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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여전한, 목수 이정섭
목수 이정섭 씨가 7년 만에 국내 개인전 로 우리를 찾아왔다. 지난 12월 17일부터 1월 7일까지 강남 서울 옥션에서 열린 전시에서 그는 검게 그을린 나무와 금속이란 새로운 재료로 진중한 작업 언어를 이어왔다. 소목과 대목 사이의 인생을 오가며 ‘나무’를 주제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거듭나려는 목수 이정섭 씨와의 대화.


목수 이정섭이 소개하는 금속 가구 신작 ‘Raw Metal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 졸업이라는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화가가 아닌 목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림을 그리는 데 별 소질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학교도 오래 다녔고요. 그림에 천재성이 없었으니 먹고살기위해 다른 방편이 필요해서 졸업 전에는 2년간 준비한 사진 작품으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9년 우연히 태백에 ‘전통 가옥 짓기’ 교육을 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고 거기에서 대목 일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시작한 목수 일은 집을 짓는 대목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연장을 다루고 관리하는 법을 배운 후 나무를 다루는 법을 익혔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모든 걸 돈으로 사서 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누려야 할 자연스러운 행복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신발장을 짜거나 가구를 만드는 일, 집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죠. 살림집을 짓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옥의 반복되는 전통 재현 작업 방식에서 차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의 목적이나 방식에서 ‘회화’와 ‘집’의 간극은 몹시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구는 그 틈을 메우기 위한 과정이었나요? 집을 짓고 남은 재료들로 자연스럽게 제가 쓸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잘 다룰 수 있는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재료로 가구를 잘 만들고 싶었습니다.

목수 이정섭에게 나무는 예술적 역량을 노동으로 치환한 도구이자, 인생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무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나무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집에는 인류가 존재한 전 지역에 걸친 나무의 신화가 담겨 있죠. 원시인들은 나무를 신으로 혹은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도 믿었고요. 지구 상의 모든 원자재 중 태양광과 탄소의 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재생되는 재료가 바로 나무입니다. 나무로 지은 건축물과 가구는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에 덮여 있는 경직된 공간에서 그나마 우리를 숨 쉬게 해줍니다.

자신을 ‘목수’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이야기하는 목수는 디자인하는 사람과 가공하는 사람이 분리되기 이전의 전반적인 것을 아우르고 책임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해외 전시에서 영어로 우드워커Woodwoker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카펜터 Carpenter라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내촌목공소에서 목수는 도면을 주면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재의 물성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형태를 가공하고 만드는 일 모두에 관여하는 사람입니다.

내촌목공소의 가구는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이라는 상충되는 평가를 동시에 듣곤 합니다. 대조적인 두 가지 평가에 동의하시나요? 전통적 이라는 평가는 동양 정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한국 사람이고 제가 보아오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들이 가구에 투영된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가구의 단순함과 비례에서 찾은 형태와 제작 방식도 전통성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됐을 테지만, 전 옛날 가구를 재현하는 목수는 아닙니다. 잘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성은 모던합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하던 서양의 앤티크는 장식성이 강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가난했고 장식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죠. 아이러니한 것은 요즘엔 그것을 ‘모더니즘’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조선시대 가구의 조형미는 동시대 일본, 중국의 가구 그리고 유럽 대륙의 가구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릅니다. 사실 소목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탐구해온 주제이며, 현재도 ‘해석’ 중입니다. 언젠가 조선시대 가구를 만든 조상들에 대한 오마주로 꼭 ‘조선 가구의 해석’을 해보고 싶습니다.

1 탄화된 비치우드 소재에 내추럴 오일을 바른 신작 ‘Storage 6’.
2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과 육중한 무게감이 그대로 디자인이 된 신작 ‘Partition’.
3 탄화된 비치우드 소재에 내추럴 오일을 바른 목수 이정섭의 신작 ‘Element 3’

이번 전시에선 기존 가구에서 볼 수 없던 흑색의 나무가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완성된 재료인가요? 이전에 함께 작업한 스위스 회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재료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건조한 나무였는데, 샘플을 받아보고 무릎을 쳤어요. 천하에 못 믿을 게 나무입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가공했다고 생각해도 결과에 이변이 생기곤 하거든요. 기존에 나무를 건조하는 방식은 쪄서 수분을 빼는 거였는데, 이 나무는 발화점인 250℃ 직전까지 온도를 높여 가공하는 방법입니다. 거의 완전하다 싶을 만큼 나무의 수분을 빼는 작업으로 물성 변화가 거의 없는 나무입니다.

금속 사용이 흥미롭습니다. 나무와 금속은 가공 방식부터 재료가 주는 물성까지 서로 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죠. 금속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가구를 시작할 때부터 대장간을 꿈꿨습니다. 지금은 나무 가구와 건축만으로도 벅차지만, 시간이 되면 언젠가 해보고 싶은 작업입니다. 금속은 열을 가하고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 예측할 수 없는 형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자기도 마찬가지죠. 다른 재료는 늘 동경의 대상입니다.

이정섭의 건축 안에는 여지없이 이정섭 목수의 가구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집 전체에 유기적인 호흡이 느껴집니다. 이런 이정섭의 한옥을 구축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전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고 성에 안 차는 것을 적당히 타협하는 재주도 없습니다. 집을 짓다 보니 실제로 전 과정을 제 손으로 하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지은 집의 가구는 물론 자잘한 도구, 문고리, 조명등까지 대부분 직접 만듭니다. 산업혁명 이후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생산과 시공을 함께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 됐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제 집 짓기 방식을 르네상스식 접근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건축가가 짓는 집과 이정섭이 짓는 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건축가의 집은 개념이 있고 철학이 있는 집이라면, 목수인 제가 지은 집은 목재를 많이 사용한 아주 단순한 집입니다.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할 만큼 고집스러운 내촌목공소의 가구 만들기 과정에서 작가의 미감이 가장 절실하게 반영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나무를 고르는 것부터가 가구 만들기가 시작됩니다. 까다로운 작업이라 직원들이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기도 해요. 나무와 나무가 맞부딪치는 부분의 결을 어떻게 매치하느냐가 관건인데, 목공소에 있는 모든 나무를 꺼내 맞춰보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가구의 가장 중요한 피부를 완성시키는 과정이죠. 이 과정은 반드시 제 컨펌을 거칩니다.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최근 내촌목공소를 방문한 분이 제가 지은 집을 보고 ‘RAW’라고 표현했는데 ‘날 것’ 정도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전 원시적입니다. 원시적으로 살고 있고요.

사진 제공 크로프트 

글 곽소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