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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씨의 제안 비단 수의 입고 훠이훠이 돌아가리


1 당의. 2 습신(신발) 3 여모(모자). 4 버선. 5 손톱, 발톱을 담는 주머니인 오낭. 6 치마.

“수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갖춰 입는 성장盛裝이자 다른 세계로 떠나는 날개옷입니다. 삶을 마감하는 이에게 정성스레 옷 한 벌 입혀 새로운 세계로 보내드리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 저는 수의를 지으며 뭉클한 경험을 여러 번 했는데,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해 지은 수의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화장실도 제힘으로 못 갈 정도의 중증 장애아를 부모님이 헌신과 사랑으로 열 살 넘게 키웠는데, 결국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말았어요. 그 부모님은 곧 먼 세상 떠날 딸의 수의로 분홍색 치마에 노란색 저고리를 만들어달라셨지요. 저세상이 아니라 시집보낸다는 마음으로…. 또 한 분은 수필가 전숙희 선생이었는데, 읽는 이의 마음에 향취와 운치를 안겨주던 선생의 글처럼 수의도 곱게 지어드렸습니다. 생전에 소문난 멋쟁이인 데다 한복을 즐겨 입으셨기에 따님(조각가 강은엽 씨)과 상의해 좀 남다른 수의를 만들었지요. 선생의 글이 일상에서 눈부신 빛을 찾아내던 걸 떠올리며 삼베 대신 부드러운 광채의 모본단과 명주로 지었습니다. 또 생전에 선생이 좋아하던 흰색과 분홍색, 노란색을 섞었지요.

사실 수의라고 하면 우리는 삼베 수의만 떠올리는데, 옛 문헌 자료를 보면 정말 다양하고 아름다운 수의가 많답니다. 평소 자신이 입던 옷을 수의로 사용하기도 했고, 시집갈 때 만든 원삼이나 벼슬아치의 관복을 수의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지방에는 땅에 묻히면 썩지 않고 뼈에 감기고 붙는다고 해서 명주로 수의를 짓지 않는 금기가 있는데, 그건 몇몇 지방에 국한된 이야기 같아요. 예로부터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는 명주를 최고의 수의 옷감으로 여겼다고 해요. 색깔도 흰색이나 소색素色(직물 그대로의 누런빛)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시집갈 때 가져간 원삼을 수의로 삼은 조선 여인들을 보면 붉고 푸른빛의 수의를 입고 떠났다고 해요.

제가 <행복> 독자에게 제안하는 수의는 사실 제가 입고 싶은 수의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차이 김영진’을 통해 제가 선보인 한복 중에는 레이스 한복이 유독 많아요. 제가 레이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장례식의 주인공은 망자이므로 그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보여줄 필요도 있는데, 수의도 그 취향을 나타내는 물건 중 하나잖아요. 결혼식 때보다 더 아름답게 레이스 장식 한복을 입고 이 세상과 작별한다면 참 좋겠다 싶었어요. 숙고사와 갑사로 만든 치마에 레이스로 장식한 분홍색 당의를 입고. 제가 쓴 레이스는 면과 실크가 혼합된 실로 짠 것으로 매장할 때도, 화장할 때도 문제가 없어요. 내가 입고 떠날 수의든, 부모님께 지어드릴 수의든 그 옷의 주인이 추억하고 싶은 순간과 일상을 담은 옷이면 족하지 않겠어요?” 

요즘 뜨는 한지 수의, 어디서 구입하나
잘 타고 잘 썩어 친환경적인 한지 수의가 주목받고 있다. 중성지로 만들어 특별히 방부 처리를 안 해도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데다, 화장을 하면 매연이나 불순물을 내뿜지 않고도 완전 연소되는 대표적 친환경 제품이다. 또 매장할 경우 2년이면 완전히 분해되고, 방충 효과도 있어 해충이나 잡균이 침범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 삼베 수의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도 큰 장점.

1, 2 고려한지수의 한지 의상 디자이너 전양배 씨가 전통 양식을 고증해 재현한 한지 수의. 여러 번 한지 의상 개인전을 열고, 한지 패션쇼에도 참가한 디자이너의 의상답게 독창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당의형, 활옷형 수의와 기독교 수의, 불경 수의 등 선택의 폭도 넓다. 063-284-3869, www.koreahanji.com
3 전주전통한의원 100% 국산 닥으로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만든 한지로 수의를 짓는다. 무엇보다 품질이 우수한 한지만 엄선하기 때문에 흡수성과 통기성 면에서 탁월하다. 자수 수의, 황토 수의, 금분 수의, 흰색 수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문의 010-8959-7757, www.hanzi.co.kr

수의는 왜 윤달에 지을까?
요즘은 윤달에 수의를 짓는 것(이때 마련하지 못했다면 윤년의 유월 혹은 섣달, 그도 안 된다면 수의 임자가 예순 살이 되는 해 생일이 든 달에 마련)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지만 그 근거가 되는 역사적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선 시대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가 유일한데, 그것도 “윤달은 풍속에는 없는 달이라 하여 혼인하기에 좋고 또 수의를 만드는 데에도 좋다” 정도의 기록뿐이다. 그렇다면 윤달에 수의를 짓는 풍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계절과 달이 맞도록 4년에 한 번씩 끼워 넣은 윤달은 그만큼 오래 기다려야 돌아오는 ‘귀함과 드묾’의 시간이다. 이때는 인간 곁에 머무는 신들마저 하늘로 돌아가 쉰다고 여겨 신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 때이니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수의를 지어두는 것도 문제 있을 리 없었던 것.
도움말 정종수(국립고궁박물관 관장)

인생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말, 묘비명
현자들은 생전에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만들고, 묘비명을 살아 있을 때 스스로 지었다. 묘비명으로 거친 삶을 스스로 다독이기도 하고, 함축된 언어로 당시의 인생을 노래했으리라. 때론 장엄하게, 때론 코미디처럼 위트 있고 발랄한 문구로 고인을 추억하게 만들고 남은 자를 위로하는 묘비명. 한 생을 치열하게 살다 간 국내외 명사들의 묘비명을 모았다.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1856~1950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의 소설가, 1899~1961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

모리야 센얀 일본의 선승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동이 샐지도 몰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1883~1957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1854~1900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반암의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때 로비, 나는 자네에게 몸을 돌리며 속삭이겠네, 로비, 우린 저 소리를 못 들은 체하세라고.”

박수근 화가, 1914~1965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조병화
시인, 1921~2003
“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1475~1564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오.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아다오. 목소리를 낮춰다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1564~1616
“여기 묻힌 유해가 도굴되지 않도록 예수의 가호가 있기를. 이 돌무덤을 보존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을 것이며, 나의 유골을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오쇼 라즈니쉬 인도 명상가, 1931~1990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



디자인 안진현 기자 캘리그래피 강병인 어시스턴트 최고은

구성 최혜경,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