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씨는 가정과 업무에 지친 몸과 정신이 암벽을 오르면서 치유가 된다고 말한다.
“컴온! 컴온! 그렇지!” 높고 높은 벽면에 올라 알록달록한 색깔의 홀드(암벽을 잡는 부분)를 부여잡은 이들이 높은 곳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에서는 가열찬 함성이 이어진다. 그들은 벽에 달라붙은 스파이더맨을 떠올리기도 하고, 온몸을 바쳐 오체투지하는 수도사와도 닮았다. 암벽등반에 푹 빠져 있다는 이은미 씨를 만난 곳은 수유리의 다이노월 암장. ‘벽 좀 탄다’ 하는 사람들이 사방을 둘러싼 벽면에 매달려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무척 다양하다는 점이다. 미용사인 이은미 씨도 40대 중반에 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본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게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그가 등반을 시작한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원래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해요. 수상스키나 승마도 오래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해 서 운동을 좀 자제했죠. 그때 병원에서 추천해준 것이 암벽등반이었어요. 빠른 시간에 근력을 키울 수 있으면서 사계 절 즐길 수 있는 실내 스포츠 중 암벽등반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 마침 집과 가까운 곳에 암장이 있 어 퇴근길에 들렀다가 바로 수강 등록했죠.”
“암벽등반은 안전하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면, 암벽을 등반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암벽을 오르는 이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1993년 영화 <클리프행어>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당시 근육질 슈퍼스타이던 실베스터 스탤론이 거대한 빙벽을 등반하는 장면은 영화 줄거리보다 더 깊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함께 등반하던 여자가 그의 손을 놓치면서 추락하는 도입부를 기억하는가? 암벽등반이란 그렇게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위험천만한 스포츠가 아닌가! 하지만 다이노월의 등반 강사이자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의 이재용 감독은 “규칙만 잘 지키면 암벽등반은 안전한 스포츠다”라고 말한다. 등반의 모든 규칙은 안전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은미 씨 또한 등반을 배우기 전 ‘암벽등반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스포츠일까?’ ‘몸이 다칠 가능성은 없을 까?’ 하는 고민을 아주 많이 했다.
“처음에는 중심을 잡지도 못하고 홀드를 잡는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어요. 힘의 분배가 중요한데, 손가락 힘으로 매달리려고만 했거든요. 힘이 달려 잠시도 버티지 못했지요. 안전 교육을 받으면서 몸의 중심인 삼각점을 찾는 훈련을 반복했고, 팔과 다리 등으로 힘을 분배하는 것을 몸으로 익혔어요. 신기한 것은 계속 시도할수록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거예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홀드를 잡고 발을 내딛는 과정이 익숙해지고 실력이 늘었더라고요. 근력이 좋아진 거예요.”
1 손가락을 보호하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암벽을 오르기 전에는 테이핑이 필수다.
2 알록달록한 홀더 색깔은 난이도를 뜻한다. 동일한 색깔의 홀더를 잡고 연습하며 레벨을 업그레이드하는 순서다.
3 안전벨트, 로프, 로프 장갑, 확보기, 초크백, 클라이밍 슈즈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한다.
두 명이 함께 완성하는 스포츠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분주하게 장비를 챙긴다. 아무리 낮은 인공 암벽이라도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안전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리라.
“안전벨트와 로프를 비롯해 여러 장비를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쇠고리 카라비너, 확보기, 클라이밍 슈즈 그리고 몸을 움직이기에 편한 복장과 긴 머리를 질끈 묶을 수 있는 머리 끈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등반 경험이 전혀 없다면 먼저 체험 등반을 해본 후 장비를 챙기는 것이 좋아요. 일단 본인에게 맞는 운동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손가락 보호를 위해 테이핑을 하며 볼더링bouldering을 준비하는 이은미 씨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볼더링은 작은 바위 모양의 벽면을 로프 없이 오르는 것으로, 추락의 부상은 비교적 적지만 어려운 기술을 익힐 때 연습하는 것. 신중하게 홀드를 잡고 스탠스(발 디딜 곳)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몸의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면서 다음 단계로 움직였다. 볼더링 패드가 바닥에 깔려 있었지만 3m 이상 올라가자 올려다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긴장감에 내 입이 절로 살짝 벌어졌다. 천천히 하강해 내려온 그는 한 달을 쉬었더니 몸이 둔감해져 마음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는단다.
