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동안 꾸준히 책이 나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15년 전 <광수 생각>으로 당신을 기억한다. 책 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는가? 3권까지 나온 <광수 생각>이 2백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이후로 다양한 만화적 실험에 도전했다. 다른 책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못했다. ‘될 때까지 해보자’ 하는 생각에 기존과 다른 색깔의 책을 계속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다. 이번에 발간한 <광수 생각>은 약 2년 동안 연재한 만화를 모은 것이다.
시간의 거리만큼 <광수 생각>도 달라진 점이 있는가? 캐릭터가 좀 달라졌다. 과거의 ‘신뽀리’는 입이 튀어나오고 합죽이처럼 아래턱도 길었다. 반면 지금의 캐릭터는 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한 캐릭터를 오래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바뀌었다. 양악 수술한 정도? 하하하.
왜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과 글에서 위로받는다고 말할까? 위안을 받았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 마음과 똑같네” 하고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 <광수 생각>을 좋아해준 것이 아닐까? 사실 악동 같은 내 면모가 잘 드러나는 만화도 많았다. 기대와 다른 모습에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고 배반감을 느끼더라.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모습만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반면에 인터넷 검색창에 ‘박광수’를 치면 ‘이혼’과 ‘재혼’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의 소문도 돌아다닌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오해를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구경꾼들에게 인생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초기 <광수 생각>은 ‘가족’ ‘첫사랑’ ‘이웃’ ‘위로’의 키워드로 집약되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반성’ ‘자조’가 떠올랐다. 내 나이(44세)가 참 애매한 나이다.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도 못 된다. 30대에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지금 내 위치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종종 던진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되었지” “이 정도가 행복한 거야” 하며 욕심을 버린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행복’은 무엇인가? 최근 20여 일 코스타리카 여행을 다녀왔다. 행복 지수를 꼽을 때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치안은 형편없고 위험이 산재한 곳이었다. 동네 슈퍼에서 총기를 팔 정도니까. 어느 날 과일 행상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오늘 몇 개 팔았어요?” “여섯 개 팔았어요.” “그것밖에 안 팔려서 어떡해요.” “아니요, 저는 오늘 여섯 번이나 행복했는걸요!” 이것이구나,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행복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행복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아닐까? 맞다, 어렵다. 사람들은 행복을 관념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이 어떤 경우에 가장 행복한지 잘 모른다. 나는 언제 내가 가장 행복한지 꼭 메모해둔다. 예를 들자면, 만화 가게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만화 볼 때, 야구 시합을 끝내고 더그아웃에서 동료 선수들과 수다 떨 때,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을 때, 아이들을 꼭 껴안을 때!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이 추가될 만큼 여행을 즐긴다. <행복> 독자들에게 가을 여행지 한 곳을 추천해달라. 2010년에 통영 소매물도를 다녀왔는데, 그 아름다움이 항상 그립다. 선착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섬 정상까지 올라가면 멀리 등대섬의 등대 하나가 보이는데, 그 풍광이 무척 황홀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광수 생각>에 이어 야구 에세이 <나는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가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어릴때부터 야구 선수가 꿈이었다. 어릴 때는 동네 야구를 즐겼고, 야구 명문인 신일중학교 입학이 무산되면서 선수의 꿈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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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