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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 심리 치료 전문가 최성애 박사 상실의 시대에서 위로의 시대로
분노와 좌절이 모두의 가슴속에 흐르는 시대다. 위로를 건네는 심리 치료 전문가 최성애 박사가 예견된 이 시대에 감정 코칭을 알린 얘기를 들었다.


팽팽하게 또는 느슨하게 우리는 감정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적절한 행동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감정 코칭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분명한데, 세 번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게다가 이 말이 세 번은 반드시 흘려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세 번만 흘려야 한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평생에 세 번은 속도 위반 딱지 끊는 숫자보다 더 적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겨울에 덧입은 내복 바지 고무줄처럼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교육받는다. 여자라고 다르지 않다. ‘차도녀’처럼 차가운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대다. ‘쉬운 여자’가 될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웃는 여잔 다 이뻐’라는 김성호 씨의 노래가 이미 낡은 유행가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세련된 애티튜드로 미화되기도 한다. 포커페이스는 어른의 특권이자 고급 과정이다. 바야흐로 감정이 통제되는 사회다.

아시아 유일의 가트맨 공인 치료사이자 한국에 감정 코칭법을 알린 최성애 박사는 감정은 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코칭’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감추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유류는 다 감정이 있어요. 아이도 노인도 개나 고양이도 좋아하고 싫어하고 놀라고 당황하지요. 강아지도 질투를 해요. 감정이란 우리가 원초적으로 느끼는 거지만,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대처는 행동으로 나타나거든요. 그러니 요령을 배워야지요. 감정적인 부모와의 교류나 감정적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는 게 필요하지요.”

그가 말하는 감정 코칭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행동에는 명확한 한계를 두고 그 안에서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자는 것이다. 감정 코칭을 받은 아이는 자기감정을 잘 알고 상대의 감정도 이해하게 되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학습에 더욱 집중하고 성적이 향상된 경우도 많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성장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쳐 아이가 건강해졌다. 이쯤 되면 감정 코칭은 만병통치약이다. 실제로, 지난해 감정 코칭 관련 서적은 굉장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감정 코칭은 아이를 훈육하는 부모에서 아이를 이해하는 부모 혹은 선생님이라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었다. TV 프로그램에서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이혼 위기를 극복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 했어요. 조용히 해, 말 똑바로 해, 눈을 왜 그렇게 떠, 머리 단정하게 해라 식이죠. 행동주의에서는 행동을 고치기 위해 상과 벌을 줬는데, 감정 코칭에서는 문제 행동의 원인과 해결책도 감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 하루아침에 다양한 감정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을 단번에 바꾸기 어렵듯이 자기 감정과 가까워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호감과 존중을 쌓아 나가야 한다. 긍정적 감정이 밀물을 이루도록 하면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의 민감한 부분에 주의하고 외부의 적을 명확히 하는 것도 부부 사이에 중요하다.

감정 코칭으로 흘러든 인생의 여정

감정 코칭은 이스라엘 출신의 교사이자 아동심리학자, 심리 치료사인 하임 기너트Haim G. Ginott 박사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그는 교사가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좌절하고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문제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행동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자 행동이 교정된 것.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1950년대 당시 하임 기너트 박사의 임상 경험은 이후 선진국에서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이후,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던 존 가트맨John Cottman 박사가 하임 기너트 박사의 이론에 관심을 갖고 검증 연구를 하며 새롭게 근거들을 추가하면서 감정 코칭을 체계화했다.

최성애 박사가 가트맨 박사의 감정 코칭을 접한 것은 정작 박사 논문을 쓴 후였다. 자신과 같은 유학생이던 조벽 교수(동국대 석좌교수)와의 결혼이 그 출발점이다. “원래는 창의력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시카고에서 결혼했는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저 결혼 비용이 아까워서 한복을 입고 식을 올렸어요. 매일 입는 옷도 아닌데 그 돈 아껴야겠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보내온 함에 이미 한복이 있으니 그걸 입으면 어떨까 하고 남편에게 물으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한복을 입으니 자연스럽게 전통 혼례를 하기로 했는데, 1983년의 미국에서 한국 전통 혼례를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절차나 방법을 몰라서 당시 시카고 한국 영사관에서 <사례 편람>이란 걸 받아다 ‘공부’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도 ‘왜 여자는 족두리와 활옷을 입는지, 사모관대는 무슨 뜻이고, 폐백은 왜 하는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로 이사한 후, 궁금증을 풀려고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 가보니 우리나라 황희 정승의 책들이며 고전들이 다 있는 거예요. 거기서 한국의 결혼식을 조선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살폈지요. 그러고 났더니 원조가 중국이겠다 싶어 중국을 공부하고,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처지의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나 하는 궁금증에 또 일본도 살펴보고, 내친김에 인도까지 살펴보자 하고 공부했지요.”

어찌 된 게 전공은 제쳐두고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결혼에는 경제학과 문화 인류학적 요소가 굉장히 많이 내포되었다는 걸 깨닫고, 아예 경제학과 문화인류학을 학부부터 공부해가며 이번에는 유럽과 미국의 결혼 제도를 연구했다. 미국까지의 연구를 ‘돌아서’ 다시 한국의 결혼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나서였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창의력 논문은 안 쓰고 결국 결혼 관련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지요. 그런데 그사이 자료가 너무 늘어서 한 방 가득 채우게 된 게 아깝더라고요. 한국은 빠르게 변했지만,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어르신이 있다면 그분의 한국은 그 시대에 멈춰 있는 거니까 정작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예전 한국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연세 많은 교민이 있다면 열 시간씩 운전하고 가서 말씀을 듣고 그걸 비디오로 찍어둔 거죠.”

