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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왈종 씨 제주도, 내 생애 단 한 번의 홀인원!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가 제주도로 내려왔다. 5년 동안 오로지 그림만 그리겠노라고, 그러다 세상을 떠나도 아쉬움 없겠다며 마음먹고 시작한 제주살이가 벌써 23년을 맞는다. 생활의 중도中道를 화두로 동백꽃과 물고기, 나무를 벗 삼아 느릿느릿 살고 있는 화가 이왈종 씨를 그의 서귀포시 작업실에서 만났다.


서귀포시 작업실에서 만난 이왈종 작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때 가장 즐겁다는 그는 웃을 때도 참 소년 같다.


그리움의 땅, 제주도로
대문 너머에는 정방폭포를 찾은 관광객들의 들썩이는 목소리가 윙윙대는데,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이계異界에 온 듯 고요하다. 대문 바로 앞에는 계절 만나 탱글탱글하게 여문 귤나무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동백나무가 사이좋게 반짝인다. 손질하지 않은 듯 풍성하게 자란 풀들을 지나 작업실로 가는 길은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다. 길이 경사진 까닭에 언덕에 자리 잡은 하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제주에서 안빈낙도하는 이왈종 씨와 닮았다. 작업실 창문에는 창밖 풍경을 하늘 삼아 새가 시원스레 날갯짓하고 있다. 알고 보니 새들이 창문에 부딪칠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가 그린 것이란다. 그의 그림에서 보던 제주 생활의 풍광이 그대로 중첩된다. 이방인을 향해 우렁차 게 짖어대는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왈종 씨가 직접 정원으로 나와 인사를 건넨다.
“1960년대 후반 관광으로 처음 제주도에 왔지요. 한겨울이었는데, 순백의 눈 속에서 동백꽃이 불꽃처럼 피어 있더군요. 그 모습이 강렬한 인상으로 가슴속에 남았습니다. 그때 동백나무 주변에는 아픈 이를 위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죠. 그 이후부터 줄곧 제주도를 흠 모했습니다. 제게 제주란 그런 이미지입니다.” 그가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선택한 곳이 제주라는 점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제주도는 그에게 언젠가는 가야 할 목적지이자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리움이었다. 이후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정방폭포 주변에서 머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으니, 그 꿈을 이룬 셈이다. 그가 제주행을 결심한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학생들의 시위가 많았고, 당연히 수업도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그럴 바에야 오롯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학교에 안식년을 신청했다. 그리고 1990년에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1 정원에 수선화가 우아하게 피었다. 모두 그의 그림에서 보아온 친숙한 풍경이다. 
2 골프공 위에 그린 춘화는 그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온 작업 중 하나다.

작업은 끊임없이 정진하는 과정
“서울에 집이 두 채 있었는데, 그중 한 개를 팔면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먹고 살겠다 싶었죠. 그렇게 ‘5년만 그림 그리고 살자, 실컷 그림이나 그리자’ 했는데, 지금까지 여기 살고 있네요. 포기하니 오히려 세상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더군요. 도시에서는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사람을 많이 만나면 다음 날 붓끝이 흔들립니다.” 추계예술대학 교수였을 당시에도 그는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작업에 몰두할 만큼 다작多作을 하기로 유명했다. 제주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 3시. 목탁 대신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고, 새벽에 도량석道場釋을 여는 사찰의 의식처럼 새벽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난 듯 그는 물을 희석한 와인 한 잔에 따뜻한 꿀물을 넣어 ‘제주식 뱅쇼 vin chaud(와인을 따뜻하게 데운 음료)’를 만들어 권한다. 따끈한 알코올 기운이 추위를 단숨에 앗아간다.
“제주도까지 와서 밤에 사람들한테 시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밤을 잃으면 다음 날 작업이 되지 않습니다. 집중력 이 떨어지니까요. 현명하게 시간 절제를 해야 합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이런저런 작품을 함께 작업하다 보니 작업량이 많아요. 작품 앞에서는 정직해야 해요. 그것은 본인이 잘 압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 때까지 작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오후 5시 30분까지 작업하고 오후 6시가 지나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약속을 잡지 않는다. 저녁 참선을 마치고 잠을 청하는 스님처럼 밤 9시가 되면 그의 하루도 마무리된다. 그는 지금까지 수십 번의 전시를 열었지만 단 한 번도 미술관에 직접 전시를 부탁한 적이 없다. 구도의 길을 가는 순례자처럼 작품을 위해 부지런히 정진한 시간의 축적 때문이리라.

