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년 프랑스의 메스에서 착공할 퐁피두센터의 자매 미술관. 목재 트러스 지붕이 육각형 기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시실들을 덮는다. 사진 CA2M/SBA Europe+Jean de Gastines/Artefactory
2 오는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조각공원 내 페이퍼테이너 갤러리의 내부 전경.사진은 <여자를 밝히다>전이 열리는 페이퍼 갤러리.
3 시게루 반은 1995년 고베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피해자들을 위해 종이 임시 거처와 종이 교회를 지었다. 그의 인도주의적 관점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고베에 있다가 1999년 타이베이로 이동한 종이 교회의 외관. 사진 Hiroyuki Hirai
4, 7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에 세운 픽처 윈도 하우스(2002년). 창문 여는 방식이 우리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 미닫이문을 여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는 이를 ‘글라스 셔터’라 부른다.
5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의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시게루 반.
6 2005년 2월 미국 뉴욕 54번 부두에 세워진 노매딕 뮤지엄. 사진가 그레고리 콜버트는 스케일이 큰 자신의 작품들이 세계를 돌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한 큐지엄을 시게루 반에게 의뢰했다. 사진 Michael Moran 
시게루 반과 함께하는 세미나가 10월 20일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열립니다. 주제는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서의 매개공간에서의 투영intermediate transparency’입니다. ‘매개공간’은 시게루 반이 퐁피두 센터의 자매미술관을 설계할 때 적용한 건축 양식으로 건물의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중간 공간입 니다. 신청하시는 분들은 별도의 참가비를 내야 합니다. 문의02-2262-5523
건축가 시게루 반(시게루 반 건축설계 대표, 게이오대학 환경정보학부 교수)과 전시기획자 김선정 교수. 바쁘기로 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두 사람이 지난 8월 22일 페이퍼테이너 뮤지엄Papertainer Museum 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김선정 교수가 시게루 반과 그의 건축에 대해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종이기둥은 ‘진보한 나무’ 시게루 반이 처음 종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은 둘둘 말린 필름뭉치를 보면서였다. 1986년 핀란드에서 열린 ‘알바 알토Alba Alto 전시회’에서 종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한 이래 그는 집, 교회, 미술관, 전시장 등 건축 작업에 종이기둥paper tube을 사용해오고 있다. 그가 고베 시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대지진(1985년)으로 힘겹게 살고 있던 주민들을 위해 이 종이기둥으로 만든 교회는 경이로웠다. 그는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만든 ‘고베 지진 텐트’를 출품해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터키의 재난 지역, 르완다의 빈민촌 주택, 쓰나미 사태를 입은 인도네시아 등지로 찾아가 종이기둥을 활용해서 임시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그가 만든 집은 만들고 허무는 것이 쉽고, 썼던 재료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 다시 활용할 수 있다.
“종이기둥 건물을 정식으로 의뢰받아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지요?”
“맞습니다. 제 꿈이 실현된 건축입니다. 저는 이 뮤지엄을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독립적이면서도 연속성을 가진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컨테이너로 만든 메인 홀에서는 뻥 뚫린 양 끝을 통해 외부의 자연을 감상하고, 종이기둥이 있는 곡선형 홀에서는 투명한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기둥 사이에서 연출하는 빛과 그림자의 곡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테라스에서는 잔디와 뻥 뚫린 천장을 통해 자연을 느낄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컨테이너 공간과 종이기둥 공간 그리고 이 건물이 세워지기 전의 원형성이 보존되어 있는 정중앙의 야외 잔디 테라스로 이어지는 세 개의 레이어layer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전시로 구성될 두 개의 전시장과 야외 테라스가 그려내는 어우러짐은 천하 일품이다. 주인인 서울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내 조각공원의 특성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우직하게 존재하는 겸손한 세입자貰入者다.
“직접 만지고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처음에 사람들은 종이를 건축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보된 나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때에는 환경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 전이었고, ‘친환경 트렌드’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진보된 나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웃음)”
“재활용품을 선호하고 재료를 낭비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 영향인가요?”
