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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현대 미술로 즐기는 음식
음식을 소재로 한 그림은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그림 속 음식에는 재료를 구하고 요리해서 먹는 일련의 과정이 그대로 펼쳐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식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현대 미술 속 음식을 살펴본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이거나 고단했던 과거를 상징하는 음식 일색이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가 배어 있어 군침이 돈다.


파이 진열대Pie Counter, 1963
케이크나 사탕 등 주로 달콤한 디저트를 유화로 표현한 웨인 티보는 팝아트의 대표 작가 중 하나다. 줄을 맞춰 선 군인처럼 늘어선 그림 속 케이크와 타르트는 앤디 워홀이 캠벨 수프 통조림을 2백 개나 늘어놓은 것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미지를 반복하는 것은 팝아트의 특징으로 티보의 그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대량으로 생산하고 달콤한 소비에 빠진 현대 사회를 비판한 것. 하지만 티보의 그림 속 음식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채로 부드럽게 표현해 개성은 덜하지만 입 안에서 살살 녹을 듯하다. 특히 크림 케이크의 질감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붓 터치로 두껍게 칠한 물감이 마치 생크림처럼 느껴져 정말이지 달콤하고 맛있어 보인다. 생김새만 화려한 베이커리 쇼윈도 안의 케이크가 아닌 손맛과 정성을 들인 케이크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티보의 그림 속 디저트처럼 별다른 장식 없이 투박할지라도 직접 만든 케이크 한 조각에 커피나 홍차 한잔을 곁들인다면 화사한 봄날이 황홀해질 것이다.

초콜릿 케이크, 바닐라 케이크, 레몬 크림치즈 타르트, 단호박 파이, 초콜릿 타르트.



웨인 티보 Wayne Thiebaud
달콤한 디저트를 나열하다
캔디 카운터Candy Counter, 1969
쇼케이스에는 군침이 도는 크림치즈 롤케이크며, 애플 캔디, 막대 사탕 슈거 케이크, 사탕 단지가 깔끔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단조로운 구성에 단순한 형태만 사실적으로 표현해 시선을 음식에 더욱 집중시켜서인지 그림 속 음식은 별난 것도 없는 모양이지만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달콤해 보인다. 티보의 그림을 직접 재현해 작품 활동을 하는 샤론 코어Sharon Core라는 사진작가가 있을 정도로 미국 사람들은 티보의 작품을 사랑하는데, 작품 소재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천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식문화와 음식 트렌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캔디 카운터’ 역시 쇼케이스 아래에는 코를 박고 달콤한 먹을거리를 올려다보는 꼬마가 자리하고 있을 듯하다.

체리를 섞은 크림치즈 롤케이크와 애플 캔디. 막대 사탕 모양의 슈거 크래프트 케이크는 로맨틱 슈가 가든에서 제작한 것.



가스레인지 Kitchen Range, 1962
어른도 만화를 좋아한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그렇다. 만화의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표현한 그는 음식이나 조리 도구를 소재로 한 그림도 자주 그렸다. 가스오븐레인지에 빵과 파이, 고깃덩어리를 굽는 장면을 그린 ‘가스레인지’도 형태가 아주 단순하고 색깔 또한 파란색과 노란색뿐으로 만화의 한 장면 같지만, 그의 작품이 늘 그러하듯 이 또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서양인의 일상식을 소재로 한 이 그림을 보노라면 어디선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분주한 칼질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버터와 시나몬 파우더를 넣고 조려낸 사과로 만든 파이,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넣은 견과류빵.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조리 기구를 등장시키다
원형 구이기Roto Broil, 1961

