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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감별사 이윤선 씨 어느 날 커피가 내게로 왔다
커피 맛을 완성하는 마침표 역할을 하는 이가 바리스타라면 커퍼는 맛의 기본인 원두의 품질을 평가하는 감별사다. 강릉 MBC 프로듀서로 일하던 이윤선 씨가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선택한 것이 바로 커퍼의 세계. ‘다방 커피’를 즐겨 마시던 평범한 직장인이 커피 세계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세계적인 커피 품평회 심사관이 되었다. 그는 지금 커퍼로, 그리고 품질 좋은 커피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그린빈 바이어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3545 인생 2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란 늘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 있는 주부에게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독신 여성에게도 그 도전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2년을 맞아 <행복>에서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30~40대 여성을 응원합니다. 가열찬 용기로 인생 2막을 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행복> 2월호에 진행한 ‘3545 인생 2막’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인생 2막을 꿈꾸고 있다고 답변했고, 그 중 29%가 “현재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꿈꾸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습니다. <행복>은 ‘원하는 일’을 찾아 근무하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커피 감별 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윤선 씨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여러분께 속 깊은 조언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커퍼cupper입니다. 커피 원재료인 생두의 품질을 평가하고 커피의 맛과 향을 감별하는 사람입니다. 재료 본연의 품질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와인이라는 완제품의 맛을 평가하는 소믈리에와는 조금 다릅니다. 커퍼는 매해 수확하는 커피를 평가해 가장 가치 있는 커피를 골라내는 일을 합니다. 그 일련의 평가 과정을 커핑cupping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커퍼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커퍼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커피 애호가도 아니었고, 달큼한 인스턴트커피를 즐겨 마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니까요.

나는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마흔 번은 시험을 본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전국의 방송사를 돌며 시험을 본 지 3년 만에 강릉 MBC 프로듀서로 입사했습니다.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일하는 동안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만났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도 잦았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제가 살아온 삶과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꿈꾸는 일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고 거침없이 젊은 날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제게 없는 삶의 향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그림과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깊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과연 이 일이 내가 원하던 것일까?

업무가 과도한 것도 아니고, 방송이 재미없지도 않았습니다.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오랫동안 프로듀서로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갈증이 이어졌습니다. 여러 번 입사 시험에 실패하면서 제게는 프로듀서로 도전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입시 준비와 취업 준비로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던 제가 그 환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자, 오히려 선택은 쉬웠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입사한 지 7년 만이었습니다.

(오른쪽) 2010년 브라질 COE 대회 국내 평가전에서 동료 커퍼들과 함께.

나를 알아주는 사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3년간 힘들게 노력해 방송국에 입사한 딸이 백수가 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강릉에서 카페 ‘테라로사’를 운영하는 김용덕 대표의 전화였습니다. 그는 제가 프로듀서 시절 그의 공장 설립을 취재하면서 인연을 맺었지요. 김용덕 대표가 그의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거절하기를 여러 번, 6개월의 집요한 설득이 이어졌고 저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커피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끈질기게 설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용덕 대표가 저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아낌없이 후원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내 능력을 알아주는 비즈니스 동반자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카페의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의 기원, 산지에 따른 생두의 차이, 로스팅과 추출 과정 등 커피와 관련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습니다. 당시 그 회사에서는 일본의 커피 업체를 통해 생두를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수입한 에티오피아 커피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면서 일본 정부가 수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당장 커피를 구할 수 없으니 산지를 방문해 구입하는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2008년 커피를 구매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습니다.

커피를 사려고 커퍼가 되다 커피를 구입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재료를 평가하는 제 능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산지에서 커피나무를 처음 보았으니까요. ‘해외의 바이어들은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정할 까’ ‘가격을 결정짓는 재료의 품질은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물건을 사러 간 사람이 볼 줄 아는 눈이 부족하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커퍼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요! 좋은 커피를 구매하기 위해 커퍼가 되는 것은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커핑을 처음 해본 것은 일본의 생두 회사 와타루WATARU를 방문한 2007년이었습니다. 처음 접한 커핑 작업은 무척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커퍼들이 커피 맛을 평가하는 주옥같은 표현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더군요. 커피 한 스푼에는 흙과 과일과 바람과 꽃향기가 나는 ‘신세계’가 있었습니다. 뭔가 묵직한 것으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커핑은 모양이 같은 자기 잔이나 유리잔을 나열한 다음 여러 가지의 커피를 동시에 넣어 테이스팅하는 과정입니다. 커피에 물이 닿으면 거품 막이 형성됩니다. 그 막을 스푼으로 깨뜨릴 때마다 각기 다른 향이 코끝을 자극합니다. 혀 전체에 커피를 골고루 뿌려 재료의 다각적인 맛을 보는 과정이 뒤따릅니다. 커피는 열과 습기에 의해 맛의 왜곡이 많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감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중하고 정밀하게 맛보고 다시 뱉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커퍼에게 종교 의식과도 흡사해 보입니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커핑만 1년 이상을 연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커피의 품질을 파악하기 위해 수입하는 모든 생두를 1kg씩 구입해 커핑을 시도했습니다.


