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의 벽이 없는 자유로움을 패션의 매력으로 꼽는 박은관 회장은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박물관을 만드는 과정과 핸드백의 역사를 꼼꼼히 기록한 책 <핸드백의 모든 것: 시몬느 핸드백 뮤지엄>도 발간했을 만큼 가방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1 백스테이지 3층부터 5층까지 이어진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은 약 3백50여 점의 핸드백이 전시돼 있다. 작품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해 영국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한 주디스 클락Judith Clark 교수와 미국 FIT의 박물관장 발레리 스틸, 박은관 회장, 세계적 경매 회사 소더비를 비롯한 전문 수집가 네트워크가 총동원됐다.
2 15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핸드백 역사를 담은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에는 1860년대에 만든 영국산 반짇고리, 소더비 경매가 1억 원을 호가하는 1998년 에르메스 버킨백, 2010년에 알렉산더 맥퀸이 만든 클러치백 등 다양한 가방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핸드백의 역사는 곧 여성의 역사다
지난해 신사동 가로수길에 좀 이상한 건물이 하나 생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더니 지붕에는 아예 손잡이가 붙어 있다.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이 있는 백스테이지Bagstage는 가방 모양의 외관부터 파격적이다. 지상 5층, 지하 5층 규모의 이곳은 핸드백 편집 매장과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무료 임대 매장, 핸드백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공방 그리고 핸드백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핸드백 회사를 설립한 지 25년 됐어요. 제 경력 34년을 포함해서 우리 직원 2백80여 명의 경력을 모두 합하면 3천 년이 훌쩍 넘어요. 그동안 수십 개 브랜드의 가방을 만들었으니 가방 생산 노하우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핸드백 제작에 평생을 바친 사람의 자부심으로, 2백여억 원을 들여 핸드백 박물관을 개관한 박은관 회장은 글로벌 명품 핸드백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인물이다. “가방 만드는 일을 오래 하다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요. ‘핸드백은 언제 처음 등장했나요?’ ‘여자들은 왜 그렇게 핸드백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이런 모든 질문에 답해줄 만한 박물관이 있으면 좋겠구나 했어요. 오랫동안 핸드백 하나만 만들어왔으니 우리에게는 세계 최초 핸드백 박물관을 설립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사명감도 있었고요. 또 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 지은 백스테이지는 가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25년 동안 시몬느가 걸어온 핸드백 무대의 뒤(back stage)를 보여주는, 또 다른 핸드백의 무대(bag stage)인 셈이지요.”
핸드백 모양으로 지은 백스테이지 빌딩은 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큰 핸드백이다. 1층에는 시몬느가 야심 차게 내놓은 첫 브랜드 0914의 핸드백을 만나볼 수 있고, 2층은 수입 편집 매장으로 운영돼 우리나라에 아직 공식적으로 수입하지 않은 레베카 밍코프Rebecca Minkoff, 키셸Kiechel, 밀리Milly 등의 핸드백을 판매하며, 지하에는 DIY 공방과 카페, 다양한 가죽 소재를 구입할 수 있는 매장들이 자리한다.
박은관 회장은 “핸드백이란 여자가 살고 있는 삶과 살고 싶은 삶의 괴리를 메우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가방에는 그 사람의 생활이 담겨 있고 그 안에 삶의 희로애락이 있다.
지하 1층 카페 의자 등받이에 그려진 핸드백 그림이 흥미롭다. 그림 하나하나마다 박은관 회장의 애정이 깃들어 있다.
전시 작품들은 특정 시기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적절히 시대를 안배하고, 꼭 언급해야 할 대표작만 골라 모으는 3년여의 과정을 거쳐 선별한 것이다.
백스테이지 공방에서 한 달 동안 4회의 수업으로 진행하는 핸드백 DIY 클래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중 하루를 선택해 가방을 만든다.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 20만 원. 문의 02-3444-0739
가방 안으로 들어간 청년
시몬느와 0914란 이름에는 박은관 회장의 러브 스토리가 담겨 있다. 시몬느는 아내를 부를 때의 애칭이고, 0914는 연애 시절 아내와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날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상하시는 것처럼 대단한 로맨티스트는 아닙니다. 아직까지 가슴 떨리고 번갯불 맞은 것처럼 열정이 타오르거나 하진 않아요. 다른 50대 부부처럼 대화도 부족하고, 두 딸과의 소통도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청년이 어느 날 가방 회사를 차리고, 25년 후 핸드백 박물관을 짓기까지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했다. “아버님이 원양어업을 하셨어요. 조선소, 객주까지 운영하실 만큼 규모가 컸지요. 어릴 적부터 아버님 따라 배 타고 바다를 누빈 터라 집에선 당연히 가업을 이을 줄 아셨을 거예요. 그런데 전문성도 없이 사장이 되는건 아니다 싶어 3년만 사회 경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취업을 했는데, 그곳이 핸드백 회사였어요. 별 생각 없이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탈리아로 첫 출장을 갔다가 문화적 쇼크를 받았지요. 그때가 베네통이 막 론칭했을 무렵인데, 남자 바지가 무지개 색깔로 있는 거예요. ‘패션이라는 건 참 자유롭구나!’ 감탄하면서 일에 빠져들었는데, 배울수록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열심히 했더니 입사 1년 반 만에 대리 달고, 6개월 뒤 과장, 1년 뒤 차장, 또 1년 만에 수출총괄부장이 됐어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소재와 스타일을 개발하면 몇 달 뒤 세계 어디서든 내가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 성취감이 대단했지요. 건설이나 금융 일은 그림으로 치면 200호, 300호짜리 대작인데 제 일은 10호, 20호짜리 소품이에요.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색깔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신이 나죠.”