엄숙한 추상표현주의에 반발해 대중 예술인 팝아트가 움트던 1950년대에는 부엌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는 코팅 팬이 처음 시판되었고, 가정용 원형 구이기인 로토-브로일Roto-Broil 등 주부의 일손을 덜어주는 조리 기구가 속속 등장했다. 미술은 어렵고 진지한 것이란 관념을 한 방에 날려버린 미술계의 반항아로 일상을 예술에 녹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는 당시에 유행하던 조리 도구도 소재가 된다. 그의 작품답게 ‘원형 구이기’도 갓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처럼 생기 있고 즐겁다. 프라이드치킨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에게는 특별한 간식으로, 어른에게는 맥주 한잔과 함께 고단한 일상을 잊게 하는 음식인 것은 변함이 없다. 닭을 튀길 때 케이준 시즈닝, 커리, 허브 가루 등을 넣는다면 그림 속 음식도 일상식으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튀김옷 반죽에 케이준 시즈닝을 넣어 만든 매콤한 케이준 치킨.



톰 웨슬만 Tom Wesselmann
미국식 일상을 보여주다

정물 #30 Still Life #30, 1963

팝 아티스트 중에서도 가장 팝적이라고 평가받는 톰 웨슬만의 그림에서는 미국인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흰색, 빨간색, 파란색이 유독 많이 보이는데, 국기인 성조기의 색상을 표현한 것. 대중매체의 광고, 영화, 잡지, TV 등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작품도 많아 그림에서 친근한 제품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근법을 배제한 콜라주 기법으로 그린 창문이 있는 주방이나 거실에 냉장고와 화장대 같은 실물을 오브제와 똑같은 비중으로 혼합한 것은 그가 영향을 받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유화를 패러디한 것. ‘정물 #30’도 미국의 주방에서 맞는 아침 풍경을 보는 듯하다. 지금도 즐겨 먹는 핫도그와 시리얼, 핫케이크 등이 등장해 익숙하고 생생하다. 유명 식품이나 현대적인 실내 풍경을 많이 그린 웨슬만은 “광고 이미지만 보면 가슴이 뛴다”고 했지만, 익숙한 식품이 등장한 그의 그림을 보면 광고의 한 장면처럼 흘려보내기 십상인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눈여겨 찾아보게 된다.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얹은 구운 핫케이크와 머스터드소스를 더한 구운 소시지 핫도그, 과일 시리얼.


구성연 Koo Seong Youn
우리 삶에 가까운 음식으로
예술을 풀다
 

꽃 시리즈
Flower Series, 1997

사진작가 구성연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정물 사진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탕을 소재로, 우리 민화에서 많이 그린 모란도를 모티프로 한 ‘사탕 시리즈’나, 팝콘이 나뭇가지에 매화 꽃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팝콘 시리즈’가 잘 알려져 있다. ‘꽃 시리즈’는 구성연 작가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시도한 초기작이라 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친근한 우리 음식을 꽃과 함께 배치했다. 한데 매일 밥상에서 마주하는 음식과는 다르다. 그는 정작 모양만 갖추고 실용성은 떨어진 음식에 대해 꼬집고 싶었다고 한다. ‘정성’이 바로 꽃이니 엄마가 손맛 들여 만든 음식에는 보이지 않는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닐까. 담음새가 허술하고 별스러울 것 없는 음식이라도 정성이 들어가면 마음의 꽃이 피어 있을지 모른다.

고소한 옥수수술빵, 맑은 콩나물국과 현미밥에 새싹채소와 볶음 고추장을 곁들여 낸 비빔밥, 시원한 백김치.


원작 속 음식 이야기

파이 진열대Pie Counter, 1963

초콜릿 케이크 케이크 시트 반죽에 코코아 파우더를 넣어 구운 뒤 버터크림을 바른다.
바닐라 케이크 바닐라 빈을 넣은 케이크 시트에 딸기잼과 버터크림을 듬뿍 샌드한다.
레몬 크림치즈 타르트 바삭하게 구운 타르트 생지에 레몬즙과 달걀, 젤라틴 등으로 만든 필링을 채워 굳힌 뒤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듬뿍 바른다.
단호박 파이 쪄서 으깬 단호박에 생크림과 달걀 등을 넣고 곱게 간 필링으로 한다.
초콜릿 타르트 바삭하게 구운 타르트 생지에 다크 초콜릿과 생크림 등으로 만든 가나슈 필링을 채워 굳힌 뒤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얹는다.

