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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찬중 씨 시스템을 설계하면 건축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된다
그가 만든 건물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뾰족한 박공지붕의 집다운 집도 있는 반면,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듯한 비정형 덩어리에 구멍을 숭숭 뚫어놓은 추상적인 건물까지, 한마디로 극과 극을 달린다. 건축가 김찬중.그는 30대에는 한국 건축계의 기대주였고, 40대인 지금은 그 바람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다. 그래서 이쯤에서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 과연 이 다양한 건축의 스펙트럼에서 그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김찬중이라는 건축가의 스타일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새로운 소재와 시스템이 만나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는 것이 건축의 묘미라 생각하는 김찬중 씨. 새롭게 마련한 건축 사무소 ‘더 시스템 랩’은 그의 최신작이기도 하다. 덱에 놓인 흰색 구조체는 그 자체로 의자가 되기도 하며 모듈로서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는 벽돌, ‘큐브릭’이다.


지난 1월, 서울대공원 한복판에 낯선 조형물이 새로 등장했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4m. 전체적으로 보면 정사각형 구조물이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기하학적 조형물. 언론은 이를 두고 ‘먹다 버린 치즈 덩어리’라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이에 뒤질세라 누군가는 스펀지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쓰다 남은 지우개라는 별명을 붙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아트 폴리 Art Folly’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된 건축가 김찬중 씨. 그가 이에 화답한 작품 ‘큐브릭Cubrick’은 화제의 중심에 선 동시에 김찬중이라는 건축가를 이해하는 데 또 한 번 허를 찔렀다. 과연 이 모호한 작품은 그의 건축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단 말인가.

건축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큐브릭은 간단한 작품이에요. 섬유강화 플라스틱(FRP)으로 만든 1×1m 큐브 6면에 각기 다른 구멍을 내고, 이를 기본 모듈로 만들어 42개를 쌓아 올린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공공 미술과 건축의 만남이라는 거대(?) 담론이 된 큐브릭. 하지만 김찬중 씨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큐브 각각의 면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곡면과 구멍을 내고, 그 단 하나의 모듈을 만든 것이 그가 작업한 디자인의 전부라는 것. 이후의 작업은 이 큐브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순열과 조합의 문제로 넘어간다.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어떤 곳은 둥근 입구가 되고, 하늘을 향해 동그란 창문이 생기고, 벽과 벽 사이에 비정형의 틈새도 생긴다. 우연의 일치, 추상 예술이라 생각한 거대한 치즈 덩어리가 단 하나의 입방체를 조직적으로 결합한 결과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름이 큐브릭이에요. 정사각형 ‘큐브cube’와 벽돌인 ‘브릭brick’을 합성한 것이죠. 레고를 조립하듯, 큐브릭은 쌓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조형물이 될 수 있습니다.”

김찬중 씨의 최신작이자 화제작인 큐브릭은 파격적인 디자인 때문에 그의 건축 맥락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건축가로서 추구하는 철학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다분히 그다운 작품이다. 작품 구상과 제작, 설치까지 시간은 단 2개월. 공공 미술이라는 책임까지 고민하다 보면 2개월은 구상만 하기도 모자란 셈이다. 그런데 이는 여담이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조건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자신이 선정된 것일지 모른다고 했다.

(왼쪽)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폴리 전시 첫 작품 ‘큐브릭’. 내부에 들어가면 색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설치 미술이다. 과천 서울대공원 입구 앞 광장에 있으며 6월까지 전시될 예정.

김찬중이 생각하는 건축가는 클라이언트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최상으로 실현해 주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건축가는 예술가와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이 건축가를 예술가 범주에 넣기도 하지만, 실제 그런 건축가는 극히 일부일 뿐이죠.” 대신 그가 건축가로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집착(?)하는 것은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환경의 특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건축계에서 그의 시스템은 신속하고 명확하다고 정평이나 있고, 게다가 각 시스템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면서 태생부터 차별화한 건물을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의 시스템적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그렇게 풀어야 할 프로젝트가 김찬중 씨에게 주어지는 것은 필연이 아니겠는가.


1 큐브릭 모형과 김찬중 씨가 그린 그림. 
2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서재. 책상 상판은 그가 유학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 원래는 문짝이라고.


