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 한 씨의 청자 시리즈 중 하나인 ‘Battle of Conception’을 중심으로 사진가 김동윤 씨의 2009년 작품(왼쪽)과 사진가 배준성 씨의 2008~2009년 작품‘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오른쪽)를 전시했다.
비누 조각가 신미경 씨의 ‘Translation-Vase Series’, 2011.
<코리안 아이> 전시가 열리는 런던 사치 갤러리. 1801년에 지은 건물로 지하 1층에 지상 3층 규모로 13개의 전시실이 있다.
<코리안 아이>가 무어냐고? 영국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파랄렐 미디어 그룹(PMG)의 대표 데이비드 시클리티라와 그의 아내 세레넬라 시클리티라가 만든 한국 미술 프로젝트로, 미술을 안다는 이는 다 아는 전시. 한국 미술이 상대적으로 국제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두 사람이 2009년 만든 <코리안 아이>는 2009년부터 매년 런던, 싱가포르, 아부다비, 뉴욕 등을 순회 전시하며 한국 미술을 알려왔다. 올해 세 번째 전시를 연 런던 사치 갤러리는 2011년을 제외한 2009년부터 매년 전시를 열어왔다. 2009년 전시관 두 개에서 2주간 열기로 하고 시작한 전시가 뜨거운 관심을 받자, 오너인 찰스 사치가 전시 기간을 연장해 4개월간 3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2010년에도 하루 관람객이 4천 명에 달했으니, 이 같은 관심이 올해 갤러리 전관을 <코리안 아이>에 할애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한국인 큐레이터와 공동 진행한 작가 선정을 올해는 찰스 사치와 갤러리 대표인 나이젤 허스트를 총감독으로 4~5명의 갤러리스트가 모여 독립적으로 진행했고, 2천 명의 작가가 작업한 2만 8천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 사치 갤러리가 자신들의 소장품이 아닌 외부의 작품을 독립적으로 기획해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각가 이재효 씨의 ‘0121-1110=107041’, 2007, wood(big cone pine), 520x520x520cm. 5m가 넘는 규모와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원형의 나무 조각은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의 2012년 작품인 ‘0121-1110=112034(210x210x66cm)와 함께 전시했는데, 관람객의 호응이 무척 뜨거웠다.
1 <행복> 2012년 4월 표지 작가이던 사진가 구성수 씨도 <코리안 아이>에 초대되었다. ‘From the Series Magical Reality Comics’, 2005, C-print, 180x220cm.
2 버려진 골판지 박스를 소재로 새로운 조형물을 완성하는 조각가 김현준 씨의 작품. (왼쪽 부터) ‘King’, 2009~2001,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50x20x55cm. ‘ART no’, 2007, cardboard, 40x30x130cm. ‘Fragile’, 2008,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94x70x 102cm.
3 사진가 배준성 씨의 ‘The Costume of Painter - Phantom of Museum Gm’, J.L. David red shawl hn, 2009, lenticular and oil on canvas, 181.8x259.1cm에서 부분.
4 조각가 이수경 씨의 작품. (왼쪽부터)‘Translated Vase’, 2007, ceramic trash, aluminum bar, epoxy, 24K gold leaf, 95x210x120cm. ‘Translated Vase, 2007, 90x85x 170cm, installation scene, solo show, 2009.
5 극사실주의 화가 강형구 씨의 ‘Theresa’, 2001, oil on aluminium, 240×240cm.
