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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츠바타 하우스 노인의 집으로 오세요
일본 나고야 시 근교의 35년 된 단층 주택. 2백 평의 텃밭과 30여 평의 잡목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집에 히데코 씨와 슈이치 씨가 삽니다. 60년을 해로한 이 부부의 삶은 ‘평안’이 인생의 큰 가치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나이 들 수 있다면 결코 삶이 두렵지 않겠지요?


1925년생, 올해로 89세가 되는 츠바타 슈이치 씨가 세 살 어린 츠바타 히데코 씨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벌써 서른여섯 해 전입니다. 건축가로 일하며 주택공단을 설계한 슈이치 씨가 이 집(츠바타하우스)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75년의 일입니다. 존경하는 건축가 안토닌 레이먼드의 집을 본따서 ‘작은 집’을 지은 것이지요.
슈이치 씨의 어머니가 아들 내외와 함께 살 생각으로 산 땅에 들어선 이 집은 처음에는 히데코 씨와 딸의 작업실로 지은 것이랍니다. 두 사람은 직조織造를 하거든요. 어쩌다 보니 부부가 살게 됐지요. 덕분에 부엌은 좁고 불편한 데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환풍기도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2구짜리 가스레인지와 오래된 오븐만 덩그러니 있지만 히데코 씨는 크게 불만이 없답니다. 부엌을 ‘유일한 나의 성역’이라고 부르며 ‘부엌이 집의 중심’이란 것을 모르는 남편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줍니다. 츠바타하우스는 높은 천장과 대들보가 인상적인 통나무집입니다. 현관은 따로 없고 원룸처럼 뚫려 있지만 먹고 쉬는 공간, 잠자는 공간, 슈이치 씨의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츠바타하우스의 사계절은 언제나 봄
츠바타하우스의 가장 자랑거리는 2백 평이나 되는 텃밭입니다. 이곳을 두 사람은 21개 구역으로 나누어 양배추, 가지, 오이, 토마토 같은 채소를 계절별로 심고 가꿉니다. 밭 주위에는 체리나무, 매실나무, 유자나무 같은 과실수도 심고 말이지요. 덕분에 70여 종의 채소와 50여 종의 과일을 얻는데 모든 게 다 유기농입니다. 화학비료는 일절 쓰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쓰지요. 처음부터 텃밭이 비옥했던 것은 아닙니다. 온통 자갈밭이던 곳을 히데코 씨가 동서로 길게 밭이랑만 만들어서 씨앗을 심어뒀는데, 슈이치 씨가 은퇴하고 집에 있더니 어느 날 ‘자기 스타일’대로 구역을 나누고 잡목 숲도 만들었지요.
히데코 씨도 처음에는 어디에 뭐가 심어져 있는지 몰라서 못마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하기 쉬워졌답니다. 슈이치 씨는 커다란 지도를 그려서 번호를 매긴 다음 계절별로 심고 수확하는 작물들을 적어뒀답니다. 집 서쪽의 30평 정도의 공간에는 1백80여 그루나 되는 나무를 심었더니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석양을 가려주고 조화를 이룬답니다.
두 사람은 이 텃밭에서 사계절을 보냅니다. 봄이면 토마토, 옥수수, 호박 같은 여름 채소의 씨앗을 뿌리고 물기를 머금은 봄 채소를 수확하지요. 샐러드엔 제격입니다.
5월이면 체리를 수확할 수 있으니 잼이나 파이를 만듭니다.
여름에는 보리를 볶아서 보리차를 만들고, 텃밭에서 자란 락교로 일년 먹을 절임을 한가득 만듭니다. 우메보시(매실장아찌)도 1년 내내 먹을 만큼 만들 수 있는 것이 여름이지요.
여름에는 구운 옥수수와 신선한 샐러드, 빵과 디저트가 식탁을 풍성하게 채웁니다.
가을은 수확한 기쁨을 나누는 계절입니다. 채소와 과일로 소포를 꾸려서 택배로 선물합니다. 직접 만든 잼도 넣고 먹는 방법을 그린 카드와 나무 판에 그린 그림 편지도 넣는답니다.