3 사는 이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 집. 김찬중 씨가 가장 돋보이는 곳이 집이 아닐까.
4 화가인 어머니의 작품을 건 다이닝룸.


침대 맞은편에는 흰색 캔버스를 놓아 여백의 미를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


기이한 건물, 예술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건축
김찬중 씨가 디자인하고자 하는 것은 건축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로인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건축은 생성 원리는 비슷할 수 있지만 결과물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김찬중 씨의 건축은 처음부터 그 외형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이라 규정하고 시작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결과는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형태로, 또 어떤 것은 보편적 디자인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건 강렬한 인상을 주는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과 연희동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어요.” 대중의 시선에 맞춰 건축가 김찬중 씨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강남 신사동에 자리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과 문화 예술 공간 연희동 프로젝트다. 그중 작년에 완공한 폴 스미스 건물은 브랜드 고유의 파워와 마시멜로, 혹은 치아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건축 디자인의 결합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역시 폴 스미스다운 기발한 건물이야!”라는 감탄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는 폴 스미스의 감각을 극대화하거나 압도하겠다는 미학적 도전이 아닌 ‘고객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최고의 서비스였다.

“폴 스미스가 제안한 프로그램은 주어진 면적에 비하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래도 이를 반영해보고자 용적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건축법에서 허용하는 용적률 최대치는 150%. 그는 이 건물 용적률을 149.98%까지 알뜰살뜰하게 사용했단다. “법적으로 넘으면 안 되는 선을 피해 면적이 나올 수 있는 최정점을 잇다 보니 볼록한 비정형 형태가 탄생했습니다.”

알고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에서 탄생한 디자인. 준공 허가를 위해 방문한 공무원은 이렇게 ‘얄밉게’ 최대한의 공간을 뽑아낸 건축가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넸단다. “와! 솔직히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건축가 그리고 김찬중 씨의 집이라는 특성이 드러나는 거실. 천장 높이와 맞닿은 문은 벽면의 일부가 되어 미니멀한 공간감을 강조하고, 직선과 곡선 그리고 원형의 소파와 의자, 테이블은 편안한 듯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파 뒤 그림은 김찬중 씨 작품.


모델하우스라고 착각할 법한 깔끔한 주방. 왼쪽 벽면에는 그의 어머니인 화가 강명순 씨의 작품을 걸었다.

산업 디자인으로 건축을 말하는 ‘젊은’ 건축가
건축계든, 대중매체든 김찬중 씨를 소개할 때 언제나 ‘젊은 건축가’라는 수식를 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더 라스트 하우스The Last House’라는 납골당 디자인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유기적 형태의 110m 높이 타워 안에는 수직으로 배치한 납골함이 있고 각 납골함에는 고유 인식 번호가 있어 유족이 메시지를 남기면 납골함에 점등이 되는, 이른바 ‘디지털 헌화’를 제시했고 이를 서울 한강둔치에 설치하면 좋겠다는 획기적인 제안까지 해 화제가 되었다. 또 같은 해 베이징 비엔날레에서는 물에 떠다니는 ‘보트클럽 하우스’를 선보이며 ‘아시아의 주목받는 신인 건축가 6인’에 꼽히기도 했으니. 그는 발전 가능성 이 큰 ‘젊은’ 건축가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예측대로 이제는 우리나라 건축계에 자신만의 시스템으로 고유 코드를 형성하고 있는 그는 ‘프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름 앞에 ‘젊다’는 타이틀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 제가 건축에 산업 디자인을 접목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의 건축 사무소 이름 ‘더 시스템 랩 The System Lab’ 행간을 읽으면 알 수 있듯 그의 행보는 건축 고유의 체계를 찾기 위한 실험의 연속이다. 특히 건축에서 배제된 산업 소재에 흥미를 느낀다는 그는 건축 시스템을 산업 디자인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남다른 시도를 통해 혁신과 개성을 담보한다. 게다가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활동하는 부인 덕분에 그 호기심을 구체적으로 충족해나가고 있다는 그는 최근 발표한 설치미술 ‘큐브릭’을 섬유강화 플라스틱(FRP)으로 제작했고, 지난 2009년 완공한 한강 나들목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는 투명 플라스틱 모듈을 적용해 터널 외벽을 단장했다. 그리고 이 산업 디자인의 개념은 한번 지으면 고정 불변하는 건축의 속성을 깨뜨리는 ‘시스템’을 이식하는 데 유효한 매개체가 된다.