(왼쪽) 이윤선 씨가 부사장으로 근무하는 강릉의 카페 겸 커피 공장 테라로사. 전 세계에서 수집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커피잔을 전시해 놓았다.
(오른쪽) 2009년 니카라과 COE 대회에서 커핑을 위해 세팅하는 모습. 보통 한 테이블에 8~10가지 샘플이 네 잔씩 올라온다.

최고 실력의 커퍼가 되는 길 커핑 연습을 반복해도 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특정 교재도 없고 선생님도 없는 것이 문제였지요. 무작정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COE)’라는 커피 품평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COE는 해마다 생산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 다음 품평회에서 인정받은 커피를 인터넷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협회입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커피 박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지요. 유명 커퍼들이 최고의 스페셜티 Specialty(커핑을 하고 총점을 냈을 때 상위 20%의 점수를 받은 품질의 커피로,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10%만 해당한다)를 품평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요. COE 회원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참관하려면 커퍼로서 능력이 우선이죠. 한국 회원으로는 처음이었고, 한국 커피 시장의 가능성과 그동안 커퍼로서 노력한 과정을 높게 평가받은 덕분에 2008년 4월 코스타리카 COE 대회에 참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커핑의 기본 개념부터 과정까지 새롭게 배웠습니다. 스페셜티 시장의 전설적인 바이어라 불리는 인텔리젠시아의 제프 와츠, 일본 스페셜티 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히데타카 하야시와 마루야마 씨를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의 표현 방법, 점수를 매기는 기준과 전문 용어를 꼼꼼히 기록하며 수많은 오류를 수정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커퍼로서 ‘진짜’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COE 대회의 심사관이 되다 정확히 1년 후, COE으로부터 심사관 자격으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2009년 니카라과 COE 대회였습니다. 전문 커퍼로서 평가를 받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컸습니다. 전설적 커퍼들과 나란히 품평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겐 큰 시험이었습니다. 품평회가 열린 첫날, 하필이면 전설적 커퍼인 하야시, 조지 하웰과 같은 테이블에 배정되고 말았습니다. 30년 이상 커핑을 해온 두 사람과 경력이 채 1년도 안 되는 제가 같은 테이블이라니요! 노련한 커퍼들의 날카로운 품평이 시작되자 다채로운 표현과 날카로운 평가에 감탄이 이어졌죠. 그리고 제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들릴 듯 말 듯 겨우 한마디를 던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첫 심사였지만, 커피 한 잔을 두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프로 커퍼들의 모습에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커퍼로서 배움은 끝이 없다는 점,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COE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저는 1년의 반 이상을 커피 산지에서 보냅니다. 제 삶은 커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농부와의 우정과 배움의 즐거움, 좋은 원두를 구매했을 때의 뿌듯함, 커퍼와 그린빈 바이어로서 얻는 성취감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시작은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운명처럼 커피가 내게 온 이상 저도 커피와 늘 함께하고 싶습니다.


(왼쪽) 카페 한 쪽에 놓인 15~16세기에 사용하던 커피 그라인더.
(오른쪽) 이윤선 씨는 1년에 9개월 가까이 커피 산지를 직접 방문해 고품질의 신선한 커피를 들여온다.


인생 2막을 연 선배
이윤선 씨가 말하는 몇 가지 조언


나를 알아주는 기업을 찾아라
방송국을 그만두었을 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단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뿐이지요. 창업이나 배움 등 두 번째 인생의 갈래가 여럿 있겠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기업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테라로사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커퍼’로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제가 일하고 있는 테라로사가 커피 구매자로서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산지를 직접 방문해 커퍼로 활동하고 싶다면, 그 힘을 실어줄 회사가 필요합니다. 회사가 개인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고용하는 것처럼, 우리도 직접 회사를 골라야 합니다. 나를 알아주는 기업이 분명히 있습니다.

실력이 항상 우선이다
커퍼가 되기 위한 자격증은 없습니다. 미국 커피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미국 스페셜커피협회(SCAA)에서 제공하는 교육 과정이 있는 정도입니다. 일정 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큐그레이더(품질 감별사)’라는 이름의 수료증을 받게 됩니다. 국내에도 SCAA 수료증을 발급하는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커퍼로서 감각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연습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실력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커핑을 제대로 할 줄 모르면 산지에서 엄청난 난관에 부딪힙니다. 많은 바이어를 상대하기 때문에 농부들도 바이어를 테스트합니다. 저 또한 커퍼로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에 있을 때마다 커핑 연습을 합니다.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커퍼로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 십 년간 커피 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커퍼의 능력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언어 능력을 향상시켜라
외국의 관계자와 업무를 처리하려면 언어 능력이 무척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방송국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한 덕이 컸지요. 하지만 일의 영역에서 필요한 전문 용어가 다르기 때문에 늘 공부를 했습니다. 비즈니스는 사람과 사람과의 일입니다. 그만큼 관계에 따라 많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제겐 올해 원두를 구입하지 못해도, 원두가 필요하면 언제든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많습니다. 두터운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농부와 신뢰를 쌓으려면 원활한 의사 소통은 기본이지요. 언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마세요.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언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언어 공부는 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취재 협조 테라로사 (033-648-2760)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