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과
박인하 교수 추천
막 지은 밥 한 공기 같은 따뜻한 위로
<현미 선생의 도시락>
음식은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조차 하 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라도 음식과 함께 엮이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힘 때문이 아닐까. 음식에 대한 최신 트렌드를 흥미롭게 담아낸 이 만화는 로컬 푸드, 푸드 마일리지, 농가 레스토랑 같은 지금 가장 ‘핫’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바른 먹거리를 꿈꾸는 이들이 보면 더욱 재미있을 듯.
“나는 행복하다” 엄마도 나처럼 주문을 외우면 좋을 텐데 <여자 이야기>
시골에서 여고를 중퇴하고 도쿄로 올라와 호스티스 생활을 하며 대학에 다니다가 에로 만화가를 거쳐 진짜 만화가로 데뷔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 사이바라 리에코. 전작 <만화가 상경기>가 호스티스 생활을 하며 만화가로 데뷔한 이야기라면, <여자 이야기>는 그이전 유년의 기억을 담았다. 너무나 날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픈 만화. 가슴을 울리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다.
한 소녀의 눈을 통해 본
동유럽의 역사 진실 <마르지>
작가 마르제나 소바의 자전적 만화로, 1980년대 폴란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폴란드 풍습부터 체르노빌 사건까지 풍부하게 다루며 작은 소녀의 눈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러나 이 소녀의 이야기는 우리의 유년 시절과 다르지 않다. 천진함과 조숙함을 두루 보여주는 마르지와 함께 낯선 나라 폴란드의 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첫사랑 이야기 <초속 5000킬로미터>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그 햇살 아래에 고등학교 과정을 막 마친 소년 피에로가 있다. 어느 날 그곳에 소녀 루치아가 이사 온다. 피에로는 첫눈에 반하지만 당연하게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몇 번씩 마주한다. 2011년을 빛낸 섬세하고 눈부신 작품 <초속 5000킬로미터>는 이탈리아, 노르웨이, 이집트를 무대로 펼치는 피에로와 루치아의 사랑의 궤적을 섬세한 프레스코화로 재현한 만화다. 아름다운 그래픽, 가슴에 와 닿는 대사에 찬사를 보낸다.
북 칼럼니스트 박사 씨 추천
여백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헤이, 웨잇>
“조심하세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줄지 모르니”라는 이 책의 경고는 결코 헛말이 아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다. 호기심과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단짝 친구 욘과 비욘의 이야기로, 짧은 이야기지만 연출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상징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 얇은 책을 읽고 우리 마음에 길게 생기는 상처는 아프지만, 그게 바로 이 책의 아름다움인 걸 어쩌랴.
이것이 진짜 아프리카 이야기 <요푸공의 아야>
1970년대 말, 서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당시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이 책은 그 먼 곳의 삶을 알 수 있는 가장 생생한 방법이다. 기아, 가난, 에이즈, 전쟁에 시달리는 원시 아프리카 부족을 기대하지 말 것. 그들의 삶도 뉴욕의 <프렌즈> 못지않게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지금까지의 서유기는 잊어라 <서유요원전>
기괴하고 공포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만화를 그려온 ‘무섭고 웃긴’ 작가 모로호시 다이지로. 그가 <서유기>를 다시 그리겠다고 나섰다. 1983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연재 잡지가 폐간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작가가 집요하게 부활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세계. 그러나 끝까지 따라가려면, 독자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뿐이나니.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씨 추천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달래준다 <심야식당>
밤 12시에 문을 여는 기묘한 식당 ‘심야식당’. 메뉴라고는 돼지고깃국 정식과 술 정도가 전부인 초라한 밥집이지만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꽤 친절한 가게다. 심야식당에 찾아오는 손님은 안 팔리는 가수, 만년 패배만 하는 복서, 수상한 깡패 등 빛보다는 어둠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 이 만화는 심야식당에서 손님들이 주문하는 음식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애환과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어제의 카레, 고기채소볶음밥, 마카로니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훈훈하다.
좋은 만화의 교본 <레드문>
1994년 첫 연재를 시작한 이후 18권이라는 대장정을 거쳐 완성한 SF 대작. 구세주인 태양을 기다리는 시그너스와 시그너스를 구할 운명의 선택받은 왕 그리고 그 그늘에 가려져 ‘레드문’으로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왕의 운명적 대립과 구원의 이야기다. <레드문>은 후반으로 갈수록 호흡이 더욱 정교해지고 스토리 라인에 감성적인 재미까지 더해져 “역시 황미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환경오염과 미래에 대한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얘기가 아닐까!
<스타일H> 정유희 편집장 추천
궁극의 소녀 만화, 미완의 걸작 <유리 가면>
‘전설의 소녀 만화’를 꼽는다면 숨도 쉬지 않고 50편 정도는 거뜬히 말할 수 있지만, 몰입도 면에서만 평가한다면 <베르사유의 장미>와 <캔디 캔디>를 제치고 첫손에 꼽는 작품이 바로 <유리 가면>이다. 1976년에 연재를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진행 중인 미완의 걸작으로,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가 작품을 완결하지 않고 운명하면 무덤까지 쫓아갈 의지가 있을 정도. 상반된 환경에서 자란 두 여배우의 숙명적 라이벌 관계, 키다리 아저씨 모티프의 러브 스토리 등 수많은 클리세이를 양산했으나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여러 편의 연극 스토리와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마력. 현재 47권까지 나왔다.
