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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행복을 위해 행복을 멈춰라
‘스님 책 열풍’의 시작을 이끌며 출간하는 책마다 예외 없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는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일본의 대표 멘토로 알려진 스님을 <행복>이 도쿄 중심가에서 만났다. 하루하루 더 행복에 갈급한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었고, 그는 “행복을 위해 지나친 행복을 삼가라”란 짧고도 묵직한 답을 건넸다.

*이 기사는 ‘21세기북스’의 협조로 진행했습니다.

천 년 묵은 까마귀가 산다는 곳으로 향한다. 까마귀는 한국인이 그다지 좋아하는 새는 아니지만, 일본을 비롯한 여러 문화권에서는 ‘지혜’와 ‘예언’의 상징이다. 신주쿠 역에서부터 지하철 노선을 점자처럼 짚으며 마침내 도착한 곳은 ‘천세오산역千歲烏山驛’이다. 하지만 역사 주변을 둘러봐도 산은 보이지 않는다. 도쿄 번화가에 비하면 한갓진 시골 마을 같아 정겹기까지 하다. 수소문하며 찾아간 곳은 둥근 향나무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아담한 맨션이다. 벨을 누르자 기척이 인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대학생 자취방 같은 간소한 살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밥은 끓여 드시는 걸까? 부엌의 냄비와 칼, 도마가 넌지시 이르는 것 같았다. “우리도 단식 중이에요.”

작은 다탁이 놓인 방에 스님과 마주 앉았다. 소설 <만다라>에 나오는 지산 스님이 떠올랐다. 솜씨 좋은 칼 잡이가 도려내도 한 근이 넘지 않을 살집이라 표현했던가. 스님은 사진보다 훨씬 깡마른 모습이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맨발에 검푸른 바다색 유카타를 입은 모습을 보며 무릎을 쳤다. 아, 저이인가! 깃을 접고 내려 앉은 까마귀의 모습과 흡사하다. 저이가 펼친 지혜의 법문은 일본 열도는 물론,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도 수많은 이의 귀를 잡아끌고 있다. 한데 천 살 먹은 까마귀는커녕 시퍼런 30대다.

(왼쪽)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한 달에 반은 야마구치의 쇼겐지(正現寺)와 세카가야구의 쓰키요미지의 주지로 절에 칩거하며 묵언 수행을 한다. 나머지 보름 동안은 세상에 나와 일반인의 마음 다스리는 걸 돕는다. 이 집은 대중 설파를 위한 시간에 머무는 곳으로, 도쿄의 천세오산千歲烏山 근처에 위치해 있다.

코이케 류노스케(小池龍之介) 스님을 만났다. 1978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난 그이는 도쿄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세카가야구의 쓰키요미지 사寺 주지로 있다. 절과 문화센터 등에서 좌선과 명상을 지도한다. 대중 강좌도 인기 있지만, 그가 펴낸 책들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생각 버리기 연습> <화내지 않는 연습> <버리고 사는 연습> <침묵 입문> <부처의 말> <번뇌 리셋> <혼자인 순간 나를 만나라> <불교 대인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

낯선 손님들이 바다 건너 왔지만 이웃집 사람을 맞이한 듯 무덤덤하다. 스님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자 다탁 앞에 가부좌한 채 얇은 눈꺼풀을 내리깔고 있다. 어깨의 좌우 기울기가 수평을 이루지 않아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다. 말을 시키지 않으면 카메라 앞에서도 선정 삼매禪定三昧에 들 것 같다. 문득 오토바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출간한 <생각 버리기 연습 2>의 일어 제목은 ‘괴로워하지 않는 연습’이었습니다. 타이틀이 바뀐 것에 살짝 불만이 있습니다. 생각 버리기를 강조한 까닭은 현대인의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생각을 아주 버리기는 어렵지만 줄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줄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저이가 버리라는 것은 모든 생각이 아니라, 집중을 방해하는 ‘생각의 잡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줄여야 할까요?” “TV, 잡지, 인터넷,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입니다. 친구들이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나빠지지요. 이런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몇 번씩이나 메아리(echo)칩니다. 그러면 마음은 평형이 깨지고 어지러워지지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놀라운 소통의 기능을 지닌 문명의 이기다. 하지만 먼 곳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의 소외를 초래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카페에서 만난 연인들이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꽤나 우습고 상징적이다.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SNS)에 의존하는 이유는 어디 있다고 봅니까?” “현대인은 모두 외롭습니다. 그래 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면 뇌 속에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출됩니다. 도파민은 마약 같아서 순간 기분이 좋아지지만 곧 더 허전해집니다.”