1987년, 고급 핸드백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결심한 박은관 회장은 럭셔리 핸드백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유럽의 제조 공장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아시아에 기회가 올 거라고 판단했다. 첫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견본을 만들어 무작정 DKNY 바이어를 찾아갔다. 그렇게 매달려서 3백 개도 안 되는 주문을 받아왔는데, 그다음 주문량이 6백 개, 1천2백 개로 늘더니 6개월 후엔 디자이너를 보내서 새 제품 한번 개발해보라 했단다. 아시아에서 세계적 명품 핸드백의 제조는 물론, 기획과 디자인까지 한 첫 사례였다.
정체성이 확실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박은관 회장은 시몬느의 첫 브랜드 0914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멋을 전하고 싶다고.
직업을 가지면 그것이 곧 삶이 된다
여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가방을 든다. 그래서 걱정이 많은 여자일수록 가방이 무겁다. 쉴 새 없이 내달리고 머릿속에는 수천 가지 생각으로 가득하니 가방도 덩달아 무 거워진다. “핸드백이란 여자가 살고 있는 삶과 살고 싶은 삶의 괴리를 메워준다”는 박은관 회장은 오늘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여자들을 위해 1만 4천 가지 디자인의 핸드백을 만든다. “시몬느는 지난 25년간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의 핸드백을 만들어오면서 하드웨어인 제조 노하우만 쌓지 않았어요. 소프트웨어 격인 소재와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지요. 새롭게 론칭하는 브랜드를 위해 적절한 포지셔닝과 마케팅 전략을 구상해 어떤 콘셉트로 브랜드를 알려야 하는지를 컨설팅하기도 했고요. 이미 선진국의 명품 시장은 분화하기 시작했어요. 판타지가 사라지면서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시장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지요. 우리나라도 한국 문화와 정체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수준이 됐잖아요. 경제ㆍ사회ㆍ문화적 성숙도가 높아졌고, 드라마와 영화, 스포츠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지요. 그런데 아직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없어요. 시몬느가 그걸 만들려고 합니다. 외국 브랜드를 사거나 유명 디자이너 이름에 기대지 않고 당당히 우리의 이름으로 도전할 겁니다.”
시몬느에는 과실수가 많다. 밤, 감, 배, 자두, 사과나무 등 여러 종류의 과실수가 있는데, 계절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2003년 건축대상을 수상한 본사 건물. 로비의 아트리움은 천장이 높아서 음악회를 열기 좋다.
시몬느는 1987년 열다섯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 정신 없이 이끌어오다가 1년쯤 되었을 무렵, 박은관 회장은 모두에게 약속했다. 외국의 오피스 캠퍼스처럼 회사에서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본사를 지을 때 그가 건축가에게 요구한 사항은 딱 세 가지였다. 첫째, 인테리어 소재가 자연 친화적일 것. 둘째, 비 오는 날 사무실에서 손을 뻗으면 빗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질 수 있는 아웃도어 공간이 실내 공간과 연결될 것. 셋째, 꽃과 나무를 가까이할 수 있는 정원과 산책로를 만들것. “회사에 실내 정원이 다섯 개 있어요. 실내에서 실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좋더라고요. 일하는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려면 우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런데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갑, 머리, 가슴’도 필요해요. 지갑은 만족할 만한 월급, 머리는 자기 계발과 동기부여, 가슴은 ‘우리’라는 공감대와 신뢰예요. 이 세 가지가 충족돼야 회사 일이 곧 내일이 됩니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에게 자신의 목표를 같이 볼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그래야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중심 가치를 공유하면 리더 혼자가 아닌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지요.”
2년 후 도산공원 앞 랄프 로렌과 로에베 매장 사이에 0914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준비 중인 박은관 회장의 사무실은 각종 설계도면이 펼쳐져 있었다. “요즘 0914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방으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알리면 좋을지 구상 중이에요. 평소 ‘창의적 생각을 하자’는 얘길 자주 하는데, 창의성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잖아요. 창의적 생각이 1백 달러짜리, 1천 달러짜리 제품을 만들지요. 1년에 계절이 네 번 바뀌고, 그 속에서 유행은 수도 없이 바뀝니다. 변화를 어색해하면 안 돼요. 틀에 박힌 생각은 위험합니다.” 앞으로 20년 이상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박은관 회장은 시몬느라는 이름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 ‘지금’이라는 이 과정을 신바람 나게 항해 중이다.
- 시몬느 박은관 회장 당신의 가방에는 어떤 인생이 들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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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제이콥스, 버버리, 코치, DKNY 등 세계적 브랜드의 핸드백을 만드는 회사가 뉴욕이나 런던이 아닌, 경기도 의왕시에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롭다. 명품 가방을 제작하는 시몬느의 대표 박은관 회장을 만났다. 그는 과연 어떤 인생을 가방에 담고 있을까.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