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
30대 여성이 말하다
‘현재’에 집중했던 10대나 20대 때와 달리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시간 감각이 생긴 듯하다. 아마 내가 너무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나이에 접어들어서일 거다. 전에는 거울을 볼 때 그 속에서 제일 먼저 ‘내가’ 보였다. 사랑에 빠진 나, 사랑을 하는 나. 사랑에 아픈 나 등등. 그런데 요즘은 거울 속에서 나도 잘 기억 안 나는 내 부모의 젊은 얼굴이 자꾸 보인다. 사랑을 받은 나, 받고도 모른 나, 시간에 빚진 나 같은 게…. 그러니까 과거, 나에게 사랑이 ‘열정’과 ‘몰입’에 가까운 거였다면, 지금은 일종의 ‘죽음’에 대한 예감과 더불어 ‘슬픔’과 ‘이해’에 가까운 감정이 된 듯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 지금 여기 없거나, 있어도 곧 사라지게 될 이들의 자리를 헤아리고, 기억하고, 쓰다듬는 일. 부재를 알아챌 뿐 아니라 부재를 상상하는 일. 어쩌면 그게 내가 지금 ‘사랑’이라 부르고 싶은 감정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_ 김애란(소설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터널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외치며 출구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 우리 모두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_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오래 함께하면 풋풋하고 뜨거운 사랑은 조금씩 잃고, 우의는 나날이 깊어진다. 나이가 들면 뜨거운 사랑이 건강에 좋지 않다. 그것은 고도의 정서적 긴장 상태이므로 힘이 좋 아야 견딘다. 서로, 오래된 의자와 내 엉덩이 관계처럼 익 숙하고 안락한 것이 좋다. 함께한 기억의 더께가 소소한 욕망과 갈등을 다 덮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우의는 당연히 시간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쌓이지 않은 우의는 믿을 수 없다. _박범신(소설가, 에세이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중 ‘2012년 2월 12일 서울’에서)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이와 사랑을 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당신에게 이별이 찾아와도 당신과의 만남을 잊지 않고 기억해줄 테니까.기다림을 아는 이와 사랑을 하세요. 그래야 행여나 당신이 방황을 할 때, 그저 이유 없이 당신을 기다려 줄 테니까요. _김남조(시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중에서)
“천지에 빗소리 가득한 날 불현듯 젖은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한때나마 진실로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더라도.”_ <사랑외전> 이외수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40대가 말하다
40대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명료하게, 혹은 어떤 확신을 갖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에 관해서라면 40세가 되던 해에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만약 어떤 것은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결혼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재능만큼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그 노력을 다른 말로 바꾸면 집중력이나 인내심이라고 할까. 나는 이번 생에는 글쓰기의 작업作業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할, 유일한 일처럼 느껴진다. 사랑에는 서로가 상대의 세계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결혼을 포기한 이유는 그런 노력을 할 자신이 없어서인지도, 아니면 우정을 전제로 한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한 개인적 여성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사랑의 공통점은 둘 다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거다. 한 작가로서 그러나 내가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은 우리 삶의 이야기는, 그 무엇이든 간에 사랑의 이야기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_ 조경란(소설가)
결혼 11년 차의 남편이 말하다
며칠 전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한 여자 후배가 고민을 토로했다. 결혼을 늘 하고 싶었고, 마침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고, 벼락같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그의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이게 정말 인생을 건 사랑인지, 결혼을 해도 되는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아마 청춘의 나였다면 그런 사랑은 인생에 한 번뿐일 수 있으니 무조건 잡으라 했겠지만, 지금의 난 서둘지 말라고 답했다. 지금의 내게 있어 사랑이란 ‘자연스럽게 물처럼 흐르는 것’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흐르고 흐르다 보면 자연히 결혼이라는 바다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벼락같은 힘으로 단숨에 물길을 만들고 바다로 유인한다 하더라도, 억지로 만든 물길은 결국 작은 가뭄에도 마르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버릴 수 있는 건 줄은 몰랐어”라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대사는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나 결혼이라는 바다에 자연스럽게 당도했고(심지어 번듯한 프러포즈 이벤트도 없이!), 11년째 그 바다를 항해 중이다. 가끔 폭풍우도 치고 파도에 배가 기울 때도 있지만, 항해란 것이 원래 좀 그래야 묘미 아닌가. _ 김양수(만화가)
시인의 사랑법은 그 목소리처럼 서로 다르다.