1 슈이치 씨는 봄이 되면 직접 만든 화로로 베이컨을 만든다. 남자의 손님맞이라고.
2 두 사람이 함께 파르메산 치즈를 넣은 크래커를 만들고 있다.


3 츠바타하우스의 실내는 원룸형으로 먹고 쉬는 공간, 자는 공간, 작업 공간으로 나뉜다.
4 유자를 수확하는 히데코 씨.



5 가을의 끝 무렵 수확한 감과 유자, 라임, 밤 등은 소포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다.


향기 솔솔 군침 도는 츠바타하우스
덕분에 두 사람은 25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과일채소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슈이치 씨는 밥과 국으로, 히데코 씨는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지요. 하루 세 번의 식사 모두 히데코 씨가 직접 만듭니다. 히데코 씨는 좁은 부엌이지만 오히려 손만 뻗으면 모두 닿으니 일하기 편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히데코 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손님맞이입니다.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요. 텃밭에서 딴 제철 채소와 단골 가게에서 산 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히데코 씨의 요리는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이치 현의 부유한 양조장 집안의 딸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도 가정부의 시중을 받고 살던 히데코 씨지만 밥 짓거나 정리하는 것을 싫다거나 귀찮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네요.
슈이치 씨라고 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봄철 손님맞이의 으뜸 메뉴는 슈이치 씨가 만드는 베이컨입니다. 벽돌로 직접 만든 가마에 숯을 넣고 돼지고기를 매달아서 벚나무 칩이나 월계수 칩으로 연기를 내서 만듭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떡을 만들 때도 무거운 떡메를 가뿐히 들었다 내려치는 슈이치 씨랍니다.

1 좁고 불편해 보이지만 히데코 씨는 못 하는 게 없는 부엌.
2 진정한 딸기철 5월이 되면 히데코 씨는 쇼트케이크를 만든다.


3 텃밭에서 자란 락교로 매년 절임을 만든다.
4 쇠고기 다다키, 장어초밥, 감자 샐러드, 꼴뚜기초밥 등 히데코 씨의 가장 큰 즐거움은 상차림이다.
5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과일로 소포를 꾸린다. 직접 만든 잼과 먹는 방법을 그린 카드도 넣는다.
6 슈이치 씨의 그림일 기 - 어느 봄날의 상차림.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 아침 식사로 히데코 씨는 빵을, 슈이치 씨는 밥과 국을 먹는다.


꿈과 함께 끝나지 않을 츠바타하우스의 내일
두 사람의 하루는 50년을 함께해온 부부답게 평안합니다. 특별히 많은 말이 오가지 않지만 일상이 순조롭습니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은 ‘메모판’으로 ‘거리 두기’를 하면서 자기가 할 일은 스스로 한답니다.
털털하지만 손이 큰 히데코 씨와 치밀하고 꼼꼼한 슈이치 씨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답니다. 바로 ‘강요하지 않기’. 채소를 좋아하는 슈이치 씨에게 히데코 씨는 억지로 먹으라고 말하지 않고, 슈이치 씨 역시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평생 요트 타는 것이 취미이던 슈이치 씨는 3년 후에도 건강하다면 1991년과 1993년에 참가한 타히티 요트 크루징에 다시 한 번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요트에 돈을 쏟아부어서 노후 자금도 없이 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지만요. 슈이치 씨는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텃밭 옆에 두 딸을 위한 ‘별장’을 짓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설계도도 완성했으니 언젠가는 슈이치 씨의 별장도 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슈이치 씨와 히데코 씨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봅니다.

거실 한쪽에 마련한 슈이치 씨의 서재. 책장 가득 그가 쓴 츠바타하우스의 기록이 담긴 파일이 채워져 있다.


1 히데코 씨는 베틀로 목도리를 짜고 털실로 양말을 짜서 지인과 지진 피해 지역에 보낸다. 
2 무엇이든 오래 쓰는 두 사람. 입기 편한 바지가 닳아서 구멍이 나도 열심히 입는다.
3 슈이치 씨가 두 딸을 위해 그린 별장 설계도.

글과 사진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청림Life) 

정리 이은석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