기왕에 모은 자료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 책이 <혼수 전쟁>이다. 한국의 이혼율이 앞으로 급증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 상징으로 혼수 얘기를 한 것이다. 책을 내고 한국에 잠시 와서 인터뷰도 하고 대학에서 발표도 했지만, 미디어나 학자들 모두 최성애 박사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들 당시 이혼율이 8% 정도이던 우리나라는 유교 전통이 뿌리 깊게 내려 이혼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본 것이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어요. 도시화, 산업화, 대가족 붕괴, 핵가족의 불안정성, 여성의 교육 상승, 인구 이동률 증가, 사회・경제적 결속력 약화 등이죠. 게다가 한국에서는 결혼이 급격히 경제 논리로 풀리면서 서열화가 됐거든요. 그게 집약된 게 ‘혼수’고요. 그런데 언론은 믿지 않고, 정부는 대책이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주장이 옳다면 나부터 준비하고 대책을 세우자 싶더군요.”

누구에게나 허락된 이혼의 가능성
심리 치료를 공부하기로 하고 선택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내담자(피상담자)가 더 오랜 기간 상담하도록 하면서 심리 치료자에게 의존적이 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논리의 미국식 심리 치료보다 의료복지 체계를 잘 갖춘 독일이 훨씬 나아 보였다. 가트맨 방식의 훈련은 혹독했다.
가트맨 레벨 1, 2, 3을 모두 배운 다음 개인 지도를 하고 다시 비디오 검증을 받는 식이다. 이 과정 중에서는 특히 자기 점검을 중시한다. 독일의 경우, 총 6년의 과정 가운데 4년을 자기 점검에 할애한다. 자기가 의식하거나 무의식하는 자기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감정 찌꺼기와 해결하지 못한 감정적 상처나 기억 등을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상담할 수 없다. 자기 점검이 안 된 상담자는 본의 아니게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이 있다. 자기감정을 투사해서 내담자 자신의 감정이 투사될 때가 있고, 동정심이나 적개심을 가질 수도 있다.

“자기 경험이 반영되어 내담자 중심의 바람직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외국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 혹은 일종의 착취 관계가 종종 벌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자격증을 박탈당하거나 법적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상담 사고는 대부분 상담자가 자기 점검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할 때 일어나지요.”

가트맨 박사가 연구를 시작한 것은 30대 초반이다. 그때까지 사귀던 여성들과의 관계가 대부분 좋지 않게 끝났고, 결혼도 실패했다. 가트맨 박사는 자신처럼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혼으로 끝낸, 버클리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레벤슨 박사Robert Levenson와 함께 관계 연구를 시작했다. 심장박동수나 혈류량, 땀이나 소변 속 스트레스 호르몬의 양 등을 측정해 활용했다. 부부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비디오에 담고 성격 검사와 구술 면접을 거쳤다. 그리고 이들의 5년, 10년, 15년 후를 추적 조사했다. “가트맨 방식은 부부간의 대화를 15분만 들어보면 이혼 확률을 94%까지 맞힐 수가 있어요. 이혼 가능성이 있는 부부는 말이 거칠고 함부로 해요.” 가트맨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정적 싸움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는 네 과정은 ‘이혼으로 가는 네 가지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실어 상대에 대한 불만을 전부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불만이 있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면 결국 관계를 망치게 되지요.” 최성애 박사는 “속에 쌓아두면 화병 생긴다”고 말하는 심리 치료사들을 경계하라고 한다. 이런 말은 관계에 황산을 뿌리는 것과 같다.

가트맨 방식 부부 치료의 핵심은 ‘Small things often.’ 서로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자주 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정서 통장’과 ‘다행일기’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상대가 부정적 말이나 행동을 하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죠. 감정에 마이너스가 생기는 것인데요, 이게 복구되려면 플러스가 다섯 개는 필요해요. 긍정성이 부정성의 다섯 배, 즉 5:1을 황금률로 보는 것이죠. 부정적 언행을 한 번 하면 그전에 쌓아둔 긍정적 감정 다섯 개가 사라지니까 말을 조심해야지요. 이걸 정서통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데, 좌뇌의 전전두엽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뇌 과학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이다. ‘나는 ~라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을 쓰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행복감이 높아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최성애 박사는 조언한다.

요즘 최성애 박사는 자신이 배운 방식에 풍부한 임상 경험을 접목해 전문가를 키워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감정 코칭 강사와 국제 공인 가트맨 부부 치료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미국의 가트맨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과정과 똑같은 자격 취득 과정으로 세계 최초의 사례다.
“보통 외국에서는 5년을 공부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년 코스로 훈련해요. 감정 코칭 강사 과정은 1년이고요. 드디어 올해 가트맨 부부 치료사 자격을 네명이 얻었지요. 기본적인 상담 훈련을 받고, 여러 가지 심리 치료 상황에 대해 개인 지도를 받고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얼마 전부터는 남편 조벽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 보급뿐만 아니라 멕시코, 브라질, 과테말라, 필리핀 등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과 양육자 교사들에게 감정 코칭을 보급했다. 중국에 가서도 가르쳐주고 책으로도 번역해 출간했다. 우리나라처럼 학교 붕괴가 심각한 터키에서는 가트맨 박사의 추천으로 감정 코칭을 하기도 했다. 터키 정부 차원에서 교사들에게 감정 코칭을 보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감정 코칭 외에 뇌 과학이나 심장 과학 같은 좀 더 진보된 방법과 남편의 교육학적인 부분까지 합쳐서 다양한 기법을 계발하고 있다. 모두가 화를 품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화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왔는지 안다면, 그리고 우리의 화와 좌절에 대해 위로와 수용, 지지를 받는다면 희망은 있다. 최성애 박사가 감정 코칭에 희망을 거는 이유다.

글 이은석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