“대형 건설사의 모델 하우스 같은 건물은 빨리 짓고, 수명이 짧다는 속성이 있죠. 또 이를 허물 때 나오는 폐기물을 생각하면 건축가로서 솔루션을 제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그는 건설사 모델하우스 프로젝트에 역으로 제안을 했다. 모듈화된 플라스틱 외장을 사용해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외벽을 해체한 후 이를 다시 조립해 쓸 수 있는 디자인. 바로 이것이 그가 말하는 건축의 산업 디자인, 즉 건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다.


1 아이들 방이라고 컬러풀해야 할 이유, 이 집에는 없을 듯하다. 컬러에 대한 논리가 분명한 아빠가 꾸며준 방이니 말이다. 
2 서재 안에 서재라 하면 맞을까. 애매한 자투리 공간을 서가로 변신시켰다.


3 ‘독방’을 쓰지 않고 같은 ‘필드’에서 작업해야 수평적 관계가 형성돼 시너지를 얻는다고 말하는 김찬중 씨. 
4 의자와 벽면의 도킹을 빼고 모두 건축 자재로 연출한 회의 공간. 책상 위 필통은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 외벽에 사용한 플라스틱 모듈이다.


외부에서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공간. 뾰족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내려다본 사무실은 일하고 싶은 공간임에 틀림없다.


블랙·화이트·그레이 그의 스타일은 무채색으로 완성된다
지난해 말, 그는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트폴리 프로젝트도 그렇거니와 새롭게 시작하는 ‘더 시스템 랩’의 사무실도 만들어야 했기 때문. 입지부터 공간 컨디션까지,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무실 ‘얻기’는 건물 짓기보다 더 힘든 과정.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분당의 한 아파트 상가 건물 맨 위층, 창고를 만나면서 그의 고민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창고 특유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삼각 지붕, 공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메자닌까지 있는 사무실은 건축 스튜디오의 ‘로망’까지 표현해냈으니 말이다. 덕분에 더 시스템 랩은 최소한의 재료와 요소만으로 업무 효율성은 물론 스타일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요철 간격 자체를 이상적 비율로 디자인한 철제 패널을 제작해 벽면을 마감하니 마그네틱 보드까지 마련되었고, 건축 자재로 만든 책상과 파티션에는 바퀴를 달아 유동적인 업무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을 볼 수 있는 덱은 사무실에 갇혀 있다는 억울함도 통쾌하게 날려버릴 듯. “분당에 있는 데다 창고를 개조한다니까 이사 오기전에 그만둔 직원이 있었어요.” 이제는 두고두고 박장대소할 에피 소드를 듣고 있노라니 별다른 장식 없이도 공간이 이렇게 세련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남자 여덟 명이 있는 곳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깔끔한 분위기는 어디서 비롯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꼭 필요한 것만 취사 선택하고, 컬러도 그 자체로 정리되어 보이는 몇 가지만 사용하면 가능해요.” 그러고 보니 사무실은 짙은 회색 벽면과 파티션이 흰 바닥과 대비를 이룬 큐브로 다가오고, 그 가운데 노란색 의자와 천장에 설치한 케이블이 오브제처럼 느껴질뿐. 이는 그의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닥과 벽면 모두 화이트로 단장한 집 안에는 블랙ㆍ그레이ㆍ브라운 등 무채색 가구와,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그림이 나름의 법칙에 따라 공간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리고 이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집, 더도 말고 덜고 말고 집주인과 꼭 닮은 것 아닌가! 그래서 생각해 본다. 누군가 이제 건축가 김찬중 씨를 떠올렸을 때, 이렇게 기억되기를. 무엇이든 고유의 속성이 있게 마련이고, 그 고유의 환경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김찬중 씨는 감각마저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표현해 내는 멋진 건축가라고.

  
1 현실적인 접근에서 탄생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 
2 건축을 통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하는 것. 건축가라면 꿈꾸는 모든 것이 담긴, 김찬중 씨가 지향하는 궁극의 작품은 바로 이 납골당 프로젝트다. 
3 실험적 건축가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인 플라스틱 모듈을 끼워 맞춘 한강 입구 디자인.

글 이정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