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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구와 수공예품의 미감을 담은 제주 본태박물관
제주 본태박물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전통과 현대가 조우하는 공간을 통해 우리 전통의 속 깊은 아름다움과 운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전시관 건축은 단순히 전시를 위한 껍데기가 아닌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 속에서 이뤄지는 ‘콘텐츠’에 의해 완성된다는 말처럼.


본태박물관 전통관 전시실에 마련한 ‘소반 타워’. 소반을 단아한 건축으로 해석한 이행자 씨의 철학과 정직한 선과 모듈을 중시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성향이 접점을 이뤄 완성된 공간이다.

지난 11월 초 개관한 본태박물관. 설립자인 이행자 씨가 지난 30여 년간 모아온 한국 전통 수공예품과 현대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설계는 2009~2010년 약 2년여에 걸쳐 진행했으며 2011년 가을에 착공한 후 지난 11월 오픈했다.

두 개의 전시관을 잇는 공간은 한국의 전통 담벼락과 좁은 골목, 가느다란 냇물과 다리로 구성했다.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
우아, ‘소반 타워’라니! “건축가는 소반을 단순히 밥 먹는 상으로만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조형물, 하나의 건축물로 본 거죠.” 두 개 층을 합쳐놓은 웅장한 공간에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켜켜이 쌓인 소반. 저 높이의 유리관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박물관 담당자의 말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면 용도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던 상판의 문양을 볼 수 있고, 반대로 1층에서 올려다보면 상다리의 유려한 라인이 색다른 미감을 전한다.

한낱 밥상을 건축물로 재탄생시킨 이곳은 제주의 본태本態박물관. ‘본래의 형태’라는 뜻처럼 우리 전통, 근원에 모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는 설립자 이행자 씨가 지난 30여 년간 모은 전통 목가구와 민예품을 선 보이는 공간이다. 해발 400m, 산방산을 마주 보며 펼쳐진 두 개의 전시관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았는데 무엇보다 건축주와 건축가,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이 흥미롭다. “설립자 이행자 씨는 동아시아를 통틀어 저의 첫 클라이언트입니다. 이미 15년 전 박물관 설계를 의뢰했고, 그 당시 저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어요. 그 뒤 IMF 외환 위기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건립이 미뤄지고 서울에서 제주로 장소 또한 바뀌었지만, 저에겐 동아시아에서의 본격적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프로젝트로 의미가 크지요” 라고 안도 다다오는 말한다.

그리고 그간 제주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는 제주와의 숙명같은 인연에 반가운 마음 반, 고민 반이었단다. 자연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곳에 자연과 교감하는 건축물을 짓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게다가 미술관 같은 공공시설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대중과의 소통을 우선시해야 하니 미학적 관점은 물론, 공간 구성과 레이아웃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을 때 건축주가 들려준 소반 이야기가 떠올랐지요. 소반은 지역, 사용 계층, 쓰임새에 따라 모양과 재질이 다양했고 수공예품이기에 장인의 솜씨에 따라 각각의 멋이 다르다고요. 단아한 건축과도 같은 안정된 비례를 지닌 소반의 아름다움에 빠져 전통 목가구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건축주의 이야기에서 ‘옛것’이라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다소 차가워 보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에 전통 수공예품이 담긴다면 마치 담백한 목조 건물처럼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게 완성한 두 개의 전시관은 같은 평면에 계단식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마치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공간의 구성과 동선, 성격은 전혀 다르다. 먼저 전통 미술품과 수공예품을 전시하는 전통관(전시관 1)은 아래쪽에 배치해 한쪽 면은 막혀 있고 다른 한쪽 면 역시 창을 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규모가 작은 전시실이 2층에서 시작해 1층까지 한 획으로 이어진 구성은 안도 다다오가 미술관 건축에 많이 쓰는 방식. 건물 외관, 2층 진입로에 들어서면서 1층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로 향할지 어느정도 예상한다는 것. 그리고 막상 창문 없이 컴컴한 공간에 들어서면 미로처럼 펼쳐질 전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한다. 쪽창으로 어둠과 밝음의 콘트라스트를 극대화해 숭고한 느낌을 자아내는 전시관에는 의외로 규방과 사랑방 가구, 장신구, 목기, 보자기, 부엌 세간, 도자 등 생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일상과 미술이 결코 유리된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현대관 2층에 마련한 ‘안도 다다오의 방’. 명상을 즐기는 안도 다다오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으로 건축주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전통관 1층 쪽창을 통해 최소한의 빛이 유입된다. 창가에는 빛에 강한 도기류를 전시했다.

현대관 전시실에서는 어디서나 멀리 산방산과 마라도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현대 미술과 대비되는 한옥 돌담과 깊은 처마가 인상적이다.

설계를 맡은 안도 다다오와 설립자 이행자 씨. 이행자 씨는 일상을 윤택하게 하던 전통 수공예품의 속 깊은 아름다움, 그 의미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박물관을 개관했다.

전통과 모던이 만나 대화하는 공간
현대관(전시관 2)은 현대 미술 전시 전용 갤러리로 두 개 층의 높이와 깊은 처마 아래로 웅장한 홀의 전시실이 연결되도록 구성했다. 통창을 통해 멀리 마라도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본태박물관의 백미 ‘안도 다다오의 방’도 만날 수 있다. 미로처럼 굽이지는 전실을 따라 들어가면 천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작은 기도실이 나오고, 그 안쪽 밀폐된 공간에 두 칸 남짓한 사랑채를 설치한 것. “제주를 제2의 고향이라 할 정도로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건축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 아예 ‘안도’의 이름을 붙인 방을 만들었죠. 평소 명상을 즐기는 그가 제주에 오면 언제든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요.”

무엇보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설립자 이행자 씨는 전시관의 건축물은 전시를 위한 단순한 외피가 되어선 안 된다고 단 언한다. 건축물 자체가 스토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건축가가 공간에 담길 콘텐츠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설계를 하는 동안 건축가에게 우리 전통 가구와 수공예품의 쓰임, 스토리를 많이 들려주었다. “보통 우리 수공예품이 소박한 매력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옛날 물건이 지금보다 더 화려하고 모던하거든요. 전시관을 둘러본 뒤 사방탁자 안에 숨어 있는 모던의 극치를 발견하고, 자수의 고운 색감에 감탄한다면 반은 성공이에요. 그게 바로 박물관의 역할이니까요.”

개관 전시로 소반, 목가구, 규방용품 등 실제 생활 속에 사용한 것을 선보여 공감을 끌어냈다면 다음 전시는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하던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이행자 씨. 지금은 ‘종교’란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부처뿐 아니라 동자상, 산신 할아버지, 기이한 형태의 돌까지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여긴다는 데서 착안해 조상들이 힘들 때 기도하던 여러 신의 이야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1 오색실로 수 놓은 수젓집. 
2 사람의 형상을 띤 자개 열쇠패. 
3, 4 벽에 걸어두는 장식품으로도 손색없는 가마발과 가마발 고정 장치.

취재 협조 본태 박물관(064-792-8108)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임민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