제주 색깔에 매료당하다
그의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다. 새빨간 동백꽃 사이에서 새가 날갯짓하고, 연인이 사랑을 나누고 한라산 노루와 물고기가 사이좋게 뛰노는 그림 속 세계는 색깔부터 다르다. 이 세상에 없는 계절처럼 동화 같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난다. 거실에 그림을 걸어두고 그처럼 영롱한 색깔의 꿈을 꾸고 싶다. “저는 어두운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는 밝은색을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제주도에 와서 달라졌지요. 제주의 색깔은 밝고 선명합니다. 지상의 모든 색깔이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얼큰하게 취한 다음 날 일어나기 어렵잖아요. 그때 비틀거리면서 정원 한 바퀴를 돌면 새벽 사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싹이 보여요. 그 애기 손톱만큼 작은 싹을 화두로 몇 년을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그 색깔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가 공부하는 시간이지요.” 제주의 시침은 느리게 가지만, 그는 시간을 허투루 버린 적이 없다. 하찮아 보이는 미물의 색도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오랜 시간의 관찰과 끊임없는 연습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색깔을 끄집어낸다.

동백꽃, 매화, 물고기, 새 등과 더불어 그의 그림 소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골프다. ‘제주 핀크스CC’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린 것이 인연이 됐다. 8개월이나 걸린 대작이었는데, 골프장 회장으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골프채를 선물로 받으면서 운동 삼아 시작한 것.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골프장을 찾는다. “요즘에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들 리조트CC’를 즐겨 찾아요. 바다가 보이니 풍광이 아주 좋아요. 겨울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골프 치기에 알맞은 곳이지요. 아내는 저보다 골프를 더 잘 칩니다.” 고독한 순례자 같다가도 필드를 걸으며 샷을 즐기는 모습을 떠올리면 유쾌한 스포츠 마니아 같다. 골프를 치기 전 볼에 그림을 그리는 취미 덕에 그의 그림이 그려진 공을 주우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오른쪽) 그는 다실에서 뜨거운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만물이 깨어나는 새벽 3시, 그만의 아침 인사법이다.


수선화와 동백나무, 귤나무로 싸인 작업실은 그가 매일 작업에 몰두하는 공간이자 휴식처다.

그가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그의 동반자이자 골프 친구인 아내 김예순 씨와 함께다.


제주에서 찾은 중도의 삶
그가 제주를 찾은 23년 전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떠나온 도시를 잊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서울 생각이 휘몰아쳤다. “서울에서 쓰던 것을 사용하니까 서울 생각이 계속 나더군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다 들고 왔는지 싶어 한번에 모아 다 버렸지요.” 그는 흔들리는 상념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부조浮彫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제주도로 이주한 1990년대 초반 작품을 보면 조각과 회화의 중간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부조 형태의 회화가 많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두드리고 때리는 ‘노동’을 했다.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속죄의 노동처럼 밤낮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때 그의 제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김철호 사장을 만났다. “식당 주인이었는데 예술을 참 좋아 했어요. 해외로 건축 여행을 수백 군데 다닐 만큼 예술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아침에는 등산길, 점심에는 식당, 저녁에는 사우나에서 만났지요. 그렇게 보통 하루에 총 세 번을 만났어요. 식당에서는 ‘밥도 안 먹고 그림을 그리느냐’며 밥을 해놓고 저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지인 한 명 없던 제주에서 만난 인연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김철호 사장은 그의 열혈 팬이자 제주 생활의 친구이며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그 인연은 김철호 사장이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등지면서 끝나버렸다. 상실감이 컸던 이왈종 씨는 그를 위해 1년 동안 향을 피웠다.

“인사동에 가서 향로를 찾으니 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면서 시작한 것이 향로 작업이에요. 도자기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죠.” 김철호 사장을 향한 애틋한 고마움과 그리움으로 시작한 향로 작업은 이제 이왈종 씨 작품의 상징이 됐다. 그가 작업한 향로에도 물고기, 나무, 나비, 새 그리고 꽃이 어우러진다. 사람과 짐승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 평등하다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만물의 경계가 없이 모든 생명체가 평등한 것, 그것이 그가 제주에서 찾은 중도라고 말한다. 한 편의 시조처럼 행간에 여운을 담아 한 문장씩 이어가던 그가 음악을 틀었다. 제주 해녀들이 물질할 때 부르는 지역 민요다. 창밖에는 처마에 달린 풍경이 밤바람에 흔들리며 경쾌하게 울린다. 하루를 인터뷰로 보냈으니, 그는 내일 다시 붓을 잡으리라.
 

매일 참선하는 수도승처럼 작업해 쏟아낸 그의 최근작을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3월 13일부터 4월 1일까지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는 2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회화 60여 점과 부조, 목조, 도자기와 향로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을 전시한다. 정방폭포 앞 그의 작업실을 굳이 찾지 않아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제주에서 만물의 중용을 깨달았듯이, 그의 작품을 만나는 우리도 도시 생활의 중도를 찾을 수 있기를!

‘제주 생활의 중도’, 장지 위에 혼합, 207x297cm, 2011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