“그렇습니다. 제 부모님은 저에게 항상 등을 끄며 전기를 아끼라고 당부하셨으니,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웃음)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원 낭비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메모할 일이 있을 때에는 재활용 수첩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항상 포스트잇을 사용합니다.(웃음) 그래서 저는 ‘어디에 꼭 붙여야 할 용 도가 아니라면 포스트잇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해요. 포스트잇의 본래 기능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 건축에서도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을 설계하며 새로 시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지형과 문화와 역사에 맞게 디자인했습니다.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메인 홀 천장에 40피트(약 12미터) 길이의 컨테이너를 올린 것입니다. 한국건축의 윤경식 대표와 협동으로 일을 진행했기에 이런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3백73개의 거대한 종이기둥과 1백66개의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의 크기는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맞먹는다. 시게루 반이 설계하고, 한국건축 윤경식 사장이 현장 진행을 담당한 이 미술관은 건물 재료의 90% 이상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세간에서는 친환경 미술관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환경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 이 미술관이 소재한 소마미술관 조각공원의 경관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1 페이퍼테이너 미술관은 조각공원에 설치되어 있던 수비라치의 조각작품 ‘하늘기둥’을 둘러싼 형상을 띠고 있다. 루너 가든lunar garden의 ‘하늘기둥’을 둘러싼 페이퍼 갤러리의 종이기둥들을 촬영한 사진.
2 투명한 천장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기둥 사이로 그림자 곡예를 펼치는 페이퍼 갤러리. 황홀한 그림자 곡예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므로 하루 종일 머물러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자연 재해는 사람이 만드는 것 195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시게루 반은 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 건축대학(SCI-ARC)과 맨해튼의 쿠퍼 유니온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86년 일본으로 돌아와 ‘시게루 반 건축설계’를 설립한 뒤 종이를 건축물의 일부로 사용하기 시작한 그는 ‘꿈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실험했다. 그리고 1991년 독일의 저명한 구조학 교수인 프라이 오토를 만나면서 종이 작업의 실현 가능성은 급물살을 탔다. 프라이 오토와의 과학적인 실험 작업을 통해 종이가 건축물의 소재로 이용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2000년 하노버엑스포에서 선보인 일본 전시관, 캐나다 사진가 그레고리 콜버트가 기획하고 건립한 뉴욕과 LA의 ‘노매딕 뮤지엄Nomadic Museum’을 거치며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작업에서 종이기둥의 역할은 실질적인 기능보다는 상징성이 더 강했다. 그러나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다르다. 종이기둥이 비로소 기둥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베 지진 희생자를 위하여 종이 교회를 지은 이후 인도주의적 건축 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 그에 관한 태도와 생각이 궁금합니다.”
“자연 재해는 더 이상 자연 재해가 아닙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요. 지진이 났을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진이 아니라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입니다. 홍수도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잘라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모두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연 재해가 지나간 다음 피해자들에게 임시 거처를 지어주는 건축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건축가들이 여러 재난 이후의 복구 작업에 좀 더 참여하게 된다면 피해자들의 생활공간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요즘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자매 미술관인 ‘새털라이트Satellite 뮤지엄’ 착공 준비로 분주하다. 집이 있는 파리와 건축사무소가 있는 일본을 바삐 오가며 일을 진행한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미술관은 그가 중국의 원뿔형 대나무 모자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파노라마 디자인이 유려하고 빼어나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하이테크놀로지 빌딩의 외관을 감싼 대나무 모자를 보고 서구 언론은 “동양의 선이 서양의 하이테크를 덮었다”고 평가한다. 독일, 룩셈부르크, 벨기에 세 나라의 접경지에 있는 파리 북동부의 메스Metz에 위치하게 될 이 뮤지엄은 전시 공간만 1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 공원 안에 건립되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내년 1월 착공에 들어가 2008년 완공된다.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상대적으로 작고, 새털라이트 뮤지엄은 큰 건축물입니다. 설계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는 없습니다. 건축물의 사이즈나 의미는 제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르완다의 빈민촌 집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고, 세터라이트 뮤지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프로젝트는 서로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좌담을 마친 시게루 반(왼쪽)과 김선정 교수가 공사가 한창인 컨테이너 갤러리 입구에 다정하게 섰다.
