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성당 앞에 홍문택 신부와 아이들, 최상준 교감 선생님 등 온 가족이 모였다. 홍 신부의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마다 까르륵거리며 건강하게 웃는 아이들. 참 티 없이 맑다.
봉긋한 산 사이를 흙바람 몰고 달렸다. 인기척 없는 길의 경사를 따라 차가 기우뚱거리며 올라갔다. 그 끝에서 너럭바위처럼 앉아 있는 회색 건물들과 마주쳤다. 성냥갑처럼 네모난 교실이 옹기종기 모인 단층 건물을 상상했지만,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축물이다. 입구는 교문이 없이 개방되어 있고, 건물마다 높낮이가 달라 교정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어느 건물에서 창 너머를 바라봐도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였다.
“지난밤에 비가 와서 단풍이 많이 떨어졌지 뭐예요. 사진 찍으면 참 예뻐요. 특히 봄 되면 산벚나무가 아주 기가 막히지요, 여기 겨울은 또 어떻고. 눈 내리면 그냥 그림엽서예요.” 조금 일찍 찾아온 날 선 추위가 행여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지 않을까 걱정하며 인사를 건네는 이는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의 교장 홍문택(베르나르도) 신부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고덕동성당 주임과 평화방송 상무이사, 가톨릭출판사 사장, 대방동성당 주임, 한국 오라토리오 싱어즈 단장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2011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인 그가 교구의 동의를 얻어 학교 부지를 매입해 아예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대안 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꽃(花)처럼 예쁘게 ‘아침’처럼 희망을 열며 살자는 뜻을 담아 ‘花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라 이름 지었다. 교육에 대한 홍 신부의 뜨거운 신념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일구어온 결과물이다.
“내가 음악을 참 좋아해요. 작곡도 하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합창을 가르쳐요. 가정 경제가 불안하면 아이들이 재능 있어도 그냥 자신을 내려놓는 경우가 있어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난과 성적이 정비례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지. 아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예술을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무료 학교를 세우기로 했지요.” 사제가 된 지 25년이 되던 시점에서 그는 타인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중하게 고민했다. 초등 학교 교사가 꿈이던 홍 신부에게 학교 설립은 삶의 화두이자 신앙의 또 다른 방향이었으리라.
폐목으로 만든 작은 나무 선반에 담긴 2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학교 예술제 때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1 교사, 학교 후원 작가, 홍 신부의 수집품 등을 판매하는 갤러리 ‘花요일 아침’. 모든 수익금은 학교에 기증한다.
2 약 40석을 갖춘 도서실 겸 휴게실. 아이들이 자유로이 자습하고 책을 읽는 공간이다.
3 안드레아 성당에서 만난 ‘어린 왕자’ 예수와 제대. 사선으로 곱게 십자고상을 비추는 빛이 아름답다. 전교생의 70%만 가톨릭 신자이지만, 아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이곳에 함께 모여 스스로 기도한다. 성당은 아이들이 믿고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 곳이다.
4 고요한 숲이 둘러싼 이곳은 캠핑하기 좋은 장소다. 학교를 알리고 좀 더 열린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캠핑 애호가를 위한 방갈로를 마련했다. 이 아담하고 귀여운 오두막 또한 홍 신부가 직접 지었다.
9천1백 명의 후원금이 모이다 5년 전부터 기획해 3년 전 처음 머릿돌을 올린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에는 현재 1학년 여덟 명과 2학년 여섯 명이 기숙하며 공부하고 있다. 강의실과 도예·조소실이 있는 창작실, 기숙사, 도서실, 갤러리 등이 있고 2.3km 거리에 제2캠퍼스도 갖춘 규모에 비하면 학생 수가 적은 편이다.
“이제 3년째고 2학년까지 열네 명이 전부예요. 2013년에 신입생이 들어와도 서른 명 정원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현재 선생님이 스물 두 명이니 아이들보다 선생님이 더 많지요.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아이들도 서로서로 참 애틋해요. 식구 같고, 친자매 같고, 스승 같고 그래요. 자식같이 보살피려면 다 들여다봐야 하는데 머릿수가 많으면 그게 참 힘들거든요. 내가 부모잖아요. 날 믿고 학교에 보 냈는데 엄마 아빠 역할을 다 해야지요. 어떤 땐 진짜 내가 부모 같 다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역이 있고, 집에서 부모에게서 배우는 게 있어요. 한 명 한 명 다 품어야 해요. 가르치고 교육하고 보듬고 위로하고. 그러기 위해서 학생 수를 제한해요.” 부지 선정부터 건물 짓는 일까지 학교 살림 전체를 도맡아 하는 그는 모진 바람과 거친 환경을 묵묵히 견디며 인간에게 아낌없이 제 몸을 주는 나무를 닮았다.
교복부터 숙박까지 모두 무료라니, 대체 어떻게 이 큰 살림을 꾸려갈까? 홍 신부가 출간한 서른 권이 넘는 책의 인세를 모으고, 어머니가 물려준 작은 아파트를 청산했다. 전국의 성당을 방문해 강론하며 학교 설립의 당위성을 알렸고, 설립 취지에 공감한 신자 한 명이 거액을 기부하면서 학교 설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는 가톨릭 재단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학교 설립 3년 만에 9천1백 명의 후원 회원이 모였으니 참 감사해요! 매달 약 9천만 원의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3만 명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빚이 4억 원 남았지만 걱정 없어요. 내가 조금 더 강론하러 다니며 학교를 알리면 되니까요.” 학교의 재정 상태는 홈페이지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한다. “본인이 낸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두 궁금하잖아요. 임금부터 인터넷 사용료까지 명확하게 사용하고 100% 공개하지요. 오늘 촬영 끝나고 아이들 모르게 깜짝 곱창 파티를 할 건데 모두 내 개인 비용이에요. 후원금은 철저하게 관리하지요.”
