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마지막 봄의 햇빛을 나른다. 그 아련한 빛 아래 이 세상 꽃이 아닌 것 같은 연꽃 몇 송이 피었다. 사랑의 꽃을 피우는 일이 이토록 가슴 미어지는 일이었더냐. 그래서 이토록 희읍스레 낡아버렸더냐.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싶은 이 고적한 꽃송이들. <행복> 6월호 표지 작품 ‘지화 시리즈 PF 07’이 내뿜는 묘한 기운에 내 마음속에서도 잔물결이 인다.
슬픔이 어린 듯한 이 꽃은 지화紙花 또는 가화假花라 불리는 종이 꽃이다. 조선 시대에 제철이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생화를 대신해 궁중에서도, 사대부가와 민간에서도 두루 사용했다. 저승으로 가는 마무리 치장이 바로 이 종이꽃 상여였고, 굿판에서 신에게 무언가 간구할 때 바치는 꽃도 종이꽃이었다. 궁중의 잔칫상, 민가의 방 장식품, 절에서 불전을 장식하는 꽃도 그러했다. 장터엔 ‘꽃 일’을 하는 장인의 ‘꽃방’이 존재했다. 제사를 앞두고 꽃 일 하는 장인은 부부 관계도, 육식도 금하고 아침저녁 목욕재계했다. 절에서는 꽃방에 금줄을 쳐놓고 꽃 만드는 스님만 들어갔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지 화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값싼 플라스틱 꽃으로 대체되었다. 장인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이제 종이꽃을 만들 수 있는 이는 전국에 서른 명 남짓이란다.
2008년 구본창 씨는 우연히 종이꽃을 연구하는 김태연 교수(대구대 조형예술학과)를 만났다. 지화 권위자인 그는 30년간 종이꽃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꽃 만드는 스님들에게 도구와 방법을 전수받았다. 장인들의 가치 높은 지화 작품을 수집했고, 1999년엔 조선 궁중 상화를 재현해냈다(신정왕후의 팔순 잔치를 기록한 궁중 의궤 그림과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궁중 상화를 재현했다. 궁중 상화를 재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의 궁중 상화 19점은 미술저작권에 등록되어 있다).
“저는 늘 잃어버린 것, 사라지는 것, 작은 것에서 오는 아련함에 마음이 갑니다. 세월이 흘러 퇴색한 지화를 보고 아련해졌죠. 게다가 연약하기 그지없는 종이로 만 들었으니 오래가지 않아 사라져버릴 존재지요. 그걸 만드는 장인도 많이 돌아가셨다니 제가 사진으로 찍어야 할 것 같았어요. 누군가의 시간을 함께 살아낸 그 물건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또 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내 사진으로 그 꽃이 생명력과 온기를 얻는다는 것은 황홀한 일입니다.” 세월의 흔적에서 존재감을 찾는 구본창 씨에게 발탁된 지화. 향기를 품을 순 없으나 온기를 품은 꽃이 되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한 ‘백자’ 시리즈. 마치 가족처럼 보인다.
단아함에서 열정으로, 다시 고요함으로
정신에도 습도라는 게 있다면 구본창 씨는 ‘감성으로 채워진 젖은 정신의 사람’이라고 짐작해버리고 싶다. 그의 작품을 보니 그러하다. 그가 얼굴ㆍ손ㆍ발ㆍ가슴ㆍ굽은 몸을 찍어도(재봉틀로 박아 이은 인화지 위에 인체를 정착 시킨 ‘In the Beginning’ 시리즈), 나비와 곤충 따위를 가느다란 금속 핀으로 고정해 찍어도(그 유명한 ‘굿 바이 파라다이스’ 시리즈), 오래된 벽을 찍어도(‘시간의 그림’ 시리즈), 거품으로 사라지기 전의 작고 초라한 비누를 찍어도(‘비누’ 시리즈), 탈 쓴 광대를 찍어도(‘탈’ 시리즈), 말간 백자를 찍어도(‘백자’ 시리즈) 그 안에는 모두 사라지는 것, 잃어버린 것, 하찮은 것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군더더기 없고, 한결같이 아련하다. 사색의 기운이 가득하다. 한눈에 들려고 서슬 퍼렇게 나대는 일도, 갖은 거드름을 피워대는 일도 없이 담담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나는 고요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어릴 적부터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그림책을 들추어 보거나, 공상에 빠지지 않으면 사금파리 조각, 꽃 한 송이처럼 사라지기 직전의 존재, 강아지처럼 말 못 하는 존재와 대화하는 걸 즐겼어요. 이런 생활을 통해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감수성이 자라났죠. 이게 평생을 날 따라다니니 무섭기도 한 일이지요.” 낡은 시간이 갖는 힘, 그 아련함에 매혹된 사진작가 구본창 씨.
어느 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단아함에서 열정으로, 다시 고요함으로”라고 표현했다. 내가 이해한 바를 풀어 말하자면 그를 세계 무대에 알린 ‘백자’ 시리즈가 있어야 한다.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욕망을 절제하고 무욕의 아름다움을 성취한 조선의 백자를 그는 ‘구본창답게’ 찍었다. 사람들이 곧잘 찾아내는 정신적 깊이와 소박한 격조에 더해 관능적 아름다움까지 드러낸 것이다. 그는 백자에서 한잎의 여자 같은 분홍의 살빛, 그 속내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백자’ 작품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술렁인다. 무언가가 가슴에 격렬하고도 고요하게 쌓이는 걸 느낀다. 그의 작품을 오래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화 또한 그러하다. 그리운 것들은 늘 안개 저 너머에 있다. 그가 찍은 종이꽃처럼. 그 아련한 것들이여.
*<행복> 6월호 표지 속 지화는 무형문화재 김용택 선생(동해안 별신굿 기능 보유자. 무형문 화재 제82-가호)이 만든 작품으로, 김태연궁중상화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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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씨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나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교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계원조형예술 대학 사진전공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있다. 2007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지냈고, 2000년부터는 박건희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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