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원하던 사업이야
전남대학교에서 해금을 가르치고 있던 저는 항상 쉰 살이 되면 교직을 떠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교육은 체력과 열정, 소통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젊은 교수들에게 일찍 기회를 주자는 생각을 했지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손재주가 좋고 사교적이던 친정어머니가 노년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 제 미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이 서둘러 사업을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죠. 서른여덟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으며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방문했던 일본에서의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일본의 평범한 가정집에서 궂은 집안일에 거칠어진 손으로 딸의 혼수를 정성스레 만들고 있는 한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유기농 섬유로 만드는 침구와 생활필수품은 볼품 없는 색깔에 디자인도 투박했지만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라는 그의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더군요. 기능보다는 사용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20년간 전통 악기 해금만 가르치던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지만,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사업이 바로 제가 원하던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 두 번째 인생의 출발점입니다.
(왼쪽) 전남대 교수 시절인 2002년, 해금 정기 연주회 중인 고영란 대표.
바이오 유기농 면이 뭐라고?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는 ‘유기농면’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유기농 면이란 3년 이상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목화에 표백이나 염색, 형광 물질 첨가 등의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한 면입니다. 실을 뽑아 제품으로 만들기까지 불순물 제거나 실의 장력 향상 등을 위해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화학약품 대신 바이오 효소를 사용해 100% 친환경적 방식으로 생산하는 면을 ‘바이오 유기농 면’이라 말합니다. 제가 바이오 유기농 면을 개발하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전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외할머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잿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 목화를 공정했는지, 염색이나 표백은 어떻게 이뤄졌고 매염제로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아파트 베란다가 잿물로 엉망이 되고, 수십 번 실패를 하던 중 ‘EM바이오 효소(미생물 효소)’가 떠올랐고, 즉시 효소 배양을 시작 했습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난 동료가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와 동료 교수가 실험실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바이오 효소 개발에 나서주었으니 그런 면에서는 행운아인지 모릅니다. 관련 논문을 찾아 읽으며 밤낮없이 이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2004년 1월 드디어 에코웍스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왼쪽) 직접 재배한 유기농 목화솜으로 만든 패브릭 앞에 선 고영란 대표. 목화솜 그대로의 색깔이 자연과 잘 어울린다.
편견과 싸우는 일 1991년에 모교인 전남대학교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고, 2008년 12월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교정을 떠났습니다. 2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날에 만감이 교차했지만, 곧 사무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2007년 특허 출원을 계기로 사무실은 무척 분주해졌지요. 책상 위에는 결정을 기다리는 서류가 쌓였고 주문량은 밀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확장될수록 더 많은 자본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때까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신용보증기금 대출, 기술보증기금 지원, 정책자금 등 이름도 낯선 지원 제도를 살펴보며 각종 서류와 사업 계획서를 들고 여기저기 뛰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의 문턱은 높았고 전 재산을 처분하며 사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당시 그 과정에서 받은 모멸감과 수치심은 여전히 깊은 상처로 가슴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경영을 해본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아냥거리는 몇몇 기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여성으로서 혼자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 엄청난 도전임을 그때 알았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적은 편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내고서야 반응이 오더군요. 결국 요청한 금액에서 한참 모자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본금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네가 사업을 알기나 하느냐” “음악을 하던 사람이 무슨 사업이냐” 등의 말로 상처도 많이 받았죠. 긍정의 위로와 격려보다는 반대와 우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바이오 가공 효소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 특허기술대전에서 금상을 받은 지금까지도.
직접 재배하는 목화밭에는 하얀색, 녹색, 갈색을 띠는 목화가 함께 자란다. 염색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깔이다.
(아래) 에코웍스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제품인 타월.
