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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씨 인생은 노하우knowhow보다 노후knowwho가 중요하다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유일무이한 레테르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서경덕 씨. 8ㆍ15 광복절을 앞둔 지금 우리가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광복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 진정한 광복은 영토의 회복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그간의 활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홍보가 아니라, 세계인과 문화를 공유하며 동반자가 되기를 꿈꾸는 21세기 조선 통신사!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다닐 때 ‘코리아’라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파리 에펠탑 앞에서 개최한 8・15 광복절 행사,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 활동, <뉴욕 타임스>에 낸 독도 광고, <워싱턴 포스트>에 낸 일본 사과 요청 광고, 세계적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 실행 등 가열찬 활동이 이어졌다.
옐로 셔츠와 네이비 재킷, 보타이는 제이미 앤 벨, 그레이 컬러 팬츠는 자라 제품.


모든 냇물은 바다와 닿아 있지만 어떤 물고기는 평생 내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 물고기는 기어이 폭포마저 뛰어내려 바다에 서 꿈을 펼친다. 어떤 새는 오랜 진화의 산물인 날개조차 반납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지만, 어떤 새는 폭풍우가 무시로 하늘길을 쓸어가도 창공을 포기하지 않는다. 생태적으로야 피라미와 닭도 연어와 신천옹(앨버트로스)만큼이나 중요한 지위를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다만 삶의 진취성에 대한 은유이다. 천생天生이라는 말이 있다. ‘타고난 바탕’이라는 뜻이다. 좁은 반도에서 태어났지만 오대양 육대주를 무른 메주 밟듯 다니며 한국을 홍보하고 다니는 ‘천생’ 호방한 한 사나이가 있다. 홍보라면 대개 기업이나, 단체나, 국가와 같은 조직이 주체지만 그는 ‘개인의 어깨’에 ‘국가’를 얹고서도 잰걸음이다.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드문 호칭을 얻은 서경덕, 바로 그 사람의 행보를 잠시 더투어보자.

발자국 하나. 2005년 7월 27일 자 <뉴욕 타임스>에 “독도는 한국 영토입니다(Dokdo is Korean territory)”라는 광고 게 재. 당시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이라는 조례를 만들자, 미국을 여행 중이던 그이는 사재를 털어 광고를 냈다. 개인이 자국의 현안에 대해 광고를 한 것은 <뉴욕 타임스> 역사상 처음이었다고.

발자국 둘. 2007년 4월 17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세계인들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해야만 한다”는 광고 게재. 당시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되었는데, 아베 총리는 강제 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전임 일본 문부장관은 “위안부가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망언을 했을 때.

발자국 셋.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비롯해 현대미술관, 미국 자연사박물관 등 세계적 박물관과 미술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이끌어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을 다닐 때마다 한국어 안내가 없는 것에 자존심 상하던 대학생 서경덕의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러한 소식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가슴을 짓누르던 돌을 들어낸 것처럼 시원함을 느낀 사람들은 비단 그이의 팬 카페 회원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밖에도 그이는 여러 세계적인 매체를 통해 독도, 위안부, 동북공정 문제 등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을 지속적으로 세계에 알려왔다. 또 <뉴욕 타임스>에 비빔밥 광고를 내는가 하면,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와 함께 ‘한글 세계 전파 프로젝트’와 ‘세계 분쟁 지역 평화 전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이자,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독립기념관 명예홍보대사,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고 있다.

<행복이가득한집>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의 스튜디오에서 한국 홍보 전문가와 마주 앉았다. 180cm가 넘는 키와 당당한 몸피에서 사진에서 보지 못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지 않았던가? 신체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구와 달리 표정은 온화하고 말투는 상냥하다. 부드러움은 또 다른 힘일 것이다. 다만 질문을 던지니 태엽처럼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손으로 받아 적기 힘들 정도다. 꽤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이처럼 두뇌에서 혀까지의 정보 전달 체계가 빠른 사람은 오랜만이다. 부득이, 잘 사용하지 않는 녹음 기기의 버튼을 검지로 누르고서야 안심이 된다. 남다른 행보의 실천력으로 미루어볼 때 두뇌와 발까지의 정보 전달 체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짐작한다.
“태평양 오가며 시차 때문에 힘들지 않으신지요?” 불과 사흘 전만 해도 그이가 뉴욕에 있던 사실을 언론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차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아요. 이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지구촌’ 전체를 신토불이로 삼는 부러운 체력이다. 1년에 반 이상은 해외에 나가 있다는 그이다. 아직 결혼 3년 차인데 저렇게 집을 비워도 될까?
“결혼할 때 아내한테 다짐을 받았어요. ‘1년에 반만 볼 자신 있으면 결혼하자!’ 나중에 그 약속을 그렇게 잘 지킬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아내도 일을 가지고 있고, 남편이 하는 일을 잘 이해해준단다.