도파민은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 전달 물질로,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도파민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인간은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기분 좋다’라는 감정은 신경세포의 도파민을 받아 들이는 부분에 자극을 주는 건데, 너무 자주 느끼면 점점 기분 좋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최대 불행입니다.”

기분 좋은 감정을 자주 느끼면 점점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기분 좋은 걸 삼가라? 행복을 위해 지나친 행복을 삼가라는 말씀? “일본을 예로 들어볼까요? 일본 사람들은 미국과의 패전 이후 기분 좋은 일이 많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스스로 행복을 느꼈고, 그때는 자살률도 낮았습니다. 한국도 경제성장 이전에는 자살률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과 한국은 서로 경쟁할 정도로 자살률이 높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하고 편리한 물질문명이 궁극적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말씀이지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일수록 GNH(국민총행복지수)가 높습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이 지수가 낮습니다. 일본은 대도시인 도쿄와 오사카가 특히 낮게 나타납니다. 반면 후쿠이 현이라는 시골은 일본에서 가장 높습니다.”


아담한 맨션 안은 간소한 살림이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류노스케 스님은 불도에 입문하기 전 회사원, 아르바이트생, 입시 학원 강사, 절의 시봉, 월급쟁이 승려 등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때 스트레스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 인간관계에 대해 번뇌해왔다고 한다. 그가 현대인들이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그들의 명상과 좌선, 상담을 돕는건 이런 데서 연유한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 상에는 물질문명의 파이를 더욱더 키워야 한다는 성장 우선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대세이지 않은가. 그들이 과연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밥 먹는 것을 예로 들어볼까요? 인간 신체의 시스템은 원시시대에 비해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늘 배가 고팠고, 짐승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하지만 가끔 배부르거나 사소한 즐거움이 있을 때에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배가 고프다가 다시 부르고, 긴장 속에 다시 행복해지는 밸런스가 잘 맞았습니다. 반면 현대인은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서도 오히려 행복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때와 마음속이 평온한 상태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미잘은 어미로부터 처음 떨어져 나와 새로운 곳에 정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뇌를 먹어치우는 일이라고 한다. 본능을 충족하는 것 이상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일까. 반면 지구 상 어떤 생물보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인간은 눈부신 물질의 풍요를 이루 었지만, 진정 행복한가. 우리의 행복을 지탱해줄 만큼 생태계는 안전한가. 인간은 이제 지구별 모두에게 무서운 적이 아닌가. 자기 뇌를 먹어치운 말미잘과 점점 더 두뇌를 키워온 인간 가운데 누가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가.

