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oil on canvas, 116.7×80.3cm, 2005
꽃이 활짝 피었다. 자신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는 여인의 꿈처럼 곱디고운 꽃이 날갯짓하며 춤춘다. 그 안에는 고통도 서러움도 그리움도 없다. 세상이 빛과 어두움으로 나뉜다면 이곳은 빛의 세상, 시간이 정지되어 이 세상에 없는 계절 같다.
“소녀 시절부터 꽃을 그렸습니다.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요. 그릴 수 있는 대상이 꽃과 실내 장식뿐이었습니다. 그림 대상이 부족해 정물화 화집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정물의 모델이 부족하더군요. ‘정물화의 표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부터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2005년에 작업한 ‘고요한 시간에’(10월호 표지 작품)도 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꽃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사물과 꽃의 경계가 없는 것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꽃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회를 보면 조직을 선두하는 사람과 보조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보조가 없으면 주인공도 없거든요. 불균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많은 화가가 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지만, 생명력이 있는 꽃 그림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어요. 꽃이 ‘생명’ 자체로 전달될 수 있으면 해요. 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눈물 흘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가 김경화 씨에게 꽃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제 그림 속 꽃은 대부분 화병에 담겨 있습니다. 그 꽃은 ‘재생’한 생명에 가까워요. 끊어진 숨이 다시 이어지는 것. ‘영원’은 아니지만 ‘회생’이고 ‘부활’입니다.” 화병에 담긴 물은 꽃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매개체이며, 강물 깊숙이 가라앉은 돌멩이처럼 산 지난 20년이라는 시간을 세상과 연결해준 존재다. 그래서 그에게 꽃은 신앙에 가깝다.
‘침묵과 망설임’, oil on canvas, 73×73cm, 1998
꽃의 위로 “물리학을 전공한 남편을 따라 결혼 직후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미국에서도 그림 공부를 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몸에 안 좋지 않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궁에 혹이 생기면서 긴 싸움이 시작되었죠. 10년동안 일곱 번의 수술을 견디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자녀를 간곡하게 원했으나 이뤄질 수 없었고 고통은 계속되었어요. 그 속에서 꽃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늘이 전혀 없다. 태양을 닮은 명징한 빛 깔로 채운 캔버스는 아픔보다는 기쁨이, 고통보다는 환희가 떠오른다. 여인의 발목을 닮은 앤티크 의자, 우아한 곡선의 찻주전자 같은 ‘여자의 물건’과 수국, 장미, 튤립, 카네이션, 달리아 등 화려하게 흐드러진 꽃에서는 그의 굴곡진 인생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결국 그는 자궁 적출을 해야 했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붓을 잡았다. “다시 사는 심정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졸업 후 10년이라는 공백이 떠올랐고 참 암담하더군요. 여인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를 허망하게 보냈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눈물 많은 여성에게 제 그림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결국 사랑의 힘 이후 두 번의 아픔이 더 있었다. “큰동생이 미국 유학 중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아버지도 그 충격으로 쓰러져 10년간 뇌경색으로 고생하셨지요. 그때마다 가족, 친구, 동료의 위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제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어요. 고난과 고통의 반복이 우리의 삶이라지만 총체적으로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다 갖춰진 곳에서는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요.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색깔로 표현하고 싶어요.” 20년간의 시련은 그를 더욱 그림 작업에 몰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인 남편과 가족의 열렬한 후원이 있었기에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으리라.
“저희 집에 와보시면 아마 그림과 똑같다고 말할 거예요. 주변의 모든 물건이 제 그림의 주인공이거든요. 성경에 ‘누구한테라도 손님에게 물 한 잔 대접하는 것이 하느님에게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제 마음과 똑같아요. 힘들 때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되는 그림, 행복의 온기가 전해지는 그림….” 그에게 그림은 그렇게 으리으리한 것이 아니다. 그의 따스한 그림이 우리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기를!
김경화 씨는 영남대학교 회화과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95년 ‘박여숙화랑’에서 연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주로 파리, 도쿄 등에서 전시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그는 캔버스 100호(162.2×130.3cm) 1백 점을 완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