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화. `기다림은...` 130.3x96cm. oil on canvas. 2007
소설가 조경란 씨, 마흔을 말하다
마흔은 아직 힘이 세다
내 취미 중 하나는 심야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이다. 그때 시작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내가 어렸거나 젊었을 때 듣던, 보통 7080세대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 한 청취자가 ‘시간’이라는 노래를 신청하면서 자신처럼 지금 마흔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그 곡을 듣고 싶다고 하기에 그만 울컥해져버렸다. 마흔…, 그 미묘한, 아직도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흔이 되는 것을 아마도 힘겨워하며 그 노래를 신청한 듯한, 잠 못 드는 밤의 애청자에게 감정이 몰입돼버린 것이다. 그랬다, 나 역시 마흔을 앞두고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마흔’을 아프지 않게 건너온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돌아보니 나는 평균 이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공자 말씀 중에서 내가 거의 유일하게 믿지 않는 것은 마흔이 불혹 不惑의 나이라는 정의다.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건 내가 무시무시하게만 느끼던 마흔 살이 결국 돼버려서가 아니라 마음이 예전과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대체 내 정신의 나이는 왜 고작 삼십 대 중반에 멈춰 있을까 하는 허탈감. 그제야 진짜로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고 지혜가 생기고 결국 불혹에 이른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믿게 된데다, 인간의 불행은 나이 들어 몸은 늙지만 마음은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정말 앞으로 육체의 나이와 정신의 성숙함이 같이 가지 않고 그 불균형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침울해지기 쉽고 모든 것에 어려움을 겪으면 어쩌나. 그런 어림짐작과 불안한 추측 때문에 마흔이 되어서 나는 나이 듦이나 노년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지 않으면 곧 사십 대 중반이 될 거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 육십이 될게 틀림없으니까. 아직 마흔 살에는 그 나이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발뺌을 할 수도,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게 과연 가능할까? 몸은 하루하루 예전 같지 않아지는데 말이다. 마흔 살이 아픈 이유는 이것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젊을 수 없다는 깨달음.
미래를 생각했을 때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계획을 세우고 하루 일과라도 세워 보곤 하는 것이다. 당혹스러움이 사라지고 사십 대라는 사실에 익숙해지지 시작했을 때 자연히 등반가들의 ‘록 하켄rock haken’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이 소설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첫 문장, 첫 장면을 쓰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암벽 등반을 할 때 사람들은 밧줄의 첫 록 하켄을 어디에 확실하게 박아 넣을지를 가장 크게 고민한다. 그 어려움과 중요성 그리고 첫 번째 록 하켄을 잘 박고 못 박고가 이후의 산행 과정과 결과에 얼마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깊이 궁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도입부는 바로 그 첫 번째 록 하켄과 같다. 나로서는 사십 대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인생을 재정비할 필요를 느끼게 된 셈이었다.
불혹에 관해서라면 <계로록戒老錄>을 쓴 작가 소노 아야코의 말을 믿고 싶다. 그 작가는 마흔이 불혹이라는 말은 한 단계 표현이 생략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40세가 되어도 도저히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
는 절망감이 꽤 분명해지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혹은 그다음의 길도 담담히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마흔을 이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일지 모른다. 몸의 어떤 부분도 삼십 대와는 같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러나 가진 것 없이 나이만 먹는다는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기에는 남은 시간들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마흔이란 나이는. 마흔 살, 그 긍정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인생의 큰 성취감을 느끼기도 힘든 나이지만, 그것을 포기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나이라는 것.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불행과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는 행운을 겹쳐 갖고 있는.
나는 나이 먹는 게 즐겁다는 윗사람의 말은 믿지 않지만, 사십 대가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해주는 어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생기가 돌곤 한다. 아직은 젊다는 어른들 말이 맞다. 만약 10년 후 지금의 나이를 돌아보면 오늘이 얼마나 젊고 아름다운 시기였는지 깨달을 게 분명하니까. 마흔. 삼십 때보다 아는 것도 많아졌다.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수도 있다. 제법 취향도 생겼다. 지혜라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한 번 한 실수를 여간해서는 되풀이하지 않는 힘에서도 나온다. 마흔. 믿든 믿고 싶지 않든 이제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섰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고 노년의 날들을 상상해보며 다시 한 번 생의 록 하켄을 신중히 던져봐도 좋은 그런 시기인 것이다. 남은 건 전력을 다해 살 뿐이다. 인생은 지금부터 무르익어간다. 글 조경란(소설가)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_ 이재무 시인의 시 ‘마흔’
디자인 안진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허경원
- 마흔이 뭐기에 혹시 마흔 앓이 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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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최고의 순간이 모두 지나친 것은 아닐까? 이대로 인생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닐는지…. 마흔이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제2의 사춘기라지만,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아직 반도 오지 않은 것 아닌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