“행복의 횟수를 줄여야 한다면 어떤 것을 물리쳐야 할까요?” “먼저 정보의 양을 줄이고, 자극적 음악, 영상 매체도 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서 해를 끼칩니다.” “좋은 자극은 어떤 것인가요?” “책을 읽으십시오. 물론 불교 서적도 좋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요즘 사람들은 큰 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상대방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어야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생각 버리기’가 실제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오감으로 느끼십시오. 밥을 먹을 때는 밥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드십시오. 대화를 할 때는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기보다 상대방 이야기에 집중하세요. 상대의 표정을 주의 깊게 보는 것도 좋습니다. 걸을 때도 자신의 오른발, 왼발의 느낌을 조금 더 확실히 느끼면서 걸어보십시오.” “오감을 강화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현대인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져 있습니다. 생각을 억지로 줄이기는 어렵지만 감각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신체적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오래된 불가의 수행법이다.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근심하지 않고, 온전히 현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숨을 깊거나 얕게 내쉬면서 호흡에 집중하면 잡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수식법數息法’이다. 스님의 책을 보면 대학 시절까지도 스트레스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으로, 가족과의 불화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스님 스스로 수행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끊임없이 연습한 덕분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빴는데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금도 가치관이 많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툴 만한 상황이 되면 명상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화가 나면 돌아앉아서 명상을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알 듯 말 듯 입가에 웃음기가 밴듯 하나 웃지는 않는다. 스님의 유머 감각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격랑을 삼킨 호수처럼 담담하고 또 담담하다.

“출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출가 후 바뀐 것이 있나요?” “한국과 일본은 출가의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의 출가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결혼도 하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는 출가를 하더라도 주변 관계를 유지합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절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갑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스님이 다른 직업을 가지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도 아버지가 스님이셨고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절에서 태어났고, 자라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출가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서원誓願한 점이 있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음 편하게 출가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승려가 되겠다는 것보다 불교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쉽게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지요.”


그 흔한 휴대전화도 없이 오로지 팩스로만 연락이 닿는 류노스케 스님은 펜으로 편지 쓰는 것을 즐긴다. 편지는 늘 그림으로 마무리하는데, 직접 그린 카툰을 웹사이트에 올릴 정도로 그림 솜씨가 좋다. 시간 관리가 철저한 스님에게 꼭 필요한 용품이 시계인데, 인터뷰 내내 시계를 들여다보며 약속한 시간이 넘지 않도록 조절했다.

스님이 펴낸 책은 하나같이 ‘마음의 지리학’이라 할 만하다. 요즘 사람들이 헤매고 고민하는 마음의 미로들 이 손금처럼 그려져 있다. 속세를 떠나 산중에 든 승려라면 알 수 없는 골목길들이다. 저잣거리를 걸으면서 대중이 사는 쪽방과 마천루를 두루 살피며 스스로의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그려낸 것이다. 동시대에 길을 잃고 헤매는 많은 이가 저이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잡지의 이름이 <행복이가득한집>입니다. 불가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난 집’으로 비유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집을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가족끼리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하십시오. 가족이 행복해지려면 서로에게 안정감을 느껴야 합니다. 같이 밥 먹는 시간을 많이 갖고, 서로 손을 잡고 어르고, 부모는 자식을 자주 쓰다듬어주십시오.”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신체적 접촉을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현대인은 몸은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머릿속은 각자 생각의 바다에 빠져 고립되어 있습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밥을 먹을 때 사람은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항상 안심이 되는 사람과 함께 먹는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을 같이 먹는 행위만으로도 인간의 뇌는 이 사람은 안심이 되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가족 간에는 다투더라도 밥을 함께 먹고 접촉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서로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이 모든것의 공통점은 뇌가 생각을 하면서 짓는 망상을 접촉과 같은 신체의 오감을 통해서 없애는 것입니다.”

요컨대 ‘뇌는 쉬고, 오감은 회복하라!’는 말씀이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최근 한국에 초대되어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경쟁이 치열한 곳처럼 여겨집니다. 경쟁은 이겨도 피곤하고 지면 최악이고, 득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경쟁에 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합장을 하고 처음 맞을 때처럼 그렇게 배웅했다. 천세오산역으로 나오는 길에 까마귀를 보았다. 일본의 도시는 어딜 가든 까마귀와 공존하는 것 같았다.
“까옥~”

(오른쪽) <생각 버리기 연습 1, 2> <화내지 않는 연습> <버리고 사는 연습> <혼자인 순간 나를 만나라> 등 스님의 책은 나오는 즉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한다. 어지러운 세상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청정한 말씀과 따뜻한 위로, 죽비 같은 훈계를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글 반칠환(시인) | 진행 최혜경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