“사랑할 때 사랑하라”(정일근)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내게 사랑은 언제나 마지막이었다”(박주택)라는 시인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인다. “절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 낭떠러지 사랑의 전당”(김승희)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과 전율이 바로 사랑의 감정이라면, “당신의 눈길과 마주친 순간”(오세영)이 바로 사랑의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꽃다발을 바치는 것”(고영민)이라고 그 환희의 느낌을 그려낸 시인도 있는데, “당신, 내가 그 마음 안에 가 산다는 것”(신달자)이라는 아늑함으로 사랑의 정조情操를 노래한 이도 있다. 외로움이나 이별, 아픔 등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길 위에서/ 이제는 내 이름도/ 새롭게 아름다운/ 사랑입니다”(이해인)라고 기도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도 이쁘면 꺾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디 있으랴만”(이근배) “잔디 속에서/ 보랏빛 제비꽃으로/ 눈뜬 그대”(김후란)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말하기 어려운 말이다. “한마디만 남았다 결코 말할 수 없었던 그래서 침묵 해야 했던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만”(김태형)이라고 진술한다. “사랑한다면/ 눈물의 출처를/ 묻지 마라”(박후기)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랑의 언어는 언제나 변한다. 사랑의 방식도 사람마다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 그 자체의 의미가 어찌 달라질 리가 있겠는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_권영민(문학 평론가, <왜 사랑하느냐고 묻거든> 서문에서)
사랑을 말하는 음악, 영화, 책
Music
브라이트 아이즈 ‘The First Day of My Life’
사랑에 빠진 날의 아침은 어제의 아침과는 다르다. 아무리 많은 연애를 하더라도, 그 유효기간과 상관없이 연애의 첫날은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으로 가득 차기에 사랑이란 신비로운 법이다. 2000년대 초반, 천재 소리를 들으며 10대 후반의 나이로 데뷔한 코너 오버스트의 원맨 밴드, 브라이트 아이즈는 세 번째 앨범 <I’M Morning It’s Awake, Wide>에서 바로 그 사랑에 빠진 날의 감정을 잡아낸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잠긴 듯한 목소리로 “당신을 만나기 전 나는 장님이었죠. 내가 누군지 지금 나는 알지 못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고 있답니다”라며 파르라니 읊조리는 스물셋 청년의 감성은 뮤직비디오에 의해 완성된다. <헤드윅>의 존 캐머런 미첼이 감독한 이 노래 영상은 다양한 커플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 뮤직비디오에 존재한다.
콜드플레이 ‘Fix You’
한때 귀네스 팰트로의 남편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귀네스 팰트로보다 더 유명한 남자가 됐다. 콜드플레이의 보컬이자 송라이터인 크리스 마 틴 말이다. 2002년 데뷔한 이래 발표한 많은 노래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꼽는다면 누구나 ‘Fix You’를 꼽지 않을까. 아버지를 잃고 비탄에 빠져 있던 귀네스 팰트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당신을 치유해주겠어요’라는 메인 테마를 아는 것만으로도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전개가 만들어내는 감동을 받아들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시작은 개인적 동기였으나 결과는 아가페적 사랑의 메인 테마처럼 됐다. 그래서 그들의 공연에서 이 노래는 모든 관객과 함께 부르는 쇼의 하이라이트다. 몇만의 관객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성령이 나를 치유해주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 착각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뉴스룸>을 비롯한 많은 미드에서 좌절과 극복을 경험하는 이야기의 BGM으로 종종 ‘Fix You’가 쓰인다. 어떤 미드에서든, 이 노래가 나오는 순간은 시청자의 눈물을 뽑아낸다.