“사정이 생겨서 한 달을 쉬었는데, 다시 초보자가 된 기분이에요. 등반이 그래요. 저처럼 초보자는 많이 연습하지 않아도 꾸준하게 시도하는 것이 중요한데, 공백이 생기면 금세 몸에서 탄로가 나요. 이제 리딩을 해볼까요?” 암벽등반에는 볼더링과 더불어 로프를 이용해 2인 1조로 등반하는 리딩leading 방식이 있다. 등반자가 암벽에 박힌 확보물에 로프를 통과시켜 걸면서 먼저 오르는데, 이때 확보자는 로프를 잡고 등 반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땅에서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로프를 걸며 15m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볼더링보다 시각적 긴장감이 더 크게 몰려왔다. 이은미 씨가 암벽을 오르면 확보자는 로프를 잡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하강할 때도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조절하는 이도 땅 위의 확보자다. 등반자와 파트너인 확보자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 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내 암장에서야 등반자가 늘 확보자의 시야 안에 있지만, 등반자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야외 암벽에서는 로프를 만지는 손끝의 힘으로 등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재용 감독은 그것을 ‘자일(로프)의 정’이라 부른다.
“실제 산에서 암벽을 오를 경우 밑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사람이 시야의 한계 때문에 등반자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추락하는지 눈으로 보이지 않지요. 근데 이상하게 알아차립니다. 아 조금 위험한 상황이구나, 등반자가 불안해하는구나, 컨디션이 좋구나, 빨리 가는구나…. 줄 끝으로 느끼는 거지요. 서로 생명을 책임지고, 생명을 맡기는 일이거든요. 암벽등반은 그렇게 서로의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완성되는 스포츠입니다.”
확보자의 도움으로 하강하는 순간, 성취감과 함께 암벽을 오를 때 보지 못한 세상이 보인다.
암벽등반을 하면 예뻐진다 암벽등반을 하려고 마음먹었어도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스포츠일까? 과격한 남성 스포츠를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은미 씨는 아무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도 2개월 강습을 받은 이후부터는 혼자 등반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균형 감각. 균형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체력이 부족해도 기술을 빨리 익히고, 등반도 비교적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균형 감각이 남자보다 뛰어난 여자가 등반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이은미 씨는 클라이밍 대표 선수인 김자인 선수처럼 섹시한 등 근육과 날렵한 허리 라인을 단시간에 갖출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제가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한 달 반 만에 6kg이 줄었어요. 등반에 빠져서 거의 매일 두 시간씩 했거든요. 실력이 늘면 욕심이 생기고, 오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동료들이 ‘그만하고 내려오지’라고 말하면 괜히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연습했죠. 단시간에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여성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여기 오랜시간 등반한 사람들을 보면 잔근육이 아주 근사하게 잡혀 있어요. 암벽등반으로 생긴 등 근육은 참 섹시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답니다. 하하하.”
암벽등반이 섹시한 등 근육을 만들어주는 이유는 자세 때문이다. 홀드를 잡고 어깨너비 기준의 좁은 간격으로 움직일 때는 앞 근육이 발달하고, 반대로 넓게 움직이면 뒤 근육이 발달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리딩보다 볼더링이 효과가 좋다. 몰입해서 심취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꿀 근육’을 만들 수 있으니 꼭 도전해볼 것! 손으로 홀드를 잡고 1분간 매달려 있을 때 칼로리 소모량도 분당 10kcal에 달한다. 러닝머신 10km 기준으로 분당 소모량이 5kcal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운동량이다.
암벽을 오르는 이유는 있다 이은미 씨는 암벽에 오르는 두려움보다 완등했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큰 즐거움을 준다며 계속 암벽등반에 도전할 것을 다짐했다. “암벽을 오를 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 이상의 희열이 있어요. 손바닥에 굳은살도 박이고, 네일 케어도 받지 못하지만 기분이 좋더라고요. 손톱에는 ‘네일 아트’를 붙이면 되지요. 몸을 많이 움직이니까 다음날 아침에 근육통을 살짝 느끼기도 하는데, 기분 좋은 통증이에요. 내 몸이 예쁘고 건강해지고 있거든요. 암벽등반을 남성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렸으면 해요. 제가 배우고 있는 암장에도 남녀 비율이 거의 같아요.” 등반을 하면 시야가 좁아져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극대화된다. 이때 분출되는 아드레날린이 오히려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그 깊은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아, 내가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닐는지…. 암벽에 오르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암벽등반을 하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이라 고, 내가 오른 그 험준한 길을 바라보며 그제야 살아 있음을 절절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실내 암벽등반을 배우려면? 실내 암벽등반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구마다 하나꼴로 있으며, 전국에 약 3백 개의 인공 암벽장이 있다. 노스페이스 문화센터의 다이노월 암장은 층고가 15m, 벽 면적이 707㎡로 실내 상업 시설 중에는 최대 규모. 동 시간대에 약 50명 정도 이용이 가능하다. 비용은 2개월(일주일 2회) 프로그램에 30만 원. 대부분의 암장에서 초보자를 위한 안전 교육과 일일 체험을 함께 실시하니 수업을 신청하기 전에 본인에게 잘 맞는 종목인지 미리 테스트해보자.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 홈페이지(www.kafsc.or.kr)에서 전국 인공 암벽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도움말 이재용(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감독) 장소 협조 노스페이스 다이노월(02-900-6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