서른네 명의 작가 대잔치! 작가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코리안 아이> 전시 경험이 있는 강형구, 데비 한, 배준성, 신미경 작가도 포함되어 있지만 처음 참여하는 작가가 대부분이다(강형구, 구성수, 김동윤, 김병호, 김현준, 데비 한, 문범, 박선기, 박제성, 배준성, 신미경, 심승욱, 안두진, 안철현, 오정일, 유명곤, 유해리, 이광호, 이길우, 이문주, 이수경, 이재효, 이종건, 이지연, 장승효, 정승, 조덕현, 채미현・닥터 정, 최우람, 최종운, 한효석, 홍성철, 홍승희 , 홍유영). 무엇보다 주제가 자유롭고 미디어, 설치, 조형, 사진 등 장르의 경계가 없는 작품들이 포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치 갤러리는 현대미술의 아이콘 사치 갤러리는 런던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지역으로 꼽히는 첼시에 있다. 사치 갤러리가 유명해진 이유는 컬렉션 때문이다. 사치는 미술대학 졸업전을 순례하며 청년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곤 했는데, 현재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사치의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 of Saatchi>전을 열면서 ‘yBa’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으니,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뜬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코리안 아이>가 열리는 뜨거운 순간 전시 오픈 하루 전날인 7월 25일, 사치 갤러리의 VIP 게스트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갤러리 문이 먼저 열렸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한국 관련 행사가 대부분 ‘한국인의 잔치’로 끝나는 반면, <코리안 아이> 전시는 현지 관람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치 갤러리의 VIP들은 작품을 컬렉트할 만큼 미술 애호가가 많습니다. 그들에게도 이번 <코리안 아이> 전시는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작품을 이렇게 대규모로 만나는 것이 드문 일이거든요.” 전시를 기획한 파랄렐 미디어 그룹 한국 지사의 소니아 홍 대표가 귀띔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혹시 이 작품의 작가인가요?” 작품 앞에 서 있으니 관람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올림픽 기간 동안 런던을 찾는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갤러리 대표이자 전시 총감독인 나이젤 허스트가 전시의 시작을 알리며 말했다. 한국 미술 한류韓流의 화룡점정을 찍은 <코리안 아이>, 다음 해에는 또 어떤 작품들이 놀라움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갤러리 3층, 맨 위층에 자리한 전시관에서는 사 진 조각가 이지연 씨, 채미현・닥터 정 씨 전시가 이이졌다. (왼쪽부터) 이지연 씨의 ‘Wherever You Will Go’, 2011, collage, aluminum panel, private collection, 280x480cm. ‘Walking on Air-ver2’, 2012, pigment print, mulasec, E 2/5, 180x140cm. 채미현・닥터 정 씨의 빛 조형 작품인 ‘Echo Daytime, 2006, optical pumping laser, control systems, synchronized movements, 800x300cm. 이지연 씨의 ‘Above the Timberline’, 2011, pigment print, collage, aluminum panel, 122x1164cm.
Artist Interview
아름다움에 질문을 던지다 데비 한
<코리안 아이>에서 전시하는 ‘The Battle of Conception’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20년간 파고들었다. 청자 작업은 그 화두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작업한 결과다. 관람객과 소통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유물에 불과하니까. 누가 접하더라도 무언가를 느끼고 얻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 방법을 시도한다.
서구의 미인상을 대표하는 고전 조각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미의 기준은 사회가 만든 기호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질문 없이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궁극적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미인상이라 대변되는 ‘비너스’를 오브제로 썼다. 결론은 궁극적인 미美는 없다는 것이다.
청자, 백자, 나전 작업까지 작품의 소재가 다양하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소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문화적 환경이 바뀔 때마다 소재와 표현 방식이 달라질 뿐 철학적 근거는 동일하다. 청자는 한국의 역사적 본성을 대표하는 소재로 그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이천 도자기 공방에서 3년은 청자, 4년은 백자, 총 7년간 실패를 거듭하며 작업에 몰두했다.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서 작가로서 더욱 견고해지고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코리안 아이> 이후 전시 계획은? 내년 봄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영국 문화 축제 아트 경쟁 부문 ‘Brit Week T4C Award’에 수상자로 선정되어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내 작품이 화석이 되길 김병호 전시 작품 ‘부드러운 충돌(Soft Crash)’은 소리를 소재로 한 조각이다. 소리는 당신 작업에서 어떤 의미인가? 나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아니다. 내 작품의 소리는 약 300Hz의 소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맞춘 인공적인 주파수다. 새가 나무 위에서 지저귀거나, 바로 옆에서 지저귀거나 큰 차이가 느껴지는가? 마찬가지로 작품의 소리는 새소리처럼 확장성이 크다. 