1 매주 화요일은 홍 신부와 함께하는 합창 수업이 있다. 그의 지휘 아래 아이들과 교직원이 함께 외부 성당을 방문해 합창을 선보이며 후원 회원 모집에 나서기도 한다.
2 전망 좋은 테라스를 갖춘 기숙사 건물. 한 방에 여덟 명씩 사용하는 공동 기숙사로 세개의 방과 공동 휴게실이 있다.
3 폐목을 이용해 만든 작은 오두막. 학교의 로고인 팔레트 모양으로 외관에 포인트를 주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습도하고, 간단한 수업을 받기도 한다.
4 안드레아 성당 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벽면. 9천1백 개의 나뭇조각에는 아이들이 직접 쓴 후원 회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곧 성당 내부의 벽면이 후원 회원 이름으로 가득 채워지리라.
5 취재를 갔을 때 1학년의 드로잉 수업이 한창이었다.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는 미술과 음악 수업 외에 컴퓨터 그래픽, 도자기, 금속 공예, 천연 염색 등 전문 교과과정을 교육한다.
6 성당의 내부 모습. 천장에 달린 열두 개의 조명등은 조도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동생활 가정으로서의 대안 학교 “수정아~ 명지야~” 홍 신부가 부르자, 까르륵거리며 살갑게 뛰어온다.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홍 신부는 아이들에게 엄숙하고 진중한 표정의 종교인이 아니다. 그는 때때로 근엄한 아버지고 다정한 어머니이며, 존경하는 인생의 스승이다. 아이들을 향한 홍 신부의 속 깊은 마음이 그들의 가슴속에도 고스란히 전해졌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겠는가! “예수도 열두 명의 제자 중 한 명은 실패했듯이 흡연이나 음주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있어요. 그럴 때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요. 집단생활에서는 인성 교육이 중요하거든요. 아이들은 금세 영향을 받아요. 부모 대신 가져야 할 내 책임감이 커요. 아이들 스스로 토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도 해요.”
국내에 수십 개의 대안 학교가 있지만 정식으로 학력 인정을 받은 학교는 열다섯 개 남짓.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도 그중 하나다. 여기에 대안 교육과 공동생활 가정을 접목했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 외에도 홍 신부의 지도로 식탁 예절과 어른 공경 등의 생활교육을 받는다. 그렇게 부모의 역할을 학교가 대신한다. 과거에는 부모와 교사 간의 교류가 잦았다. 교사는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가 성장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고, 부모는 교사를 신뢰했다. 그 근원에는 사랑이 있었다. 홍 신부는 현대 아이들에게는 부족한 동료 간의 사랑, 교사에 대한 존경,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 등을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에서 실현하고 싶다.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 깃발을 달고 교정을 달리는 홍 신부. 학교의 재간둥이 식구들이 앞장선다.
홍 신부의 멋스러움이 담긴 건물 학교의 로고부터 건물의 빛, 담장, 교정의 야생화까지 학교 곳곳에는 홍 신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건물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직접 해 인부들과 함께 학교를 세웠다. 그래서일까, 교정에는 그의 취향과 남다른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교 부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안드레아 성당이다. 독일에서 만난 성모 마리아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조각상 옆에는 성가 주크박스가 있다. 홍 신부가 매일 아침 아이들 기상 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기둥 구조의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화관을 쓰고 황금빛 천을 두른 예수상이 있는 십자가에 시선이 박혔다. “대부분 성당의 십자가를 보면 참 위압적이에요. 난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보다 누구나 평안하게 바라보고 위안받을 수 있는 모습이 좋아요. 누구는 어린 왕자를 닮았다고 해요.”
못 쓰는 솥뚜껑을 뒤집어 강론대를 만들고 나무 기둥에 숫자를 적어 미사곡 알림판으로 사용한다. 제단의 계단을 제거해 신자와의 경계를 허물고, 벽면 윗부분 전체에 빙 둘러 창을 내 자연광이 아래로 부드럽게 흐른다. 낮에는 십자가에 빛이 고이고 밤에는 조도를 낮춰도 달빛이 고요하게 떨어진다. 성당을 둘러보면 벽면에 별과 새가 앉아 있다. 새와 별과 예수, 자연과 종교가 합일한 모습이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그의 삶의 철학과 닮았다. 매주 화요일 홍 신부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합창 연습을 한다. 소리의 균형이 중요한 합창은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소속감을 심어준다. 조금이라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아이들이 반주를 맡는다. 두 명이 함께 오른손 왼손을 각각 나눠 치기도 한다. 누구라도 참여하고 함께 완성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변하는 것이 보여요. 처음에는 숨어 있고 어둡던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지고 맑아져요.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그렇게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과 함께할 때가 가장 신이 납니다.” 홍 신부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2014년이 기다려진다. 10년 안에 화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 출신의 순수 작가가 등 장하는 것이 큰 꿈이다. 그리고 그가 출신 학교를 자랑스러워하기를,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고귀한 여성으로 성장하기를 그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花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를 후원하세요! 花요일아침예술고등학교 후원은 재능 기부(교과 과목 봉사, 노력 봉사, 차량 봉사 등)와 후원회 가입을 통한 나눔 기부가 있습니다. 후원금은 학생들 교육비와 학교의 제반 경비로 사용하며, 재단법인 서울가톨릭청년회 명의로 입금, 연말정산 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합니다. 후원 회원의 이름은 성당 내부 벽면에 새깁니다. 건축 기금과 월 후원 회비, 1회 봉헌 등의 후원금은 아래 후원 계좌로 입금하면 됩니다. 국민은행 485537-01-002404, 예금주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 문의 화요일아침예술학교(070-8891-3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