(왼쪽) 2005년 7월 27일 자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독도는 한국 영토입니다Dokdo is Korean territory.” “독도는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두 개의 섬”이라는 설명과 함께 “독도는 한국에 속하며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이는 한국에 건너오기 전, 뉴욕에서 벌써 한바탕 일을 치르고 온 터다. 7월 3, 4일 이틀간 유학생 8명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타임스 스퀘어, 유니온 스퀘어, 워싱턴 스퀘어, 센트럴 파크 등에 2천5백 장의 위안부 관련 전단을 직접 배포한 것이다. 전단지에는 ‘기억하시나요?(DO YOU REMEMBER?)’라는 제목 아래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모습과 함께 ‘일본은 독일의 이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양심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광고에 대한 반응이 있나요?”
“네, 세계 각국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웬만한 언론사에서는 다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광고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의 문제라기보다 보편적 여성 인권의 차원에서 다룬 것이 세계인들을 공감시키는 데 주효했단다.

그이는 또 지난 7월 3일부터 한 달 동안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아리랑 광고’의 막을 올렸다. ‘들리시나요?(DO YOU HEAR?)’라는 제목의 30초짜리 영상 광고다. 타임스 스퀘어에서 가장 큰 전광판인 TSQ에 한 달간 모두 1천5백 번 상영된단다. 중국이 최근 ‘아리랑’을 자국의 무형 유산으로 등재하는 ‘문화 공정’에 맞서, 우리의 ‘아리랑’으로 지켜나가기 위한 것이다. 대형 화면 위로 아름다운 ‘아리랑’ 선율을 담은 오선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이 광고에는 야구 선수 박찬호와 배우 차인표의 얼굴이 비친다.
그이가 평범하고 소심한 한 사람의 국민이길 거부하고, 국가 홍보의 길로 들어선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다닐 때였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는 토종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외국인마다 하나같이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한국이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라고 배웠는데, ‘프롬 코리아’라고 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요한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조국에 충격을 받은 그이는 이후 여행 때 남대문에서 태극 배지를 사서 외국인들에게 나누어주고, 파리 에펠탑 앞에서 모여 8ㆍ15 광복절 행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단다. 몇 명이나 모일까 걱정했지만 뜻밖에 3백여 명의 한국인 여행객이 모여서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굉장한 감동을 맛보았다. 2001년 제대한 그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잔디 재킷을 입혀 인상적인 월드컵 개막식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비록 김 전 대통령에게 잔디 재킷을 입히는 데는 실패했지만,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언론을 통해 그이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서경덕은 <뉴욕 타임스> 독도 광고를 통해서였다.
“어떻게 독도 광고를 할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미국에서 박물관 한글 안내서 작업을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 발표를 한 겁니다. 대한민국이 가만히 있으니까 이렇게 막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당시 뉴욕에 머물면서 세계인들이 보는 <뉴욕 타임스>의 위력을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이는 다짜고짜 독도 광고를 하겠다고 나섰다. 개인 자격으로 국가를 홍보하겠다는 이 한국 청년의 제안은 <뉴욕 타임스> 측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5개월여의 협상 끝에 마침내 독도 광고를 싣게 되었단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한 ‘기초 한국어’ 광고,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비빔밥’ 광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한 ‘기초 한국어’ 광고 중 ‘독도’편.


“이번 광복절 행사를 준비하시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독도 페스티벌 2’를 벌일 생각입니다. 가수 김장훈 씨와 2백 명 정도 한국 체대 수영부 선수들과 울진 죽변항에서 독도까지 215km를 헤엄쳐갈 겁니다. 독도는 우리 땅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이 행사는 트위터 등 SNS와 사진,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할 것이란다. 중학교 때 ‘신림동 물방개’로 불렸다는 그이지만, 바쁜 일정 중에도 수영 연습을 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도 그렇지만, 한일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한일군사정보협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30여 차례 광고를 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ㆍ중ㆍ일이 힘을 합쳐야 한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협력자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일본 우익들의 위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트위터, 전화, 메일 등을 통한 위협은 있지만 실제로 가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의식했지만, 지금은 으레 그러려니 합니다.”
“애국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애국이란?”
“우선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글로벌 리더를 강조하는데 좋은 말 입니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소홀히 하면서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가족도 없습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서 한국의 자랑할 만한 점이 있다면?”
“역사 문화적으로 세계에 내보일 만한 것은 일단 우리 문화입니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훌륭한 글 자로 손꼽는 ‘한글’, 또 요즘 세계적 트렌드가 되고 있는 웰빙을 선도하는 ‘한식’을 꼽고 싶습니다. 세계 70억 인구가 한국에 다 들어올 수는 없지요? 한국 5천만 인구가 다 나갈 수도 없지요? 하지만 가장 근거리에서 한국 문화로 접 할 수 있는 게 한식입니다.”
“교수님이 꿈꾸는 한국의 미래상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문화 강국이 되었으면 좋겠습 니다. 경제적 면, 군사적 면이 많이 좌지우지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걸 등한시하자는 것은 아니고 진정 세계를 지배 할 수 있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이 ‘아리랑’을 세계인들이 흥얼거릴 수도 있고, 한국의 문화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홍보, 처음엔 혼자 시작했지만 이제는 후원자가 많이 계시지요?”
“매우 많습니다. 독도나 위안부 관련해서 함께 한 김장훈 씨를 비롯해서 한식 프로젝트를 함께 한 <무한도전> 팀도 있지요. 한글 안내 서비스를 함께 하고 있는 송혜교 씨뿐만 아니라 정부든 기업이든 후원해주셔서 지금은 프로젝트 진행에 큰 문제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릴 정도입니다.”
“김장훈 씨와는 각별한 관계시지요?”
“참 훌륭한 분입니다. 제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내레이션할 사람으로 김장훈 씨를 섭외하려고 소속사에 연락했어요. 그런데 이미 김장훈 씨가 저에 대해 잘 알고 저를 만나고 싶었다는 겁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기투합해서 바로 형ㆍ동생 먹었습니다. 내레이션뿐 아니라 광고 캠페인 후원자가 되었지요.”