시각의 한계를 극복한 매체로서 소리를 사용하고 싶었다. 금속성 소재를 다루는 이유는? 금속이 가진 영원성, 마치 화석처럼 존재하는 순수한 물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최대한 인공적인 조작 없이 그대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도색 작업도 전혀 하지 않는다. 거짓 없이 소재가 가진 물질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내 개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림자도 제거했다. 공정 과정에서 전문 기술자와 함께 완성한다고 들었다. 기획자의 느낌이 강하다. 접근 방식이 다를 뿐이다. 기술 전문가가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손에서 무조건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기에 결과적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완성할 수 있다. 난 지휘자 역할을 하는 것이고. <코리안 아이> 이후의 전시 계획은? 10월에 프라하에서 ‘티나 비Tina B(This Is Not Another Biennale)’라는 미술 축제에 참가한다. 성당에서 설치 작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올해 처음 생긴 창원 조각 비엔날레도 준비중이다. |
진짜와 가짜 사이 신미경
작품의 소재가 비누다. 언제부터 비누로 작업했는가? 17년 전 런던 유학 시절 한국에서 공부할 때 연습의 대상이던 서양 고전 조각을 박물관에서 실제로 보니 새로웠다. 시간의 축적에 의해 표면은 비누처럼 닳아 있었고, 질감은 무척 조밀해서 반들반들했다. 현지인에게는 역사였지만, 내게는 동시대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내가 실물에 가깝게 복제하더라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것. 그 다다를 수 없는 공백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런던 중심가 캐빈디시 스퀘어에 컴버랜드 공작 기마상을 설치했다. 규모가 큰 만큼 작업이 어려웠을 것 같다. 작업에만 2톤의 비누가 필요했다. 유토로 모델링을 하고, 틀을 만든 다음 지지대 역할을 하는 뼈대를 만들어야 한다. 뼈대를 제외하면 비누로 꽉 채우므로 무게도 상당하다. 이번에는 워낙 대작이어서 비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다 보니 마찰도 있었다.
비누는 시간이 지나면 닳아 없어지는 소재인 만큼 소장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누는 존재와 부재라는 성질을 함께 지닌 독특한 소재다. 소장 가능해 보이지만 소장하기는 어려운 이중적 특징이 있다 보니 개인보다는 박물관에서 소장하는 경우가 많다. 돌처럼 수천 년 변화의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비누는 그 닳아 없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인생 속도와 비슷하게 풍화된다고 할까? 내가 만드는 것이 51%라면, 나머지 49%는 자연이 완성한다.
사치 갤러리 대표 나이젤 허스트 이번 전시에서 갤러리 오너인 찰스 사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작품 선정부터 조명등과 작품 제목을 달 위치까지 직접 관여하며, 작가들이 작품을 설치할 때는 옆에 다가와 의견을 나누기도 했단다. 전시가 열리기 직전 프랑스 남부로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찰스 사치 대신 갤러리 대표 나이젤 허스트를 만났다. <코리안 아이>의 작가 선정 기준은? 사치 갤러리의 작가 선정 기준은 항상 동 일하다. 작가의 인지도보다는 시각적 힘이 강렬한 작품을 선택한다. 관람객이 작품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2천 명의 작가는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이번 전시의 경우 작품 선정 과정에서 어떤 갤러리의 의견도 수용하지 않았다. <코리안 아이>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며 작품을 공모한다는 내용을 한국 작가 개개인과 갤러리에 보냈고 2천 명의 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사치 갤러리 팀이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검토하고 1차적으로 1백 명을 추렸으며, 최종 서른네 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코리안 아이>를 갤러리 전관에 확장 전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9년과 2010년 전시 모두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한국 미술이 가진 다양성에 주목했고, 관객들도 그것을 원했다. 한국의 앞선 테크놀로지와 디자인, 다면적인 세계관 등 여러 요소가 공존하는 작품들이 새로운 장르를 갈구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이러한 요소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은 엄청난 재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리안 아이> 네 번째 전시도 기대할 수 있는가? 한국 작가들이 지금처럼 놀라운 작품을 계속해서 선보인다면 왜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런던 올림픽에서 어떤 종목이 가장 기대되는가? 축구, 사이클 그리고 수영! |
1 <코리안 아이> 전시회를 축하하기 위해 찾은 인사들이 개막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2 전시장을 가득 메운 미술 애호가들.
3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문화까지 앞장서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간다고 소감을 전한 MCM 김성주 회장.
4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이 뛰어난 한국 현대미술에 눈뜨는 계기가 될 것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은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
5 <코리안 아이>의 창립자인 파랄렐 미디어 그룹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회장. 마침 이탈리아에 사는 손녀 인디아가 사치 갤러리를 방문해 전시를 함께 관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