분업이라는 지혜를 부리다
저는 자녀 둘 다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 기저귀를 사용해 키울 정도로 유별난 엄마였습니다. 환경도 오염하지 않고,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환경 단체에서 활동하고, 폐식용유를 이용해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 나눠 쓰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지요. 작은 기업이 디자인 능력까지 갖추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분업을 생각했습니다. 홍익대학교와 바이오 유기농 면의 색채 기술 개발을, 중앙대학교·목포대학교와 유아 이너웨어 개발과 의상 디자인을 공동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이 있는 동강대학교와는 바이오 효소 배양에 집중하고 있지요. 교직 생활로 얻은 인프라와 정보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15명의 직원이 에코웍스를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2005년부터 목화밭을 임대해 직접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면을 제조하면서 목화 재배야말로 가장 근본이 되는 사업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가 하얀 목화솜만 생각하지만, 녹색과 갈색 목화 품종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염색을 하지 않아도 자연에 가까운 여러 색채를 가질 수 있지요. 다행히 전남에 오랫동안 유기농 목화를 연구한 바이오기술센터가 있어 씨앗을 분양받고 재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 해외 수출에 성공하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저는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업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추진력과 의지가 남달랐고, 항상 긍정적이었으니까요. 대학을 갓 졸업한 첫째 딸 윤지는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중학생인 아들 지웅이는 여전히 바쁜 엄마가 때때로 불만입니다. 하지만 이 일에 몰두한 지 10년째, 이제는 엄마 일을 존중하고 응원의 목소리도 낼 줄 아니 참 고맙습니다. 지난 5월에는 러시아와 몽골에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첫 해외 진출입니다. 2009년부터 해외 수출을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한 결과입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물은 많습니다. 2011년 11월 KBS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유기농 유아복에 형광 물질과 각종 발암 물질을 발견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친환경’ ‘유기농’이란 말을 마치 트렌드처럼 이곳저곳에서 사용하지만, 실제 100% 유기농 제품인지 소비자가 판단하기는 어렵죠. 유기농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와중에도, 에코웍스는 목화 재배부터 면제품 공정 과정까지 낱낱이 공개하면서 소비자에게 더욱 신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뉴스는 또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 었지만 그런 고비들이 삶을 더욱 성숙하게 완성했다고 믿습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어려울 수도 있구나, 하지만 이 어려움을 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하고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사업은 나누는 것
건강한 기업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과 되도록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에코웍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바이오 효소 공정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이템입니다.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제자들과 해금 공연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사업 자체를 친환경적 삶에 두는 에코 타운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목화 농장 같은 생산 기반 위에 체험 시설을 갖추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것,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태교부터 모든 생활을 친환경적으로 해나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마흔에 시작된 고민이 에코웍스를 만들었듯이, 인생 3막도 이룰 수 있겠지요?
(오른쪽) 타월과 이불, 실내 슬리퍼, 인형 등 실용적인 생활필수품이 에코 웍스의 주요 생산 제품이다.
* 에코웍스의 유기농 타월과 이불은 본지 294쪽 스토리샵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창업으로 인생 2막을 열고자 하는 이를 위한 세 가지 조언 충분한 사전 조사가 이뤄졌는가? 사업 아이템을 아직 선정하지 않았다면 충분한 사전 조사를 통해 사업 영역에 서의 현실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속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인지, 중장기 투자 계획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현재 하는 일을 완전하게 그만두고 시작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시장 조사를 병행하며 ‘이때다’ 싶은 순간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섣불리 결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집중하고 도전하고 점검하는 습관을 가지면 두려움은 줄어든다. 창업 지원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 처음 바이오 유기농 효소 배양을 시작할 때 자본금이 거의 없었다. 사업이 확장되자 집을 팔아서 자본금을 끌어와야 했다. 그때마다 도움을 받은 것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여러 지원 정책이다. 사업을 계획하던 10년 전만 해도 다양한 지원 제도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정보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비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가 있다. 중소기업청 창업지원센터, 창업보육센터 등 초기 창업 자본금을 지원하는 여러 기관의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 갖고 있는 자본과 지원금을 합하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부분 사업 계획서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힘들지 않은 순간은 없다 “실패하면 일어나라, 실패 없는 성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쉰 살이 넘어 돌이켜 보니 ‘내가 어렵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금세 유기농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 16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한숨을 돌려본다. 흔히 말하는 ‘내공’을 쌓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렇게 작년보 다는 올해가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올해보다 내년에는 더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