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전문의 이민수 교수에게 물었다
우울증에 관해 몇 가지 궁금한 것들
이민수 교수는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고려대학교 의료원 우울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치매, 조현병 등을 진료합니다.
1 장 보러 나가는 일도 귀찮고 이유 없이 울적할 때가 많은데, 우울증인가요?
단순히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든다고 우울증에 걸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우울한 감정이나 슬픔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됩니다. 보통 어떤 일을 2주 이상 지속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2 그렇다면 언제 진료를 받아야 하나요?
우울증이 의심되면 최대한 빨리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금방 좋아지겠지’ ‘이 정도는 내가 이겨낼 수 있어’ ‘내가 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는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발병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본인 스스로 병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증세가 심각하다면 가족이 적극적으로 병원을 함께 방문해야 합니다.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요.
3 대체 우울증이 왜 생기는 거지요?
주요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과거와 비교해 현대 도시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마음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져 발생하는 신경생화학적 원인을 들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경우, 숭배하던 대상이 자살을 선택하면 주체성 상실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고령화로 인한 질병이나 사고에 따른 후유증, 그리고 일부이긴 하지만 유전적 요인도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우울증일 때 그 자녀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두 배가량 높습니다.
4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네, 두 배가량 높습니다. 평등사회라고 하지만 여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여전히 억압적인 것이 많습니다. 또한 여성은 평균 14세부터 47세까지 30년 이상 월경을 합니다. 이때 생기는 호르몬 변화가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어 우울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갑상샘의 기능 저하입니다. 우리의 지능을 지배하는 것이 뇌라면 우리의 감정과 마음을 지배하는 신경은 갑상샘입니다. 기쁨을 조절하는 중추 기관이 망가지면 우울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갑상샘 장애가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곧 여성의 우울증 발병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5 특별히 우울증에 잘 걸리는 성향의 사람이 있나요?
누구나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잘 걸리는 대표 유형을 꼽는다면 자존심이 무척 강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숙도가 떨어지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6 반드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반드시 정신과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의 경우 50%가 반드시 재발합니다. 정상적인 생활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나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 우울 증상으로 인해 직장이나 학교에서 2개월 이상 정상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7 우울증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으면 어떤 검사를 하나요?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그 척도를 통해 현재 심리 상태를 검사합니다. 환자용, 전문가용 두 가지가 있는데, 환자가 스스로 체크한 후 전문가가 정밀하게 다시 한 번 점수를 매깁니다. 그리고 우울 증상이 알코올이나 약물, 기타 신체적 질병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위해 혈액, 간 기능, 신장, 당뇨, 전해질, 일반뇨 검사를 비롯해 심장과 갑상샘 기능 검사를 합니다.
(오른쪽) ‘웃다 -꽃잎의 무게’, oil on canvas, 53.0×40.9cm, 2012
8 우울증 확진을 받으면 어떤 치료가 이뤄지나요?
환자 개인의 진단 상황에 따라 진료를 하기 시작합니다. 증상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다양한데, 약물치료와 정신치료가 대표적입니다. 약물치료는 불균형한 신경전달물질을 정상화하는 것입니다. 치료법으로 항우울제 복용이 대표적이며 약 종류만 30가지가 넘습니다. 우울증에 수반된 불안이나 수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진정수면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환자의 우울증 원인을 파악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재발률도 낮습니다.
9 항우울제를 오래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나요?
중독성이 있어 위험하다고들 합니다만, 잘못된 정보입니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당뇨병처럼 우울증도 하나의 질병입니다. 당뇨 환자가 약을 중단해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약에 중독되었다고 말하지 않지요. 그러나 우울증이 재발해 다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중독되었다고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 니다.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로 발생하는 것이 우울증이며 항우울제는 그것을 정상화시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므로 약이 필요한 우울증 환자의 경우 수십 년 복용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10 우울증도 완치가 되나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한편으로 슬프겠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극단적인 우울증 환자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면 80% 이상 치료가 가능하니까요. 보통 항우울제를 복용한 지 1~2개월 후면 증상이 무척 좋아지며, 최소 6개월은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완치에 가까워집니다. 우울증의 특징 중 하나가 재발입니다. 치료 하지 않으면 5년 안에 재발합니다. 본인은 더는 문제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병 중에 우울증만큼 치료가 잘되는 것도 없습니다.
11 약물치료 없이 우울증을 치료할 수는 없나요?
운동과 명상, 규칙적인 생활 리듬 유지와 긍정적 사고 등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면 우울증도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 투자와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당장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 환자에게 약물치료 없이 명상과 운동만 권유하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요? 항우울제는 마음을 정상화하고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항우울제 복용을 무조건 약에 의존하는 치료법이라고 여기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12 가족 중 한 명이 우울증 환자인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너의 삶이 편해서 그래. 난 아플 새도 없어”라고 비아냥거리며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우울증은 의지에 의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의 말입니다. 들어주고 그 말에 공감하세요. 상대편의 입장에서 얼마나 괴로울지를 함께 걱정하세요. 가족도 함께 힘들겠지만, 함께 나을 것이라고 믿으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부담 없이 병원을 찾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위로의 말을 잊지 마세요.
13 우울증을 예방하고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울증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인격이 잘못되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기 바이러스처럼 신경전 달물질의 부조화로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일시적이며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좋아질 수 있지만, 회복이 되지 않을 경우 전문의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빨리 치료를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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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 강병인 디자인 전지원 기자 작품 이미지 제공 이순구(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