 빠지는 등 고통을 받는 괴혈병이었다. 18세기 중엽, 그 레몬 속에 비타민 C가 많다는 것이 알려지니 얼마나 고맙고 귀여운 식물이었겠나? 1995년, 기찬 아이디어에 한화로 무려 1천5백억 원을 투자, 제작했는데 최고의 흥행(?)이 아니고 아깝게도 최고의 실패작(!)이된 영화 <워터월드>에 보면 떠돌이 마리너 케빈 코스트너가 자신의 철제 보트 갑판에 달랑 레몬 화분 하나를 놓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게 나온다. 그거 본 사~람? *^^*?
레몬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하지만 지중해 레몬이 최고라는군. 특히 로마 남쪽에 있는 카프리와 소렌토는 아주 레몬의 도시데. 특히 카프리 사람들은 레몬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이건 어딜 가나 레몬이고 레몬 장식이데. 정원수를 레몬으로 심은 집도 봤고 가게, 레스토랑 장식도 레몬으로 하고 레몬을 그린 타일로 대문을 장식한 집도 여럿 보았다. 무어Moors 문화 영향인 하얀색 타일에 수채화를 그리듯 채색으로 노란 레몬을 그려 대문에 문패로 붙이는 거다. 참 소박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 보이는 대로 촬영해놨다. 나로서는 인상을 쓸 만큼 시큼해 별로지만 내가 기준이 아니잖나? 레몬,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특히 이탈리아 요리에서.
카프리 공원의 벤치(부분). 해마를 타고 전령 돌고래를 앞세운 세 여신이 카프리에 레몬을 선물하고 있구먼. 그림 왼편 위쪽에는 인어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하신河神들은 레몬을 받아 섬으로 옮기고 있다. 그 위의 리본(이게 중세기의 말풍선임)에 라틴어로 쓴 글은 ‘카프리 섬에 레몬이 도착했다’는 뜻.
소금구이 생선 요리
예전에 포르투갈에 갔을 때, 이 나라는 생선 요리가 유명하다니까 메뉴를 제대로 이해도 못 하고 대충 시켜봤는데,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맛있는 소금구이 생선 요리를 맛본 적이 있다. 웨이터 왈, 이건 조리하는 데 40분이 걸린단다.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느라 더위에 지쳐 있던 우리 부부는 오히려 아픈 다리를 쭉 뻗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길어져 더 좋았지. 한참 후에 웨이터가 네모난 작은 양푼에 하얀 천이 덮인 것을 실은 카트를 끌고 왔다. 그러더니 그걸 우리 옆 테이블에 놓고는 천을 걷어낸다. 방금 불에서 나온 굵고 하얀 소금으로 꽉 찬 양푼.
그 뜨거운 소금을 조심스럽게 스푼과 포크로 걷어내자 뜨거운 소금에 절어가며 익은 생선이 드러나는 거 아닌가! 웨이터는 그걸 정성스럽게 껍질을 벗겨내고 뼈를 발라내더니 두 접시에 나누어준다. 그 정성, 그 수고 또한 정말 황송할 지경. 입에 넣어보니 약간 짭짤한 것이 비린 맛도 하나 없이 정말 슬슬 녹네.
‘히야~ 이렇게 멋진 요리를 맛보다니.’ 그 추억을 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지중해를 낀 해양국이니까 이탈리아에도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 남부에 간 길에 한번 시켜본 것. 아, 그런데? 그게 있단다! 그날 저녁, 더는 추가할 설명 없이 남부 이탈리아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남부에서와 똑같은 소금구이 생선 요리를 먹었다는 것. 그 또한 이탈리아 지중해의 맛이라는 것. 그래서 다음을 위해서라도 생선 이름을 적어달랬지. 이탈리아 말로 스피골라spigola, 영어로 시 배스sea bass란다. ‘Seeing is believing! 거기 가시거든?’
5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양푼에 담아 왔는데, 이탈리아 이 레스토랑에서는 금속 접시에 담아 내왔다.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이 같은 생선으로 같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도 흥미롭지.
6 필자가 변태(?) 취미로 촬영에 성공한 여성의 ‘빤쓰’ 널어 말리기. 보다시피 남성의 것도 있는 걸로 보아 정상적인 건강한 남녀가 건실하게 살고 있다는 사인도 되겠다.
7 빨래가 아래층 창문까지 늘어져 있네. 그래도 아래층에서 뭐라고 안 그러는 모양이지? 그 아래층 집은 국기를 내걸었다. 그 왼쪽 돌돌 말린 기는 시칠리아 주기州旗.
이탤리언 스타일 빨래 널기
대도시고 시골이고 어딜 가나 아파트 발코니 바깥으로 늘어뜨려 있는 빨래, 빨래들. 아, 참, 이탈리아도 어지간히 아파트가 많데. 우리네 같은 고층 아파트가 아닐 뿐이지 대체로 아파트에서 살더군. 그것도 우리 같으면 재건축을 몇 차례라도 했을 아주 오래된 아파트다. 그러니 세탁기에 건조기를 놓을 공간이 있겠나. 궁즉통窮卽通이라, 그래서 이쪽 아파트와 건너편 아파트 (간격이 좁거든) 사이에 빨랫줄을 연결하고 빨래를 넌다. 그러니까 그 아래 골목으로 걸어가면서 위를 쳐다 보면 이건 정말 빨래의 아치 밑 통과하기지. 북미의 자동차 딜러들이 바람에 펄럭거려 행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깃발, 배너 따위를 많이 설 치하듯 빨래들이 펄럭여서 시선은 더 끌린다. 특히 밖으로 빨래를 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캐나다에서 사는 나로서는 여러 나라에서 보아왔음에도 카메라 초점이 그리로 간다. 캐나다에서 만약 빨래를 밖에서 보이게 널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주민의 불평 신고가 들어가겠고 시에서 나와 벌금을 때리지. 캐나다? 이거 헐렁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마치 군기가 센 군대 내무실 같은 나라다. 자, 빨래를 촬영해도 그 분야대로 월척이 있지 않겠어? 그게 뭐겠나? 월척은 낚기가 어려운 거다. 여성 ‘빤쓰’ 널어놓은 것도 기어이 촬영에 성공했도다! 그것도 행인이 많은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의 인류사박물관 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그건 참 인간적인 사인이란 생각을 했다. “여기, 정상적인 인류 남녀가 정열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 소리잖아?
글을 쓴 한호림 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3년 펴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어 책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저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를 비롯해 <서양 문화 인사이트>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등이 있으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