셔츠는 제이미 앤 벨, 안경은 알로 제품. 보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국가 홍보라는 것이 자칫 배타적이고 국수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이의 홍보는 궁극에는 세계인들과 문화를 공유하며 동반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가기 위해 억압과 폭력과 왜곡의 과거를 청산하자고 제안한다.


광고 아이디어를 함께 내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와주는 형님, 후배들이 있단다. “제가 디렉터 역할을 하긴 하지만, 한글과 한식 등 분야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두 직업이 있어서 대개 저녁에나 만나서 의견을 나누지요.”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시지요?” “그럼요,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람들 때문에 가능합니다. 제가 강연 다닐 때마다 20대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인생의 노하우knowhow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노후knowwho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노후knowwho란 어떤 사람과 일을 도모할 수 있고, 어떤 사람과 즐길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지요.”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라 했다. 그이가 ‘노후knowwho’에 이르는 관계의 ‘노하우knowhow’는 어떤 것일까? “상대방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개인의 어깨에 ‘국가’를 짊어지고도 축지법 쓰듯 달려가는 비결은 거기에 있는 듯했다. 저이는 혼자 닿는 게 아니었다. 마음을 지렛대로 무수한 사람과 함께 어깨 겯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대륙을 넘나들며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실행력의 비밀인 것이다.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호칭은 자칭인가요, 타칭인가요?”
“어떤 기자분이 정해주신 것입니다. ‘10년 넘게 한국 홍보를 열심히 해오셨으니까, 한국 홍보 전문가로 적겠다’ 해서 그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서 궁극에 어떤 사람으로 세상에 남고 싶나요?”
“한국의 문화와 세계의 문화를 연결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푸르메재단(재활 전문 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공익 재단) 홍보대사로 나눔의 일선에서 일하시던데,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미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해왔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장애인 시설들을 사진으로 찍고 취재를 해왔어요. 사회적 약자인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무언가 기여해보고자 자청했습니다. 병원 건립을 위해 가수 션 형이랑 의기투합해서 ‘만 원의 기적’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동참해서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재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이는 ‘홍보’의 재능을 ‘나눔’과 연결시키는 데에도 나름대로의 관심과 철학이 있는 듯했다. 어떤 나눔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행복을 얻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홍보라는 것이 자칫 배타적이고 국수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이의 홍보는 궁극에는 세계인들과 문화를 공유하며 동반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가기 위해 억압과 폭력과 왜곡의 과거를 청산하자고 제안한다. 국가 외교가 밀폐된 회의실 탁자 앞에서 마주 보는 것이라면, 민간 외교는 개활한 여행지를 함께 걷는 것일 터이다. 눈빛을 번득이며 득과 실을 계산하는 대면이 아니라, 손잡고 같은 산봉우리를 보는 것이다. 저이의 바깥을 향한 홍보는 역설적으로 안을 결속시키는 힘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1945년 8ㆍ15를 맞았으나 광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진정한 광복은 영토와 국경의 회복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깃든 어두운 식민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이의 국가 홍보는 아직도 진행 중인 독립운동인지도 모른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외교가 각을 세울수록 불온한 모든 쇠붙이를 밀어내는 지혜로운 민간 외교가 필요할 것이다. 호방한 한 사내의 발자국에 우리 모두 미더운 발걸음을 보태야 할 것이다.

취재 협조 푸르메재단(02-720-7002)

진행 최혜경 기자 | 글 반칠환(시인)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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