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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편히 드나드는 동네 한의원 약다방 봄동
약차藥茶를 마시며 한의사와 건강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힐링 카페가 있다. 한의사의 다방, 약다방 봄동이다.


약다방 봄동에 상주하는 일곱 명의 한의사.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상엽, 김병현, 김은영, 윤강대, 이훈석, 구창영, 임미림 씨.

1 벽돌과 기존 골조를 유지해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약다방 봄동.
2 약藥자와 십자가 표시가 미니멀한 이곳의 간판.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 내리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젊은 에너지로 가득한 홍대 앞 특유의 멋을 즐기고 싶을 때, 혹은 인적 드문 골목을 걷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다. 전자의 경우는 홍익대 방향으로, 후자일 때는 성산동 방면의 출구를 선택하면 된다. 성산동 방면으로 나와 고요한 주택가를 지나 발길을 옮기다 보면 하얀색 팻말 두 개가 걸려 있는 주택 하나가 나타난다.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차 한잔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곳, 바로 ‘약다방 봄동’이다.

주택을 개조해 지하엔 한의원, 1층과 2층은 카페로 꾸민 이곳은 예전 집의 모습이 한눈에 그려질 만큼 이전 구조를 최대한 살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반들반들한 나무 계단과 마당에 오래 있었음 직한 커다란 감나무를 보니 외갓집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꽤 넓은 공간인데도 테이블이 열 개 남짓이다. 테이블 간격을 넓게 두고 벽과 기둥으로 공간을 분리해 방해받지 않고 손님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한 주인장의 마음씨가 고마운 한편, 경제성과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공간 주인장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이곳의 주인은 무려 열여섯 명이다. 환자와의 소통을 통해 병의 치료를 돕는 ‘인간 친화적 진료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젊은 한의사들이 만든 보건의료문화 기업인 에고앤에코 ego&eco에서 마련한 공간인 것.
왜 하필 다방일까? 이상엽 원장은 차를 마시며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인 다방이 바로 그들이 꿈꾸는 병원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득 한의원에서 환자와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마주한 뒤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진료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환자와 대화하고 관찰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환자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치료라는 답을 얻었지요. 그런데 그런 치료가 가능하려면 우선 병원이 주는 딱딱하고 불편한 이미지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든 자유롭게 들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고찰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다방만 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 약다방을 시작한 것입니다.”

내 몸을 위한 맞춤 약차 약다방 봄동엔 커피 향 대신 한약 냄새가 난다. 그 흔한 커피 메뉴 하나 없는 대신, 한약을 차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약차 메뉴를 갖추었다. 한약을 ‘치료약’이 아닌 ‘약이 되는 차’로 즐기게 하면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약다방 오픈을 준비하며 가장 공들인 부분이 바로 약차 메뉴 개발인데, 효능이 있는 약재의 배합은 물론 맛과 향까지 고려하느라 수차례의 시음회도 거쳤다. 메뉴판은 보디body 약차와 브레인brain 약차로 나뉜다. 신체적으로 분명한 자각증세가 있을 때는 보디 약차를, 기운을 얻고 싶을 때는 브레인 약차를 선택하고 증상에 따라 열여덟 가지의 보디 약차와 열 가지의 브레 인 약차를 고른다.

보디 약차의 경우 신체를 앞뒤, 위아래, 좌우로 나누고 그 부위에서 발생하는 증상을 분류한다. 즉, ‘나른하다’고 느낀다면 메뉴에 쓰인 ‘하품과 기지개가 잦고, 말귀가 어두워지며 갑자기 근육 경련이 일어나곤 한다’는 증상에 부합하는지 확인한 뒤 ‘채방’이라는 약차를 주문하는 식이다. 생소하고 다소 까다로운 메뉴 주문 방식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두 메뉴판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이상엽 원장은 손님들에게 메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각각의 증상을 꼼꼼히 읽으며 내 몸과 마음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일이 현대인이 추구하는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디 약차는 전통적 한약 조제 방식 그대로 약효의 목적에 맞게 적절한 약재를 정확한 양으로 배합해 옹기에 담고 약한 불에서 오랜 시간 달여 완성하며, 브레인 약차는 약재의 약성이 최대한 드러나도록 오랜 시간 로스팅해 만든다. 보디 약차 한 잔에는 대부분 10~15가지 이상의 약재가 들어가는데, 약차를 만드는 과정부터 주문과 서빙까지 모두 이곳의 한의사들이 맡고 있다. 약차를 원하지 않는 손님을 위해 건강 재료로 만든 차와 음료, 인절미와 단팥죽 등 주전부리 메뉴도 갖추었다. 오래도록 떡과 한과를 배운 김은영 원장이 매일 아침 방앗간에서 찹쌀가루를 빻아 호박인 절미를 만들고, 단팥죽을 쑨다. 한의원 진료와 약차를 만드는 일, 요리 등을 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간 다는 김 원장은 메뉴 몇 가지를 추가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주방을 드나들며 요리 공부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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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차를 주문하면 생강편과 대추편, 유과 등 한약과 조화를 이루는 주전부리도 함께 제공한다.
2 봄동에서는 마당을 내다보며 족욕을 즐길 수 있다.
3 약차를 주문하면 몸의 기운에 따라 약재의 배합이 달라진다.
4, 6 약다방답게 약재와 인체 해부도 등 한약방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소품을 두었다.
5 브레인 약차는 약재를 오랜 시간 로스팅해 만든다. 약재의 약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7 이상엽 원장이 본인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을 아낌없이 가져와 한쪽 공간을 북 카페로 꾸몄다.
8 김은영 원장이 매일 만드는 호박인절미.

9 약차에 들어가는 수십가지 약재를 선별하고 정교하게 배합하는 일에 세심한 공을 들인다.
10 증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봄동의 메뉴판.
11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레몬차와 감기 예방에 도움을 주는 매실배차.

건강한 소통의 공간 진료실에서만 일하던 한의사들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다. 신메뉴를 시도하다 주방을 어지르는 일은 허다하고, 메뉴의 원가를 책정하는 일도 아직 서툴다. 족욕 약재도 현재는 두 가지만 제공하고 있으나 막상 다양한 손님을 만나고 나니 부족함을 느껴 한 가지를 더 추가하려고 연구 중이며, 또 이해하기 쉽도록 메뉴판을 바꾸는 일도 차차 진행할 예정이다. 대중을 위한 한의학 세미나를 진행해 환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일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이곳의 약차에 반해 다시 찾는 이가 늘어나고, 약차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의사와 오래도록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에 한의원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몸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젊은 한의사 16인과 약다방 봄동이 꾸는 꿈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203-36 문의 070-4639-2221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