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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떠나요] 정선 기차 여행 정선에서는 검은 산 물 밑에도 해당화가 핀다
기차가 정선에 가까이 다다르자 험준한 산세의 그림자가 눈빛을 흔든다. 첩첩산중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착한 사람들과 오장폭포수가 흐르는 아우라지 기찻길, 5일장이 신명 나게 펼쳐지는 곳.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강원도 정선을 다녀왔다.


정선군과 영월읍을 흐르는 길이 65km의 동강. 산맥 사이를 휘감아 도는 강줄기는 억겁의 시간이 만든 지형이다.

“일백 번 굽이쳐 흐르는 냇물이요, 천 층千層으로 된 층계가 절벽이로다.” 고려 문장가 곽충룡이 노래한 것처럼 정선은 경계가 모호한 산맥과 시리도록 맑은 강물이 어우러진 깊은 산중 마을. 침묵이 어울리는 이 고요한 땅이 시끌시끌한 저잣거리로 변하는 날이 있으니 매달 여섯 번, 끝자리 수가 2ㆍ7일인 날(2, 7, 12, 17, 22, 27), 정선에 장이 들어서는 날이다.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에 떠나는 정선행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궁둥이를 들썩이며 장터에서 구입할 산나물 이름을 읊조리는 사람들. 한 아주머니가 큼지막한 배낭을 자랑하며 곰살맞게 웃자,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거, 서울에서 장사하려고 그래요?” 하며 핀잔을 주고 히죽거린다. 정선 사람들은 산허리를 깎아 밭을 만들고 곡물을 재배해 먹으며, 배고프고 가난하던 그 시절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5일장은 푸짐한 먹거리와 마을 인심 넘쳐나는 동네 잔칫날이었다. 1966년 2월 17일에 개장해 올해로 벌써 마흔여섯 해를 맞은 정선 5일장은 장날의 하루 방문자가 1천명에 달할 만큼 소문난 장이다.

기차가 제천역을 지나 영월로 들어섰다. 웅장한 산머리와 끝없이 굽이치는 산맥 줄기를 보니 절로 알겠다. “아, 강원도구나!” 네 시간을 달려야 정선역에 도착하는 먼 여행길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창 너머 절경을 뒤좇아가니 지루함이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예미역과 민둥산역을 지나면 이름도 낯선 간이역, 별어곡과 선평역을 통과한다. 시간이 멈춘 역사에는 지키는 이 한 명 없이 잡풀만 무성하지만, 과거 광산 산업이 융성했을 때에는 석탄과 사람들을 바쁘게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으리라. 여행을 앞둔 설렘이 평온한 침묵으로 이어졌을 때, 챙겨 온 시집을 꺼내 한 구절 읽었다.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내 입에서 산山 향기가 난다” (이성선의 시 ‘귀를 씻다’) 아, 정선에 오니 낭만주의자가 된다.

정선 5일장 열린 날 오전 11시 58분, 기차가 정선역에 도착하니 허기진 배가 장터 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선역에서 장터까지는 약 1.3km, 쉬엄쉬엄 정선 시내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시끌시끌한 장터에 도착한다. 작은 소쿠리를 든 농촌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인 소박한 장터를 예상했거늘! ‘정선 5일 장터’라 큼지막하게 쓴 간판 너머로 신식 점포가 늘어선 길이 고불고불 이어졌다. 정선 사람을 위한 시장인 만큼 농기구, 각종 생활용품 등의 물건을 판매하는 곳까지 약 2백50개의 상점이 있고, 1백60개의 노점이 늘어선 제법 큰 규모다. 구수한 냄새를 따라가니 가마에 찐 찰옥수수가 탱글탱글한 모양을 자랑하며 가득 쌓여 있다. 이쑤시개로 알갱이 하나 콕 찍어 시식 한 번 하고 돌아서자 곤드레와 고사리나물 무침이 눈에 들어왔다. 간이 심심하게 밴 나물 반찬에 밥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싶어진다. 메밀에 김치로 소를 넣어 지글지글 불판에 만두처럼 부치는 메밀전병과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쫄깃한 감자송편, 올챙이 국수, 황기백숙, 올챙이묵, 산채절임, 수리취떡, 장뇌삼 등등등!
 
1 매달 끝자리 수가 2·7인 날에 열리는 정선 5일장. 산나물, 약초, 농기구와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정선의 별미를 맛보더래요 “이게 곤드레래요. 전날에 요래 뜯어 가지고 불려놨다가 밥할 때 넣어 잡숴보래요.” ‘신토불이증’ 목걸이(재배부터 판매까지 하는 농민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인증서)를 건 상인이 곤드레 건나물을 한 움큼 담아주며 말한다. 곤드레의 실제 이름은 ‘고려엉겅퀴’. ‘정선아리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치 뒷산에 곤들레 딱쥐기 마지메 맛만 같으면, 그것만 뜯어다 먹으면 한 해 봄 살아난다.” 향이 좋고 섬유질이 풍부해 지금은 건강식으로만 알려졌지만 노랫말처럼 곤드레나물을 뜯어 먹으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던 시절 또한 있었다. 장터의 ‘먹자골목’에 난 빈자리에 냉큼 궁둥이를 밀어 넣고 올챙이국수를 시켰다. 머리는 두툼하고 꼬리가 힘없이 떨어지는 생김새가 정말 올챙이를 닮았다. 옥수수 전분으로 죽을 만들어 구멍이 송송 뚫린 바가지에 넣고 밀면 죽이 걸쭉하게 떨어지며 물방울 모양대로 굳어버린다. 김치 양념장을 듬뿍 얹어 먹으니 씹을 겨를도 없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고단하게 밭일하다 후루룩 챙겨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던 올챙이국수, 별미보다는 새참용으로 배가 금세 두둑하다. 함께 기차를 타고 온 아주머니들은 벌써 친지와 자식들에게 줄 몫까지 두둑하게 챙긴 모양이다. 양손에 든 비닐봉지에는 정선 햇나물이 가득하다.


