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바람이 불자, 숲으로 흰 새가 날아들었다. 새가 지나온 흔적에는 물 같은 푸른 숲길이 열린다. 아, 그 상서로운 빛. 그 빛에 둘러싸인 새의 날개를 여인이 융단처럼 즈려밟고 있다. 여인은 곧 저 날개를 타고 물안개처럼 날아갈 태세다. “1980년대부터 줄기차게 그려온 ‘집’ 그림이에요. 새와 여인은 ‘집’에 담겨 있어요. 어떤 생각이든, 어떤 이미지든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으면 내 소유가 되고 내 우주가 돼요. 주머니에 집어넣은 것처럼. 집이라는 주머니에 담긴 나만의 우주. 특히 이 그림은 슈만의 피아노 곡 ‘숲 속의 정경’ 중 ‘예언하는 새’라는 곡을 듣고 그린 것이에요. 사람의 언어도 새소리도 아닌 제3의 언어로 예언하는 새 이야기인데, 저는 제 그림자가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것으로 그려봤어요.”
8월호 표지 작품 ‘Shadow Bird Ⅱ’를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다. 이슬의 세상에서 발버둥 치며 살다 돌아온 우리를 매양 보듬어주던 우리 집, 생각난다.
김원숙 씨는 이렇게 그림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는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예의, 세상에 대한 관대함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6월 제 개인전을 본 이가 방명록에 ‘달빛 같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라고 썼데요. 어떤 평론보다 가슴에 와 닿았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면 그건 “맞아, 나도 저런 달을 본적 있어” “꽃이 필 땐 나도 저랬지” 하고 공감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잠시 자기 걸로 만든 거죠. 아무리 행복한 삶이라도 누구나 존재의 외로움을 지니고 태어나잖아요. 외로운 존재들이 느낌을 공유했다는 것,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손을 잡았다는 것, 그런 게 위로가 아닐까요.” 우리의 애환을 통찰하는 그림이 주는 위로.
그림, 내 삶의 일기책
“어릴 적 할머니에게 매일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면 ‘너같이 이야기 좋아하다간 일생 배고프게 된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그 이야기들이 나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한 것 같습니다.”(김원숙 작가의 글 중) 그의 그림엔 늘 ‘이야기’가 있다. 연못가의 연인, 달빛 아래 선 여인, 다정한 새 한 쌍, 난롯가의 부부처럼. 그 그림 속 이야기는 내 일상의 이야기인 듯해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된다.
“무엇보다 제겐 삶이 먼저예요. ‘예술을 위해서 내 삶을 태운다’란 말은 멋지긴 하지만, 내 말은 아니지요. 살다 보니 이 그림이 나온 거지, 이 그림을 위해서 내가 산 건 아니에요. 내 그림은 내가 살아내는 삶의 일기책이에요. 내게 그린다는 건 이 찬란하고도 아름다우며 말썽 많고 고통투성이인 삶을 살면서 떠오르는 생의 찬가요, 불평이며, 마음 깊이 남는 애잔한 것들의 기록이거든요.” 평생 ‘건전 주부’로, 화가로 밥 짓기와 그림 그리기를 성실히 다한 김원숙 씨. 밥 짓는 손과 그림 그리는 손이 함께 있었기에 그의 그림에 그렇게 애틋한 일상이 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일상의 자잘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그의 그림을 보며 깨닫는다.
‘Forever Orchard’, 캔버스에 유채, 92×137cm, 2010
희망의 그림자
그는 1년 전부터 ‘그림자 드로잉’이란 새로운 문을 두드리고 있다. 드로잉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단단하게 해서 걸어놓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하다 성취한 ‘발명’. 드로잉을 부조처럼 브론즈로 만들어 벽에 걸었더니 자연스레 그림자까지 생겼다. “즉흥적이고 가벼운 드로잉을, 잘 생각해야 하고 무거우며 힘들게 탄생하는 브론즈 드로잉으로 만들어본 거죠. 저는 그림을 벽에 거는 게 더 친숙한 ‘노털’이라 그 브론즈 조각을 벽에 걸었더니 그림자라는 요술쟁이가 생겼어요. 빛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불을 끄면 사라져버리는 도깨비 같은 그림자. 제겐 그 그림자가 더 진짜 같더군요. 보통 우린 그림자를 부정의 의미로 쓰는데, 그림자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귀신은 그림자가 없으니까. 그림자가 있음으로써 이 작품이 더 생명 있는 재미난 놀이가 되는 것 같아요. 다음엔 춤추는 그림자처럼 또 다른 작업이 나올것 같아 기대돼요.”
그는 이런 사람이다. 그림자까지 희망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사람, 시난고난한 삶의 모습을 희망과 연민으로 덮어 끌어안는 사람.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 중에 ‘뒤를 돌아보는 남자’란 게 있어요. 두 남자가 진탕만탕 살다가 지옥불에 내려가게 됐는데, 그중 한 남자가 뒤를 돌아봤대요. 하느님이 “왜 뒤를 돌아봤나?” 물으니 그 남자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죠. 그 이야길 듣고 하느님이 “오케이, 너는 저기 천국으로 가라” 했대요. 정말 신나는 이야기죠? ‘뒤돌아본다’ 하면 후회를 떠올리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뒤를 돌아본다는 게 희망이 된다니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는 실제를 더 실제이게 하는 것이니 좋고, 외롭다는 건 호젓하다, 혼자 풍요롭다는 것이니 좋지요.” 우리 삶을 가열차게 만드는 희망이여! 어둠 툭툭 털고 날아오른 새들 뒤로 아침이 다가온다. 산허리에서 자던 바람도 곧 깨어날 것이다. 실버들처럼 훨훨 춤을 추면서. 또 다른 희망이 기지개 켜는 참이다.
김원숙 씨는 홍익대학교를 다니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 주립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6년 일리노이 주립대 비주얼아트센터와 명동화랑에서 각각 첫 개인전을 연 후 국내외에서 수십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1978년 ‘미국의 여성 작가’에 선정되었으며, 1995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유엔후원자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후원 미술인’이 되었다. 국내에서 가진 5년 만의 개인전이 7월 8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다. 문의 02-2287-35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