캔디 카운터
Candy Counter, 1969

체리 크림치즈 롤케이크
달걀에 설탕을 넣고 휘핑해 단단하게 머랭을 올린 뒤 박력분, 옥수수 전분, 녹인 버터, 우유, 물엿 등을 넣어 반죽한 다음 오븐에 구워 케이크 시트를 만든다. 여기에 크림치즈, 버터, 설탕을 섞은 뒤 체리를 넣어 만든 크림치즈를 듬뿍 올리고 가장자리를 만다.
애플 캔디 물에 설탕과 물엿, 식용색소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 시럽에 나무 꼬치를 꽂은 사과를 담갔다 건진다.


가스레인지Kitchen Range, 1962
사과 파이
깍둑 썬 사과를 버터와 설탕을 넣고 조리다가 시나몬 파우더와 전분물을 넣고 섞어 사과조림을 만든다. 파이 생지 두 장을 준비해 파이 틀에 파이 생지 한 장을 깔고 포크로 구멍을 낸 뒤 사과조림과 아몬드 크림을 넣고 나머지 파이 생지로 덮어 오븐에 굽는다.
견과류빵 밀가루에 소금, 설탕, 드라이 이스트를 넣고 섞는다. 여기에 달걀과 우유,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넣어 반죽한 후 1차 발효시킨다. 두 배 크기로 부풀어 오르면 6등분해 동그랗게 성형한 후 잠깐 휴지시켰다가 2차 발효시킨 다음 오븐에 굽는다.

원형 구이기Roto Broil, 1961
케이준 치킨 닭 다리는 칼집을 낸 뒤 매콤한 맛의 향신료인 케이준 스파이스 시즈닝에 30분 이상 재운다. 케이준 스파이스 시즈닝, 옥수수 전분, 박력분을 섞어 만든 튀김가루와, 튀김가루와 같은 재료에 우유를 더해 만든 튀김 반죽을 만든다.
닭 다리에 튀김가루, 튀김 반죽, 튀김가루 순으로 옷을 입혀 포도씨유를 넣은 오목한 팬에 중약불로 노릇하게 튀긴다.

정물
#30 Still Life #30, 1963

핫케이크 밀가루와 버터, 달걀, 베이킹파우더 등을 넣고 반죽한 뒤 버터를 두른 팬에 구운 핫케이크. 따뜻할 때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얹는다.
핫도그 길쭉한 모양의 핫도그 번을 오븐(혹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구운 다음 소시지를 끼우고 머스터드소스를 뿌린다.
과일 시리얼 플레인 요구르트나 우유에 제철 과일을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썬 후 시리얼과 함께 넣는다.

꽃 시리즈
Flower Series, 1997

옥수수술빵 밀가루에 옥수숫가루와 설탕을 넣어 반죽한 후 막걸리와 통조림 옥수수를 넣고 랩을 씌워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 뒤 김이 오른 찜기에 찐다.
콩나물국 맑은 멸치 국물에 콩나물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인다.
비빔밥 현미밥에 식용 꽃과 새싹채소를 얹고 볶음 고추장을 곁들인다.
백김치 마늘과 양파, 배 등을 믹서에 곱게 갈아 찹쌀풀과 물을 넣고 섞은 뒤 소금에 절인 배추에 붓고 익힌다.



어시스턴트 최고은 사진 김정한 요리 김보선(스튜디오 로쏘) 그림 제작 김건희 세트 제작 박선희 슈거 크래프트 협찬 로맨틱 슈가 가든(02-540-0754) 제품 협조 스메그코리아(02-6925-5353), 키스마이하우스(www.kissmyhaus.com) 

 

진행 신민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