2 각설이타령을 부르며 엿을 치는 ‘각설이 삼순이’의 삼순이. 5일장에서 만나는 특별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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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에서 만난 강원도 옥수수. 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옥수수는 그 맛도 참 일품이다. 
4 정선에서 꼭 한 번 맛보게 되는 올챙이국수. 옥수수 전분으로 만드는 국수로 옥수수 막걸리와도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7.2km의 기찻길을 달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 폭포예요. 물이 많을 때는 낙하 소리가 굉장하지요. 겨울에는 폭포 빙벽을 오르려는 스포츠인이 많이 찾아옵니다.” 노추산 남서쪽 줄기인 오장산에서 만난 오장폭포 앞에 서니 동행한 가이드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장폭포는 자연 폭포와 결합한 인공 폭포다. 경사 길이 209m에 높이만 127m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오장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구절리역에 다다르니 철마 대신 네 바퀴와 페달이 달린 레일바이크가 늘어선 철길이 보였다.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까지 7.2km에 이르는 길이다. 석탄을 나르는 주요 이동 통로였을 철길은 이제 정선을 찾는 여행자를 위한 관광지로 변했지만, 굴지천을 따라 이어진 정선의 아름다운 절경을 자연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페달을 밟고 이동하는 레일바이크와 미니 열차를 타고 가는 풍경열차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워 풍경열차를 골랐다. 풍경열차는 사실 레 일바이크를 운전하고 아우라지역에 도착한 사람들과 레일바이크를 다시 출발지인 구절리역까지 실어 나르는 열차다. 레일바이크는 큼지막하지만 한 사람이 4인용을 밟아도 잘 달리고 평균 시속 15km로 안전하게 움직이니 취향대로 골라보도록!


1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이르는 7.2km의 기찻길을 달리는 풍경열차.

2 노추산 남서쪽 줄기인 오장산에서 만난 오장폭포는 자연 폭포를 바탕으로 만든 인공 폭포다.
3 2인용 또는 4인용 레일바이크는 페달을 직접 밟고 종착지까지 가는 셀프서비스!

풍경열차가 짧고 강한 기적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몸을 실었다. 햇살이 아주 뜨거웠는데, 열차가 출발하자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산바람에 온몸이 서늘해졌다. 탄광 속 깊은 곳에 들어온 것 같은 암흑 터널에 들어서자 피부가 쭈뼛하게 곤두섰다. 온도 차이가 10℃ 이상이나 되는 것 같다. 세 번의 터널을 통과하자 어느새 아우라지에 다다랐다. 구절리 송천과 임계면의 골지천 두 물길이 만나 어우러졌다 해서 ‘아우라지’라 이름 붙은 곳으로, 과거 서울까지 목재를 운반하던 나루터가 있는 곳. 올챙이국수 한 그릇 해치우고 기찻길 위에서 산바람을 흠뻑 맞으니 도시의 외로움까지 치유되는 듯하다.

4 아우라지역까지 가는 동안 모두 세 번의 터널을 지난다. 한여름에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한 터널은 정선 레일바이크 여행의 포인트다.

고달픈 아낙네 삶 그린 정선아리랑 정선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정선아리랑극 <어머이>를 관람하는 것. 정선 5일장에 맞춰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무료로 상설 공연 중이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선 시민이 함께 호흡을 맞춰 무대에 올린 공연이어서일까? 세월의 주름을 가득 안은 정선의 아낙네들이 뿜어내는 노래와 몸짓은 전문 배우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준다. 꼬마 신랑 전설과 전래 시조, 고단한 시집살이와 자식에 대한 애정 등 다양한 내용이 이어져 극 자체로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힘들게 살아온 아낙네의 심정을 구구절절 읊을 때 나이 지긋한 관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친다. 극의 마지막, 배우가 모두 한자리에 나와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 한 곡절 부른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에 놀러 꼭 오세요 검은 산 물 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아우라지 강물이 소주 약주만 같다면, 오고 가는 많은 사람 모두 내 친굴세. 건너갑니다 넘어갑니다 아라리 건너갑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한테로 아라리 건너 갑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5 정선 여행의 시작과 끝인 정선역.
6 5일장이 열리는 날, 장터와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정선아리랑극 <어머이>.

* 이 기사는 코레일관광개발(02-2084-7786)의 협조로 진행했습니다.

정선 5일장 기차 여행
출발일
매달 2, 7, 12, 17, 22, 27일
일정 오전 8시 청량리역 → 정선역 → 정선 5일장 → 오장폭포 → 구절리역에서 풍
경열차 또는 레일바이크 탑승 → 아우라지역 → 정선아리랑극 <어머이> 관람 →
정선역 → 오후 9시 50분 청량리역
요금
풍경열차 - 정선 5일장 여행 4만 9천 원, 주말 5만 5천 원
레일바이크 - 정선 5일장 여행 주중 5만 9천 원, 주말 6만 9천 원
정선 5일장 자유 여행 주중 3만 1천 원, 주말 3만 3천 원

(풍경열차 및 레일바이크 탑승 제외, 현지 개별 이동)
불포함 사항 전 일정 식사비, 기타 개인 경비
* 이 일정과 요금은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합니다.
문의 코레일관광개발(02-2084-7786, www.korailtravel.com)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