역사 속에 창조가 있다 시게루 반이 어렸을 때, 도쿄에 있던 그의 집은 자주 확장되었다. 그때마다 그의 부모님은 공사를 하기 위해 목수를 불렀다. 어린 그는 목수 곁에서 작업 관찰하기를 즐겼다. 대패로 나무를 밀 때마다 풍겨 나오는 나무 향기를 좋아했고, 가끔씩은 작업 뒤에 남은 자투리 나무 조각들로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만약, 건축가가 아니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고대 문명들이 만든 물건을 찾아내는 고고학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모두 다 흥미로웠습니다. 난민 수용소 건물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웃음) 제 정체성이나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게 저를 세상에 알려지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그리 높은 수준의 건축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는지요?”
“사실, 쉴 시간이 없습니다. 일 자체가 취미생활입니다. 그 어떤 것도 건축보다 흥미롭지 않습니다.”
“매우 행복하게 보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렵습니다. 대신 대답해줄 수 있습니까?(웃음) 어찌 보면, 행복이란 편안함과 관련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행복을 정의할 때 흔히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 가족과 있을 때 가장 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을 지으며 행복해하는 것도 그 안에서 살게 될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관람객에게 당부하시는 것은요?”
“종이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이런 건물을 지었다는 것에 많은 메시지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 때에는 새로운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건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존할 수도 있는 것임을, 창조하는 것만큼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도 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선정 교수의 인터뷰 후기 ‘ 건축’분야는 언제나 나에게 관심 있 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이다. 건축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지만, 공부할 적당한 이유가 생기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나에게 직접 건축가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번 인터뷰는 건축이라는 분야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시게루 반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인 김승덕 씨를 통해서였다. 그 당시 김승덕 씨는 레스토랑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시게루 반과 함께 일을 하려고 논의 중이었다. 그 이후 큐레이터들의 컨퍼런스에서 퐁피두센터의 알프레드 파크만 관장이 퐁피두 미술관 자매 미술관 프로젝트에 시게루 반이 선정되었다는 내용의 새로운 미술관 계획을 발표하여 알게 되었다.
시게루 반은 건축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특히 ‘건축이란 무엇인가?’ 를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건축가다. 그는 일본 고베 지진 이후 피난처를 디자인했다. 우리가 아는 건축은 무거운 돌, 시멘트, 철근, 콘크리트 등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그의 건축은 너무나 가볍고 어디든지 옮겨 다닐 수 있다. 이사할 때나 물건을 나를 때 쓰는 컨테이너를 이용한다든지 종이를 건축의 구조structure로 쓴다든지. 그는 시적으로 건물을 짓는 건축가다. 그가 짓는 건물은 로맨틱하고, 싼 재료를 건물에 쓴다고 해도 멋있는 건축으로 살아난다.
허둥지둥 길이 막혀 시게루 반과의 인터뷰 약속에 늦었다. 첫 만남이지만 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낯설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과 인터뷰 중이었는데 내가 끼어들어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방해해버렸다. 미안했다.
그의 작품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 처음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공간이 재미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너무 휴머니스트적이서 ‘정말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하는 의심을 품었는데 그를 만나 보니 지독히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리사이클 종이 등을 이용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 나오게 된 배경인 것 같았다. 그에게 좋아하는 현대미술가를 물었 때 리처드 세라와 크리스토를 이야기했다. 크리스토의 작품 자체보다는 작업을 구현하는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업방식과 크리스토의 작업방식이 닮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아트선재센터의 부관장으로 재직했던 김선정 씨는 젊은 작가 발굴과 해외 전시 유치에 앞장서 왔다. 2004년부터는 독립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 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사무소(www.samuso.org)의 대표로 활동하는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