흙냄새 풍기는 자급자족 생활기
<리틀 포레스트>
탄탄한 데생력과 색채 감각이 뒷받침된 압도적 화풍, 자연과 영적인 기운이 충만한 독특한 세계관으로 단숨에 나를 사로잡은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 <영혼> <마녀> <해수의 아이> 등 대표작도 좋지만 <행복> 독자들에게는 <리틀 포레스트>를 추천하고 싶다. 도시에 귀향한 주인공 이치코의 자급자족 생활을 담은 이 작품은 별다른 줄거리는 없지만, 자연의 지혜가 밴 요리 하나하 나가 맛깔스럽고 풍요롭게 다가온다. 나무 열매를 뚝뚝 따 먹고, 밭에서 막 캔 채소로 쓱쓱 해 먹는 요리. 읽기만해도 구수한 흙냄새가 물씬 풍기고 뜨거운 시골 볕이 등을 찌르는 듯하다.
고양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비가 없는 세상>
지금은 애묘가가 많이 늘었지만, 직업군으로 따진다면 역시 ‘만화가와 고양이’는 완벽한 짝처럼 느껴진다. 최근 들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실생활 만화가 종종 눈에 띄지만, 일찍이 섬세하고도 따뜻한 터치로 반려묘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삶의 충만함을 그려낸 바 있는 <나비가 없는 세상>은 꼭 언급하고 싶다. 삶의 쓸쓸한 여백을 메워주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무한한 애정을 품게 해주는 고양이들. 페르캉, 지금도 잘 있지? 신디와 추새, 끝까지 지켜줬으면 좋았을 것을.
편견도 낭만도 뛰어넘은 이상한 러브 스토리 <푸른 알약>
유럽의 그래픽 노블은 아직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의 ‘망가’나 미국의 공상 과학 코믹스에는 없는 향기와 터치가 있다. 아이가 딸린 이혼녀, 더군다나 모자가 모두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 그러나 이를 알고도 여자와 결혼한 남자. 이 제정신이 아닌 듯한 이야기는 가상이 아니라 작가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실화다. 억지 감동이나 위장된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은 현실적 내용,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잊지 않은 위트와 유머, 이런 내용을 무심하고도 거칠게 옮겨놓은 붓 터치…. 덕택에 아주 특별한 러브 스토리, 괴상하나 따뜻한 가족 초상이 남았다.
<행복이가득한집> 박경실 기자 추천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의 홀로서기
<맛있는 관계>
마키무라 사토루는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만화가다. 작품마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여성상을 제시하고, 선택의 기로에 선 20~4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감동적으로 포착해낸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 대부분이 음식 상찬으로 시작해 맛의 대가가 되기 위한 수련을 보여주지만, <맛있는 관계>는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과의 관계를 다룬다. 고급 취향의 부자 아가씨가 양파 껍질 까는 주방 보조 아가씨로 신세가 바뀌며 겪는 일들이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 연애, 이상과 현실의 삐걱거림 등과 함께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다.
바람 어디로 부는가,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불의 검>
한국 순정 만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불의 검>은 김혜린 작가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총 12년에 걸쳐 연재한 서사극이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청동기 부족 아무르의 전사 가라한과 산골 소녀 아라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그린다. 기억을 잃어버린 전사와 사랑을 위해 검을 만드는 가녀린 여인의 운명적 사랑, 그리고 불의 검을 통해 왕궁을 탈환하는 역사 전쟁의 과정이 격동적으로 펼쳐진다.
정치가 이렇게 재밌다니!
<쿠니미츠의 정치>
주인공 쿠니미츠는 장래 일본 총리가 되고 싶어 하는 불량 청소년이다. 저돌적이지만 순수한 이 청년이 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만화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기업과 결탁해 불필요한 건설 공사를 벌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등 시민의 단물을 빨아먹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익숙하다! 열혈 소년 만화의 클리세이에 정치라는 소재를 담은 재미있는 만화.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정치 혐오증에 빠진 이들에게 <쿠니미츠의 정치>를 권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 서기관 에우메네스 이야기 <히스토리에>
희대의 영웅이 있고 평범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엮여 역사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 만화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한 명이었으며 후일 페르가몬 왕국의 선조가 되었지만, 유년 시절은 베일에 싸여 있는 청년 에우메네스의 이야기다. 세력가의 아들이던 그가 홀로 떠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알렉산더 대왕의 서기관이던 에우메네스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으니 꼭 휴가 때 읽을 것.
- 다섯 명의 만화광이 추천하는 휴가 때 읽으면 좋은 만화 17선 방콕해서 어떤 만화책 볼까?
-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있진 않나? 그렇다면 잠시 일을 접어두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는 거다. 만화에 빠져들어 웃고 울다 보면 행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