비틀스 ‘I Will’
비틀스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I Will’의 탄생 비화는 천재가 사랑에 빠질 때 어떤 명작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폴 매카트니가 결혼한 세 명의 여자 중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산 여자는 린다 매카트니. 폴과 린다는 뮤지션과 포토그래퍼로 만났다. 그들은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뉴욕 공항에서 린다는 폴에게 지금 비행기를 탄다고 전화를 걸었다. 린다가 런던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폴은 피아노 앞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건반을 ‘뚱땅’거렸다. 린다가 폴의 집을 방문했을 때, 폴은 당신을 위해 만든 노래라며 ‘I Will’을 연주했다. 그때 린다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린다에 대한 각별한 마음 덕이었을까? 폴 매카트니는 이 노래의 녹음을 다른 멤버들의 도움 없이 온전히 혼자 마쳤다. 비틀스 해체 후 폴과 린다는 윙스라는 밴드로 함께 활동했다. 린다는 사실상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조차 자신의 사랑과 함께하고 싶은 폴의 의지였다. 2분이 갓 넘는 짧은 노래지만, 수백 번을 들어도 사랑의 정수가 느껴지는 노래를 나는 ‘I Will’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 _김작가(대중음악 평론가)
Movie
오래전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 영화 <노팅힐>을 보았다. 시장 뒷골목에서 서점을 하는 이혼남과 유명 여배우와의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 이야기는 현실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믿었다. 우연히 영화 촬영을 위해 런던에 갔을 때 노팅힐을 찾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사이엔 나와 그녀가 같이 있었다. 나도 그녀와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사랑에도 장벽은 있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사랑의 장벽은 ‘나이’다. 내가 20대에 만난 오래전 그녀의 모습과 비슷한 20대를 만나면 가슴이 설레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20년이 넘는 세월의 벽이 있다. 영화 <은교>를 보고 나서 나의 무기력함과 용기 없음을 술로 한탄하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 “잘 지내라”는 문자 한 줄은 마치 이적요가 은교에게 한 마지막 말 “잘 가라 은교”와 오버랩되면서 더 깊은 슬픔으로 돌아온다. 결국 내 옆에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샐리처럼 십수 년을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친구로 왔다 갔다 하는 그녀만 남아 있다. 그래!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그녀가 지금 내게 말을 건다. 식사 안 하세요? _조성규(영화<내가 고백을 하면> 감독)
Book
책은 사랑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저 숫돌처럼 사랑의 칼날을 예리하게 벼릴 뿐이다. 책 읽은 만큼 사랑할 수 있다면 이미 난 걸어 다니는 페로몬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제게 사랑에 관한 책을 추천받고 싶다면 해줄 테다. 하지만 사랑은 그(녀)의 몸짓, 눈짓이 반짝이는 차 안에서 주로 이루어지니까 차라리 차량 관리소나 영업 사원을 찾아가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아무튼. <모자란 남자들>부터. 유명 생물학자가 썼는데 결론은 암컷은 완전하고 수컷은 모자라다는 것. 남자의 평균수명이 짧은 것도 다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남자가 모자란 건 ‘당연’하니까 잘 구슬려서 챙겨주시길. 그리고 <싱글맨>. 왜 남녀 간의 사랑만 사랑이지?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사랑이 아닌가? 난 아니더라도 그들을 이해하면 나의 사랑을 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게이이자 유명 디자이너인 톰 포드의 영화감독 데뷔작 <싱글맨>의 원작이다. 마지막으로 <은교>. 사랑은 젊음에 대한 애타는 미련이다. 그런데 젊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평범한 소녀가 “앙영하세요”라고 혀짤배기소리로 인사해도 노인에게는 여신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다. _ 밥장(일러스트레이터)
말랑말랑한 로맨틱 공연
로맨틱 사운드, ‘스티브 바라캇 밸런타인 콘서트’
스티브 바라캇은 ‘레인보 브리지Rainbow Bridge’ ‘더 휘슬러 송 The whistler’s song’ ‘플라잉Flying’ 등 그의 음악이 TV와 CF, 라디오 시그널로 꾸준하게 사용되면서 친숙해진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다. 러브 신 배경으로 늘 손꼽히는 음악인 만큼 2월의 낭만을 만들기 제격이다.
2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문의 1577-5266
발렌타인 재즈 파티, ‘스파클링 재즈’
전시와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특별한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보자. 2월 14일, ‘스파클링 재즈Sparkling Jazz’라는 테마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전시 중인 을 둘러보며, 재즈 아티스트의 공연을 미술관 안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모든 입장객은 주류를 무제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솔깃하다. 특히 미술관에서의 청혼 계획을 이메일(daelimmuseumparty@gmail.com)로 보내면 추첨을 통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문의 02-720-0667
‘시카고 심포니&리카르도 무티 콘서트’
시카고 심포니의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클래식 역사의 뒤를 잇는 최정상급 마에스트로다. 그가 첫 내한 공연을 한다. 정통 클래식부터 현대 작품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그의 무대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 이번 슈퍼 콘서트에서 그는 솔리스트와의 협연 없이 오케스트라 중심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2월 6일부터 7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문의 1577-5266
디자인 송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