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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장례식] 건축가 이타미 준 가는 이, 보내는 이 모두 환희로웠다
우리는 장례의 참뜻을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친 이를 떠나보내고 그가 한 줌 먼지로 돌아가 자연을, 세상을 이롭게 하도록 돕는 의식이 장례 아닐는지요. 우리가 원스톱 장례 서비스에 길들여지고, 대량생산한 ‘기성품’ 수의와 근조화만 찾는 이유도 바로 그 참뜻을 잊은 채 효율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장례를 치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생의 마지막, 미소 속에서 가족을 존엄하게 떠나보내려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장례 문화를 제안합니다.


장례식은 가족끼리 소박하게 치렀고, 추모식은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함께했다. 선생의 예전 얼굴 사진과 건축물 사진을 편집한 영상을 함께 보며 그를 추억했다.


이타미 준 선생이 가시는 길 위에 낭랑한 서편제 한 가락 들썩였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판소리로 배웅하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사랑하고 아끼던 지인들 모두 모여 함께 들썩이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작년 6월 26일, 선생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느닷없이 돌아가셨다. 선생이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준비하거나 당부할 를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도타운 정을 주시던 선생의 딸(ITM건축사사무소 유이화 소장)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의 장례는 그저 애통으로만 가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길 떠나는 아버지를 위해 벗들이 모여 벌이는 환송연 같은 거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했고, 나는 그 의견에 공감했다. 선생이 직접 당부하진 않았으나, 선생 또한 딸의 의견에 찬성하셨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을 품고 사랑하셨으니, “한낱 인간으로 태어나 위대한 자연에 잠시 잠깐 어울리는 물건을 놓는다”란 자세로 건축을 행하신 분이니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귀로가 비감하지 않길 바라셨을 것이다. 일본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직계가족만 참석했다. 죽음에 피붙이를 빼앗긴 것이니 그 석별이 비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의 딸은 직접 장을 보고 인터넷에서 상차림 방법을 찾아내 아버지의 제사상을 차려드렸다고 한다.

7월 19일 오후 5시 30분, 서울 방배동의 ITM건축사사무소 사옥에서 이타미 준 추모식이 열렸다. 선생의 딸이 바라던 ‘아버지의 벗들이 모여 벌이는 환송연’이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버지와 깊은 인연을 나눈 분들이 모여 벌인 환송연. 선생과의 기억을 도닥이며 추모 묵념을 하고, 이타미 준 선생의 인물 사진ㆍ건축 작품 사진을 편집해 만든 10분 내외의 영상을 감상했다. 천생 예술가이던 선생님, 술과 이야기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던 선생님, 많은 지인과 예술인들 사이에서 사셨지만 항상 야릇한 고독과 외로움의 감성을 내재하고 있던 선생님의 모습이 화면에서 명멸했다. 그 자리에 모인 벗들은 각자 선생과 공유한 시간과 공간, 그 추억을 떠올리며 애련愛戀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나 또한 당신과 여러 가지 교감이 있다며 제자로 사랑해주신 선생님, 아버지나 형님 같은 애정과 조언으로 미숙하고 방황하는 나를 붙들어준 멘토, 일본과 조국 땅에서 발품 팔며 우리 미술품을 수집한 선생님, 투박하지만 담백한 두부에 연민의 정을 느끼며 죽과 일그러진 죽사발의 환상 콤비에 예찬을 쓰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 후 공간건축사사무소의 이상림 대표,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 그리고 내가 추도사를 전했는데, 딱딱한 추도사라기보다 각자 선생과 맺은 인연과 추억을 나누는 것이었다. 추도사를 읽으며 나는 그만 어깨울음을 하고 말았는데, 환송연이 잠시 나 때문에 엄숙해진 듯해 꽤 민망했다. 선생이 생전에 재미나게 보신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오정해 씨가 서편제 중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환송연의 감흥을 돋우었다. 이어진 식사 시간엔 평소 선생이 즐기시던 VASO라는 이름의 와인이 한 순배씩 돌았다. 동아제분 이희상 회장의 부탁으로 이타미 준 선생이 라벨 디자인을 자문한 술이다. 선생은 밥을 먹는 자리에도 늘 술을 함께 둘 정도로 술을 즐기셨다. 무엇보다 선생은 마음 맞는 이들끼리 재즈 카페에 둘러앉아 담소하는 걸 좋아하셨다. 선생을 좋아한 이들이 모여, 선생이 좋아한 와인을 함께 나눈 추모식. 선생을 중추로 모인 인연이 새로운 인연의 실을 잣는 자리이자, 그분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자리였다. 그리고 가는 이, 보내는 이 모두 환희로웠다.

1 건축가 이타미 준의 대표작인 방주교회. 


2
일본에서 열린 장례식을 위해 딸 유이화 씨가 직접 차린 제사상. 
3 선생이 생전에 좋아한 <서편제>의 오정해 씨가 특별 공연을 했다.

“아버지는 제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었으며 선배이자 멘토 그리고 뮤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건축하는 법을 보여주셨고, 그 작품에는 늘 따뜻한 온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새로운 조형에 대한 끝없는 탐구는 쓰러지기 전까지도 멈출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성품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끌어안았듯이 당신의 건축 또한 세월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숨 쉬는 모든 자연을 그렇게 품고 사랑하셨습니다.”
_딸 유이화 씨의 추모글 중에서

4월 17일부터 6월 23일까지 일본 도쿄의 TOTO 갤러리-마(間)에서 <이타미 준 전-손의 흔적>이 열린다. 그의 사후 처음 열리는 전시로 데뷔작 ‘엄마의 집’(1971년작)부터 세상을 떠난 후 현재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총 24작품을 소개한다. 모형, 사진과 함께 손 그림을 고집한 이타미 준의 오리지널 스케치, 드로잉, 애용하던 책상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www.toto.co.jp/gallerma

이타미 준은 …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려 시대 3대 장군인 유금필 장군의 후예이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평생 조선의 미를 사랑한 건축가다. 건축과 예술 사이,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여러 건축물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제주 포도 호텔을 디자인했고,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생존 건축가 가운데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2005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유동룡庾東龍(그의 한국 이름)은 2011년 6월 26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 안진현 기자

구성 최혜경,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